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앙씽에서: 몽족 설에 인절미를 얻어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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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앙씽에서: 몽족 설에 인절미를 얻어먹다

탄허 0 1285

우리 일행은 6시에 므앙씽으로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동이 트지 않아 어두웠다. 

6시 30분 므앙씽으로 떠난다. 

가는 길에 아카족 여성들이 일을 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 

아카족 아이들이 덫을 놓으러 가는 것도 보았다. 






루왕남타까지 오는 것은 이동이었다면 

므앙씽 가는 것은 여행처럼 느껴졌으므로 

말을 걸고, 사진도 찍도...

자연 속도가 늦어진다. 

길도 우돔싸이에서 오는 길과는 달리 구빗길도 험하고 

눌린 곳이 많아 차가 출렁거린다.


두시간 정도 걸려서 므앙씽 시내에 도착했다. 

거리는 중국 간판 투성이고.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식당부터 찾았다. 


카오쏘이를 파는 집에 들렸다. 

므앙씽 시내는 르족이 많았다. 구체적으로는 타이르족. 


르족 식당에서 몽족 설날을 보러가기 위해 므앙씽 부근의 몽족 마을을 물어본다.

돈마이라는 마을이 몽족이 많이 산단다. 

물어 물어 돈마이를 찾아가는 길에 몽족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깡마이 마을. 


마당에 몽족 여성들이 화톳불 주변에 모여있다.

새해 첫날에 찹쌀떡을 구워먹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수가 좋으면 얻어먹으리라 생각했는데 

예감적중! 


그들은 바나나잎에 싸서 인절미 같은 떡을 굽고 있었고 

자리를 내어주고 굽던 떡을 먹게 해줄 뿐만 아니라 

몇개나 더 가져와서 구워준다. 






이 집의 호구 조사.

조선의 전통적인 혼인의 덕담은 '아홉 아들에 고명딸 낳고 잘 살아라'지만 

이 집 여주인은 고작 9남매를 두었다는 것이다. 

막내는 8살, 쉰둘에 자식을 보았다. ㅎ

집의 실내도 둘러보고, 가옥 내의 구조에 대해 경험있는 내가 일행들에게 설명을 한다. 


떡을 먹고, 몽족의 향긋한 라오라오(라오 소주)를 일행의 좌상이 얻어 마시고. 

자리를 떠서 몽족들이 판을 벌리고 있는 곳으로 그 집 딸을 

이내 길라잡이 삼아 찾아갔다. 

몽족의 공놀이, 과거에는 오재미 비슷했을 테지만 지금은 테니스공으로 

좌우로 줄느런히 두줄로 서서 공을 던지고 받고. 

그 중에 눈이 맞으면 몽족의 짝짓기는 시작된다. 





음력 10월의 마지막 날. 

그들의 새해는 시작된다. 

올해 9월 윤달이 들어 12월 하순까지 설이 밀렸다. 


몽족의 설은 재미가 있다.

닭싸움은 라오에서 흔한 일이지만 통크게 소싸움까지 벌리는 게 몽족이다. 

남자의 주요한 일이 짐승을 다루는 일이니까. 

들에서 청년들이 소싸움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러갔다. 

재미있는 것은 소 싸움을 준비하면서 

청년들이 쇠불알을 작대기로 훑어주고 있었다.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서 왜 거길 자극하는 건지...

암소랑 흘레를 붙이는 것도 아니고, 

효과가 있는 걸까? 




하기야, 외국의 경우엔 축구 코치가 경기 전야에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호텔방에 여자 친구를 불러들여 동침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니까. 


당장 투우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서 마실을 돌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몽족집. 

뜻밖에 중국인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므앙씽에서 바나나 농사를 짓는데 그 중에 한명이 몽족 여자를 신부로 맞아서 

설날의 명절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거기에 동석해서 수작을 주고 받고 라오라오도 얻어마시고 

홍허라는 담배를 한갑 얻기도 했다. 

돼지 고기 삶은 것, 볶은 것, 그리고 선지를 요리한 것을 안주 삼아 

純生이라는 맥주도 얻어마셨다. 


어설픈 중국어 실력으로 연설문의 도입부를 청을 가다듬고 가오를 잡아본다. 

슝디먼, 통즈먼, 따쟈 하오!(형제들, 동지들, 다들 안녕!)


남하보호구역까지 가야하는 관계로 아쉬운 자리를 파하고 일어섰다. 

몽족 아내를 둔 중국인이 한국돈을 런민삐와 바꾸어 싶어했는데 

다행히 지리산 아짐이 천원권 지폐가 있어 자리에 대한 답례를 하고서 

아쉬운 므앙씽의 들판을 뒤로하고 남하를 향하여 남진을 시작한다. 






므앙씽에서 루왕남타로 다시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겸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남하 생태다양성 보호구역까지 가는 길도 일사천리. 

무결점 아스팔트 도로로 불과 30킬로 남짓이니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도착했는데 

보호구역의 어디에서 서야할지 모르는 나는 주요 트렉킹 코스를 살짝 지나쳐갔다. 


몽족 여자 아이들이 '와이'라는 것을 팔고 있다. 

이 녀석들이 지나쳐왔다고 알려준다. 

우리는 길을 가르쳐 준 값으로 와이를 두 다발 사주었다. 

드릅같이 생기긴 했는데 처음보는 식물이라 어떻게 먹는 지, 누가 먹게 될 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추운데 장화를 벗고서 맨발로 팔고 있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 천진한 표정과 웃음에 질 수 밖에. 


우리는 남하자연보호구역 트렉킹 코스의 입구로 되돌아왔으나 

마을 소유의 게스트하우스는 굳게 닫혀있다. 

트렉킹을 물어보니 5-6시간 편도로 걸린단다. 

가장 가까운 끄무족 마을 까지도 4시간. 

현지가이드로 주민을 고용하면 6만낍이면 된단다. 

루왕남타에서 팔고 있는 투어 상품 보다 훨씬 값이 눅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숙소도 없고, 트렉킹 코스도 길어 우리들은 지레 포기를 했다. 

조용하고 싼맛에 다시 돌아온 루왕남타의 숙소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간단히 씻고. 


라오스에 와서 새로운 습관이 있다면 자명종으로 깨어나는 시간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한국에서처럼 시간을 깨어나는 시간을 맞춘다. 

5:30분. 

전기장판인지 담요인지가 너무 따뜻해서 

늦잠을 잘 것 같다,


to be continued..... 


*여행의 동반이신 두 분의 회원 사진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링크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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