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짐짝이 아니야~ 돈뎃에서 빡세로 나오기까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예쁜 숙소 2층에 자리 잡고 앉아서 강물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하루 하루 연장하며 있는 와중에... 허걱~ 그 동안의 피로가 좀 겹쳤는지 요왕이 덜컥 몸살이 나버렸어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섬이 아름다워 보이죠. 육지와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고립된 매력으로 다가오고요. 근데 좀 아프니까 이 섬의 공간적인 특성이 거대한 장애물로 다가옵니다. 한적했던 고립감이 두려움과 답답함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에요.
섬도 섬 나름이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섬이 아니라... 이곳은 그야말로 라오스 최남단 메콩강 한 가운데 보헤미안들의 서식처인데 이곳에서 병이 나다니... 섬에서 아프면 강하게 밀려오는 그 막막한 느낌이 싫어서, 더 돌아볼 것도 없이 여기서 나갈 짐을 꾸리고 있는데 태사랑 쪽지가 한 통 오네요.
얼마전 빡쎄에서 만난 여행자분께서 보내온 전갈의 말씀~
‘빡쎄호텔을 1주일 정도 장기숙박 선결재를 다 해놨는데, 오늘 일이 생겨서 태국으로 급히 넘어가게 되었답니다. 호텔에다가 나머지 미숙박분에 대해 환불을 청해봤는데, 안된다고 하네요. 다행이 나머지 숙박을 타인에겐 양도할 수 있다고 하니 요왕네가 여기 와서 묵으실라우...?’
어멋~ 세상만사 타이밍이라더니 어쩜 우리가 나가는 날 이런 일이...
우리는 전날에 이미 돈뎃섬의 그린파라다이스 여행사에서 1인당 5만낍에 빡쎄 가는 조인트 티켓을 산 덕에 딱 타이밍 맞게 나가게 되었어요.
s모 회원님께는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꾸벅~
오전 11시 출발시간까지 섬 선착장 옆 식당에서 맛없는 국수와 사약 같은 커피를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여행자들이 하나둘 와서 선착장 앞에 모여 앉습니다. 배낭은 진짜 다들 엄청 큰 걸 이고지고 말이에요.
콩깍지 속 완두콩들처럼 쪽배 안에 2열종대로 나란히 앉아서 육지 쪽 선착장인 반 나까상 마을에 도착, 버스터미널에서 행선지 별로 가른 다음에 각각 차에 오릅니다.
여기서 캄보디아로 가는 여행자들도 예상외로 그 수가 좀 되었어요. 그럼 캄보디아에서 이곳으로 올라 오는 여행자들도 성수기 때는 많은걸까?
우리가 배정된 차에 오르는데, 어머 이게 뭔일이래? 봉고의 좌석수보다 여행자가 더 많아요. 뭡니까? @_o
15인승 차량에 운전사까지 모두 17명이 있습니다. 게다가 뒤쪽 짐칸에는 도무지 여유가 없어서 배낭도 전부 차량 내부에다가 실어야 하는데 통로와 안쪽 승객들 사이에다가 산처럼 쌓아 올려는데... 중간에 있는 우리는 서양애들 배낭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흙 묻은 신발에 맞아가며 자리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돈뎃에는 소가 많아서 신발엔 소똥이 붙어있을 확률도 많은데 -_-;;
맨 마지막에 와서 제대로 된 자리가 없는 독일인 여성 여행자는 차 바닥에 앉으라는 운전사의 요구에 쿨하게~ “오케이 좋다. 앉아 가겠다. 그런데 돈은 돌려줘야지. 이런데 앉히고 5만낍 다 받으시겠다? 머니 백 머니 백”하면서 손가락으로 돈을 세는 모션을 취합니다.
우리 차에 탄 여행자들도 한마디씩 하면서 그녀의 편을 들어줍니다.
처음에는 운전사가 좀 마땅찮아 하는거 같더니 여행자가 발로 문을 못 닫게 하자 어디선가 2만낍을 구해와서 그녀에게 주네요.
사실 그녀는 코에 피어싱도 하고 문신도 하고 뭔가 산전수전 많이 겪은 여행자 같았어요. 짝다리 짚고 담배 피는 모습도 멋있더만...
만약 제가 맨 꼴찌로 타게 되어 바닥에 앉았다면 이렇게 서늘한 분위기로 돈 돌려달라고 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냥 이게 내 운이려니 하면서 찌그러져 왔을 수도... ㅠㅠ
근데 더 웃긴 상황은 차가 출발한지 30분 후였습니다.
길가에 정차하더니 운전사가 현지인을 한명 더 태우려고 하는거에요.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이지 차에는 바늘 하나 더 꽂을 곳도 없어서 여행자가 남의 짐 위에 올라타서 짐짝처럼 실려 가는데 여기에 현지인을 더 태운다고? 이제 이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가 되버립니다.
이때는 차안의 분위기가 좀 안 좋아지고 모든 여행자들이 한 목소리로 “no no, no more!”합니다.
운전기사는 현지인을 태우려고 그녀를 이리저리 옮기려했지만 무른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지. 서양인들이 손가락을 획 내저으며 “노~~!” 라고 하니 기사 아저씨는 약간 신경질을 내며 포기하고 현지인은 벙찐 표정으로 사라졌습니다. 이게 뭔일이래...
기사가 현지인을 태우길 포기하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자, 차안에서는 박수를 치는 이들도... 있었어요. 역시 조인트 티켓은 별일이 다 있어요.
태국도 남부 조인트 티켓은 요즘도 불쾌한 후기가 간혹 올라오는 정도니... 라오스에선 이 정도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이해해야겠죠.
그린 파라다이스 여행사는 이 지역에서 평이 꽤 좋은 규모 있는 여행사인데도 이래요.
우리를 짐짝처럼 실은 봉고는 차 안에 묘한 긴장감이 가득한 채 13번 도로를 달려, 짬빠삭 들어가는 선착장 마을에 여행자 두 명을 내려주고서야 한숨을 돌립니다.
그후 몇십분을 더 달려 빡쎄로 들어와 우본행 국제버스가 출발하는 정류장에 잠깐 정차한 후, 구시가 안쪽까지 무사히 들어옵니다.
우리는 이미 약속이 잡힌대로 빡쎄호텔로 갔습니다.
이런... 우리가 떠나기 전에도 간간히 하던 리노베이션 작업이 아직도 한창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봤더니 장장 5월에서 10월까지 수리작업을 한다고...!!
허류... 무슨 작업을 이리도 길게 할까... 그래서 현재 이 호텔에는 페인트 냄새가 좀 나고 공사소음이 들립니다. 하긴 호텔 입장에선 공사를 하려면 5월에서 10월까지 비수기 때 해야될거에요.
낮에만 하니까 외부활동이 많으면 그다지 거슬리지는 않을 거 같은 데, 우리 같이 외부 활동이 없는 여행자들은 볕 안 드는 아담한 토끼굴에 들어앉아 공사소음 들으려니 왠지 이곳이 빡쎄인지 커텐 닫은 한국의 우리방인지 구분이 안되는구만요. ^^
반나까쌍의 버스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