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눅빌 가는 길 - 아크로바틱 승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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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눅빌 가는 길 - 아크로바틱 승용차

고구마 1 2922
깜뽓에서 시하눅빌까지는 1인당 3달러 정도가 드는데, 택시 스탠드로 나가서 끈질기게 흥정하면 좀 더 가격이 내려 갈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극악을 떨어봤자 아낄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고 체력만 소진 할뿐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냥 숙소에서 예약을 해버렸다.
다음날 아침 우리를 실으러 온 낡고 작은 승용차는 일단 앞 운전석에 운전사와 보조 꼬마(뭘 보조하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두 명 탑승, 조수석에 여자 두 명 탑승, 뒷 좌석에 4명 탑승...
총 8명이 올라탔다. 조수석에 2명이 올라타는 건 그런데로 이해가 돼... 근데 운전석에 두 명이 앉는 건 우리의 안전과도 상관이 있는데... 어쨌든 그런 상태로 쌩쌩 속력은 잘 낸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다 차가 끼이익 서는데 난 첨에 뭐 기름이라도 넣으려고 그러는 줄 알았건만 세상에 두 명이 더 올라타는 것이다. 맨 뒤 트렁크를 열고 거기로 들어가서 오두커니 자리를 잡는데... 휴우,,, 쪼꼬만 승용차가 총 10명 탑승...
마치 서커스에서 건장한 한명의 남자위로 켜켜이 사람들이 올라가 부채꼴을 만드는 것 모냥 아슬아슬한 지경이 되고 말았다.
쉴새없이 들이닥치는 황토 먼지에 콜록거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 것은, 이 차가 2시간 반 만에 우리를 목적지인 시하눅빌에 데려다 줬다는 거다.

조수석에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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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석에도 두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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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트렁크를 열고 꼭 잡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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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도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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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뭔가 다른 이름이었다는데 국왕의 이름을 따서 시하눅빌로 개명한 이 해변 마을은 외국인들로 넘쳐나는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을 규모에 비해서 꽤 많은 웨스턴들이 눈에 보여서 왠지 여행자 도시에 온 듯 한 안도감 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항구랑 인접해 있는 빅토리 비치는 바다 색깔이나 모래가 꽤 실망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이곳에서 젤로 좋게 쳐준다는 오쯔띠알비치와 쇼카 비치의 풍경은 이곳이 육지에 붙은 해변 인 걸 감안할 때 꽤 아름다운 편에 속하는 편이었다.

빅토리 해변은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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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쯔띠알 해변은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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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단 백패커여행자들이 득실댄다는 빅토리 비치 쪽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묵기로 점 찍어둔 숙소는 스웨덴 인이 경영하는 블루프록 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였는데 시설도 괜찮고 방마다 DVD가 있어서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 방 얼마에요?
- 아~ 이방은 냉장고도 있고 DVD도 있고 에어컨도 있거든~ 13달러~
- 헴헴... 쫌만 깎아 주셍...
비실비실 웃으면서 눈치를 보며 말하니 이 맘씨 좋은 북 유럽 아저씨가 금방 10달러에 해주겠단다.
아하하... 방에 들어섰을때 ‘비치에 와서 방구석에서 영화나 볼 쑥맥이 어디 있을꼬...’ 하고 시덥잖게 봤던 DVD의 덕을 우리는 3일 동안 톡톡히 봤다. 3일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통에 바다고 뭐고 (사실 빅토리 해변이 그다지 이쁘지도 않아서 별 서운함도 없지만...) 그냥 계속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어야 했던 거다. 첫날... 비온다... 둘째날 또 비온다... 셋째날 도 마찬가지... 이대로 여기 있다가는 이 숙소에 있는 영화를 다 볼 때까지 방에서 폐인 모드로 티비만 들여다보고 있게 될 거 같아 3박을 하고 나서 우리는 오즈띠알 비치로 옮겨 버렸다.

블루프록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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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비치에서 오쯔띠알 비치로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우리의 눈에 ‘평양 친선식당’이라는 한글 간판이 눈이 띠였다. 오오~~ 여기도 씨엠리업처럼 북한 식당이 있나 보구먼...

요왕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 아... 갑자기 한국 음식 먹고 싶다. 우리 저기 한번 가보자~
- 음냐... 근데 엄청 비쌀텐데... 씨엠리업이랑 가격 비슷할꺼야..
- 아니야... 거긴 여행자 도시라서 비쌀 테지만 여기선 현지인 상대로 하니까 안 비쌀걸...
- 캄보디아 현지인이 한국음식도 먹나...?
- 그럼~~ 여기에 북한 사람이 오겠어... 여기 오는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분명히 현지인 대상이니까 가격도 쌀거야...

개뿔 싸기는 뭐가 싸~~ 암것도 모르는 사람을 기만 하는 건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요왕은 ‘당연 내말이 맞다니까~~’하면서 오토바이까지 빌려서 그곳으로 갔고, 메뉴를 펼쳐본 우리는 잠시 허걱 했지만 체면 유지하느라 이 정도쯤이야~ 하는 표정으로 메뉴를 들여다봤다. 반찬 단 하나 안 나오고 (아... 땅콩 한 접시는 주더라...) 비빔밥 5달러 , 우거지 해장국 4달러, 김치 3.5달러에 밥 한 공기는 따로 주문... 그러니 도합 13달러... 아... 아까비...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이곳의 접대원 아가씨들은 사람들한테 시달리지 않아서인지 나긋나긋하기가 봄나물 같고, 우리한테 살짝살짝 다가와 말을 걸려는 폼새가 참 다정해 보인다는 거였다. 그 하얗고 포동한 손목과 뽀얗고 귀티나게 생긴 얼굴을 보니... 여자인 나도 맘이 요렇게 살랑살랑 움직이는데, 남자들은 얼마나 맘이 흔들릴까 싶다.
괜히 적적해서 이것저것 둘러보는 내게 접대원 아가씨가 무슨 잡지 비스무리 한 걸 가지고 와서 내게 묻는다.

-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 아... 네... 고마워요...
- 이것이 만경대입니다. 만경대 아십니까?
- 에... 뉴스에서 이름은 들어본 거 같은데.. 뭐더라... 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거 보니까 놀이동산 인가봐요?
- 헉~ 아닙니다. 수령님께서 태어나신 곳입니다.

김일성 태어난 생가가 만경대였구먼...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걸...
어쨌든 그렇게 어색하고도 생경스런 분위기 속에서 밥을 먹고 짐을 챙겨 총총히 우리의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 나갔는데,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기까지 그녀가 계속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는걸 보자,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 값도 약간은 용서가 되는 것이 맘이 좋아졌다.

평양 친선식당의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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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방에서 게으름뱅이 모드로 영화나 보고 있던 우리는 이곳 오쯔띠알 비치로 와서는 단돈 6달러짜리 선풍기 방에 둥지를 틀었고 해변으로 나가보니 제법 그럴듯한 해변에 여행자들이 선탠을 하거나 독서를 하면서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자 분위기가 물씬물씬 나는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의 해변 모습이다.
꼬 사무이나 푸껫, 또는 다른 섬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광경들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는 해변의 모습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다 비슷하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느릿느릿하게 이 아름다운 비치를 걸었다.
개똥을 피해서 하얀 해변을 총총히 걷다가 우리는 웬 새카만 아저씨가 모래사장에 엎어진 채 파도를 철썩철썩 맞으면서 꼼짝도 안하고 엎드려 있는 걸 목격하고는 화들짝 놀라 버렸다.

- 허거걱... 세상에나... 이곳까지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있구나...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누...
- 그나저나 서양애 들도 각박하기는 매 한가지구먼... 사람이 저러고 있으면 좀 일으켜 세워 주던지 할 것이지 그냥 저렇고 놔두다니... 그나저나 죽은 건 아니겠지...?
- 설마... 술 먹고 뻗은 걸꺼야... 죽기야 했을라고...

그렇게 우리끼리 중얼거리고 비치의 끝에서 끝까지 걸은 후 집으로 돌아왔더니, 이런... 아까 해변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가 두 눈을 반짝이며 우리 방에서 멀지 않은 곳의 의자에 앉아서 우리를 빤히 보더니 말한다.
- 안녕하세요~ 요술왕자님이시져...?
헐헐... 태사랑에서 요왕의 사진을 몇 번 보셨나부다.
한국인을 만나게 될 거 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버린 거다. 이 아저씨와 함께 있는 다른 두 명의 아가씨들은 같이 여행을 한지 3주 정도가 되었다는데, 내일이면 뜨랏을 통해 태국으로 넘어간단다.
이 얼마만의 모국어로 하는 대화란 말인감... 그나저나 아까 우리가 해변에서 했던 말 못 들었어야 할 텐데...
역시 여행 나와서도 말조심을 해야 한다니까...
어찌됐건, 결국 반가운 마음은 ‘저 술이나 한잔 하시져...’로 운을 떼서, 해도 기울기 전에 낮술을 왕창왕창 들이키더니 마침내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이 또 재현됐다. 이거 뭐 현장24시도 아니고 맨 날 똑같은 모습 재현이다.
저질 위스키를 듬뿍 따라서 원샷~~ 원샷 을 외치더니 결국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완전 필름 끊겨 버렸다.
다른 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필림 끊긴 사람이 한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란 거 였다.
제 발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술을 먹는 사람의 심리란 도대체 무얼까...
두 사람은 우리(여자 3명이 말려봤자 그 힘을 당할 수나 있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쌍으로 광란을 떨더니 결국은 요왕은 일찌감치 제풀에 나가 떨어져 버리더니 의식을 잃어버렸다.
완전 드러누운 요왕을 기필코 일으켜 세우겠다고 한 아가씨가 손목을 꽉 부여잡고 있는 힘껏 다해 확 잡아당겼는데 상반신을 힘차게 일으켜 세운 거 까지는 좋았다. 근데 바로 그 자리에 기둥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걸 계산에 못 넣은 거다.
무슨 만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내 참 별 코미디 같은 일을 다 본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가 나무 기둥에 정면으로 쾅~~ 하고 부딪혀서, 안 그래도 의식이 없는 사람이 이제는 뇌진탕 비스므리한 증상까지 더해졌는지 더더욱 의식불명...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 후로도 한동안 숙소에서 온통 난장을 떨어서 다른 여행객들의 평화로운 시간을 못살게 굴더니 체력이 다 소진했는지 광란도 차츰 사그라들고, 어찌어찌 해서 가까스로 그 밤을 넘겼다.
그나마 넘 길게 끌지 않고 나가 떨어져준 것이 고맙고, 그 상황을 끝까지 미소로 지켜준 숙소 스텝들도 고맙고, 소란스러워서 짜증이 났을 법 한데도 그저 유머러스하게 분위기를 타주던 다른 여행자들의 배려도 고맙고... 어쨌든 그런 밤이었다.

그 다음날... 동네 부끄러워 못살겠다는 내 성화에 요왕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걸음걸이를 하고는 일찌감치 짐을 싸서 그 숙소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살짝 들여다본 그 아저씨네 방도 이미 비어 있는 걸로 봐서 예정대로 오늘 새벽 태국으로 가는 차를 탔나보다.
이마를 서까래에 부딪히고 거기다가 계단에서 돌돌돌 구른 것의 후유증일까... 요왕은 가만히 있어서 머리가 빙빙 돌고 자꾸만 자꾸만 속이 메스꺼운 증상이 거의 일주일을 갔다. 하하하...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달팽이관에 약간의 충격이 가면 올 수 있는 경미하고 일시적인 증상이란다. 그걸 보더니 정말 귀가 이상한 것 같다는 둥, 이번엔 갈비뼈가 아프다는 둥 궁상을 떨더니, 궁상 떨어봤자 차가운 눈초리 밖에는 더 얻어먹을게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저 조용해 졌다.

그 후 우리는 시하눅빌 타운에서 몸도 아프고 맘도 아픈 상태로 이틀을 더 머물다가 또 비가 오는 날 아침 프놈뻰 행 여행자 버스에 몸을 실었다.

프놈뻰으로 오기 전 시내에서 묵었던 게코지 게스트하우스. 여기도 분위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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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Miles 2005.11.06 03:10  
  현장 24시 죽입니다.

작년12월을 기대하면서 올해도 파티를 했건만 우리요왕님 많이
자제 하셔서 그다지 흥이 나질 않았는데..그게다 이유가 있었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