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캄보디아로 다시 가려는 두번째 이유
그 녀석을 만난 것은 2005년 7월 29일 저녁 호텔 앞이다.
3년 전부터 지도하는 학교동아리학생 38명과 추가로 캄보디아로 가고 싶어하는 12명, 총50명의 학생과 나를 포함한 교사 3명과 함께 아란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포이펫을 거쳐 9시간 동안을 3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캄보디아로 입국을 했다 지난 겨울에 씨엠립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동아리 녀석들을 다시 데리고 와서 샘이 느낀 감동을 전해 주고 싶었다. 항상 지도교사의 의도대로 참여해주는 녀석들이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쉽게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단체로 어디를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만 우리 동아리 녀석들은 항상 즐겁게 참여를 한다.
난 처음부터 모든 일정과 비용을 여행사와 협의를 거쳐 태국의 아유타야와 앙코르왓트를 연결하는 상품을 일부를 변경시켜서 처음으로 시행을 하였다.
캄보디아 현지 여행사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학생들이 단체로 씨엠립으로 들어온 것은 우리들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씨엠립의 호텔에 도착한 순간 그 녀석이 우리 차에 올라왔다.
키는 155정도, 눈망울은 약간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하고, 얼굴과 피부는 전형적인 동남아시아 사람의 모습이다, 나이는 28살 정도…
그 녀석은 캄보디아 현지가이드로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유적지 등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는 항상 맨 뒤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비가 오면 자기는 그대로 옷이 흠뻑 젖으면서도 학생들을 위해서 우산을 씌워 주는 녀석이었다.
하루 종일 우리 팀 맨 뒤를 따라오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가까이 와서 대답 만하고 금방 다시 뒤로 떨어졌다. 그때는 그 녀석이 나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녀석은 항상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 때마다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 녀석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했는지 현지 한국 가이드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저 현지 가이드는 처음으로 같이 일하는데 다른 가이드하고 다르게 너무 부지런해요”
그렇게 그 녀석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서히 정이 들어갔다.
이튼 날 유적 투어 일정 중에도 그 녀석과는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 그제야 그 놈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객과 현지 가이드가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은 현지 여행사에서는 별로 좋지 않게 보는 듯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 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이유 설명은 생략 여행사와 관련)
그날 일정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과일을 사주고 싶어 한국가이드에게 그 녀석과 같이 시내의 과일가계에 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국가이드는 자기가 직접동행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적당히 거절을 하고 그 녀석과 같이 동행을 하게 부탁을 했다.
난 룸에 들어 가서 그곳 현지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옷,가방,학용품)중 한 묶음을 내 가방에 넣고 그 녀석의 모토를 타고 과일가계를 향했다.
모토를 타는 순간 그 녀석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도 묻지를 못하고…영어를 너무 잘하고 빨라서 처음에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자기는 영어가이드고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며 야간에는 경영학 대학을 다니고 장래에는 여행 에이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막내 동생이 망고를 따다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은 이야기까지….
모퉁이의 과일가계에서 그 녀석의 도움으로 싸게 과일을 구입하고 가방에 가지고 온 선물은 그 녀석에게 주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려는 순간 그 녀석은 뭔가 머뭇거리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한국가이드는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가 왔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
“……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예…”
그것이 그 녀석과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다음날 현지 학교방문에도 같이 간다고 했지만 그 녀석은 오지 못하였다.
한국가이드에게 물었지만 오후에는 다시 포이펫으로 가야 하고 현지가이드를 이용하면 하루비용을 주어야 하므로 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렇게 태국을 거쳐 아이들과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나의 이메일 박스에는 나를 기다리는 메일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은 거의 매일 나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메일의 답을 주었다.
캄보디아의 현실, 미래 그리고 그 녀석의 결혼,미래…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번 방문은 그 녀석과 아쉬운 작별의 여운과..그 녀석에게 조그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
그 녀석은 기꺼이 나를 자기집으로 나를 초대하였고 나 또한 기쁜마음으로 수락을 하였다.
이것이 내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두번째 이유이다.
3년 전부터 지도하는 학교동아리학생 38명과 추가로 캄보디아로 가고 싶어하는 12명, 총50명의 학생과 나를 포함한 교사 3명과 함께 아란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포이펫을 거쳐 9시간 동안을 3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캄보디아로 입국을 했다 지난 겨울에 씨엠립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동아리 녀석들을 다시 데리고 와서 샘이 느낀 감동을 전해 주고 싶었다. 항상 지도교사의 의도대로 참여해주는 녀석들이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쉽게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단체로 어디를 다니는 것을 싫어하지만 우리 동아리 녀석들은 항상 즐겁게 참여를 한다.
난 처음부터 모든 일정과 비용을 여행사와 협의를 거쳐 태국의 아유타야와 앙코르왓트를 연결하는 상품을 일부를 변경시켜서 처음으로 시행을 하였다.
캄보디아 현지 여행사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학생들이 단체로 씨엠립으로 들어온 것은 우리들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씨엠립의 호텔에 도착한 순간 그 녀석이 우리 차에 올라왔다.
키는 155정도, 눈망울은 약간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하고, 얼굴과 피부는 전형적인 동남아시아 사람의 모습이다, 나이는 28살 정도…
그 녀석은 캄보디아 현지가이드로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웃고만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유적지 등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는 항상 맨 뒤에서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비가 오면 자기는 그대로 옷이 흠뻑 젖으면서도 학생들을 위해서 우산을 씌워 주는 녀석이었다.
하루 종일 우리 팀 맨 뒤를 따라오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가까이 와서 대답 만하고 금방 다시 뒤로 떨어졌다. 그때는 그 녀석이 나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녀석은 항상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 때마다 환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 녀석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대단했는지 현지 한국 가이드가 나에게 한마디 한다
“저 현지 가이드는 처음으로 같이 일하는데 다른 가이드하고 다르게 너무 부지런해요”
그렇게 그 녀석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서히 정이 들어갔다.
이튼 날 유적 투어 일정 중에도 그 녀석과는 한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 그제야 그 놈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행객과 현지 가이드가 너무 친하게 지내는 것은 현지 여행사에서는 별로 좋지 않게 보는 듯했다. 그 이유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 온 뒤에야 알게 되었다(이유 설명은 생략 여행사와 관련)
그날 일정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과일을 사주고 싶어 한국가이드에게 그 녀석과 같이 시내의 과일가계에 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국가이드는 자기가 직접동행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적당히 거절을 하고 그 녀석과 같이 동행을 하게 부탁을 했다.
난 룸에 들어 가서 그곳 현지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옷,가방,학용품)중 한 묶음을 내 가방에 넣고 그 녀석의 모토를 타고 과일가계를 향했다.
모토를 타는 순간 그 녀석은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도 묻지를 못하고…영어를 너무 잘하고 빨라서 처음에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자기는 영어가이드고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며 야간에는 경영학 대학을 다니고 장래에는 여행 에이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막내 동생이 망고를 따다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은 이야기까지….
모퉁이의 과일가계에서 그 녀석의 도움으로 싸게 과일을 구입하고 가방에 가지고 온 선물은 그 녀석에게 주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려는 순간 그 녀석은 뭔가 머뭇거리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한국가이드는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가 왔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
“……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예…”
그것이 그 녀석과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다음날 현지 학교방문에도 같이 간다고 했지만 그 녀석은 오지 못하였다.
한국가이드에게 물었지만 오후에는 다시 포이펫으로 가야 하고 현지가이드를 이용하면 하루비용을 주어야 하므로 오지 말라고 했단다.
그렇게 태국을 거쳐 아이들과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나의 이메일 박스에는 나를 기다리는 메일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은 거의 매일 나에게 메일을 보내고 나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메일의 답을 주었다.
캄보디아의 현실, 미래 그리고 그 녀석의 결혼,미래…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번 방문은 그 녀석과 아쉬운 작별의 여운과..그 녀석에게 조그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
그 녀석은 기꺼이 나를 자기집으로 나를 초대하였고 나 또한 기쁜마음으로 수락을 하였다.
이것이 내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는 두번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