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폰사완(Phonsavan,Laos)-영광의 유적과 상처의 흔적 2015/04/21~23
5천년 전의 영광과 50년 전의 치욕의 땅, 폰사완을 찾아간다.
비엥통에서 폰사완으로 가기위해서는
비엥통 버스터미널에서 삼느아가는 버스를 타고 60km 떨어진 푸라오 삼거리에 내려야한다.
푸라오 삼거리에서 90km를 직진하면 후아판주 주도인 삼느아에 도착하고,
우회전해서 140km를 가면 씨엥쿠앙주의 주도인 폰사완에 도착한다.
푸라오에서 3시간을 서성거린 후, 삼느아에서 출발한 폰사완행 버스에 오른다.
그리고 5시간 동안 높고 험한 산을 돌고, 깊고 맑은 강을 건넌다.
남는이나 므앙캄같은 산골 소도시와 그외 작은 마을들을 거쳐간다.
기원전 3000경이라고 학자들은 얘기한다.
그 무렵이면 청동기 시대가 막 시작할 무렵이고
이집트1왕조의 시기이고, 메소포타미아문명도 자리잡을 때이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배달나라가 번영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 때에 거대한 돌항아리 수천기를 만들 노동력과 기술력을 가진 문명이 이 곳 폰사완에 있었다.
이러한 돌항아리들이 매장용도로 쓰였다고 추정한다는데
일부 항아리에서는 곡류보관용도의 흔적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이 거석유적을 만든 주인공이 누구인지, 용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5000년 정도가 흐른 1964년 부터 1973년 까지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사회주의 국가 출현을 막기위해 북베트남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호치민 트레일'의 전략적 요충지인 이 곳 평원에 폭탄을 투하한다.
때로는 태국에서 발진한 미폭격기가 북베트남군에 폭격을 가한 후
복귀하는 길에 잔탄 모두를 이 곳에 의미없이 투하한다.
그렇게 이곳에 투하한 폭탄이 2억7천만발 이상이라고 하며 9년동안 8분에 한 발 꼴 이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도 8천만발 이상이 불발탄으로 이 곳 어딘가에 묻혀 있으며
아직도 불발탄에 의한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폰사완에서 남쪽으로 30km에 떨어진 지점에 므앙쿤이 있다.
므앙쿤은 13세기에 개국한 푸안왕국의 수도였고
몇십년전 까지 씨엥쿠앙주의 주도였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므앙쿤에서도 오래된 영광의 유적과 오래되지 않은 치욕의 흔적을 만난다.
50년 전의 치욕이 5000년 전의 영광을 짓누르는,
50년 전의 비명이 5000년 전의 환호보다 더 크게 들리는,
50년 전의 상처가 5000년 전의 영화보다 더 깊게 패인
고원의 구릉지 한 켠에서
어쩌면 다시는 5000년 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든다,
어쩌면 또다시 50년 전의 치욕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걱정이 찾아온다.
차라리 영광도 필요없으니 치욕도 없었으면 한다.
순한 것만 이곳에 미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