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돌아보기 첫 날
앙코르 돌아보기
여행은 항상 내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또 다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활력소와도 같다.
드디어 앙코르를 돌아볼 대망의 날이 밝았다. 어제 미리 예약한 뚝뚝 기사 kong이 픽업하러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 친구는 도시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하였지만, 일에 비해 받는 보수가 턱 없이 적었기에 귀향하여 지금의 뚝뚝 드라이버가 되었단다. 하긴 씨엠이럽에서 교사의 월급이 30불에서 50불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도시에서도 200불이 채 넘지 않는다 한다. 이에 반해서 뚝뚝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월 200불에서 300불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한다. 보통 하루 뚝뚝을 렌탈하는 데는 8불 정도가 드는데, 여차 저차 흥정이 잘 되어 하루 5불에 렌탈하게 되었다. 많이 이용하는 모토가 1인당 5불인 거에 반하면 우리는 둘인지라 아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15분쯤 이동하여 앙코르 입구에 도착하자, 관리하는 사람이 반갑게 우리 말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낸다. 보통 외국에 나가면 "하지메 마시테" 혹은 "오아요고자이마쓰" 다음에나 우리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단번에 우리말로 인사를 해주니 무척이나 반갑다(그런데, 내 얼굴에 나는 한국 사람이오~ 라고 써있나?). 이번 여행 내내 일본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날 타 프롬에서 프랑스 사람이 오해했던 경우만 빼고서는... 그 자리에서 입장권에 부착할 사진을 찍었는데, 유쾌한 사진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치이~즈 하며 바로 찍는 바람에 엽기적인 사진이 나왔으나 어쩌겠는가, 3일 입장권을 40불에 구입하였다.
가로수가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니 앙코르 톰 남문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성벽이나 벽 중간에 통로를 탑처럼 쌓아올렸는데, 이를 가르켜 "고프라"라 한단다. 앙코르 톰 남문은 이 고프라로 되어있고 4면상이 탑 상단부에 부조되어 있는데, 이 얼굴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 7세이며 동시에 자신과 동일시한 관세음보살상이라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상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막상 실제보니 오래된 친구인양 반갑기 그지없다.
앙코르 톰 남문을 지나쳐 가장 먼저 맞닿게 되는 것이 바이욘 사원이다. 200여개의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는데, 모두가 그 표정을 달리 하고 있기에, 때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느낌도, 때로는 무서운 얼굴로 꾸짖는 느낌도 주곤 한다. 또 안 팎으로 되어 있는 회랑의 부조들도 그 어떤 극찬을 주어도 부족하다할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이 사원은 정말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매일 일정을 시작하거나 숙소로 돌아갈 때 이 곳을 마딱드리게 되는데 그 시각 식각의 빛의 방향이나 날씨에 따라서 그 느낌을 달리하였기에 둘째날 김군은 "왜 저기는 안가보지?"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신비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귀함이 베어져 있었다. 앙코르 전 유적지를 통틀어 가히 으뜸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이어서 이동한 파퓨온은 현재 프랑스에 의해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어서 아쉽게도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앞의 너른 해자와 그 위를 관통하는 긴 다리를 건너는 일이 한층 고즈넉하다. 파퓨온에서 피미아나카스로 가는 길 사이에는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지만, 각종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집요하게 1불에 피리 2개를 외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3개 1불, 4개 1불을 부른다. 어떻게 알았는 지 우리에게는 한국말로 이야기 한다. 김군이 살까 말까 망설이고 나는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까 나중에 사자라고 얘기하는데 어느 틈엔가 5개 1불까지 내려와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엽서라든지, 앙코르를 소개하는 책자를 파는데, 처음에는 3불에서 시작하던 것이 끝은 항상 권당 1불로 낙찰되는데, 한 두명이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책을 파니 되려 반감이 생겨 No! 를 줄기차게 외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주 집요한 한 꼬마는 흥정이 생각같지 않자 들고 있던 10권 남짓한 책자를 모두 1불에 사라고 해놓고서는 자신도 어이가 없는 지 웃고, 나도 웃고 말았다. 모든 게 1불이면 만사형통되는 앙코르...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이유로 하나도 사주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에게는 얼마 안되는 1불일지라도 이 사람들에게는 하루 먹거리를 해결해줄 수 있는 돈이었는데 팔아주지 못해서 굉장히 미안스러웠다. 대신 만나는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씩을 쥐어주는 걸로 면죄부(?)를 구하긴 했지만 두고 두고 후회가 되었다.
피미아나카스는 "천상의 궁전"이라는 이름처럼 높은 피라미드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암반등벽을 하는 것처럼 계단이 있어도 두 손 두 발을 모두 이용해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 보니 아찔하다. 앙코르 왓은 그 기울기가 더 하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란 말인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어서 이동한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 테라스, 그 앞에 너른 광장(?),예전에 왕이 이 곳에 앉아서 군대의 사열을 받았다 한다. 잠시 옛사람이 되어 그 옛날 크메르 제국의 영화를 떠올려보았다. 자신의 군대가 승전고를 울리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는 제왕은 얼마나 가슴 부듯했을까... 이 테라스에 조각들과 부조물들은 엄지 손가락을 열개쯤 들어보여줘도 부족할 만큼이나 미의 극치였다.
테라스를 내려오자 Kong이 환한 얼굴로 맞아 준다. 이로써 오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환하였다. 작열하는 폭염, 이 곳 사람들도 12시부터 2시까지는 일을 안한다 하던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을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오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무리한 일정을 삼가고 가능한 한 이 모든 유적지를 가슴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에 기본 룰에 충실하기로 하였고, 이렇게 하기를 잘한 것 같다. 물론 약간의 게으름도 있었지만...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에 점심식사는 북한에서 직영한다는 "평양랭면"집으로 향하였다. 지금은 남북이 국부적이긴 하지만, 금강산 관광 등 서로의 왕래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북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도 봤던 북한 응원단이 우리에게 큰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왔던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니었을까.
남남북녀라는 말이 헛 된 말이 아닌 듯, 개량한복인 듯 하얀색과 파란색이 고운 조금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종업들이 낯 선 북쪽 어투로 인사를 건낸다. 그런데 뭐랄까 50여년의 고립이 낳은 산물일까, 알 듯 모를 듯 어색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이 곳의 냉면은 7불이었으니까 캄보디아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꽤나 비싼 음식이었다. 아울러 김치는 추가 요금을 더 내야하니 외화벌이에 단단히 기여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노래방 설비가 설치되어 연신 우리네 음악이 흘러나오고 흥에 겨웠던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 중에서 마이크를 들고 최신 가요와 춤을 곁들이니 여자 종업원들이 모두 나와 박수로 흥을 돋아준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은 분단의 현실을 사라지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장이었다. 이념의 차이로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이렇게 밖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아이러니...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한 민족이 아니었던가...식사를 마치고 평양랭면에서 가장 이쁜 은하씨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냐니 흔쾌히 허락한다. 기분 만빵~ 이제부터 나의 소원은 "통일" 이다...
오후 일정은 늦으막히 2시 30분에 숙소를 떠났다. 약속시간에 맞춰 Kong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정말 믿음직한 청년...
오후는 크메르 제국의 초기 도읍지였던 롤루오스 그룹(쁘레아 꼬, 바꽁, 롤레이)이다. 씨엠리업에서 16km 정도가 떨어져 있어서 뚝뚝을 타고 한참을 가야했는데,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도 주위 경관을 보는 것도 휴가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서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뚝뚝을 택한 일은 잘 한 것 같다.
롤루오스 그룹 유적지들은 초기 건축물들이라 투박하다고는 하나 이방인의 눈에는 한없이 신기해 보일 따름이다.
앙코르를 둘러보다보면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꼬리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민족들이 크메르 제국을 침입했을 때, 이 곳의 정기를 자르기 위해 사자의 꼬리를 잘랐다 한다. 일제 때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의 산자락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과 일맥상통하리라. 그러고보면 캄보디아와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태국, 베트남, 버마 등의 주변 강대국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문화를 꽃피워 왔던 것처럼... 현재도 캄보디아는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의 지배를, 경제적으로는 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그냥 가볍게 흘러 들을 수 없는 어떠한 교훈을 던져주는 것 같다.
톤레샵 호수와 더불어 그 일몰이 멋있다는 언덕 위의 프놈바켕으로 향했다. 땀 흘리며 올라간 노력이 헛되지 않게 시원한 바람과 전경이 반겨준다.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니 과연 인종 전시장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앙코르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원했던 일몰은 보지 못했다. 지리산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서는 조상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5대가 덕을 쌓아야 일몰을 구경할 수 있다 한다. 쉽게 일몰을 허락하지 않는 데는 대 크메르 제국의 자존심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이로써 첫 날 앙코르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5불에 뚝뚝을 예약했으나, 롤루오스와 같은 장거리 일주는 비용이 더 추가되고, 또 하루 수고해준 Kong 이 고마워 10불을 지불했다. 적은 돈이라도 팁을 과하게 주면 다음 여행자들은 그 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기에 주의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결코 많은 돈을 줬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밤에는 숙소에서 통돼지 바베큐 파티가 있었다.
"Moon"으로 검색하시면 지난 여행기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앙코르 구경가기
여행은 항상 내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또 다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활력소와도 같다.
드디어 앙코르를 돌아볼 대망의 날이 밝았다. 어제 미리 예약한 뚝뚝 기사 kong이 픽업하러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 친구는 도시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하였지만, 일에 비해 받는 보수가 턱 없이 적었기에 귀향하여 지금의 뚝뚝 드라이버가 되었단다. 하긴 씨엠이럽에서 교사의 월급이 30불에서 50불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도시에서도 200불이 채 넘지 않는다 한다. 이에 반해서 뚝뚝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월 200불에서 300불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한다. 보통 하루 뚝뚝을 렌탈하는 데는 8불 정도가 드는데, 여차 저차 흥정이 잘 되어 하루 5불에 렌탈하게 되었다. 많이 이용하는 모토가 1인당 5불인 거에 반하면 우리는 둘인지라 아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15분쯤 이동하여 앙코르 입구에 도착하자, 관리하는 사람이 반갑게 우리 말로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낸다. 보통 외국에 나가면 "하지메 마시테" 혹은 "오아요고자이마쓰" 다음에나 우리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단번에 우리말로 인사를 해주니 무척이나 반갑다(그런데, 내 얼굴에 나는 한국 사람이오~ 라고 써있나?). 이번 여행 내내 일본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날 타 프롬에서 프랑스 사람이 오해했던 경우만 빼고서는... 그 자리에서 입장권에 부착할 사진을 찍었는데, 유쾌한 사진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치이~즈 하며 바로 찍는 바람에 엽기적인 사진이 나왔으나 어쩌겠는가, 3일 입장권을 40불에 구입하였다.
가로수가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조금 이동하니 앙코르 톰 남문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성벽이나 벽 중간에 통로를 탑처럼 쌓아올렸는데, 이를 가르켜 "고프라"라 한단다. 앙코르 톰 남문은 이 고프라로 되어있고 4면상이 탑 상단부에 부조되어 있는데, 이 얼굴의 주인공은 자야바르만 7세이며 동시에 자신과 동일시한 관세음보살상이라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상을 자주 접하게 되었는데, 막상 실제보니 오래된 친구인양 반갑기 그지없다.
앙코르 톰 남문을 지나쳐 가장 먼저 맞닿게 되는 것이 바이욘 사원이다. 200여개의 관세음보살상이 있다는데, 모두가 그 표정을 달리 하고 있기에, 때로는 온화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느낌도, 때로는 무서운 얼굴로 꾸짖는 느낌도 주곤 한다. 또 안 팎으로 되어 있는 회랑의 부조들도 그 어떤 극찬을 주어도 부족하다할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이 사원은 정말 신비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 매일 일정을 시작하거나 숙소로 돌아갈 때 이 곳을 마딱드리게 되는데 그 시각 식각의 빛의 방향이나 날씨에 따라서 그 느낌을 달리하였기에 둘째날 김군은 "왜 저기는 안가보지?" 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신비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귀함이 베어져 있었다. 앙코르 전 유적지를 통틀어 가히 으뜸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이어서 이동한 파퓨온은 현재 프랑스에 의해 복원공사가 한참 진행중이어서 아쉽게도 안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 앞의 너른 해자와 그 위를 관통하는 긴 다리를 건너는 일이 한층 고즈넉하다. 파퓨온에서 피미아나카스로 가는 길 사이에는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지만, 각종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집요하게 1불에 피리 2개를 외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3개 1불, 4개 1불을 부른다. 어떻게 알았는 지 우리에게는 한국말로 이야기 한다. 김군이 살까 말까 망설이고 나는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까 나중에 사자라고 얘기하는데 어느 틈엔가 5개 1불까지 내려와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엽서라든지, 앙코르를 소개하는 책자를 파는데, 처음에는 3불에서 시작하던 것이 끝은 항상 권당 1불로 낙찰되는데, 한 두명이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책을 파니 되려 반감이 생겨 No! 를 줄기차게 외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아주 집요한 한 꼬마는 흥정이 생각같지 않자 들고 있던 10권 남짓한 책자를 모두 1불에 사라고 해놓고서는 자신도 어이가 없는 지 웃고, 나도 웃고 말았다. 모든 게 1불이면 만사형통되는 앙코르... 들고 다니기 귀찮다는 이유로 하나도 사주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에게는 얼마 안되는 1불일지라도 이 사람들에게는 하루 먹거리를 해결해줄 수 있는 돈이었는데 팔아주지 못해서 굉장히 미안스러웠다. 대신 만나는 아이들에게 사탕 하나씩을 쥐어주는 걸로 면죄부(?)를 구하긴 했지만 두고 두고 후회가 되었다.
피미아나카스는 "천상의 궁전"이라는 이름처럼 높은 피라미드 형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치 암반등벽을 하는 것처럼 계단이 있어도 두 손 두 발을 모두 이용해서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갈 때 보니 아찔하다. 앙코르 왓은 그 기울기가 더 하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란 말인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어서 이동한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이왕 테라스, 그 앞에 너른 광장(?),예전에 왕이 이 곳에 앉아서 군대의 사열을 받았다 한다. 잠시 옛사람이 되어 그 옛날 크메르 제국의 영화를 떠올려보았다. 자신의 군대가 승전고를 울리며 행진하는 모습을 보는 제왕은 얼마나 가슴 부듯했을까... 이 테라스에 조각들과 부조물들은 엄지 손가락을 열개쯤 들어보여줘도 부족할 만큼이나 미의 극치였다.
테라스를 내려오자 Kong이 환한 얼굴로 맞아 준다. 이로써 오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환하였다. 작열하는 폭염, 이 곳 사람들도 12시부터 2시까지는 일을 안한다 하던데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을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오르는 것이 중요한 만큼 무리한 일정을 삼가고 가능한 한 이 모든 유적지를 가슴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에 기본 룰에 충실하기로 하였고, 이렇게 하기를 잘한 것 같다. 물론 약간의 게으름도 있었지만...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에 점심식사는 북한에서 직영한다는 "평양랭면"집으로 향하였다. 지금은 남북이 국부적이긴 하지만, 금강산 관광 등 서로의 왕래가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북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아시안 게임에서도 봤던 북한 응원단이 우리에게 큰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왔던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니었을까.
남남북녀라는 말이 헛 된 말이 아닌 듯, 개량한복인 듯 하얀색과 파란색이 고운 조금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종업들이 낯 선 북쪽 어투로 인사를 건낸다. 그런데 뭐랄까 50여년의 고립이 낳은 산물일까, 알 듯 모를 듯 어색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이 곳의 냉면은 7불이었으니까 캄보디아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꽤나 비싼 음식이었다. 아울러 김치는 추가 요금을 더 내야하니 외화벌이에 단단히 기여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노래방 설비가 설치되어 연신 우리네 음악이 흘러나오고 흥에 겨웠던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 중에서 마이크를 들고 최신 가요와 춤을 곁들이니 여자 종업원들이 모두 나와 박수로 흥을 돋아준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은 분단의 현실을 사라지고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장이었다. 이념의 차이로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이렇게 밖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아이러니...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한 민족이 아니었던가...식사를 마치고 평양랭면에서 가장 이쁜 은하씨에게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되겠냐니 흔쾌히 허락한다. 기분 만빵~ 이제부터 나의 소원은 "통일" 이다...
오후 일정은 늦으막히 2시 30분에 숙소를 떠났다. 약속시간에 맞춰 Kong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정말 믿음직한 청년...
오후는 크메르 제국의 초기 도읍지였던 롤루오스 그룹(쁘레아 꼬, 바꽁, 롤레이)이다. 씨엠리업에서 16km 정도가 떨어져 있어서 뚝뚝을 타고 한참을 가야했는데,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도 주위 경관을 보는 것도 휴가 기분을 느끼게 해주어서 비록 속도가 느리더라도 뚝뚝을 택한 일은 잘 한 것 같다.
롤루오스 그룹 유적지들은 초기 건축물들이라 투박하다고는 하나 이방인의 눈에는 한없이 신기해 보일 따름이다.
앙코르를 둘러보다보면 사원을 지키는 사자상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꼬리부분이 훼손되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민족들이 크메르 제국을 침입했을 때, 이 곳의 정기를 자르기 위해 사자의 꼬리를 잘랐다 한다. 일제 때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의 산자락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과 일맥상통하리라. 그러고보면 캄보디아와 우리나라는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태국, 베트남, 버마 등의 주변 강대국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문화를 꽃피워 왔던 것처럼... 현재도 캄보디아는 정치적으로는 베트남의 지배를, 경제적으로는 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그냥 가볍게 흘러 들을 수 없는 어떠한 교훈을 던져주는 것 같다.
톤레샵 호수와 더불어 그 일몰이 멋있다는 언덕 위의 프놈바켕으로 향했다. 땀 흘리며 올라간 노력이 헛되지 않게 시원한 바람과 전경이 반겨준다.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니 과연 인종 전시장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앙코르 여행자들이 모두 모여든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원했던 일몰은 보지 못했다. 지리산 일출과 일몰을 보기 위해서는 조상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설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5대가 덕을 쌓아야 일몰을 구경할 수 있다 한다. 쉽게 일몰을 허락하지 않는 데는 대 크메르 제국의 자존심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이로써 첫 날 앙코르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5불에 뚝뚝을 예약했으나, 롤루오스와 같은 장거리 일주는 비용이 더 추가되고, 또 하루 수고해준 Kong 이 고마워 10불을 지불했다. 적은 돈이라도 팁을 과하게 주면 다음 여행자들은 그 만큼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기에 주의를 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결코 많은 돈을 줬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밤에는 숙소에서 통돼지 바베큐 파티가 있었다.
"Moon"으로 검색하시면 지난 여행기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앙코르 구경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