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스무 날의 기억 - 씨엠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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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스무 날의 기억 - 씨엠립 1

호크아이 2 3525

앙코르를 여행하는 바이커를 위한 안내서 1.

10월 13일 월요일

눈을 뜨니 6시 반이다. 불도 끄지 않은 채 잠이 들었구나. 한국보다 8배나 전기료가 비싸다는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료로 제공된다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선다. 중년의 아저씨께서 국수를 드시며 인사를 한다. 사장님이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나중에 알았지만 사장님의 형님분이셨다. 자전거 빌리는 곳을 물으니 스타마트쪽 큰길로 나가면 1, 2달러에 빌릴 수 있단다.

아침으로 제공되는 조촐한 쌀국수를 먹고 길을 나선다. 스타마트를 향해 걷다가 자전거 렌탈샵을 발견, 1달러에 자전거를 빌린다. 듣던 대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오래된 자전거다. 자전거로 앙코르를 돌아보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걱정됐던 건 두 가지였다. 1년 이상이나 운동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나의 저질 체력과 타이어 펑크가 그것이었다. 다행이 여행 기간 동안 여러 대의 자전거를 빌려 탔지만 타이어가 터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다른 문제로 자전거가 내 발목을 잡긴 했다.

스타마트에서 생수를 두 병 사서 가방에 넣는다. 지도를 대충 훑어 보고 방향을 잡고 앙코르 유적을 향해 출발한다. 앙코르 와트라는 이정표가 보여 그리로 좌회전을 한다. 수많은 자동차와 뚝뚝, 모또들이 나를 지나쳐 달려 간다. 지도에서 본대로라면 오른쪽에 티켓 오피스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달려도 나오지 않는다. 간간히 왼편으로 유적지 그림을 그리는 공방들이 보여서 영 다른쪽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된다. 얼마를 달렸을까 길 양쪽으로 조용한 숲길이 펼쳐진다.

‘그래 곧 매표소가 나오겠구나’

하지만 내 기대는 빗나갔다. 한참을 달려 삼거리에 이르니 저 앞 오른쪽으로 앙코르 와트로 의심되는 거대한 유적지가 보인다.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 것이 분명 사진에서 본 앙코르 와트다. 삼거리 코너의 조그만 초소에서 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티켓을 보여 달란다. 아직 사지 못했다면서 매표소가 어디냐고 물으니 우회전해서 쭉 가다가 다시 우회전해서 몇 킬로미터를 더 가란다. 알고 보니 매표소가 있는 길의 서쪽에 난 앙코르 와트로 직행하는 길을 타고 온 것이다.

앙코르 와트를 왼편에 두고 한참을 더 달리자 오른쪽으로 넓은 대로가 나타난다. 수많은 뚝뚝들이 여행객을 태운 채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 유적지로 향한다. 간신히 매표소에 도착해 3일권을 구입한다. 그리고 온 길을 다시 거슬러 앙코르 와트 쪽으로 달린다. 자전거 여행자들이 제법 있다고 들었는데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웨스턴 커플을 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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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와트의 해자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앙코르 와트의 정문 앞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쉰다. 상인들이 모여들어 모자를 사라며 들이댄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앙코르 톰이 얼마나 걸리냐고 묻자 아주 멀다면서 햇볕이 뜨거우니 꼭 모자를 써야 한단다.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보여주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자전거에 오른다. 상인의 말과는 달리 앙코르 톰 남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수많은 관광객들과 가이드 그리고 그들이 타고 온 자동차와 뚝뚝으로 남문 앞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남문을 통과해 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니 정면에 바이욘이 보인다. 한쪽 나무 옆에 자전거를 세우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팔찌며 엽서 등을 들이민다. 미안하다고 말하자 무리 중에 제일 키가 큰 소녀가 자신이 자전거를 잘 보고 있을 테니 갔다 와서 꼭 자기에게 엽서를 사라고 당부한다. 씩 웃어주고 바이욘으로 향한다.

유적에 대해서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대충 내 마음대로, 눈이 가는 대로 구경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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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욘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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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흔적 – 녹아내린 압살라>

바이욘을 나와 바푸온, 삐미아나까스, 왕궁터, 왕실 연못 등을 보고 쁘리아 빨리라이로 향한다. 바깥쪽 도로와 바이욘엔 제법 보이던 관광객들이 아무도 없다. 조그만 문을 지나니 한적한 숲이다. 현지인들이 몇 명 모여 있는 게 보여 다가가서 쁘리아 빨리라이를 물으니 저쪽으로 조금 더 가란다. 가만히 보니 그림을 늘어 놓고 팔고 있는 상인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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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터의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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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라 빨리라이로 통하는 작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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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아 빨리라이 – 거대한 나무를 배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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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아 빨리라이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

쁘리아 빨리라이를 둘러 보고 아까 그 그림상인들에게 다시 다가갔다. 휠체어를 탄 아저씨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이라며 설명을 해준다. 정밀한 그림부터 선만 살린 간략한 그림들에 이르기까지 앙코르 유적과 캄보디아의 각종 생활상이 담긴 그림들이 꽤나 훌륭했다. 흥미롭게도 모든 그림들에 자신의 서명처럼 휠체어를 탄 인물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었다. 한참 그림 구경을 하다가 조그만 카드를 1달러에 구입한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꽤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휠체어 아저씨는 고맙다고 말하며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석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준다. 천편일률적인 다른 앙코르 기념품들과는 구별되는 아주 잘 그린 그림들인데 사람이 너무 없는 한적한 곳에서 팔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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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아저씨의 그림들>

숲길을 지나니 저 앞으로 출입구가 보인다. 아버지와 함께 나무 밑에서 무언가를 줍고 있던 소녀가 나를 보니 쪼르르 뛰어 와 나무 옆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방긋 웃는다.

“사진, 사진!”

카메라를 꺼내 자기 사진을 찍어 달란다. 한국어로 사진이라고 하는 건지 일본어로 사신이라고 하는 건지 불확실하지만 분명 사진을 찍으란 얘기였다. 꼬질꼬질한 옷을 입었지만 정말 예쁘고 귀여운 녀석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 분명 돈을 달라고 할 것을 알기에 카메라가 없다고 말하고 그냥 지나친다. 계속해서 “사진, 사진!”을 외치던 녀석은 내가 그냥 지나치려 하자, 이제 “원 달러, 플리즈”라고 말한다. 역시 예상대로다. 미안하고 안쓰럽지만 그냥 웃어주며 지나칠 수밖에…

대충 문둥왕 테라스와 코끼리 테라스를 훑어 보고는 북문을 지나쳐 끄롤 로미야스를 향해 달린다. 가로수가 쭉 펼쳐진 경사 없는 도로는 정말 자전거 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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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톰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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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너무 좋은 도로>

그런 생각을 하며 신나게 달리는 데 바퀴 쪽에서 철컹 소리가 나더니 페달이 헛돈다. 체인이 빠진 것이다, 한 켠에 세우곤 가까스로 체인을 끼워 넣는다. 기름 범벅이 된 손을 물티슈로 대충 닦고 다시 출발하는데 몇 미터를 못 가 또 빠지고 만다. 그러기를 네다섯 번 반복하다 결국 체인 끼우기에 성공. 하지만 체인이 워낙에 헐거워 언젠가 또 빠질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시간도 점심시간이 다 돼 가고 일단 시내로 다시 나가 식사를 하고 자전거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방향을 틀어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간다. 앙코르 톰을 지나쳐 남문을 통과해 조금 더 갔을 무렵, 또다시 철컹 소리가 난다. 우려했던 대로 체인이 또 빠진 것이다. 이번엔 아까와 달리 앞 뒤 체인이 모두 빠져 손으로 끼워 넣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차량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빈 차로 나가는 뚝뚝을 잡아 볼 요량으로 10여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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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이 빠진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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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앞을 지나가는 코끼리들>

마침 뚝뚝 한 대가 빈 차로 오기에 스타마트까지 2달러에 가기로 흥정을 하고 자전거를 싣고는 되돌아 온다. 자전거를 교체하고 나니 오랜만에 무리를 한 피로가 몰려 오는 느낌이다. 다시 앙코르로 갈 생각을 하자 갈 길이 아득하다.

일단 올드 마켓쪽으로 향한다. 조그만 식당에서 푸짐한 양의 닭고기 볶음밥을 1달러 50센트에 사 먹는다. 이후에 그 어디에서 먹은 볶음밥보다 양도 많고 맛있었다. 워낙에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인데다 안 타던 자전거까지 탔더니 온 몸이 땀 범벅이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주인 아주머니께 톤레삽에 가는 투어를 물어 본다. 옆에서 식사 중이던 세 분이 마침 오늘 오후 톤레삽에 간다며 함께 갈 것을 권한다. 앙코르에 다시 가기가 부담스럽던 차에 잘 됐다 싶어 그들과 함께 톤레삽에 가기로 결정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첫 친구들인 운동선수 3인방과 그렇게 조우한다. 함께 여행을 온 남매 그리고 태국에서 넘어오는 길에 합세한 남자 아이, 그들 세 명은 골프, 야구, 축구의 유명한 운동 선수들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축구 선수와 동명이인인 대학생 친구는 나중에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이동하는 여행사 버스에서 다시 조우한다.

왕복 차비와 바우쳐 비용을 네 명이 분담하니 각자 7달러이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토요타 승용차를 타고 톤레삽으로 향한다. 조금씩 내리던 비는 이제 장대비로 변해 펑펑 쏟아진다. 일몰을 보는 건 포기해야 할 듯싶다. 하지만 수상 가옥들과 넓디 넓은 호수의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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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레삽의 사진들>

톤레삽 구경을 마치고 운동 선수 3인방과 올드 마켓쪽 바 스트리트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한다. 전통 크메르 음식인 아목과 록락 그리고 앙코르 맥주를 마신다. 아목은 일종의 커리인데 태국 커리보다는 그 맛이 부드럽다. 록락은 샐러드 위에 고기를 얹어 먹는 음식. 난 록락이 너무 좋아 씨엠립에 머무는 동안 매일 밤 숙소 근처의 노점에서 록락과 맥주를 야식으로 사먹었다.

여행의 첫날을 그렇게 마무리한다. 내일은 좀더 괜찮은 자전거를 빌려 앙코르 동부와 북부의 유적을 모두 둘러 볼 계획을 세우고 잠을 청한다.

2 Comments
Mr하루하루 2008.12.03 17:53  
역시 캄보디아에서는 빠지지 않는게 아이들인거 같네요~
앙코르왓보다도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이 더더욱 캄보디아로 다시금 떠날 생각을 갖게
만드는것 같습니다...
여행기 잘 보았어요...
amaqueen 2009.03.11 23:14  
게스트 하우스 이름이 글로벌 아닌가요? 올해 그곳에서 묵었는데  참 좋으신 분들 이었어요. 두 딸을 데리고 태국과 시앰립만 배낭 여행  했는데 다행히 투덜 거리지 않고  도마뱀이 많이 돌아 다녔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두번이나 다녀 왔지만, 내년에도  매년 캄을 거쳐 다른나라를  계속 다닐 겁니다 . 11월 부터 건기인데 사람이 없네요  1~2월은  사람 빠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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