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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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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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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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 (ANGKOR W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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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시기 : 1113년~1150년

▷ 건축왕 : 수르야바르만 2세 (Suryavarman II, 1113~1150)

▷ 종교 : 힌두교

▷ 건축양식 : 앙코르와트

건축

앙코르 유적지의 건축 재료로는 나무와 라테라이트, 벽돌, 사암 등이 주로 쓰였다. 라테라이트는 주로 건물의 기초를 다지는데 쓰였는데, 땅속에 있는 진흙인데 공기 중에 노출되면 딱딱하게 굳으면서 구멍이 군데군데 생긴다. 유적지에 가면 건물 기초로 쓰인 돌이나 담을 쌓는데 많이 쓰인 검붉은 돌들. 10세기 이전에는 주로 벽돌로 탑을 지었다. 전탑양식. 롤레이사원이 대표적. 10세기 지나면서 사암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암은 화강암보다는 무르고 대리석 보다는 강한 돌로 씨엡립에서 40KM 떨어진 북쪽 프놈 꿀렌에서 가져 왔다.

앙코르 건축의 특징은 중앙탑이 있다. 크메르사원의 포인트이며 항상 동쪽을 바라보게 지어졌다. 벽돌이나 사암으로 정방형으로 만들어 벽의 4면이 4방위를 보게 지었다. 동쪽에만 출입문을 두고, 나머지는 부조를 한 벽으로 막았다. 4각으로 올라가지만 천정이 있는 높이에서 탑 정상까지 원추형을 만들어 연꽃을 봉우리로 형상화 했다. 초기단계에는 1개의 사원탑만 지었으나 사원의 규모가 커지면서 복잡하게 고조를 만들어 갔다. 보통 3-6개의 층으로 벽돌탑을 쌓았다. 롤루오스 사원이 대표적. 중간단계에는 5개의 탑 구조로 발전 하였다. 각 탑들도 기단을 만들어 계단으로 올라가게 한 다음 그 위에 탑을 세웠다. 힌두 전설에 나오는 수미산(메루산)의 5개 봉우리를 상징한 것이다. 입구는 수문장(코끼리, 사자 등)으로 장식하고, 테라스를 살려 조각을 많이 했다. 프놈빠켕, 쁘리아 룹, 동쪽 메본 등이 해당 된다. 후기단계에는 건축기술이 늘면서 입구탑의 구조도 복잡해졌으며 사원내의 넓이가 넓어지면서 중앙 신전의 위용은 줄어든 대신에 부속탑들이 많아 졌다. 주변 사원과 탑을 연결하는 긴 회랑은 나무지붕을 덮었고, 벽에는 부조를 하여 벽화를 꾸몄다. 입구탑에 큰 얼굴을 조각한 것은 크메르만의 독특한 디자인인데, 12-13세기 초의 앙코르 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2세기 불교의 탑은 중앙사원과 주변회랑, 도서관등 주변 부속 건물이 같은 층에 있다. 반띠아이끄데이, 쁘리아칸, 따쁘롬사원이 대표적이다.

옛날 크메르 문명을 이룬 크메르 사람들은 목조 건물에서 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글 지대에서 발견된 유적지였으니 수천 년 전에도 정글이 우거진 밀림지역 이었을 것이다. 근데 앙코르 왓이나 앙코르톰 등등 앙코르 유적지는 수십만 개의 돌로 이루어졌다. 문제는 사방 수십 킬로미터에 이런 돌이 없다는 것이다. 전부 배에 실어서 코끼리들이 실어 날랐다는 것이다. 엄청난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앙코르 톰은 그때 당시에 100만 명이 모여 살았다는 거대도시였다. 여기서 말하려는 핵심은 크메르제국의 국력이 아니라, 섬세한 예술적 표현, 다시 말해서 과학과 예술이 만나서 하나의 조합을 이룬 게 앙코르 유적지들이다. 가만히 보시면 거대한 사원들이 다들 돌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돌 하나하나씩을 정확한 수학적 계산 하에 쌓아 올려서 만들었다. 별자리에 맞춰가면서, 그리고 그때 당시에 크메르 사람들의 집은 목조건물,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근데 사원을 돌로 만드는데 석조건물을 만든 경험이 없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목조건물 기법으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돌을 나무 다루듯이 만든 것이다. 창문틀이나 문틀, 문지방형식, 창틀 등등...문에 무늬도 목조건물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을 돌에 새겼다. 오늘날 앙코르유적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돌로 되어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머지 크메르 문명은 나무를 사용 했기에 다 썩어서 없어져 버렸다. 지금도 땅에 뒹굴어 다니는 돌들이 많이 있는데 제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현대과학력으로 앙코르 왓을 지어도 60년이 넘게 걸릴 거라고 과학자들은 말을 하고 있다.

 

개요

앙코르는 크메르 어로 "도시 또는 수도", 와트는 태국어로 "사원'을 뜻한다. 서기 802년부터 1430년경까지 크메르 왕국의 중심이었던 거대한 사원이다. 1431년 아윳디야(태국) 왕조의 공격을 받아 1434년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겨 저항했으나 결국 태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시기에 태국의 소승불교가 도입되고 크메르의 전반에 태국어가 유입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규모

앙코르와트는 거대한 인공저수지 위에 뜬 섬으로 좌우대칭형 직사각형 형태를 취하며 총면적이 210헥타르나 된다. 210헥타르? 그게 어느 정도 되는 걸까? 입구에서 신전까지의 해자(연못)의 폭은 200m, 따라서 다리는 폭이 12m, 탑문까지 길이 230m! 뙤약볕에 걷는 것이 힘들고, 탑문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300m의 보도가 신전까지 이어진다. 헉!!! 와트의 담 둘레는 1,300m x 1,500m 이니 무려 5.6km 1층 갤러리 둘레가 804m. (서쪽갤러리 187m, 남쪽갤러리 215m 동쪽갤러리 187m. 북쪽갤러리 215m) 3층 건물이지만 총 높이가 지상에서부터 65m이니 1층당 26m 꼴이며 계단 경사도는 보폭이 인간발의 절반밖에 안 되는 가파르기 그지없어 오르내리는 것도 힘겹다. 신전에 새겨진 압사라 부조만 2천여개.....

 

tip : 앙코르와트 관람 시에는 체력에 유의한다. 덥지 않은 오전 관광이 좋으며 오후 관광일정일 때는 점심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해둔다. 이미 오전에도 땀을 뺏을 것이므로....*^-^*. 준비물 (발 편한 미끄럼 방지 신발, 물, 챙모자 등)에 만전을 기하고 안내책자를 미리 읽어 전체를 다볼 것인지, 또는 볼거리를 체크해두는 게 요령.

 

상징

신전을 에워싼 저수지는 인간계와 신계의 경계를 긋는 해자이며 우주의 근원인 바다이며 성소가 위치한 3층은 사방에 하나씩 4개의 탑을 세우고 가운데 중앙 성소 탑을 세웠는데 이것은 4개의 하늘(세상) 속에 우뚝 솟은 우주의 중심 메루산을 의미한다. 메루산은 지상 낙원이며 신들이 거주하는 산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사후를 보내길 원하는 하늘이다.

 

용도

앙코르와트는 수르야바르만 2세가 힌두교의 비쉬누 신에게 봉헌한 사원으로 즉위한 해부터 공사를 시작 사망한 해까지 공사를 계속했던, 무려 37년간이나 다듬은 사원이다. 그는 왜 평생의 업적으로 이런 사원을 건립한 것일까? 종교/정치 일체의 통치 이념 하에 왕들이 숱한 사원을 지어 바치는 것과는 다른 스케일의 이 사원에 대해 학자들은 무척이나 궁금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를 내놓았다. 앙코르와트는 수르야바르만 2세가 사후 자신이 묻힐 영생의 집으로 건축했다는 것이다.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즉위 때부터 사후를 대비하여 장례전들을 짓듯이. 그 증거로 내놓은 이론은 이러하다. 힌두사원에서 인간의 출입은 생명을 의미하는 동쪽으로 하고 서쪽은 영혼들의 출입구라고 생각했다. 앙코르의 사원 중 장례전 용도의 사원 이외에는 모두가 동문 출입이다. (물론 프레아 칸처럼 왕과 동등한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서문을 사용한 경우는 제외하고)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유일한 출입구가 서쪽으로 나 있다. 또 힌두교의 장례법상 무덤에 새기는 부조는 모두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배열을 하는데 앙코르와트의 부조 역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향하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고 비쉬누 성소로 오르는 계단들. 경사도 70도의 인간의 보폭보다 절반에 해당되는 이 계단은 신이나 영혼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앙코르와트 어딘가에 그가 묻혔을 것으로 추측하며 앙코르와트는 바로 그가 영생을 누릴 마졸리움(무덤집)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본다.

 

건물 특징

앙코르와트의 유명세는 단순히 "엄청나게 크다"가 아니다. 사원은 단일설계도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믿기엔 공사기간이 너무 길었고 30년간 수없이 변경되고 증축되었을 텐데도 초기의 설계에 어긋남이 없이 하나의 건축물로서 완벽함을 자랑한다. 배치도 대칭도 구조도 조화도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앙코르와트는 사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다양한 건물들의 결합체이다. 갤러리, 방, 별실, 사당, 탑, 정원, 중정, 연못, 성벽, 탑문 등등..... 어느 하나도 구색 갖추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있어야할 곳에 놓여 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건축 완성도가 퍼펙트하다고 칭송 받는다. 사원은 3층 구조에 총 높이가 65m, 단순히 계산하면 한 층당 높이가 26m나 되지만 이런 계산은 적용되지 않는다. 1층과 2층의 기단이 동일 평면에 위치하고 이층에서 3층 기단까지 약 40m의 높이로 올려 져있으며 그 사이에는 중간단이란 독특한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아무튼 특이하고 신기하다. 배치 구조도 독특하지만 빈공간이나 빈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갖은 부속물로 메우고 연결시킨 공간배치기법이나 수학 계산, 미술적 감각이 총망라되어 있다. 자칫 빈 공간으로 남기 쉬운 외벽에는 무려 1,500명 이상의 압사라(천녀)들을 새겨 마치 빈 신전이 아닌 번성하는 신전임을 느끼게 한다. 압사라는 단 하나도 동일 인물을 찾아 볼 수 없는 섬세함과 다양성의 표현체이다. 넓이와 높이의 배율을 맞춰 경사도 가파른 계단으로 높은 층의 공간을 메운 기법도 그러하고 중간층이란 기묘한 기법으로 공간을 메꾸어 상하층을 연결하는 기법 또한 그 옛날의 기술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무엇보다 성소 탑들. 사각형의 기단에서 시작, 자연스럽게 원추형으로 변형을 시도하여 결국 전체적으로 한 송이 연꽃 모양으로 피어나는 탑의 빼어난 미는 앙코르와트 건축 양식의 절정을 보여준다.

 

앙코르와트를 가장 아름답게 보는 방법

앙코르와트는 햇살, 구름의 정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때로는 백색의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느낌을, 때로는 검은 악마가 덮치는 형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앙코르와트는 넓기도 하고 높기도 하여 일출, 일몰 보는 장소로 공히 활용된다. 일출은, 북쪽 연못 앞에서 볼 때가 가장 환상적이다. 날개를 펼친 거대한 검은 독수리의 형상 뒤편으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퍼지면서 붉은 아침 기운이 비쳐지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색채는, 해가 지평선에서 막 떠오르면서 앙코르와트의 백그라운드를 비칠 때이다. 일몰은, 서쪽편이 열린 높은 곳, 즉 3층 성소에서 해자 쪽(서쪽)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잿빛 띤 진입로, 푸른 해자, 무수한 꽃이 맺힌(? 큰 나무에 꽃들이 주렁주렁....) 나무들 그리고 숲 사이로 붉은 황혼이 깔리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유감스럽게도 황혼 무렵에 3층에서 모두 내보내기 때문에 결국 바깥에서 어둠에 지는 앙코르와트를 바라본다. 낮 동안의 방문 최적 시간은 오후 2시 이후부터이다(개인적인 생각). 강렬한 햇살이 한 기운 수그러뜨릴 때 건물의 석재에 깔리는 색깔의 변화가 일 때부터이다. 저녁(밤)에는 사원 외부에 씨엠립의 연인들이 죄다 몰려들어 데이트를 즐기거나 드라이브를 하거나 해자 주변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피크닉을 즐긴다.

  

앙코르와트 부조 http://goangkor.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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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갤러리에는 높이 2m, 길이 804m의 벽면에 부조가 꽉 차있으며 부조의 면적만 무려 1,200 평방미터나 된다. 부조는 사암의 벽면을 양각으로 파서 새겼는데 도저히 돌을 파서 세공 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유연하여 조각이 아닌 회화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부조만큼은 그 규모나 섬세함에 있어 이집트 신전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며 가히 세계 최고, 최대라 자부한다. 부조는 갤러리의 동서남북 각 면을 이등분하여 총 8등분과 서쪽 갤러리의 코너 별관 두 군데에 힌두설화와 자야바르만 2세의 업적을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책이 없던 옛날 일반 백성들에게 종교적 의미를 전달하고 믿음과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교육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교과서가 없었을 것이다. 이 갤러리에는 힌두교인으로서의 당시 크메르 백성들이 지키고 배워야 할 모든 덕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tip: 시간과 체력을 줄여 꼭 봐야할 것만 선택하라면 1, 3, 4, 5, 11번 부조 정도를 본다. 그것마저 다 보기 어렵다면, 3, 4, 5라도 꼭!!! 보자. 안보면 후회한다.

1. 쿠륵세트라 전투 장면 (Battle of Kurukshetra)

서쪽갤러리. 힌두설화의 2대 서사시 중 하나인 마하바라타는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사촌들 간의 치열한 전쟁담을 담은 장편 전쟁야사이면서 사이사이 구전(口傳)되어 오는 숱한 전설과 무용담, 종교적 설교를 혼합하여 총 18편으로 구성된 대서사시이다. 서쪽 갤러리에 묘사된 부조는 그 18 편중에서도 핵심인, 종교인으로서의 힌두교인들이 지켜야할 다르마(덕목) 구현과 관련된 제6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 관한 것이다.

힌두교 발상지인 인도는 절대적 계급사회여서 종교성전은 사제인 브라만 계급만이 입에 담을 수 있는 절대 불가침의 성전이었으나 바가바드 기타의 등장으로 종교성전은 일반 백성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어 눈먼 종교인에서 탈피하여 진실 된 힌두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어 중요시된다.

전투는 군악대의 행진곡에 맞춰 행진하는 양군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판두바스(판두바의 다섯아들, 유디스트라, 아르주나, 비마, 니콜라, 사하데바) 군대는 오른편에서, 카우바라스(드르타라스트라의 아들들로 장남 두료다나를 비롯 무려 100명이나 된다.)의 군대는 왼편에서부터 보무도 당당하게 행진해 와 중앙으로 갈수록 전투의 절정에 달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활과 창칼에 쓰러지는 병사들 처참한 주검들 사이에서도 양군의 지휘자들은 전의를 상실치 않고 전투 지휘를 한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지휘자들은 보다 크게 묘사되거나 코끼리나 전차를 타고 용감하게 공격한다. 카우바라스의 지휘자중 한사람인 비스마(중앙 부근 위쪽)가 적장인 아르주나가 쏜 화살에 정통으로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병사들이 빙 둘러서서 바라보는 장면. 아르주나(중앙 부근, 악마 라후의 머리가 새겨진 방패를 든)가 크리쉬나를 향해 활을 쏘고, 사망한 크리쉬나는 아르주나가 탄 마차를 끄는 마부(팔 4개)로 환생하여 아르주나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설교(바가바드 기타)를 통해 그에게 전의를 북돋우는 역할을 맡는다.

<마하바라타 요약>

바라타 왕국의 왕이 사망한 후 장남 드르타라스트라가 왕위를 물려받아야하나 장님이여서 관례에 따라 차남 판두바(드르타라스트라의 이복동생)가 물려받는다. 그러나 판두바는 신의 저주를 받은 몸이라 형에게 왕위를 맡겨두고 히말라야에 들어가 저주를 풀기 위해 수행한다. 덕분에 판두바는 다섯 아들을 얻고 그의 사후 아들들이 삼촌에게 왕위를 돌려주길 요구하나 드르타라스트라의 아들이자 사촌인 두료다나가 거부한다. 아버지가 장님만 아니었다면 마땅히 그 왕위는 아버지에 이어 자신에게 돌아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입장에 의해 판두바의 아들들과 드르타라스트라의 아들들 즉 사촌들 간에 처절한 왕위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쿠륵세트라(현재의 델리 부근)에서 벌어진 18일간의 처절한 살육전이 있은 현장에 선 아르주나(판두 바의 아들)는 사촌들과 죄 없는 병사들의 주검을 바라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다. 과연 피를 나눈 사촌들을 죽여서까지 왕위를 차지해야 하나.....망설이는 그의 앞에 비쉬누 신의 화신인 크리쉬나가 살육의 정당성과 신의 섭리에 대해 긴 설교를 하고 그 설교에 감동 받은 아르주나는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아 들어 사촌을 살육하고 승리를 이끈다는 내용이다. 다르마(덕목)는 오직 개인에게 주어진 카르마를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다르마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 즉 흉악범에 맞서 처단하는 경찰이나 백성의 생명 보호와 안전을 위해 적군을 무찌르는 군인이 저지르는 살인은 죄가 아닌 반드시 수행해야 할 덕목임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이 바가바드 기타의 덕목은 일반 백성들에게 정의에 대해 알게 하는 훌륭한 교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군인들에게는 신의 뜻을 받들어 전투에 임하는 사기진작의 효과가 있었으며 지도자들에게도 전쟁의 명분을 내세우기에 적격이었다. 이어 전개되는 수르야바르만 2세의 전투장면의 연계가 그것을 말해준다.

2. 힌두설화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중 전개 장면들 (Scene from the Ramayana)

서쪽 갤러리의 남쪽 모퉁이의 별실에는 사방 둘러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내용 8가지가 새겨져 있는데 침수로 인해 유실된 부분도 있다.

별실 북쪽: 황금사슴으로 둔갑하여 시타(Sita)의 유괴를 도운 마리차(Marica)를 라마가 죽이는 장면

인드라의 번개 응징을 피해 크리쉬나가 7일 동안 고바르다나 산을 들어 목동들과 짐승들을 보호하는 장면

젖의 바다를 휘젖는 장면.

별실 남쪽 : 원숭이 왕국의 두 왕자 수그리바(Sugriva)와 발린(Valin)의 왕위찬탈을 위한 전투 장면. 수그리바 와 동맹을 맺은 라마가 끼어들어 활로 발린을 쏴 죽이는 장면, 아래쪽에 아내 품에 안겨 있는 발린의 시신과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울고 있는 원숭이 부하들의 모습.

별실 서쪽 : 쉬바 신이 아내 파르바티 여신과 함께 카일라사 산에 앉아 있는 모습. 라바나가 그 산을 뒤흔드는 무례함을 범한다.

<라마야나 요약>

랑카 왕 라바나를 총애하는 시바신은 신의 권능으로 그를 죽일 수 없도록 하는 축복과 재능을 내린다. 교만해진 라바나가 급기야는 시바신과 아내 파르바티 여신이 앉아 있는 카일라사 산을 뒤흔드는 등 방자함이 극에 달했지만 한번 내린 권능을 어쩔 수 없어 고민하던 시바신과 브라흐만 신은 맹세의 허점을 이용하여 비쉬누 신에게 인간의 몸이 되어 라바나를 죽일 것을 부탁하여 비쉬누는 아요디야 왕국의 라마 왕자로 탄생한다. 라바나의 여동생인 슈르파나카가 라마에게 반해 접근하지만 이미 아름다운 처녀 시타와 결혼한 라마는 그녀를 거부한다. 자존심이 상한 슈르파나카는 오빠를 끌어들여 시타를 취하도록 유인한다. 라바나의 숙부 마리차는 유부녀의 약탈을 부당하다 호소하지만 라바나의 강요에 못이겨 황금사슴으로 둔갑하여 시타를 유인하게 되고 덕분에 라바나는 시타를 탈취하여 자신의 궁전에 감금한 채 남편을 버리고 자신에게 오기를 강요한다. 라마는 시타를 찾아 갖은 역경을 겪는 중 모함 받아 쫓겨난 원숭이 왕국의 왕자 수그리바와 그의 부하 하누만을 만나 서로의 왕좌를 되찾아주는 조건으로 동맹을 맺는다. 이리하여 인간이 된 비쉬누 신(라마)과 원숭이로 환생한 신들이 힘을 합쳐 결국 라바나도 죽이고 라마는 아내와 나라를 되찾고 수그리바 역시 원숭이 왕국의 왕으로 등극한다는 해피앤딩 스토리이다.

크리쉬나(Krishna) : 는 비쉬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으로 목동이라는 평범한 직업의 순수한 인간 모습을 취한다 또 마하바라타에서 아르주나가 고뇌에 차 있을 때 다르마에 설교(바가바드 기타)로 일깨워주는 중요한 역할 을 하는데 이 별실의 부조를 보기 위해선 인드라 신과의 관계를 알아둔다. 목동 크리쉬나로 환생한 비쉬누은 그동안 인드라 신을 숭배하던 목동들에게 더 이상 그를 믿지 말고 자신을 섬기라고 설득하자 화가 난 인드라는 홍수와 번개를 내리쳐서 목동들을 징벌한다. 그러자 크리쉬나는 한손으로 번쩍 고바르다나 산을 가볍게 치켜 들어 내리치는 홍수와 번개를 막아낸다. 이렇게 7일동안 버티고 있자 결국 인드라는 패배를 자인한다.

인드라(Indra) : 홍수와 번개의 신으로 젖의 바다를 휘저을 때 탄생한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호탕한 성격의 신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좋은 면이 있는 반면 자만심이 지나쳐 교만함의 극치에 달한 신.

3. 수르야바르만 2세의 승전도와 충성맹세 (Army of King Suryavarman II)

(남서쪽 갤러리) 장장 100m가 넘는, 규모면에선 앙코르와트는 물론 앙코르 신전 군 전체의 부조 중에서도 최장의 길이를 자랑하는, 한마디로 대단히 멋지고 장엄한 부조로서 필수 관람 코스이다. 앙코르 유적에선 드물 게 문자 기록에 색상까지 더한 사실적 묘사는 크메르 제국의 역사와 민속, 신분관등에 대해 알게 하는 중요한 사료이다.

수르야바르만 2세는 혼돈의 시기에 국란을 해소하고 태국, 라오스, 말레이 반도에 이르는 식민지를 정벌한 위대한 왕으로 앙코르와트는 자신의 치세를 길이 빛낼 목적으로 건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곳 남쪽 갤러리 가득 자신의 위업을 새겨 후대에 남겼다.

다른 갤러리의 부조들은 경전이나 설화의 내용을 상상으로 그려 넣은 것이지만 이곳만큼은 자신의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어서 동물이나 나무 등을 부조의 배경으로 삽입한 여유로움이나 테마들도 사실적이란 점이 이채롭다.

갤러리 벽에 틈틈이 보이는 직사각형 구멍은 왕실의 귀중한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팠다고 한다.

아무튼 자신이 주체인 만큼 이곳 부조에서 수르야바르만 2세는 모두 두 번이나 등장하며 부조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그의 사후에 새겨 넣은 묘호(廟號)이다. 영웅은 이렇게 앙코르왓이라는 위대한 유산과 함께 영원불멸의 삶을 신들과 함께 영위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압도적인 전승도에는 크메르 왕국의 군대들이 주변 국가를 정벌한 뒤 위풍당당하게 귀환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그 사이사이에 다양한 테마를 포함하고 있다.

전쟁은 무기없이 육탄전의 형태로 묘사하고 한단 높은 곳 시원한 부채 아래 앉은 왕은 각국의 칙사와 신하들로부터 충성맹세를 받는다.

부조의 윗단에는 브라흐만 신의 보호를 받는 왕(예전에는 몸에다 금박으로 장식했다)이 산위에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있고 가마를 탄 궁중의 여인들이 궁녀들의 호종을 받으며 산으로 가고 있다.

군대가 결집되고 코끼리를 탄 장군(그들의 계급은 그 옆의 작은 원 속에 새겨져 있다)들은 군대를 이끌고 행진한다.

왕관을 쓰고 비쉬누 신과 함께 하는 의미로서 가루다(독수리)를 탄 비쉬누 신을 얹은(코끼리 코 위에 작은 형상으로 새겨져 있다) 코끼리 위의 수르야바르만 2세는 칼을 뽑아 어깨에 두르고 군의 최고 지휘관임을 과시하는데 15명의 시종들이 왕의 계급을 암시하는 15개의 의전양산을 들고 왕을 호위한다.

승전에 걸맞은 화려한 행진이 이어진다. 신성한 불을 담은 궤를 운반하는 시종, 악단과 광대들이 뒤를 따르고 제물을 담은 가마도 뒤따른다.

그리고 끝부분에는 샴(태국) 군인들(꽃무늬가 든 주름치마와 팬던트를 단 혁대, 땋은 머리 모양새)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샴국의 군인이라기보다는 샴국 영토(아마도 현재의 롭부리 지역)에서 징집된 용병들로 추정한다.

크메르 군사들 중에는 전투사의 위엄을 주기 위해 동물의 머리 또는 뿔 달린 투구를 쓰거나 괴물의 형상을 새겨 넣은 방패를 들고 있기도 하다.

4. 염라대왕의 심판/천국과 지옥 (Judgement by Yama/Heaven and Hell)

(남동쪽 갤러리). 부조의 시작점에 등장하는 말탄 사람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금박을 입혔던 흔적이 남아 있고 벽 아랫부분 일부가 훼손되어 땜질을 해 놓은 거 외에 이곳도 리얼한 부조가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

힌두교인들이 꿈꾸는 천국은 어디이며 두려워하는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 부조는 상하 3단으로 나눠지며 상단은 염라대왕의 심판 내용을, 그리고 나머지 2단은 압사라(천녀)와 주름모양으로 경계 지워진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데 한다. 천국은 모두 37개로 착하게 살다간 영혼은 신분에 관계없이 고대광실에서 평온하고 즐겁게 영생을 누릴 수 있으며, 반대로 지옥은 모두 32개로서 지은 죄에 따라 각각의 지옥에서 고통스런 벌을 받는 모습을 새겨두었다.

야마(Yama)는 힌두교에서 죽음의 신이며 불교에선 염라대왕으로 묘사된다. 4개의 눈과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야마는 물소를 타고 다니며 두 마리의 얼룩무늬 개를 호위병으로 부리면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을 관장하고 있다. 그가 가르키는 위쪽은 천국이며 아래쪽은 지옥이다. 중간 즈음 저승사자들이 쇠스랑을 들고 악한 짓을 한 영혼들을 무지막지하게 지옥의 문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지옥에서 벌어지는 가혹한 벌은...... 지은 죄에 따라 형벌을 달리하는데 쌀을 훔친 사람은 위장 속에 시뻘겋게 달군 쇠를 집어넣어 영겁의 세월을 고통에 시달리게 한다!!! 헉!!! 그리고 온몸에 못을 박히는 영혼, 뼈를 분지르는 고통을 당하지만 또 뼈가 나고 또 분지르고..... 온몸에 톱질을 당하는 고통... 당시의 순박한 백성들은 아마 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착하게 살 것을 각오할 정도로 끔찍한 장면은 아리따운 천녀(압사라)들이 춤추는 장면을 경계로 천국으로 바뀌면서 가루다(비쉬누 신이 타고 다니는 독수리)가 떠받히는 천상의 왕궁에서 편히 쉬는 영혼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말 잘 듣고 착하게 살면서 천상의 궁전을 택하지 않겠는가?

5. 힌두설화 '바가바타 푸라나' 중 불로장생의 감로수를 만드는 유해 교반

(젖의 바다 휘젓기, Churning of the Ocean of Milk)

(동남쪽 갤러리) 힌두 설화를 몰라도 이 장면만큼은 어디서든 알아본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앙코르 톰의 남문 앞을 장식한 거대한 난간이며 앙코르의 유적 곳곳에 새겨진 내용이다. 젖의 바다 휘젓기.... 힌두교 창조 신화인 바가바타 푸라나(Bagavata Pourana)에서 유래된 이 설화는 힌두교의 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며 필수 관람 부조이다.

동쪽 회랑의 절반, 50 m가 넘게 이어지는 한면의 부조. 처음과 끝까지 거대한 뱀의 몸통이 가로지르는 장면에 압도된다.

부조의 중심이 되는 바수키(뱀)의 몸을 경계로 내용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전체적인 배치를 보면 3단의 부조로 이뤄졌는데 가로로 바수키를 놓고 맨 아랫단에는 짓이겨질 물고기 등 바다 속 장면이, 맨 위에는 휘젓기의 결과로 탄생된 압사라들이 날고 있고 그 가운데 단에 바로 젖의 바다 휘젓기의 핵심 내용이 새겨져 있다.

바수키의 몸을 중심으로 92명의 악마들(깃장식의 투구를 쓰고 툭 불거진 눈매의)은 바수키의 머리를 잡고, 88명의 신들(원추형 모자에 둥그스럼한 눈매의)은 바수키의 꼬리를 잡고 휘젖기 동작을 하고 바수키의 몸 아래에는 거북이로 둔갑한 비쉬누 신이 만다라 산의 하중을 떠받혀주고 있다.

그리고 3인의 신이 대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데 머리 쪽 맨 위에는 번개의 신 인드라가 엎드린 포즈로 아래쪽 상태를 주시하고 있고 중간에는 비쉬누 신(팔 네 개)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바수키의 머리를 잡고 달래고 있으며 꼬리 쪽에는 하누만(원숭이신)이 큰 입을 벌리고 뭔가를 외치며 작업을 조율하는 듯하고 또 부조의 끝 부분에는 병사들이 암리타가 완성된 후 운반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이런 배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젖의 바다 휘젖기 요약을 읽고 상황을 이해하면 된다.

이 부조에서 특기할 것은 신들과 악마들이 온힘을 다해 양쪽에서 뱀을 끌어당기며 바다 속을 휘젓는 동작이 기묘하게 표현되고 만다라 산의 하중을 감당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바수키의 고통어린 표정이나 꿈틀거리는 근육의 움직임도 리얼하게 묘사되어 감탄한다.

결국 만다라산의 무게에 눌려 온몸을 비틀며 독을 내뿜는 바수키의 묘사도 절묘하다.

신들과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그 독을 들이켜 자신의 목에 저장한 탓에 쉬바 신의 목에는 푸른 멍자욱이 생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1,000년간의 휘젓기 작업 끝에 바다 속 물고기와 해초들은 짓이겨지고 그 과정에서 온갖 귀한 생명체가 탄생하고 잃어버린 보물들도 찾아낸다.

머리 셋 달린 코끼리 아이라바타(Airavata, 번개의 신 인드라가 타고 다니는 영물), 비쉬누 신의 아내이자 부와 행운의 여신 락쉬미(Laksmi), 생명의 여신인 수라비(암소, Surabhi), 술의 여신 비루니(Viruni) 등, 그리고 무엇보다 앙코르 신전들을 장식하는, 아름다운 천녀 압사라들이 무수히 탄생되어 부조 위로 날아다니고 드디어 불로장생의 약 암리타가 창조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암리타의 창조는 신들과 악마의 영원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이어 펼쳐지는 악마들의 복수전이 부조를 통해 전개된다.

<젖의 바다 휘젓기 요약>

신과 인간의 차이는 인간이 갖지 못한 영생과 불가사의한 능력에 있겠지만 태초에 힌두 신화의 신들은(악마 포함) 제한된 생명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신들은 불로장생의 능력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위해 신들과 악마는 상호 동맹을 맺고 생명의 원천인 젖의 바다를 휘젓게 된다.

그 생명의 원천을 저을 도구로 만다라 산을 대지에서 뽑아냈지만 산을 잡고 흔들 수가 없어 바수키(뱀)으로 산을 묶어 휘젓지만 바수키도 산의 무게를 지탱 하지 못하고 바다에 빠지려 하자 비쉬누 신이 거북이로 변해 바수키를 받혀준다.

이리하여 92명의 악마와 88명의 신들은 합심하여 1,000년 동안 젖의 바다를 휘젓는데 바수키가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독약을 뿜어내고 신들과 악마를 구하기 위해 쉬바 신이 독을 삼켜(쉬바 신 목의 점이 이 독이다) 과업의 장애를 막아 내자 드디어 젖의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여신들, 압사라들(천녀), 수많은 생명체들...그리고 마지막으로 불로장생의 약 감로주(암리타)가 탄생한다.

그러나 암리타가 만들어지자 합심의 끈은 끊어지고 악마가 암리타를 탈취하자 신들과 악마들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지고 결국 미인계로 암리타를 탈취한 신들은 소원대로 영생을 갖게 된다.

이로서 악마와 신들 사이에는 끝없는 전쟁이 이어진다.

6. 기록문자(Inscript-xion)

(동쪽 갤러리 중앙). 젖의 바다 휘젓기 부조가 끝나고 악마들의 반격 부조가 시작되기 전에 딴지 걸 듯, 동쪽 갤러리의 중간 탑문을 지나 기록문자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앙코르와트가 건립된 지 한참이 지난, 크메르가 불교 숭배시기인 18세기초반, 이 지역 주지사가 아내와 아이들의 뼈를 묻고 무덤을 지었다는 내용이다.

문자 부근에 뽀족한 윗부분을 가진 무덤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현재까지 존재한다.

7. 악마와의 전투와 비쉬누 신의 승리 (Victory of Vishnu over the Demons)

(동북쪽 갤러리) 비쉬누 신과 악마의 대 전투를 그린 심플한 부조로서 '젖의 바다 휘젓기'에 이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암리타를 둘러싼 신들과 악마의 전쟁 재개에 관련된 내용인 듯하다.

특이하게도 이 부조는 앙코르와트 건립 당시가 아닌 300~400년 정도 지난 15세기 또는 16 세기 경에 추가로 새겨 넣은 것으로 추정되며 젖의 바다 휘젓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세공 솜씨나 정성이 부족하다.

최전성기의 부조와 소멸기의 부조의 차이를 한눈에 알아본다.

부조의 중앙에 자신의 영물 독수리 가루다 위에 탄 비쉬누 신이 복수를 위해 돌진하는 악마 군대와 지휘자(짐승들이나 전차를 탄)를 맞아 단신으로 적들을 쳐부수는 용감무쌍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8. 크리쉬나의 승리와 악마 바나 (Victory of Krishna over Bana)

(북동쪽 갤러리) 부조의 시작점에 비쉬누 신의 화신인 크리쉬나(여러 개의 머리에 팔이 여덟 개 달린)가 자신의 영물인 가루다(독수리)의 등에 탄 채 코뿔소를 타고 있는 불의 신 아그니(팔이 여러 개 달린)와 뒤서거니 하고 있다.

크리쉬나가 악마 왕 바나(Bana)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은 여러 번 되풀이 되지만 번번이 도시를 감싼 불타는 성벽에 의해 멈춰야하는 곤경에 처한다.

이러한 반복적인 묘사는 비슈누 신이 만만치 않은 투쟁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길을 잡기 위해 가루다는 성스런 강 강가(현재의 갠지즈 강)에서 물길을 퍼 나르지만 좀처럼 감당하기 어렵고 악마왕 바나는 사나운 사자가 새겨진 전차를 타고 반대편에서 돌진해 온다.

부조의 오른편에는 거처인 카일라사 산에서 아내 파르바티 여신과 아들 가네샤(코끼리 머리)와 함께 있는 쉬바 신 앞에 끓어 엎드린 크리쉬나가 바나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뜻을 밝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바나의 소행은 죽어 마땅하지만 신들도 그를 죽이지 말라는 신탁을 받은 바나를 살려주는 뜻은 신탁도 수호하고 반드시 응징만이 최선책이 아니라는, 용서와 화합을 통해 그가 추구하는 우주 질서를 유지코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을 것이다.

9. 신들과 악마의 대전투 (Battle Between the Gods and the Demons)

(북서쪽 갤러리) 악마들과 신들의 대 결투가 묘사되어 있는데 바라문파 신전의 21명의 신들의 행렬로 꽉 찬 대단한 스케일의 부조이다.

힌두신화에서 신들의 상징적인 탈 것(짐승)과 무기, 형상을 유추하여 대부분의 신들의 이름과 역할을 구별해 낼 수 있지만 전체가 다 파악된 건 아니다.

용사들이 악마군대를 맞아 결투를 벌이는 내용을 배경으로 한 신이 역시 악마를 상대로 싸우는 장면에서부터 연이어 신들의 전투 장면이 이어 지는데 부의 신 쿠베라(Kubera)가 활과 화살을 든 채 인육을 먹는다는 악마 약사(Yaksha, 夜叉)의 어깨 위에서 나타나고 뒤이어 머리와 팔이 여러 개 달린 전쟁의 신 스칸다(Skanda)가 공작을 타고 나타나고 번개의 신 인드라는 '젖의 바다 휘젓기'에서 탄생한 영물 코끼리 아이라바타 등위에 타고 등장한다.

팔이 넷 달린 비쉬누 신 역시 자신의 탈 것인 가루다(독수리)를 타고 있다.

다음엔 머리가 여러 단이 달린 악마가 칼을 휘두르며 등장하고 죽음의 신 야먀(Yama, 염라대왕)가 칼과 방패를 들고 황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등장, 시바 신 은 활시위를 당기고 창조의 신 브라흐만은 그의 신성한 거위를 타고 태양의 신 수르야(Surya)는 늠름한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등장하고 물의 신 바루나(Varuna)는 나가(뱀)의 입에 재갈을 물려 그것을 탄 채 등장하여 악마들과 신들의 복수혈전을 펼친다.

10. 힌두설화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의 전반적인 장면과 비쉬누 신 (Scene from the Ramayana)

(북서쪽 별실) 이곳에는 라마야나에서 비쉬누 신의 화신인 인간 라마 왕자와 훌륭한 동맹자 수그리바 왕자(원숭이) 일행과의 우정 어린 관계와 역경을 헤치고 아내 시타를 되찾는 모험이 새겨져 있다.

라바나의 횡포를 보다 못한 신들이 비쉬누 신을 찾아가 응징해 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을 선두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으로 부조의 출현 순서가 라마야나 스토리를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막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련의 압사라(천녀)에게 둘러싸인 채 앉아있는 비쉬누 신(팔 네 개 달린) 위쪽에는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는 압사라들, 아래쪽에는 비쉬누 신이 아난타(뱀) 등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유유히 대양 위에 떠 있고 아름다운 아내 락쉬미 여신은 그의 발 옆에 앉아있다.

우주 질서와 파괴의 고리 중에서 새로운 창조기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황금 연꽃이 비쉬누 신의 배꼽에서부터 활짝 피어오르면서 연꽃 봉우리가 열리고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새로운 창조기를 관장하기 위해 등장한다.

아래쪽에는 9명의 신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마차를 탄 태양의 신 수르야(Surya), 약사(Yaksa, 야차)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부의 신 쿠베라(kubera), 신성한 거위를 탄 창조주 브라흐만(Brahman), 공작새를 탄 전쟁의 신 스칸다(Skanda), 말을 탄 바람의 신 바유(Vayu), 아이라바바타(머리 셋 달린 코끼리)를 탄 벼락의 신 인드라(Indra), 물소를 탄 죽음의 신 야마(Yama), 황소를 탄 파괴의 신 쉬바(Shva) 신이다.

신들의 청을 받아 권선징악을 위해 비쉬누가 나서겠다는 의사를 표하자 환호하는 신들, 궁술대회에서 우승 하여 시타 공주를 아내로 얻는 라마왕자, 유부녀를 약탈함으로 응징의 계기가 설정되는 장면, 아내를 찾기 위해 원숭이족과 동맹을 맺고 여러개의 머리와 여러개의 팔을 가져 천하무적인 라바나를 상대로 대적하는 장면, 사필귀정의 결과에 따라 아내도 되찾고 부의 신 쿠베라가 라바나에게 빼았겼던 하늘을 나르는 전차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귀환하는 장면, 그러나 라바나에게 감금되어 있는 동안 정절을 의심받는 시타가 무죄 입증을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11. 힌두설화의 대서사시 「라마야나」 장면 중 랑카의 전투 (Batle of Lanka)

(서북쪽 갤러리) 비교적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갤러리를 한 바퀴 돌고 온 관광객들은 지쳐서 쉬 포기하는 쉬운 곳이기도 하다. 10.의 내용 중에서 최종 결전의 장면만 그린 부조이다. 아내 시타를 되찾기 위해 라바나의 왕궁이 있는 랑카(스리랑카)로 찾아간 라마 왕자의 최종 반격이 시도된다. "인간도 신도 라바나를 죽일 수 없다."는 신탁을 피해 원숭이족과 동맹을 맺은 라마 왕자.

중앙을 보면 비슈누 신의 화신인 인간 라마 왕자와 라바나의 대적 구도가 알아보기 쉽게 새겨져 있다.

라마 왕자가 원숭이 왕국의 수그리바 왕자의 어깨에 서 있으며 주변에는 그의 상징적인 무기인 화살과 동생 락쉬마나가 서 있다.

그리고 부근에는 라마의 숙적인 악마의 왕 라바나(머리 10개에 팔 20개가 달린 용맹스런 전사의 모습으로 표현)가 사자가 끄는 전차를 타고 있다.

둘 사이에는 라마 일행을 위해 히말라야에서 돌을 옮겨와 라바나의 왕궁이 있는 랑카(현재의 스리랑카 섬)까지 돌다리를 놓은 충성스런 원숭이 용장 날라(Nala)가 두 마리의 사자 머리를 내놓고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원숭이 왕자는 자신과 악마를 땅에 내동댕이 친 코끼리의 상아를 분지르고 있다. 이 전투에서 결국 원숭이족의 화살을 맞고 라바나는 죽음을 맞고 정의는 실현된다.

앙코르와트 내부

앙코르와트는 전체적으로 3층 건물이며 꼭대기까지 65m나 된다. 평균으로 나누면 한층의 평균 높이가 22m라고 계산하겠지만, no! 2층은 3층을 위한 기단일 뿐이며 지상 층에서부터 위를 향해 돌출하며 3층은 2층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며 하늘을 향해 급격하게 뻗는 대단히 놀라온 공간 처리 기법이 도입되었다. 더구나 3층은 높이에 치중하여 더욱 높아 보이는 시각적 착오까지도 계산에 넣었다. 사원 서쪽의, 중앙 통로 쪽에선 일층과 이층 사이를 중정(中庭)으로 격리시키고 기하학적인 계산으로 단과 공간을 적절히 나눠 '중간단'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넣어 공간을 서로 연결시켰다.

중간단 구조 : 앙코르 신전들의 기본적인 구조인 십자형. 4개의 대륙과 메루산의 형상. 앙코르와트를 찾은 사람들은 모든 구조물이 십자형을 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중간단도 그러하며 지성소로 향하는 신성함을 나타내기에 충분한 설계이다. 내부의 중앙을 기점으로 십자가형 통로를 넣어 자연스레 4개의 해자를 만들어 성수(聖水)를 채웠다. 성수는 신 앞에 나아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세례 의식에 사용되었다. 십자형 통로 옆으로(남 북쪽) 각각 길다란 갤러리를 연결시켰으며 좁은 공간에서 급격이 솟구치는 층간 구조를 반영하여 높낮이를 적절히 배분하여 계단을 연결하였고 윗 공간은 지붕을 덮었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도 또 평소에도 보폭 좁은 바깥 계단을 힘들 게 오르내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바깥 계단이 무서워 포기할 사람들도 이 계단을 통해 가면 된다.

12. 십자형 통로

1층과 2층을 잇는 통로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지붕으로 덮여져 있으며 지붕을 지지하는 기둥에는 산스크리트어와 크메르어로 적혀진 비문들이 있다. 계단도 완만하며 오르내리기 쉬우며 중앙 통로를 기점으로 남북으로 두 개의 갤러리와 두 개의 장서각을 갖고 있다.

13. 중간단 남쪽 갤러리

이곳은 "일천 부처의 갤러리(The Galley of 1,000 Buddhas)" 로서, 앙코르 왕국이 멸한 뒤 태국의 불교가 들어와 전성기를 이룰 때 1,000개의 부처상을 모셔 붙여진 이름이나 지금은 몇 개만 안치되어 이름이 무색하다.

14. 중간단 북쪽 갤러리

이곳은 "메아리의 홀(The Hall of Echoes)"이라 불리는 방으로 갤러리 입구 방에 늘 사람들이 붐비며 향이 피워져 있어 금방 알 수 있다. 입구 들어가 오른편 벽에 등을 대고 가슴을 탕탕 치면 메아리가 들려온다. 이 체험을 하려면 인내심을 갖고 줄 서 있어야한다.

2층 외벽의 압사라 부조

십자형 통로를 따라 2층으로 향하면 이층의 외벽을 마주한다. 일층 갤러리의 외벽보다 규모는 절반이지만 이곳도 만만찮아서 100m x 115m나 되는 둘레이다. 이쪽 벽은 장식이 없는데다가 세월의 때가 묻어 우중중한 느낌이다. 그러나 3층 올라가기 전의 2층 갤러리 외벽은 이제부터 천상계임을 말하듯이, 아름다운 압사라(천녀)들이 맞이한다. 그런데 여느 신전과는 그 규모가 다르다. 이곳 벽에 새겨진 압사라의 수는 무려 1,500여명이 넘는다. 천상의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이며 우리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힌두교의 탄생 설화인 "젖의 바다 휘젖기"에서 영생의 약을 얻기 위해 일천년 동안 휘저은 생명의 바다에서 탄생한 아름다운 여인 압사라. 불가사의한 것은 그 1,500여 천녀의 모습이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으며 같은 표정이 없으며 같은 포즈가 없다. 그리고 마치.... 벽에 갖혀 있는 것 처럼, 금방이라도 벽에서 튀어나올 것 같이, 정교한 모습을 한채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힌두신전에서 늘 마주하는 압사들이지만, 이곳 앙코르와트에서 처음으로 두 서넛의 압사라가 무리지어 등장한다는 점도 새롭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

3층 높이는 13m, 2층에서부터의 높이는 40m나 된다. 갑자기 솟구치는 40m나 되는 높이를 커버할 계단이 궁금하지 않은가? 정사각형 사방 각 코너에 두 개씩, 중앙에 한 개씩, 총 12개의 계단이 나 있는데 각 계단은 경사도 70도 정도로 아주 가파르며 각 계단마다 40개의 계단이 인간의 보폭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좁은 폭을 가진 채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다. 발을 옆으로 꺾어 조심스레 계단을 밟으며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노라면 어쩔 수 없이 신 앞에 꿇는 모습이 되고 만다. 사실 위를 쳐다보면 아찔하기 때문에 오르는 사람들은 오직 발아래만 바라보게 된다. 신들에겐 이 계단이 필요 없었을 것이나 신들에게 봉양하러 오는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복종 규정인 것이다.

tip : 미끄럼 방지 신발, 비오는 날 주의, 중간단과 연결되는 서쪽 중앙 계단이 비교적 완만하여 오르기 쉬움, 남쪽 중앙의 계단은 난간이 있으나 내려가는 사람 전용

3층 성소

3층은 금단의 구역이었다. 승려계급 이외에는 왕만이 오를 수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지금 이곳에 들어와 벽에 기대 땀을 씻는 우리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 듯하다. 3층은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열린 창문, 닫힌 창문으로 각 방을 구별하는 회색 건물은 검은 때를 입은 채 고고히 존재하며 수많은 관광객이 있지만 떠드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숙연한 분위기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천상의 탑들을 보는 것만으로 감탄해 마지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사각형 3층의 기단 둘레는 60m, 사방으로 난 코너 계단 위에는 기둥으로 떠 받혀진 현관을 가진 고푸라 탑문이 세워져 있고 2열의 기둥으로 장식된, 지붕을 가진 갤러리가 외벽 역할을 한다. 창문 조각이 이색적인 갤러리와 십자형 통로는 서로 연결되며 자연스레 지성소로 연결된다. 양쪽으로 두 개의 작은 건물은 3층 장서각이지만 성물(聖物) 보관 창고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다섯 개의 탑

3층의 존재 용도는 바로 메루산을 표방한 다섯 개의 천상의 탑을 세울 기단(基段)이다. 3층 코너에는 각각 4개의 탑이 솟구쳐 있고 내부는 십자형 통로를 만들어 4개의 해자를 형성하며 그 가운데에 지성소가 있는 중앙탑이 서 있다. 이것이 전형적인 크메르 사원이 추구하는 퀸컹스 구조(Quincunx)로서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전설 속의 4개의 대륙, 4개의 강이며 중앙탑은 지상에 구현된 최고의 메루산일 것이다. 예전에 펌프도 없었을 텐데 이곳까지 어떻게 물을 끌어 들였는지 자못 궁금하다. ^^

지성소 : 퀸컹스 구조의 중앙에 솟은 탑이 이 사원의 존재 이유인 중앙탑이다. 중앙탑은 3층 상층부에서도 42m나 높게 솟구쳐 있다. 좁은 장소에서 높은 탑을 올려다보는 것이 버거울 따름이다. 중앙탑의 밑단은 십자가형을 취하며 사방에 기둥으로 떠 받혀진 현관이 나 있었고 각 현관은 각각의 방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중앙의 방은 지성소. 바로 우주 질서 유지의 신 비쉬누를 모셨던 지엄한 곳이다. 그러나 불교 숭배 시대가 도래한 후 부처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앙코르 톰 (ANGKOR THOM)

an-m-thom.gif

▷ 건축시기 : 12세기말~13세기초

▷ 건축왕 : 자야바르만 7세 Jayavarman VII (1181~1220)

▷ 종교 : 불교

▷ 건축양식 : 바이욘

명칭

앙코르란 "도읍지" 톰은 "거대하다", 즉 도읍지 이름 자체가 "거대한 도시"라는 뜻이다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탑(바이욘을 지칭)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고 그 옆에는 20여개의 탑과 수백개의 돌로 된 방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 동쪽에는 황금 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선 황금 다리가 있고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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