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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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앙코르 와트02.

욘욘 2 3175

3일 동안 유적들을 보았다.

첫날.

6시 반쯤 일어나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2.5달러를 내면 갓 구운 것처럼 보이는 바게트 두 개와 두 종류의 잼, 베이컨, 계란프라이, 커피 한 잔,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준다. 적당히 아침을 먹고, 물 두 통을 챙겼다. 지도와 리북에서 나온 책 한 권, 사진기와 부채, 시디플레이어 등등 한국에서와 똑같이 가방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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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관광객들은 유적을 돌아보는 데에 우리나라 옛날 삼륜차처럼 생긴 뚝뚝이나 택시를 이용한다. 호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근처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는 걸 알았다. 오늘은 첫날. 아직은 힘이 남아 있을 때이므로 자전거를 타 보기로 했다. 하루 대여료 1달러, 분실이나 고장에 대비한 보증금 20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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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았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바람은 선선했다. 노래도 부르며 신나게 달렸다. 조그만 동양 여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오토바이를 탄 캄보디아 남자들이 뒤따르며 말을 건다. 순식간에 대통령이 된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영어를 할 줄 모릅니다, 당신 말을 못 알아들어 미안합니다. 진실을 알려 주었다.

1시간 정도 달리니 유적 관리소가 나타났다. 안녕! 인사하고 들어서려는데, 입장권을 제시하란다. 아, 나는 첫날이라 없다. 여기서 사려고 한다. 내 말에 관리원은 길게 대답했으나, 내가 알아들은 것은 온 길을 돌아가 입장권을 끊어 다시 오라는 말뿐.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아직 많이 지치지는 않았다. 다시 신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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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권을 끊는 곳에 도착. 계산해 보니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3일 동안 볼 수 있는 입장권을 끊었다. 40달러와 사진 한 장을 내니 곱게 코팅까지 한 입장권을 주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본격적인 유적지 헤매기 시작.

처음 도착한 곳은 박세이 참끄롱. ‘날개로 보호하는 새’라는 뜻이란다. 언젠가 앙코르 왕이 적군에게 몰렸을 때 커다란 새가 날개로 왕을 덮어 위기에서 구한 적이 있다는 전설이 담긴 사원. 가파른 계단이 있었으나 올라가진 않았다. 그런데 이 사원을 보다 갑자기 초코파이가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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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이 참끄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우리나라 옛 도읍지 성격을 갖는 앙코르톰의 남문이 있다. 문을 두고 왼쪽엔 착한 신들, 오른쪽엔 나쁜 신들이 정렬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옛날에는 이 안에 왕도 살고, 귀족도 살고, 승려들도 살았다고 한다. 10만 명이 살았던 적이 있었을 정도로 거대한 곳. 왕궁, 신전들, 왕과 귀족이 놀던 곳 등이 이 안에 있다.

들어가기 전 잠깐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말이나 마차를 타고 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찬란하게 빛이 나는 건물들 사이로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고, 볼 일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은 각기 제 할 일로 바쁘거나, 느적거리며 산책을 하거나, 그들의 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겠지. 왕궁에선 왕이 집무를 볼 테고, 테라스에선 신하들이 서로 잘난 척 대결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

꼬맹이가 말을 건다. 가이드북을 사란다. 1달러부터 5달러까지, 단도 인쇄부터 2도, 4도까지, 종이도 재생지부터 아트지까지, 다양하기도 하여라.

미안하지만, 안녕. 나는 도읍지로 들어가야 해. 말 대신 자전거를 타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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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바이욘으로 통한다는 말도 있단다. 앙코르톰 중심에 있는 바이욘은 앙코르와트의 사원들을 떠올릴 때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사면상이 불쑥불쑥 솟아 있는 곳. 자야바르만 7세가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신전이라는데, 서로 모양과 크기가 다른 돌 20만 개를 아무런 접착제 없이 블록 쌓기를 하듯 끼워 맞추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곤 돌 위에 빼곡하게 조각을 했다. 왕 자신의 공을 널리 알리는 내용. 신화의 내용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결국 자신의 격을 신과 나란히 세우는 데 기여한 사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걸 발견했다. 영어가 조각되어 있었던 것. 아리송송 비릿비릿.

바이욘을 나설 무렵,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바이욘의 돌 조각들처럼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애써 머리 저 구석으로 밀쳐두었던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들’이 저 돌들을 쪼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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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기둥에 매어 두었던 자전거를 풀다가, 나처럼 자전거로 유적을 도는 사람을 보았다. 반가웠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동포인 것 같아 말을 걸어 보고 싶었으나 달리 할 말도 없고 하여, 자전거를 타고 곁을 스쳐지나가며 ‘타박네’를 불러 보았다. 왜 하필이면 타박네였을까. 어쨌든 종일 ‘우리 엄마 젖을 다오’를 부르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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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지역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사원으로 앙코르톰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는 바푸온. 시바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라고 하는데 밖에서 보기엔 별 것 없이 보이지만, 내부엔 멋진 조각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공사를 하고 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못 들어가게 하니 더 들어가고 싶었으나.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지만 곳곳에 복원을 위한 돌들이 쌓여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돌들이 놓인 곳은 모두 나무 밑처럼 햇볕이 들지 않는 시원한 곳. 쉬기 좋은 곳엔 언제나 돌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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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고 피미아나까스를 찾아갔다. 가파르고 긴 계단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왕이 왕비나 후궁들과 섹스를 하기 전엔 반드시 피미아나까스 꼭대기에 있는 뱀 여인과 먼저 섹스를 해야 했다고 한다. 주변을 빙빙 도는데 계단 위에서 꼬마가 손짓을 한다. 올라가도 되니?

신발을 벗고, 두 발과 두 팔로 올라갔다. 한밤중 달빛에만 의존해 이 계단을 올라갔던 왕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아까 그 꼬맹이가 다가온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옆에 착 붙어서 자꾸 말을 걸어 그래, 그래, 그래, 세 마디 대답했다. 다시 내려가려는데 이 꼬마가 잡는다. 혹시 넌 뱀 여인의 환생이니?

2달러를 내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가이드 비용을 내라고 했다. 나는 네게 가이드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네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학교에 가야하는데 돈이 없어 못 간다. 나 같은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과 함께 쓰겠다고 한다. 쓰겠다고 말을 하며 인상도 같이 썼다. 나는 2달러도 없었고, 계단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넌 뱀 여인의 환생이니?

이상도 하지. 갑자기 주고 싶어졌다. 알 발음과 엘 발음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대충 말을 하는 그 꼬맹이에게. 돈이 정말 없었으므로 1달러를 주며 속으로 말했다. 안녕, 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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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테라스. 왕이 대중들과 만났던 곳. 곳곳에 실물 크기의 코끼리 장식이 되어 있다. 고미타로의 그림책 <코끼리가 있어요>가 생각났다. 코끼리가 있어요. 언제나 있어요. 어디에나 있어요. 나에게만 보여요. 아무에게도 안 보이나 봐요. 나를 응원해 줘요. 나를 위로해 줘요. 조심하라고 말해 줘요. 나와 마음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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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테라스에서 내려와 조금 더 가니 문둥이왕 테라스가 나왔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조각들이 가득 찬 곳. 문둥이왕은 나쁜 뱀과 싸우다 뱀의 맹독이 묻어 문둥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실제로 문둥이왕 상이 테라스 넓은 곳 한가운데에 있다. 그런데 좀 묘하다. 쌍꺼풀이 두껍고 입매는 기형적으로 올라가 있다. 보는 사람을 놀리는 듯, 화를 내는 듯, 무관심한 듯. 그 앞에 정좌하고 앉아 한참을 보았다. 웃음이 났는데,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저 얼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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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나왔는데 오후 두 시가 되었다. 오전에 보기로 마음먹은 곳은 모두 돌았다. 자전거 타기엔 많이 뜨겁다. 팔과 다리가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게 익었다.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기 전에 잠시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옆에 아주머니가 앉아 계셨다. 눈인사를 나누었다.

목이 말라 호텔에서 가져온 얼음물을 꺼냈다. 아직 얼음이 남아있어 시원할 것 같았다. 한 모금 마시려는데 아주머니가 보신다. 나눠 먹자, 먼저 드시라고 물병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네 모금 마시더니 뚜껑을 닫고 엉덩이 옆에 놓았다.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제 내가 마실 차례이니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웃기만 하셨다.

사진만 한 장 찍었을 뿐, 결국 내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왜 주지 않으셨을까. 미지근해 보이긴 했지만 아주머니도 자신의 물을 갖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계속 웃고, 나는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 밥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아이들은 물고기를 잡고, 뚝뚝이 아저씨들은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는 계속 타박네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밥집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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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근처에는 밥집이 아주 많은데 달려 나와서 호객을 한다. 어디로 갈지 몰라 계속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결국 한 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내 스스로 멈춘 것이 아니라 흙 턱에 걸린 자전거가 덜컹거리며 제 스스로 멈춰 섰기 때문. 나도 웃고, 주인도 웃고, 안에 있던 손님들도 웃고, 어쩌면 자전거도 웃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2.5달러짜리 닭볶음과 1.5달러 앙코르 맥주. 메뉴판에 가격이 명시되어 있어서 가격 그대로 받는 곳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손님들은 깎아서 1달러에 밥을 먹고 있었다. 기분이 많이 나쁘지는 않았다. 적당한 바가지는 귀여우니까. 밥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잠깐 음악을 듣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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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일정의 시작은 톰마논과 따께오. 긴 통로 같은 사원으로 숲으로 둘러싸인 톰마논과, 미완성 사원으로 조금 밋밋했지만 기어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았고 조각이 거의 없어 오히려 기억에 더 남는 따께오.

오전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많이 지쳐 버렸다. 마음의 움직임 없이 몸만 움직이는 거라면 차라리 보지 말고 쉬자,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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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툼레이더> 촬영으로 더 유명해진 따프롬. 앙코르 대부분의 유적을 만든 자야바르만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브라흐만신에게 바친 사원이라고 한다.

따프롬은 입구에서 건물까지 거리가 멀다. 숲으로 완전 덮여있고 길 위에선 악단이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 비밀의 화원이라도 들어온 기분이 든다. 말라있던 콧속이 촉촉해지면서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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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정의 마지막인 쁘라삿 끄라반으로 향했다. 지도로 방향을 잡는데 좀 멀어 보이긴 했다. 자전거로 달리니 정말 멀긴 멀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사원이라 그런가 도로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30분을 달려 도착했다. 지쳤나 보다. 멀찍이서 도장 찍듯 사진 한 장 찍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이젠 정말 호텔로 쉬러 돌아가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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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길이 있으므로, 갈 길도 멀었다. 길도 몰라 대략 20명 정도에게 물어물어 호텔로 돌아가는 길. 맑기만 했던 하늘이 갑자기 거짓말하듯 금세 어두워지며 한 두 방울씩 빗방울을 떨군다. 속력을 내 페달을 밟았다.

호텔에 돌아가 씻고 자전거를 반납하러 갔다. 보증금도 받아야 하고, 고마웠단 말도 하려고 했는데, 자전거 락을 잃어버렸다. 직원에게 영어를 참 못한다는 말을 들으며 분실료 2달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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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쁘롬에도 갔으니 저녁은 안젤리나 졸리가 단골로 다녔다는 레드피아노에서. 캄보디아 카레와 파인애플 주스. 근처 마사지샵에서 발과 바디 30분씩 1시간 마사지를 받고, 앙코르 비어에서 타이거 맥주를 마시고는, 뚝뚝이를 타고 다시 호텔로.

아, 참 피곤한 하루였어. 내일 아침 다리가 뭉치질 않길 기원하며, 맨소래담 로숀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잠이 들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해. 해 뜨는 걸 보는 경이로운 일을 할 테니까….

2 Comments
메밀꽃 2005.09.05 12:04  
  사진을 보니 너무도 청명한 캄보디아의 하늘이 생각나네요.
잘 보고 갑니다...!!
조각달 2005.09.20 19:53  
  참 사진도 글도 멋있습니다.
내가 보았던 길보다도 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가는 길이 더욱 정겨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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