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힌분(탐꽁로)답사 닷새째2. 6월 21일
본전 생각이란 말이 있다.
오늘 부터 라오스에 10불씩 착실하게 바쳐야 한다. 허가를 받은 날을 초과하여 머무는 Overstay상태다. 그러니 억울해서라도 양껏 채워야 한다.
점심도 번개같이 먹어치우고 쪼이네로 짓쳐들어갔다. 레스토랑에 쪼이가 없다. 게스트하우스 겸 쪼이네 살림집으로 눈을 휘번덕거리며 찾으러 들어갔다. 그의 아내와 장모가 무슨 일인가 내다본다.
나는 쪼이를 불렀다.
그의 아내가 부르러 간다. 쪼이가 손에 나무를 들고 나온다. 집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쪼이는 내가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나니 깜짝 반가워하고 그의 아내와 장모는 눈짓으로 어서 날 따라나서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5일이나 손님 구경을 못했으니 내가 약속한 60,000낍의 가이드 사례비는 가뭄에 단비 아니겠는가?
쪼이는 배에 물을 퍼내고 나를 태워 힌분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자마자 숲길이다. 언덕에 오르니 깍아지른 절벽들이 보인다. 바람 굴과 애기 부처상이 우리를 맞는다. 이들의 조상이 마스코트로 석회암 사면의 바람굴 옆에 아기 부처를 모셨다. 종유석들이 돌출이 되어있어서 신비롭기는 하다.
위압적인 부처보다 작은 부처가 인상적이다. 작은 부처 뒤에 동자불들도 앙증맞고. 이리 표현해도 되나....선승들은 목불을 나무라고 태우기도 했는데 뭘.
바람굴은 물소들이 악천후를 피하는 임시 대피 공간이기도 하고 보금자리 이기도 하다.
거길 통과하니 또 목책이다. 여기는 길다운 길도 없으니 순수하게 물소의 탈출을 막기위한 것이다.
목책을 넘어서면 다양한 식생대가 펼쳐진다. 대나무가 다발을 이루어 자라기도 하고, 장미목이 줄기가 잘린 채 죽어있는 몸과 늘씬한 맨드리로 젊음을 자랑하는 나무가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다. 장미목을 일러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을 한다. 내구성이 대단한 나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란히 서 있으니 이채롭다.
죽어 천년 장미목
살아 천년 장미목
숲을 지나니...........
아, 뭐 이런 곳이 있지?
이런 마음이 샘처럼 솟아오른다.
말로 하거나 글로 하거나 소용없는 짓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대걸작. 석회암으로 자연이 할 수 있는 장난은 다 쳐놓은 것 같다.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들이다.
길이 진도가 나갈 수가 없다. 바라 봐야지, 사진 찍어야지, 대석림에 가까이 가야지.
여기는 길이랄 게 없다. 숲속의 오솔길이거나 논둑길을 걸어가야 한다. 또 미끄러졌다. 이제 겁도 안난다.입었던 반바지는 황토라서 쉽게 지워질 것도 아니고. 쪼이는 들에서 논일을 하고 있는 강건너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고 나는 감탄을 해가며 아이처럼 부산을 떨었다. 쪼이는 어두워지기 전에 비취천에 데려가고 싶을 것이고 머지 않아 해동갑하게 생겼는데도 내가 꾸물럭거리니 마음에 조바심이 날 것도 같은데 내색을 하지 않고 지켜본다.
놓아주기 싫은 대석림의 한자락을 뒤로 하고 들을 지나니 다시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가 나온다. 몇발짝 못가 다리 오른쪽에서 비취빛 물이 시원스레 솟아나오고 있다. 우기의 황톳물만 보다가 석회가 만들어 놓은 신비의 색, 에메랄드 그린을 보니 신비감이 말할 수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빛도 옥빛이다. 비치천과 옥류계곡. 내가 붙인 이름이다.
내가 붙인 이름이지만 흡족하다. 우기의 대조가 내게 준 감정이기는 해도 꽝시나 블루라군과는 또 다른 멋이다. 계곡이 한국인에게 주는 정서는 각별하기 마려이니까.
이 계곡은 힌분강으로 이어진단다. 옥빛 물결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는 튜브를 탄다면 쏭강의 유유한 멋과는 다른 적당한 모험심이 주는 쾌감이 자못 대단할 것 같다. 누가 시도해 보았을까?
쪼이는 벗기 시작하더니 개울로 뛰어든다. 물살이 빠른데 수영을 한다. 그러나 떠내려 갈 정도로 계곡의 가운데로는 감히 나가지 못한다. 나도 급류가 무서워서 조심스레 나무를 잡고 잠수를 해보았다. 깊기는 하지만 내 몸이 완전히 잠길 정도의 깊이는 아니다. 그러나 물이 빨라 나도 나무를 놓고 계곡의 중심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시원하다.
찰 정도의 느낌은 아니다. 기분 좋은 목욕을 둘이서 즐겼다. 선녀들이 아니라서 미안했고.
돌아오는 길에 강건너로 논을 보러 나온 아낙네들과 해동갑을 하면서 가벼워진 몸으로 기분 좋게 걸었다. 길지 않은 목욕이어도 욱걸어서 아팠던 다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쪼이는 저녁을 뭘 먹을거냐고 물어본다.
영업 시작 ㅎㅎㅎ
나는 똠까이를 먹겠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다. 닭 한마리 삶아주고 50,000낍 약 6000원 남짓이란다.
나는 짐짓 모르쇠하고 "펭 폳~"이라고 되받았다. 너무 비싸!
쪼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국 닭은 한마리에 35,000낍이고 그 닭고기가 얼마나 라오 재래종에 비해 형편없는 닭인지 사설이 장난이 아니다. 대체로 사실이다. 태국의 CP라는 대규모 농업자본이 계사를 지어 2-3개월 만에 공장도로 길러내는 닭과 비교하면 라오 재래종 닭은 자연에서 1년을 기르니 차원이 다른 고기라는 이야기다. 그러데 그것을 먹으려면 1시간 반은 적어도 끓여야 한단다.
그렇다면 빨리 쪼이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라고 했다. 내가 전화 번호를 눌렀으나 신호음이 없다. 쪼이네도 신호음이 약한데 강건너까지 신호를 기대한 내가 어리석지...
돌아와서 주문을 하니 저녁이 늦어질 판이다. 그래도 쪼이가 수고한 것을 생각해서 주문을 해두고 두시간 뒤에 돌아올테니 똠까이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 근사한 저녁을 먹을 상상을 하면서 샤워를 하고 길었던 하루를 더듬으면서 거늑해졌다. 본전이 뭐야? 대박이지!!
어두운 마을 길을 걸어서 쪼이네 가는 길.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마트폰의 전등 기능을 이용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되고 강둑길의 낭떨어지로 구르면 안되니까 조심스레 걷다보니 꽁로초등학교까지 지나쳐 오고 말았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서 겨우 도착하니 레스토랑에 불을 밝혀서 멋지게 한상 차려놓고 쪼이와 그의 아내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 맛나다.
쪼이랑 둘이서 밥을 먹는데 나는 술을 피하고 있으므로 그냥 닭과 찹쌀밥만 먹고 있다. 쪼이는 라오라오를 마시고 있다. 아주 순도가 높은 전통식 소주이다. 영어로는 라오 위스키라고 번역들을 하지만. 50도가 넘어가는 것도 많이 있다. 쪼이가 보다 못해 맥주를 가져와서 나에게 부어준다. 공짜는 아니다 ㅎ. 그런데 매상을 올리려는 뻔한 수작도 아니다. 혼자 술을 먹고 있으니 흥도 안나고 보기도 안스러운 것 뿐이다.
나도 한잔을 가지고 홀짝 거리고 쪼이는 기분 좋게 마시고.
쪼이네 레스토랑에는 자랑하는 물건이 있다. 실은 나도 많이 들었던 라오스의 귀한 나무들이다. 마이깐늉. 이것은 어떻게 영어로 번역되는 나무인지도 모르고, 한자 표기도 못보았다. 중국인들이 정말 귀하게 여기고 비싸게 치는 나무이다.
라오스에서 귀하게 여기는 나무를 나는 대부분 알고 있는데 이제 마이깐늉까지 알게 되었다. 이제 황제목이라는 나무만 알면 되는데 이게 라오스어로 뭔지는 모른다. 중국인들이 역시 좋아하는 나무인데.
장미목은 라오어로 마이두. 편백인 히노끼는 마이롱렝. 인도나 아랍인들, 한국의 소수가 이용하는 침향은 마이께쎄나라고 한다. 루왕파방은 왕국의 전통이 있고 귀족 문화가 남아있어서 티크가 엄청나게 심어져있다. 라오어로는 마이싹이라고 한다. 대통령궁의 강변쪽에 심어진 볼품있게 생긴 오동나무 같은 것이 마이싹이다. 루왕파방 강변에 식민지 시절의 원형을 보호해 목조 건물들이 세월의 더깨만큼이나 향수를 자아내게 해주는 멋은 티크의 혜택이다. 그리고 꽁로 마을 주변으로는 마이냥이라는 나무가 나는데 고무와 비슷하게 나무의 진, 수지를 이용해서 배의 방수제로 쓰고 옷칠을 한 나무의 마감용으로도 쓰는 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멸종 위기의 나무다. 게다가 멀지 않은 곳에 침향도 난다고 쪼이가 알려준다.
마이깐늉을 이리 저리 들어보니 작아도 무식하게 무겁다. 열대의 나무니까.
습기에 조직이 풀어지면 안되고 열대의 미생물과 곤충들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니 열대의 나무는 밀도가 높고 무겁고 못을 쳐도 박히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나무가 많다. 한국에서 열대의 나무는 물기 때문에 허벅허벅할 것이라 상상을 했던 것을 생각하니 쓴웃음이 났다.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서 나무가 바보는 아니다.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찾아내는 생명체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조건에서 자기를 보호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