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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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왓디 무앙타이(11)

이준용 0 934
- 일출보기 -

2002년의 새해가 밝았다. 새벽 4시40분 기상. 안 그래도 새벽잠이 많은 내가 이렇게 꼭두새
벽에 일어난 까닭은 일출을 보기 위함. 여행자가이드에 의하면 앙코르와트에서 보는 일출이
꽤 볼만하단다. 쯧쯧.. 결국 눈만 비비고 세수도 안한 채 앙코르와트로 이동. 사방은 아직 어
둠 속에 깊이 잠들어 있건만, 새벽잠 없는 사람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허허... 앙코르와트
앞에 오니 완전히 인산인해다.

내가 정말 이해를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이 일출 보러 몰려다니는 것. 결혼하기 전
엔 아내가 하도 들볶아대서 딱 한번 정동진에 간 적이 있다. 무슨 먹고 살 일이 났다고 전
날 밤에 청량리에서 밤기차 타고 꼬박 밤새워 달렸더니 새벽 4시반엔가 도착. 피곤하고 엄
청 졸린데다 그때가 6월이었으니 분명 여름인데도 춥긴 또 얼마나 춥던지... 개떨듯 덜덜덜
떨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리는데... 참... 내 신세란... 결국 그것보고 아침까지 먹고 나서부
터는 졸려서 하루종일 갱신을 못했었다. 사실 해뜨는 모습을 테레비만큼 멋있게 보여주는
데가 또 있을까? 애국가 시작할 때 보면 망원렌즈에 필터까지 사용해서 찍었는지 쟁반만큼
큼지막한 붉은 해가 이글거리며 떠오르는데... 허허..

그 새벽에 앙코르와트 광장은 사람들로 와글거리는데, 가만 보니 일본애들 세상이다. 처녀,
총각은 물론 아줌마, 아저씨에 애덜까지 몰려와서 법석을 치니, 허허허... 얘네덜은 원래 잠
이 없나? 그나저나 빨리 해가 뜨던지 해야지 추워서 살수가 있나...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사진이나 찍을까해도 사방이 껌껌한데 뭐가 나오겠어? 결국 한쪽 구석에서 오그리고 앉아
시간을 죽일 수밖에... 기다린 보람이 있는지 마침내 해는 떴다. 참... 해뜨는 모습이야 다 그
렇지... 여기라고 특별할 게 있나? 혼자 궁시렁궁시렁 대보지만 결국은 내 스스로 속아 여기
까지 와서 떨고 있는데 누구를 원망하랴 싶다. 그저 내 평생에 다시금 일출구경은 없다! 이
런 다짐이나 해야지... 그런데 주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무슨 소린지는 알
수 없으나 지들끼리 떠들어대고 히히덕거리니 얘들은 이게 꽤 볼만한 모양일세? 배도 안 고
픈가?


- 일본친구 -

일출을 보고 돌아와서는 어제처럼 글로벌로 가서 눈치껏 공짜식사. 사실 주인장이 봐도 뭐
라고 하진 않으나 괜히 내 스스로가 그런 것. 그렇다고 조금 먹었다는 건 아님. 언제나 규칙
적으로 빵 4개. 하하!! (내가 이렇게 인생을 사니 머리가 빠지지..) 식사를 마치고 오전에 간
곳은 [반테이스레이]와 [반띠아이끄데이]. 당연히 둘 다 사원인데, 좀 멀다. 사실 어제 오후
부터 조금씩 좀이 쑤시는 게 슬슬 돌덩이에는 이골이 나고 있어서 그런지, 봐도 별 느낌도
없구 그랬다. 재미있었던 것은 반테이스레이에서 만난 일본친구.

열심히 사진을 찍어가며 사원구경을 하는데 누가 말을 시킨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그러지요..."
가만 보니 얼굴을 나랑 비슷하지만 일본사람. 나이는 나보다 어려뵈는데, 아마 대학생쯤 되
는 듯..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이요"
"아하!! 그렇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 대목에선 얼떨결에 악수까지 함)
(왜요?)
"올해에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큰 대회를 열지 않습니까?"
"월드컵 말이요?"
"아하!! 예. 또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한-일간의 우호와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도 내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이 있었나?)
"따라서 앞으로는 더욱 양국간의 관계가 좋았으면 합니다."
얘기를 좀 더 듣다가 생각밖으로 아는 게 많은 이 일본친구에게 얼른 사진이나 하나 찍어달
라고 부탁했다. 같이 찍자는 게 아니라... 사실은 꼭 사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은 지
금 신이 나서 떠드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좀 어색해서... 그런데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그러
는지 이 친구는 카메라를 들고 거의 땅에 엎드려서 찍어주네? 허허.. 이거 송구스러워서...


- 노점에서 -

아침9시부터 시작한 오전관광은 이렇게 두 군데로 끝내고 또 다시 노점에서 점심식사. 이제
아내는 아예 점심을 건너뛴다. 흠흠.. 도저히 못 먹겠다 이거지? 나야 뭐 아직까지는 건재하
므로 야채볶음밥을 주문. 가격은 1불이다.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물건
파는 애들이 와서 조르고... 지난번에 말했듯이 조금 귀찮기는 해도 애들이 워낙 앙증맞고
예쁘니 물건은 안 사주면서도 얘기는 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얘네들도 같이 자리에 앉아서
우리와 놀아 준다. 이렇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꼬마 애 하나가 아내한테 자기가 끼고 있던
팔찌를 주네? 하하... 그것도 쑥스러운 듯 아주 부끄러워하며 내미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우리도 선물을 받았으니 뭔가 답례를 해야 하는데... 아내가 얘한테 바나나를 줬
다. 그랬는데 첨엔 얘가 안 받네? 바나나는 바로 그 노점에서 산 것이니 의심스러울 것은
없고, 아마 부끄러웠던 모양... 내가 옆에서 몇 번이나 권하니까 나중엔 부끄러운 듯 손을 내
민다...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으니 부근의 아저씨와 아줌마까지 합세. 내가 음식을 기다리느
라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여긴 주문하면 세월...) 우리들 속의 아저씨를 보니 문득 좋은 생
각이 떠올랐다.
"한대 피우시겠어요?"
그랬더니 이 아저씨는 담배를 안 피운다고...
약간 무안해진 나는 옆에 있던 젊은 아줌마(특히 화장이 진함)에게도 권해봤다.
"한대 피우시겠어요?"
이 아줌마는 상당히 당황스러워하고, 아저씨는 웃으면서 계속 손짓으로 주라고주라고 한다.
내가 아줌마에게 담배를 건네줬다.
이 아줌마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도 불을 붙이라고 하는데...
내가 라이터를 켜고 다가가도 담배를 물지 않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모양)
하하!! 이러는 가운데 음식이 나왔다.
아저씨는 자기가 갖고 있던 물통을 내려놓으며 1,000리엘에 사라고 한다.
우리에게 물통이 없음을 알아차린 것은 눈치가 빨랐으나, 물통엔 물이 반쯤 있었는데 그 아
저씨가 먹던 물을 누가 사겠는가? 암튼 약간 시무룩해진 아저씨도 가고, 아이들도 갔는데,
이 아줌마는 계속 앉아있네? 앉아서는 밥 먹고 있는 내 얼굴을 연신 힐끔힐끔 쳐다보고...
하하!! 이 광경을 보는 아내는 적잖이 어이없어하며, "아주 사랑에 빠졌군. 사랑에 빠졌어"하
며 혀를 찬다.


사족:
1) 나중에 알았는데 일출구경은 해를 보는 게 아니었다. 어쩐지... 일출은 앙코르와트 입구로
들어가 넓은 광장에서 보게 되는데, 이 때 해를 보는 게 아니라 뒤로 돌아서서 어둠 속에서
차츰 위용을 드러내는 앙코르와트의 모습을 보는 것. 참으로 한심한 것은 이런 사실을 안
것이 한국에 돌아와서였다. 그것 보자고 또 갈 수도 없고.. 하긴 뭐 거기 있을 때 알았어도
그 새벽에 또 일어날 수나 있었겠어?
2)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해서는 또 얘기하게 되겠지만, 대부분은 참으로 순박하고 착한 사
람들이었다.
3) 오늘 올리는 사진은 앙코르와트 앞 광장에서 찍은 아침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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