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것 같은 [씨판돈] – 게으름뱅이들의 돈콘 나들이
우리가 머무른 돈뎃 섬
하루 일과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걸 보는 일, 베란다에 멍하니 앉아있기입니다.
프랑스가 지배했던 인도차이나 세 나라, 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을 여행하면 유난히 프랑스어가 많이 들리는데요, 이 섬도 좀 그랬어요.
베란다에서 멍 때리고 있다 보면 공기가 뜨겁게 데워지기 전인 오전나절에 우리 숙소 앞으로 이런사람 저런사람 많이들 지나가는데... 그중 금발의 프랑스 아가씨들 네 명이 불어를 새처럼 지저귀면서 자전거 페달을 경쾌하게 밟으며 샤랄라 등장했다가 금세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아~ 이 장면은 영화로구나. 싶었어요.
내가 남자라면 금방 시야에 담겼다 사라지는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마구 몽글몽글해 질 것 같은 정도로... 그녀들의 가는 어깨 아름답게 구불대는 금발은 정말 이뻤어요. 나... 남성 호르몬이 올라가고 있는건가? 왜 여성의 모습이 더 좋지?
그러다 볕이 뜨거워져 더 이상 베란다에 있기가 곤란해지면 방으로 들어와 에어컨 좀 쐬다가 배가 어김없이 고파지니까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가요.
우기라 할지라도 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에는 섬의 날씨가 정말로 더웠습니다.
이런 날씨에 에어컨 없는 나무 방갈로에 묵는 여행자들은 어떻게 견디는걸까. 그냥 더위에 지쳐 고꾸라져 있는걸까... 아니면 라오비어로 낮술 좀 하고 술기운에 기절한 듯 있는걸가.
하여튼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방에 있다가 저녁이 되면 여행자들이 스믈스믈 길로 나옵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젊은 웨스턴 여행자들... 길로 나온다고 해도 뭐 딱히 할 것도 없죠. 그냥 식당이나 들어가서 삼삼오오 이야기 하고 음악 듣는 것...
사실 우리는 돈뎃에 온 첫날 낮에 섬 북쪽 구역을 자그마한 써클로 한 바퀴 걸어서 돌았는데 정말 이게 뭔 사서 고생이냐 싶더라고요.
그날 그 시간에는 현지인들도 논일 하는 사람들 빼고는 전부 나무그늘 밑에서 드러누워서 카드놀이나 하고 있는데 뭐 대단한걸 볼거라고... 이 볕을 쪼이면서 논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소똥, 염소똥이나 밟고 다니고...-_-;;
그 날 한번 디인 후로는 낮에는 밥만 먹으러 나가게 됩니다. 다른 여행자들도 별 액티비티를 안하더군요.
전 이 섬에 있다보니 이제는 사라져 가는 꿈 한 자락에 껴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억 속에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아있는... 어렸을 적 여행하던 곳들의 분위기가 여기선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편의점이나 ATM도 없던 빠이나 매쌀롱의 몇십밧짜리 숙소에서 묵던 기억, 마사지가게 조차 없던 깐짜나부리 강변의 뗏목숙소 같은 것이요...
하긴 암만 이런게 있더라도 관심없는 사람한텐 다 무용지물이에요. 찾으니까 보이는거고, 보인다 해도 관심 없으면 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웅덩이의 물소들
그래도 마냥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돈콘, 즉 콘섬으로 놀러가봅니다. 돈이 이쪽 지방말로 섬이란 뜻이에요.
오토바이는 아침에 빌려 저녁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동일가격 8만낍이에요. 8만낍이면 320밧인데 뭐가 이렇게 비싸용. 허걱...
그래도 자전거 페달을 돌리기도 싫고 걸을 수도(오 마이갓)없으니 오토바이가 우리에겐 최선이에요. 1시반쯤 가서 좀 깎아 달라고 하니 연료 포함해서 6만낍에 해 줍니다.
비가 한차례 온 후의 길은 진흙뻘과 물웅덩이로 군데군데가 지뢰밭이었어요. 소도 꽤나 많이 있어서 소똥도 여기저기... 나무에 묶여있는 돼지들은 귀엽네요.
요왕은 길 난이도가 높아서 꽤나 고생을 하게 됩니다. 얼굴만 동안이지 몸은 나이 들어가고 있는데....-_-;; 뒤에서 요왕만 믿고 뒤뚱거리며 균형 잡고 있는 저도 힘든데 직접 핸들 잡는 사람은...-_-;; 말할 것도 없겠죠.
돈콘 섬 안 쪽 길
라오스에선 꽤 유용하다는 맵스미와 신의 경지에 오른 구글맵 그리고 보잘 것 없는 표지판 이 모든 것들에 조금조금씩 의지해 우리는 돈콘의 리피 폭포를 향해 갑니다.
근데 처음에는 폭포 진입로를 지나쳐버려서 돈콘 섬 서쪽의 모래사장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어요. 이곳에서도 분홍 돌고래 보는 배를 빌려탈 수 있어서 우리가 등장하자, 주민들이 살짝 호객을 위해 들썩였지만 곧 우리가 암 것도 안할 작자들인걸 알고는 다시 그림처럼 조용해지더군요. 크게 별 볼일은 없는 모래사장이었어요. 우리처럼 일부러 길을 잘못 들지 않는다면 올 이유가 거의 없는 곳이랄까...
이곳에서 벗어나 드디어 제대로 찾아간 리피 폭포는 우기의 영향인지 물살이 대단했습니다.
무슨 입장료를 35,000씩이나 받아먹나 좀 투덜거렸는데, 시설 투자를 좀 하긴 하는지 안에는 무슨 구조물 같은걸 만들어 놓기도 해서 그 뿌연 물에 서양인들은 들어가서 물놀이도 하더라고요. 나름 데크도 만들어놓고 쓰레기도 치우는거 같고 정리정돈을 하려는 기운이 있어요. 입구쪽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구역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Free Zipline’이라고 씌어 있기도 하던데 타보진 않았어요. 하여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그까이 35,000낍 정도야 당연히 내야겠죠.
많은 여행기에서 보듯이 일반적인 폭포라기 보다는 경사가 진 급류 바위 계곡 같은 느낌의 지형지물이었습니다. 이 커다란 메콩강이 중간에 강을 가로지르는 바위구역을 만나면서 엄청난 급류를 만들어내는 지점입니다.
폭포라고 하기엔 좀 애매했지만 저는 그 성난 물살이 굉음을 내며 파열하는 전경이 뭔지 모르게 속 시원했어요. 부딪히고 깨지고 하얀 포말로 변해가는게 격정적으로 보여서 날만 좀 덜 더웠으면 좀 더 오래 쳐다 봤을텐데... 날이 정말 너무 더웠어요. 우기인데도 구름이 없는 날은 해가 나면 엄청나게 덥네요.
리피 폭포의 급류를 눈에 가득 담은 후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돈콘 섬의 최남단 ‘Old french landing pier’가 있는 항콘 마을로 오토바이를 타고 털석털석 가봅니다.
우리는 오토바이로도 만만치 않은데 여기까지 자전거로 오는 여행자들은... 아... 젊음이 이래서 좋구나.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말은 온통 거짓부렁입니다.
단지 숫자가 아니에요. 밥도 예전만큼 안 들어가고 활동력도 그렇고 심지어 뇌세포도 사그라드는데... 성철스님 말씀하신것처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나이듬은 나이듬이죠. (성철스님 죄송해요.) 인정할건 인정해야 컨베어 벨트처럼 차곡차곡 진행되는 단계들을 편안하게 맞을수 있다는 생각이...-_-;;. 세월에 저항해봤자 눈물만 나지 뭐에요. ^^
식민지 시대의 옛 항구에 서서 보이는 저 너머는 캄보디아 땅...
내가 바라보고 있는 강물 어딘가에 이라와디 돌고래가 살고 있겠지. 부디 예쁜 이름만큼이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자식 많이 낳고 살기를... -_-;;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우리는 돈콘의 북쪽 길에 소복하게 모여 있는 돈콘 마을 숙소 길을 구경하러 둘이서 오토바이에 실려 출발~~ 합니다.
음... 돈콘의 북쪽 숙소 거리는... 사람마다 각자 느끼는 감흥이 다 다르긴 할텐데... 약간 맥이 빠지는 분위기네요. 제가 여기서 온전하게 숙박은 안 해봤으니까 뭐라고 딱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하여튼 둘러본 바로는 돈뎃이 지내기에 더 좋아 보였어요. 뭔가 이곳은 더 적적하고 기운이 없어보였어요.
애초에 돈콘에 머무를 생각도 없긴했지만, 돈콘 마을을 보니까 돈뎃에 머무르길 잘했다 싶습니다. 바바도 맘에 쏙 들고...
이곳이 이렇게 침 맞은 풍선마냥 쭈글해 보이는건 우기때 방문한 특수성이려나...^^
이제 돈콘도 다 들러봤으니... 아웅... 힘들어. 빨리 에어컨 나오는 우리 바바로 가야지~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