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8)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18)

쇼너 2 914
1999년 3월 5일(목) One Night in Phi Phi Island

피피에 내리는 석양을 넋을 놓고 감상하는 동안, 찰리 리조트의 식당은 멋진 까페가 되어있었다. 하얀 모래밭 위에 테이블이 있고, 그 테이블 위에 붉은색 체크무늬의 하얀 식탁보가 깔려있고, 그 식탁보 위에 촛불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쓰면서도 무슨 싸구려 연예소설 상투적 배경묘사 하는 것 같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표현력의 한계이니 이해들 해주시길…

어찌 저렇게 좋은 술자리를 참을 수 있으리오…
더군다나 오늘은 피피의 첫날밤 아니던가? 기념파티를 가지고 기억을 길이길이 남기리라 생각하면서 레커와 제일 바닷가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가와 한 10미터나 떨어져 있었을까? 파도소리가 조용히(로다람만은 파도가 거의 없다)들렸다.

앉아있으니까 종업원이 다가와서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일단 맥주는 시켜야 할테고, 안주를 뭐 시킬까 그러다가 그냥 스페셜이라고 붙어있는 샐러드를 하나 시켰다.
맥주는 싱하로 시키고…

우선 맥주가 왔는데 무지하게 시원하다. 레커와 쨍한번 하고 피피의 첫날밤과 이제까지 순조로왔던 여행을 자축하고 있는데 스페셜 샐러드가 나왔다.
정말 스페셜했다.
좀 커다란 파인애플 반쪽의 안을 파내서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파인애플을 잘게 썰은 것이랑, 양상치와 새우등등을 사우전드 아일랜드 소스와 버무린 후 그 위에 치즈를 얹은 정말 보기 좋은 샐러드였다.
보기도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샐러드 맛은 가히 일품이었고 아시다시피 싱하의 쌉싸름한 맛 또한 일품이 아닌가?
정신없이 먹다보니 맥주가 없다. 그래서 창을 한 병 더 시켜서 먹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나 레커가 국내에서 맥주를 먹으면 피쳐로 3개쯤은 먹고, 그 정도 먹어야 어느정도 취기가 오르는데… 이상하게 맥주 3병에 취기가 오르는 것이었다.
기분탓일까? 아니면 태국 맥주가 독한 것일까? 그렇다면 장기간 여행에 몸이 피곤해서 그런것일까? 아직도 그 답은 모르지만 어쨌거나 취했다.
아주 기분좋은 취기였다.

피피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며 맥주를 다 먹어치우고 계산서를 요청했다.
“첵빈 너이 나 캅~”
천국이 따로 없다. 그렇게 흡족스럽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서에 나온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정도… 이곳은 천국이 분명하다.

생각같아서는 밤이 새도록 대취해보고 싶었으나 여행에서 지나친 오버는 무리가 되는 법.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본 가득한 별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999년 3월 6일(금) 빈둥거리기… 푹 쉬기…

피피에서 맞는 첫 아침이었다. 간밤에 꽤나 웃기게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운한 아침이었다. 역시 공기가 맑은 곳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좋다.

방콕에서와의 일정과는 달리 일정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다만 꼭 해봐야 할 일만을 정해논 상태였기 때문에,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좀 빈둥거렸다.

여행지에서 특히, 피피와 같이 저절로 마음이 느긋해지는 곳에서 즐기는 빈둥거리는 느낌이란 밤새워 시험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밀린 잠을 청할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빈둥거리는 것도 잠시… 레커나 나나 평소에 아침을 잘 챙겨먹지 않는 편이라서 거를까 생각했는데 배가 고파서 레커랑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피피는 실제로 정보가 부족해서(지금이야 많지만… 그때만해도 정보가 별로 없었다), 그냥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태국음식에 적응을 잘 못하는 레커는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시켰고, 나는 회심의 아침식사 카우 톰 까이(닭죽?)를 시켰다.

레커가 시킨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는 그저 그랬다. 다만 오렌지 주스는 무지하게 맛있었는데, 양이 아주 적다. 거의 종이컵 한잔 수준이다. 카우 톰 까이는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닭죽인데… 생각을 잘게 썰어넣어서 생강이 잘 씹히는 것이 문제지만 역시 지친 몸을 달래는데는 영혼의 닭고기 수프가 최고다.

이날의 히트는 아침을 먹고 있는데 맞은편 가게에서 어떤 웃통 벗은 아저씨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가게 점원인듯한 태국 아가씨 2명은 박장대소하며 웃어대고, 우리는 그 상황이 어떻게 연출된 것인지 모르지만 보고 있자니 무척이나 유쾌해졌다.
그리고 그 음악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서 피피섬에 있는 동안 레커나 나나 그 음악을 입에 달고 다녔다. 아마 그런 경험은 누구나 다 있을테지만, 아침에 어떤 음악을 들으면 하루종일 그 음악을 흥얼거리게되는 그런 경우가 되어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방콕으로 돌아간 후, 레코드 샾에 가서 가게 주인앞에서 그 음악을 흥얼거리며 누구의 노래인지 알아내서 CD라도 하나 사가지고 가려했으나… 노래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흥얼거리는 노래를 레코드샾 주인은 절대 알아듣지 못했다. 그냥 미소만 보낼뿐…

그 노래의 정체를 알게된 것은 작년 여름쯤 트레블게릴라 개업식에 갔다가 요술왕자가 MP3로 트는 노래중에 그 노래를 발견하고 비로소 그 노래가 BAZOO(바쑤)의 ‘토 어이’라는 노래임을 알게되었다… 결국은 2년만에 알아내어 버렸다. 만쉐이~ 집념의 한국인!

어쨌거나, 아침을 먹고나서 다시 방갈로로 돌아와서 해변으로 다시 나가려고 선블록을 바르고 등판을 레커에게 맡겼는데 갑자기 레커가 웃기 시작했다

레커 : 푸하하하~
쇼너 : 왜?
레커 : 너 얼룩말 됐다.
쇼너 : (무슨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표정을 지음)
레커 : 어제 선블록을 내가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서 발랐더니… 많이 발라진 곳은 안타고 덜발라진 곳은 많이 타서… 줄무늬 생겼다… 우하하하!
쇼너 : 제대로 안발라?
레커 : 근데 진짜 웃기다… 푸하하~
쇼너 : ^^;

등판이 얼룩말이 되었든 바둑판이 되었건, 선블록을 열심히 바르고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어제와 똑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몇번 물속에 들락거리면서 재미있게 놀고있는데 레커는 수영을 못해서 그냥 풍덩거리기만 하고 별로 재미가 없었다보다. 좀 떨어진 곳에서 외국여자가 에어 매트리스를 타고 노는 것을 눈여겨보더니…

레커 : 나 저거 사줘.
쇼너 : 뭐?
레커 : 저기 저 쥬부(발음 정확히 해야한다)같이 타고 노는거…
쇼너 : 저거? 저거를 사서 어디에 쓰게?
레커 : 너 내일 스노클링 일일투어가면 나 혼자 심심해서 안돼… 그러니까 저거 사줘.
쇼너 : (갑자기 레커가 불쌍해져서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 어디 알아보자.

그리하여 쇼너와 레커는 에어메트리스를 사러 가게에 갔다.

쇼너 : (점원에게 묻는다) 이 에어메트리스 얼마예요?
점원 : 650밧…
쇼너 : (허걱~ 뭐가 이렇게 비싸?)
레커 : 좀 비싸다…
쇼너 : (레커를 설득하기로 마음먹고) 레커야… 이거 니가 보듯이 이렇게 비싸고, 이거 짊어지고 다닐려면 다 짐이야… 그리고 이거 다음 번에 쓸래도 바람불어 넣는 펌프 없으면 무지 힘들어…
레커 : (조금 생각하더니) 그래도 사자.
쇼너 : (갑자기 레커가 불쌍해져서) 그래 사자.

친절하게도 점원이 에어 매트리스에 바람을 넣어주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그랬더니… 한참동안 땀을 삐질 흘려가며 열심히 넣어준다. 팁이라도 주고 싶었으나 예상치 않은 지출이 생겨서 그냥 ‘컵쿤 막캅’을 연발하고는 다시 돌아왔다.(돌아왔다고는 하나 약 3분 걸었으려나?)

사주고 나니 이제 나는 완전히 에어메트리스꾼(?)이 되었다. 레커를 에어 메트리스에 태우고 계속 끌어주어야 했다. 뭐 같이 놀기도 했지만…
계속 해변과 물을 왔다갔다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놀이는 확실히 배를 빨리 꺼뜨린다. 찰리 리조트 식당에서 간단히 바나나 쉐이크(이거 정말 맛있다)와 샌드위치로 요기를 했다. 레커는 걱정스럽게도 밥을 못먹어서 점점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먹으면서도 인상을 팍팍 쓴다.
방갈로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선블록을 바르고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에 나섰다. 예약이 되면 그토록 경관이 멋지다는 피피 뷰포인트에 올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피피의 날들 중 하루의 오전이 아쉽지만 가버렸다.
2 Comments
레커 1970.01.01 09:00  
선희언니 맨날 와서 글만 읽고 가지 말고 뭐라고 한마디 써요 궁금한데...
레커 1970.01.01 09:00  
아~아~ 천국같던 피피섬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누나...쯥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