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의 똥고집 여행 - 29일 오전 반띠아이쓰레이
10세기 중반 자야브라반 5세의 신하 야즈나바라하에 의해 세워진 곳.
밀림 속에 묻혀 지내다 1914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발견됨
문화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4개의 압사라
부조상을 뜯어 밀반출하려다 붙잡혀 개망신 당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
따로 떨어진 곳이라 90년대 후반까지 폴포트의 잔당들이 자주 출몰하기
도 했었음.
반띠아이쓰레이로가는 길.. 툭툭 안에서 책을 뒤적거리며 중얼중얼
주워섬기다가 책을 덮었다. 멀미나.. 욱..
피곤한데 잠을 제대로 못자니 몸이 너무 안 좋았다. 축축 처지는게 자꾸
밑에서 누가 날 잡아당기는 것 같다..날좀 놔줘 제발..가, 가란말이야..
너 때문에 되는게 하나도.. 궁시렁..
혼자서 잠깐 쇼하다가 정말 널부러지다는 표현에 꼭 맞게 몸을 내버려뒀다.
그냥 대자로 뻗은거지..-_- 구질구질한 내 기분에 맞춰 날도 점점 흐려
지는가 싶더니 비가 툭툭 내리기 시작한다.
제법 거세지는 빗방울을 보며 조금씩 기분이 좋아졌다.
남들은 비 올때 우울하다는데 난 날씨가 구름하나 없이 화창하면 그렇더라...
반대로 비 오고 흐린 날이면 기분 좋아지고 번개라도 칠라치면 창문
다 열어놓고 으항항 웃어제낀다.
(언니는 이런 내 뒷모습에서 진정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세차게 내리는 비로 손을 뻗었다. 손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과
바람이 만나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내밀어진 손등을 타고 팔로 물방울이 번지면서 그때까지 지치고 조금은
구질했던 기분이 살포시 멀어지고 신선한 기운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언젠가..시간이 더 지나면 냄새나 온도까지 재연해주는 영상이 정말로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리 속에 그때의 모든 것이 딱 한 장의 사진
처럼 기억되어있다.
자전거처럼 느리지 않게, 자동차처럼 빠르지 않게 딱 좋은 속도로 툭툭은
달리고.. 주변으로 논과..나무, 상점들의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빗방울은 더워진 공기를 식히며 먼지를 잠재워주고...
특유의 비냄새, 흙냄새, 나무냄새가 뒤엉켜 반가웠다.
어느 새인가..나는 조금 웃고 있었다.
물론..대자로 뻗어 한 팔은 밖으로 내놓은 채 비실비실 웃으며 툭툭에
실려(?)가는 내 모습은 굉장히 안돼보이거나 혹은 호러스럽다는 건 인정
한다. -_-;
보여지는 내 모습이 어떻든 간에.. 아..나 지금 행복한가봐..
진심으로 내 행복을 만끽하려는데 갑자기 혼지가 멈추면서 내렸다.
얘랑 나랑은 정말 상성이 좀 안맞나....나쁜 애는 아닌데 왜이리 타이밍을 못맞추니..
비가 많이 온다고 웃으면서 비닐 옷을 꺼내 입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거기까진 좋은데 툭툭의 앞, 옆의 비닐을 내려 꽁꽁 묶었다.
가만. 잠깐. 내가 이제 막 행복해지려는 참이야..
근데 지금 꼭 그걸 쳐야겠니?
“나 괜찮은데..그냥 안내리면 안돼?”
“비 많이 오는데...”
“난 괜찮아..이게 좋아”
“그래도...”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비닐을 잡아 내리며 어물쩡거리는 혼지. 빗물에
젖어버린 앞좌석과 혼지의 애장품인 아이스박스에 빗물이 튀어있는 것을
바라보는 눈빛이 안타깝다.
그러니까.. 내가 젖는게 문제가 아니라 이거지..-ㅅ-
"그럼 앞부분만 쳐줘.. 다 치면 답답하거든...“
그제야 혼지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다..녀석..솔직하기는..
부릉부릉~ 반띠아이스레이까지 한 시간 넘는 시간동안 혼지는 안심하고 달렸고, 나는 행복했다.
(비가오면 우마차로 변신하는 툭툭. 오늘은 2단변신만 완료)
(반띠아이 가는 길.. 늘씬늘씬한 이기적인 몸매의 나무들..)
(역시 가는 길목의 상점들.. 이미 행복에 취한 내눈엔 저런 상점들도
예뻐보였다..사실 뭘 파는지 꽤 궁금했다)
드디어 반띠아이 스레이 도착. 이전까지의 사원들과는 달리
왕이 만든것이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디테일한 측면은 최고 인듯.
정말 어느 사원보다 여성성이 강한 것 같다. 해자로 둘러쌓여있으며
물 위에 연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조개껍질로 둘러진 붉은 진주같은 느낌? 세속에서 한발 물러서 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같구료.. 나하고 삼만육천리쯤 거리가 먼..-_-
비가 와서 우산을 든 관광객이많았다.. 나는.. 귀찮아서 모자쓰고
후드 뒤집어쓰고 다님. 일명 뒷골목 강도복색.
저 섬세한 조각을 좀 보라지.. 돌덩이를 저리 떡주므르듯 다뤄
레이스처럼 만들다니.. 저거 쪼느라 석공들 허리꽤나 휘었겠는걸..
날 보고 메롱하는 뱀녀석들.. 답례로 손가락한번 들어줄까하다 참았다.
목둘레를 보니 코브라 종인가..
한바퀴돌고 빠져나와 물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화려하게 피어난 연꽃으로 치장된 그곳이 너무 예뻐 반해버리겠다
정말.. 뒤편으로 오니 주변에 관광객도 전혀 없고.. 한적한 걸 넘어
정적이 흘렀다.
반띠아이쓰레이는 나에게 아주아주 우아하고 너무나 정숙해서 고요한
여인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부럽고..호감은 가지만 친해지기 힘든..ㅋ
나와서 마지막으로 뒤돌아 봤을때에도..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너무도 고즈넉스럽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녕~ 다음에 다시 만나면 좀더 친해봅시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