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엔 부근의 물소뿔산 풍경
답사를 나섰다.
초행은 아니다.
물소뿔산의 남쪽 사면과 13번 도로의 타복Thabok쪽에서 롱싼Longxan으로 넘어간 것만도 10여 차례 이상될 것이다.
혼자, 동반들과 함께, 또 투어로.
쿠카오쿠와이, 롱싼.
푸: 산. 카오: 뿔. 쿠와이: 물소. 물소뿔산.
카오는 라오어에서 하얗다는 형용사지만 이것은 발음이 다른 명사, 뿔이다.
라오어는 형용사가 뒤에서 꾸미게 되어있다. 흰물소산으로 착각하기 쉽다.
롱싼의 미덕은 남음(Namngum)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고, 고산에 사는 몽족과 라오 주류들이 섞여서 살아가는 공간이고, 고산 사람들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는 곳으로 접근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싸이쏨분주 전체가 문명인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이다. 푸비야에 갔다가 내 길 욕심이 지나쳐 친구와 곤욕을 치른적이 있고, 후배는 차가 고장나서 기술자를 비엔티엔에서 불러와서 고치고서야 완전한 탈출을 할 수 있었다. 비엔티엔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한 몽족의 자연 마을이 남뭉마을이다.
물론, 북뽁 사면에도 물소뿔산 트레일(Phoukhaokhouay)과 왕흐아라는 고원지대의 100% 몽족 마을을 볼 수 있다. 이 왕흐아 마을 보다도 반남뭉은 문명과 더욱 멀다..
나에 대한 선입견과 달리 나는 문명을 좋아하고, 자연으로 부터 인류를 독립시킨 것이 문명의 혜택이며, 또한 일상적으로도 인문적 지식과 교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부터 무엇을 듣거나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지....?
모두가 잃어버린 고향에 온 느낌이다.
좋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되돌아갈 수 없는 그곳.
이번 답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다음달에 자전거를 싣고올 바이커들을 위한 사전 답사다. 오늘의 답사팀의 구성은 내 라오스 생활의 동반이고, 새로운 여행과 코스를 개척하는 전우. 생업으로 따지면 동업자고, 우리가 작품을 만들게 된다면 공저자가 될 벗인 청암. 나는 그가 렌즈라는 눈을 하나 더 가진 것이 늘 부럽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마운틴바이크(MTB)를 타실 장선생님.
그리고 나와 함께 바이크 투어를 지원할 최실장님.
이렇게 넷이 타복을 통해서 물소뿔산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첫번째 들른 곳은 땃싸이.
나를 제외한 셋은 폭포를 보러갔고, 나는 쥐를 잡는 사냥꾼들과 수작을 놓았다. 그는 하루에 4-50마리의 쥐를 잡는다고 한다. 덫으로. 라오스에선 쥐도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나는 크무(Khmu, 끄무, 까무)족들의 집에서 그들의 음식을 내오라고 호언을 한 죄로 그것을 맛본 적이 있는데 생고기가 아니라 훈제한 것이라서 그랬는지 두번 먹기 힘들었던 맛이었다;;;;.
이들이 숲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호주인 생물학자가 딸을 데리고 나타난다. 코케이지언과 라오인 혼혈로 태어난 여자애가 참으로 귀엽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트기와 잡종, 이종교배에 의한 생명이 내 눈에 아름답다. 쿠카오쿠와이가 이 호주인에겐 그의 사냥터이자 작업장이기도 한 모양이다. 딸과 함께 하는 놀이터이기도 하고.
부럽다.
저만했던 딸에게 소를 태워주고 장족 마을집 방안에서 치즈를 만들던 샹글릴라가 그립다.
딸에겐 윈난이 고향같은 곳이다.
그녀와 대나무 벌레를 잡아 볶아먹었던 추억도.
나는 언제나 딸과 함께 메콩투어를 하게 될까.
바다로 나가는 메콩델타부터 어머니의 강이 시작된다는 티벳까지.
쥐사냥꾼들은 숲으로 떠나고, 나비사냥꾼 모녀는 개울을 건너 나비를 잡으러 떠난 후, 싸이폭포를 보고나온 일행과 함께 9킬로의 거리를 재며 오늘의 종착지 하능혹(516마을)을 향해 내처 달리기 시작했다.
13번 남쪽 도로의 기점인 타복으로 부터 롱싼까지 45킬로.
땃싸이, 싸이폭포까지는 입구까지 약 7킬로.
롱싼 가는 도로에서 땃싸이 폭포 입구까지는 9킬로.
롱싼 가는 길에 또 다른 유명한 폭포는 땃럭, 럭폭포까지는 타복으로 부터 16킬로.
럭폭포는 우기에는 물줄기가 하나로 떨어지지만 건기에는 쌍동이 폭포로 떨어지고, 여기는 풍란을 한국과 라오스가 협력에서 복원시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럭폭포는 그냥 지나쳤다.
롱싼으로 넘어와 물소뿔산의 낙차를 이용한 발전소까지 13킬로를 한달음에 와서, 비포장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부터는 몽족마을이 이어진다. 남음(Namngum)호 주변의 멋진 경치가 펼쳐지고, 내가 자주 들르는 몽족 여자아이 빠오네 집도 짐짓 모르쇠로 무정하게 지나쳤다.
드디어 반남뭉.
일행들은 마을에 다들 취했다.
나는 라오스 생활 5년차. 만4년이 지났다. 청암도 도토리 키재기.
그럼에도 몽족 너와집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 마을은 새롭다. 라오스의 너와집은 한국의 널로 만든 너와가 아니고 대나무 너와라는 것이 다르다. 몽족은 산의 비탈에 마을을 이루고 살기 때문에 습기를 방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 바닥에 집을 짓는다. 라오인들은 공중에 집을 띠워서 짓는다. 비교적 긴 우기에 평지에서 살아야 하는 모내기를 아는 농민의 처지니까.
라오스의 너와집.
몽족에게 건기란 마당에 억새를 꺽어다 말리는 계절.
라오스에선 돼지도 해방된 존재.
이 천진한 아이들. 라오주류가 모권 사회인 반면 몽족은 남녀유별.
수도가 놓였다. 형제는 용감하다. 언제나 동생은 더욱 용감하다. 과감한 노출!
남뭉 마을에서 다음달의 바이커들을 위해 점심을 예약한다. 과연 예약이 된 것인지는 그 때 가봐야 알 일이지만, 불청객이 내는 세금이라고 쳐도 좋을 일이다. 나는 이 마을에 친구가 태워주는 오토바이로 와서 몽족의 촌장(나이반)집에서 날이 저물어 되돌아가지 못하고 자고 간 적도 있다. 그 댁을 만났으나 그녀는 날 기억하지 못했다. 라오말을 못하는 것은 여전하고. 아이들이 통역을 해줘야 알아 들을뿐.
아쉬움을 남긴채 답사를 마치기 위해 하능혹(516) 마을에 들어가서 허기를 면했다. 두끼째 국수.
여기서도 사람과 자전거를 태우고 갈 배를 예약. 9시와 1시에 배가 뜬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마을에 있는 몇척의 큰 배 중에 국수집 남편의 친구에게 배를 부탁했다. 바이커들은 배로 남음호를 건너가고, 지원팀 한대의 차량은 여기에서 육로로 물소뿔산을 한바퀴 돌아 일행을 좇아야 한다.
장선생님은 바이커 일행을 어떻게 인도할지 답사를 통해 충분한 정보를 얻었을 것이다.
늘 갈 때마다 나는 롱싼의 왕짜오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여기에서 씬닷도 먹고, 라오스 막걸리인 라오하이도 롱싼에선 쉽게 살수가 있어 이 집의 씬닷과 함께 맛본다. 라오스에서 단 하나의 게스트하우스를 꼽으라고 한다면 여길 선택할 것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날 여기에 스스로를 유폐시켜 글감옥에 갇혀보고 싶다.
동료인 청암은 이 리조트급 게스트하우스인지 게스트하우스급 리조트인지 모를 흐안팍(흐안:집 팍:휴식)에서 바나나꽃의 완벽한 모습을 얻었다고 좋아라 한다. 직업은 못속인다!
돌아오는 길의 반나(Ban Na).
물소뿔산은 우리 답사팀 일행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청암과의 지난 봄의 남부투어에선 채운을 만났었는데.
이번 선물은 특별히 붇다의 발자국을 모신 절, 왓파밧에서.
나만 빼고 일행들은 이 노을빛에 반해서 찰칵, 찰칵!
탑에 걸린 빛을 놓친 청암이 왓파밧의 정문에 걸린 색으로 만족을 해야했다.
노을은 금빛에서 이미 붉게 익었다.
글: 탄허
사진: 푸른바위 청암
글 초입 땃싸이 부근 2장의 사진은 탄허가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