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04.
전날, 해 뜨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그리하여, 또 보자 하여,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아침 4시 반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
그리고, 일어난 시간은, 7시.
아저씨는, 집에 가지도 않고, 호텔에 나를 깨워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학습해 왔던 온갖 종류의 미안함의 제스처를 해 보여도 좋았을 테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쁜년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밤 사이 모기 물린 곳을 긁으며 한국에서 가져 간 티셔츠를 선물했다.
이걸 입고 운전하면 한국인들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띄엄띄엄 말해 주었다.
아저씨는 나쁜년에게서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좋은 척을 해 주었다.
고마웠고, 이 티셔츠가 앞으로의 그의 사업에 작은 보탬이 되길 잠깐 빌었다.
오늘은 유적지를 도는 마지막 날. 오전 내내 앙코르 와트만 보기로 했다.
진실,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여행의 목적을 이루는 데.
여기서는 꼭 찾아야만 했다.
<화양연화> 중 캡쳐한 부분.
마지막에 양조위가 캄보디아로 가 아무도 모를 비밀을 이야기하고 막아 버린 구멍.
여행을 떠나기 전, 하면서, 하고 나서까지도,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
“그냥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간절하게 이 구멍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샅샅이 찾았다.
관광객들은 벽의 부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목적은 다르지만 정신이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
통로들을 샅샅이 찾아야 하는데, 통로에서 쉬는 사람, 졸고 있는 개 때문에 쉽지 않다.
마음만 바빠진다.
세 시간 넘게 뒤졌는데도 못 찾고 있다.
어쩌면 구멍은 어제까지 본 사원들 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앙코르 와트에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쉬었다.
이쯤 되면, 마땅히 귀찮아졌어야 한다. 그따위가 뭐라고 초조해질 순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해진다.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던 스틸 사진. 사원 한 곳을 갈 때마다 관리인에게 보여 주며 이곳의 위치를 물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화양연화>도, 왕가위도, 양조위도.
앙코르 와트에 다시 들어가 노닥거리고 있는 관리인에게 슬그머니 사진을 내밀었다.
“이곳을 아십니까?”
“구멍이 세 개가 이렇게 있습니다.”
“나는 여기를 찾아야만 합니다.”
관리인이 웃었다. 그리곤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다녔다.
1시간이 지났다. 그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고, 그래선 안 되었지만 화도 났다.
저쪽에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아주머니가 또 씩 웃는다.
성큼성큼 앞선다. 따라간다. 심장이 뛴다.
아주머니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찾았다.
관리인에게 사진처럼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나를 보더니,
순순히 구멍 쪽으로 돌아서 주었다.
포커스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2초 간, 그를 사랑했다.
1시간 동안 나를 안내한 관리인과, 2초 만에 구멍을 찾아 준 아주머니.
......
우주 여행을 마친 기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원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제야 졸고 있는 관리인도 보이고, 벽에 붙은 도마뱀도 보인다.
벼르던 옥수수를 사 먹었다. 숯불에 구워 코코넛 소스를 묻힌 다음 다시 숯불에 굽는다. 수수한 옥수수. 맛있는 옥수수. 한 알 한 알 빼 먹으니 머리와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이제 놀 일만 남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극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다시 묻는다.
띠어러.
최대한 혀를 굴려 다시 말해 주었다.
뚝뚝이를 타고 극장으로 가는 길.
길 옆 그림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한 소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지나칠 수 없었다.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수줍게 웃는다.
내 친구들 중엔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많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으나,
소년은 영어를 전혀 못 했고, 나도 그들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해 뜨고 질 무렵의 앙코르 와트 그림이 많았다.
그들의 눈으로 본 풍경 묘사는 사진에서 얻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그림값을 물었다.
먼저, 그림을 고르라고 한다.
해 질 무렵의 풍경 그림을 골랐다. 같이 오지 못한 남편에게 이곳의 공기와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다시 가격을 물으니, 검은 민소매 셔츠를 입은 소년이 나타나 10달러라고 한다.
이 소년이 그린 그림이다.
두 점을 사면 얼마인지 다시 물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20달러라고 대답한다. 한 점만 사겠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10배 이상의 바가지를 경험하여 어느덧 흥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림값을 깎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소년의 눈, 손, 콧등에 맺힌 땀 때문이었다.
영자 신문으로 정성껏 포장해 준 그림을 받았다.
아, 내 생애 최고의 ‘쇼핑’이야.
다시 뚝뚝이를 타고 극장에 도착.
영화는 벌써 시작했다.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내용 파악은 충분히 된다.
옆 자리에 앉은 뚝뚝이 기사 아저씨가 영어로 내용도 설명해 주었다.
운명의 장난을 겪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 공주를 시기 질투한 한 여자가 공주를 가두고 자신이 공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왕자와 결혼하고, 공주가 낳은 자식이 장성하여 복수를 해 주는. 우뢰매에서나 볼 듯한 특수 효과와 어이없는 백그라운드 뮤직. <시네마 천국> 속 관객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
그렇지만, 오, 진정, 즐거워!
극장에서 나와 프놈바켕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충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길 기다리며 남편에게 엽서를 썼다.
해가 진다.
남편이 보고 싶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와 압살라 댄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다른 한국 사람들과 클럽에 갔다.
어린 여자애들을 꼬시러 온 서양 남자들, 그들을 꼬시러 온 어린 여자애들, 그들을 꼬시러 온 부르조아 남자애들......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중간 중간 남자애들이 몸을 비비며 다가왔지만, 내 댄스 필살기를 보더니 슬금슬금 도망갔다.
이곳에 와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모두 마지막 날에 했던 것이다.
그림을 사고, 극장에 가고, 클럽에 가고.
내일은 3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왔던 길을 돌아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또 보자 하여,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아침 4시 반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
그리고, 일어난 시간은, 7시.
아저씨는, 집에 가지도 않고, 호텔에 나를 깨워 줄 것을 요청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학습해 왔던 온갖 종류의 미안함의 제스처를 해 보여도 좋았을 테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쁜년이 되기로 했다.
그것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밤 사이 모기 물린 곳을 긁으며 한국에서 가져 간 티셔츠를 선물했다.
이걸 입고 운전하면 한국인들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띄엄띄엄 말해 주었다.
아저씨는 나쁜년에게서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좋은 척을 해 주었다.
고마웠고, 이 티셔츠가 앞으로의 그의 사업에 작은 보탬이 되길 잠깐 빌었다.
오늘은 유적지를 도는 마지막 날. 오전 내내 앙코르 와트만 보기로 했다.
진실,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여행의 목적을 이루는 데.
여기서는 꼭 찾아야만 했다.
<화양연화> 중 캡쳐한 부분.
마지막에 양조위가 캄보디아로 가 아무도 모를 비밀을 이야기하고 막아 버린 구멍.
여행을 떠나기 전, 하면서, 하고 나서까지도,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
“그냥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저 간절하게 이 구멍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입구부터 꼭대기까지 샅샅이 찾았다.
관광객들은 벽의 부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도 목적은 다르지만 정신이 없다.
시간이 별로 없다.
통로들을 샅샅이 찾아야 하는데, 통로에서 쉬는 사람, 졸고 있는 개 때문에 쉽지 않다.
마음만 바빠진다.
세 시간 넘게 뒤졌는데도 못 찾고 있다.
어쩌면 구멍은 어제까지 본 사원들 중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앙코르 와트에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태우며 쉬었다.
이쯤 되면, 마땅히 귀찮아졌어야 한다. 그따위가 뭐라고 초조해질 순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조급해진다.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녔던 스틸 사진. 사원 한 곳을 갈 때마다 관리인에게 보여 주며 이곳의 위치를 물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화양연화>도, 왕가위도, 양조위도.
앙코르 와트에 다시 들어가 노닥거리고 있는 관리인에게 슬그머니 사진을 내밀었다.
“이곳을 아십니까?”
“구멍이 세 개가 이렇게 있습니다.”
“나는 여기를 찾아야만 합니다.”
관리인이 웃었다. 그리곤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으로 다녔다.
1시간이 지났다. 그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군데만 더 가보자고 했다.
나는 그에게 미안했고, 그래선 안 되었지만 화도 났다.
저쪽에서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아주머니가 또 씩 웃는다.
성큼성큼 앞선다. 따라간다. 심장이 뛴다.
아주머니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다.
찾았다.
관리인에게 사진처럼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잠시 나를 보더니,
순순히 구멍 쪽으로 돌아서 주었다.
포커스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2초 간, 그를 사랑했다.
1시간 동안 나를 안내한 관리인과, 2초 만에 구멍을 찾아 준 아주머니.
......
우주 여행을 마친 기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원을 다시 둘러보았다.
이제야 졸고 있는 관리인도 보이고, 벽에 붙은 도마뱀도 보인다.
벼르던 옥수수를 사 먹었다. 숯불에 구워 코코넛 소스를 묻힌 다음 다시 숯불에 굽는다. 수수한 옥수수. 맛있는 옥수수. 한 알 한 알 빼 먹으니 머리와 심장이 제자리를 찾는다. 이제 놀 일만 남았다.
캄보디아에 와서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영화관에 가는 것이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극장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다시 묻는다.
띠어러.
최대한 혀를 굴려 다시 말해 주었다.
뚝뚝이를 타고 극장으로 가는 길.
길 옆 그림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였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한 소년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지나칠 수 없었다. 아저씨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수줍게 웃는다.
내 친구들 중엔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이 많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으나,
소년은 영어를 전혀 못 했고, 나도 그들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해 뜨고 질 무렵의 앙코르 와트 그림이 많았다.
그들의 눈으로 본 풍경 묘사는 사진에서 얻을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그림값을 물었다.
먼저, 그림을 고르라고 한다.
해 질 무렵의 풍경 그림을 골랐다. 같이 오지 못한 남편에게 이곳의 공기와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다시 가격을 물으니, 검은 민소매 셔츠를 입은 소년이 나타나 10달러라고 한다.
이 소년이 그린 그림이다.
두 점을 사면 얼마인지 다시 물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20달러라고 대답한다. 한 점만 사겠다 하고,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 포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동안 10배 이상의 바가지를 경험하여 어느덧 흥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림값을 깎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소년의 눈, 손, 콧등에 맺힌 땀 때문이었다.
영자 신문으로 정성껏 포장해 준 그림을 받았다.
아, 내 생애 최고의 ‘쇼핑’이야.
다시 뚝뚝이를 타고 극장에 도착.
영화는 벌써 시작했다. 뚝뚝이 기사 아저씨와 함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내용 파악은 충분히 된다.
옆 자리에 앉은 뚝뚝이 기사 아저씨가 영어로 내용도 설명해 주었다.
운명의 장난을 겪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 공주를 시기 질투한 한 여자가 공주를 가두고 자신이 공주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왕자와 결혼하고, 공주가 낳은 자식이 장성하여 복수를 해 주는. 우뢰매에서나 볼 듯한 특수 효과와 어이없는 백그라운드 뮤직. <시네마 천국> 속 관객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관객들.
그렇지만, 오, 진정, 즐거워!
극장에서 나와 프놈바켕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대충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길 기다리며 남편에게 엽서를 썼다.
해가 진다.
남편이 보고 싶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와 압살라 댄스를 보며 저녁을 먹고,
다른 한국 사람들과 클럽에 갔다.
어린 여자애들을 꼬시러 온 서양 남자들, 그들을 꼬시러 온 어린 여자애들, 그들을 꼬시러 온 부르조아 남자애들......
새벽 1시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중간 중간 남자애들이 몸을 비비며 다가왔지만, 내 댄스 필살기를 보더니 슬금슬금 도망갔다.
이곳에 와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모두 마지막 날에 했던 것이다.
그림을 사고, 극장에 가고, 클럽에 가고.
내일은 3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왔던 길을 돌아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