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힌분(탐꽁로) 답사 닷새째1.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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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힌분(탐꽁로) 답사 닷새째1. 6월 21일

꽁로 동굴 안쪽 마을 탐험에 나섰다. 

걸어야 할 길이 9킬로라고 하니 일찍이 아침을 양껏 먹어두고 첫배로 꽁로 동굴을 통과했다. 

미리 흥정을 해서 사공 중에 한사람을 가이드로 삼기로 했다. 50,000낍의 가이드 피.  

 

히우는 꽁로 토박이로 48살인데 8남매의 아버지다. 내빼지 않고 잘 붙어 사는 것이 대견하다. 그래도 여기는 생활 형편이 다른 곳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인민위원회가 관리하여 순번대로 사공일도 노늠몫이 있고 농토들이 있으니 먹을 것은 걱정없고. 남자에게 명분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씨양레에서 폰캄까지는 걸어본 길이라서 히우라는 가이드에게 폰캄 초등학교까지는 부족한 나무에 대한 지식을 채웠다. 

이게 무슨 나무지, 저건 뭐고...


라오어로 마이두라 하는 장미목도 여러번 확인을 해서 눈에 넣고자 했다. 마이캔이라고 하는 나무와 엄청 다른 나무이지만 헷갈린다. 잎도 다르고 나무도 달라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대번에 구별할 것인데...

길가에도 장미목이 세그루 나란히 서있고 드문 드문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장미목 자연림이 있었을 것이다. 귀하니 너도 나도 베어냈을 것이라서 지금은 개체수가 엄청난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벌목은 금지되어있지만 이웃나라들에서 탐을 내니 밀수가 대단히 많고 그것이 권력자들의 용돈이 되는 것으로 들었다. 여기는 현재도 통나무 상태로 1킬로에 5000낍으로 거래되고 있다. 쪼이는 장미목 통나무 의자가 40킬로 될 것이니 20만낍 정도로 계산하면 된단다. 


폰캄의 학교를 지나니 히우가 꾀를 부린다. 큰 길로 가지말고 왼쪽 숲으로 난 길이 나올 때마다 지름길이니 그리로 가잔다. 나는 꽁로 나딴 방향을 보면서 바른 손 쪽의 경치가 멋진 데가가 대로도 모르는데 소로로 다니는 것이 마뜩치 않아 계속 거부를 했다. 히우가 아이처럼 계속 보채니 어쩔 수 없이 내가 진다.  

나는 무조건 푸파는 봐야 한다고 그루박아 두었다. 푸파는 라오어로는 부처산이란 뜻인데 서양의 여행잡지에는 3 Head Rocks라고 표기되어있다. 인도차이나의 부처는 다면상이 적지 않고 3면상도 흔하다. 그러니 라오인들이 부처산이라고 하는 것에 어떤 무리도 없다. 서양인들이야 보이는 대로 기술을 했을 것이고. 한국 사람에게는 부처 바위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같다. 한국처럼 산이 흔한 곳에서 100미터 남짓인 봉우리를 산이라고 하기는 뭣하지 않은가?


지름길로 길을 줄이려는 히우가 저만치 앞서서 나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부처바위는 가까워지지만 길은 점점 험해졌다. 논둑길은 예사고 늪지대도 나오고 마침내 덤불숲과 물에 길이 막혀버렸다. 여섯번이나 여길 왔다는 히우가. 대책이 없다. 히우가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기엔 온 길이 멀어 너무 억울하니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본다.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화를 내기도 어렵다. 나는 가까워진 부처 바위의 멋진 뒷모습을 연신 자동으로 셔터를 누르면서 히우가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내가 길 욕심이 많고 히우는 빨리 쉴 욕심이 많고. 

히우가 길을 잃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길을 찾기는 했으나 이미 길에는 황토물이 가득한 도랑이 되어 흐르고 있다. 도랑을 넘어 개천 수준으로 불어난 울을 건너는데 외나무다리가 잠겨있어 밟으면 혹시 빠질까봐 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건너려다 미끄러지고 말았다. 생각보다 깊었고 개울 바닥은 진흙으로 미끄름틀 같이 삽시간에 내 다리의 중심을 무너트리다. 쫄딱 젖었는데 스마트폰과 메고 있던 핸드백은 반사적으로 개울 밖으로 보호했다. 사진이 백업이 되어있지 않아 흙탕물에 빠지면 대책이 없으니 결사적으로 보호할 수 밖에;;; 웃을 수 있는 장면인데 히우는 지은 죄가 있어서 웃지도 못하고 되돌아와 내 손을 잡아서 개천을 건너게 도와주었다. 


몸은 진흙탕이 되었고 한번 베린 몸이 되니 오히려 겁날 것이 없었다. 히우도 나도 논둑길이 아니라 그냥 논을 첨벙첨벙 걸어서 길다운 길을 찾고자 했다. 논을 가로지르다 보니 먼 데 마을이 보인다. 다시 논둑길을 이용한 미로찾기, 사다리타기 놀이 중이다. 그래도 가끔은 고맙게 마을 사람들이 쓰다남은 나무들을 논둑길에 평균대처럼 깔아두었다. 미끄러져서 빠지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 물길이 있으면 다리 구실도 해주고. 

천신만고 끝에 마을과 부처바위를 잇는 길을 발견했다. 부처 바위는 폭은 넓으나 측면은 얇았다. 다면상이 그렇듯이. 예각으로 하늘을 향해 곧추선 붓끝처럼 생겼다. 

 

거길 지나 전면으로 돌아드니 깍아지른 석벽이 펼쳐져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목책으로 막혀 정말 목책의 한켠에 만들어둔 진짜 사다리를 건너야 했다. 야생 물소의 탈출을 막기위한 것인데 물소만 못나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모든 탈 것들도 같이 차단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적도 드물고 바퀴달린 것도 보기 힘든데 목책으로 막아놓았으니 완벽한 베기가스 프리존이면서 배기가스 제로지대다. 


폰캄에서 나딴으로 가는. 대로를 이용했다면 부처바위는 전면에서 보게 되어있었을 것 같은데..

지난 것은 바로 추억이고 아름답게 분식하는 것이 사고의 습관이 아닌가? 지리산 가리산 한 부처바위를 한바퀴 돈 셈이 되었으니 제대로 탐험이 되긴 했다. 문제는 반복해서 다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길을 다닌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산전수전을 격은 것이니까. 전면의 바위 모습은 석회암의 멋없이 크기만한 덩어리가 아니고 날카로운 칼날 같은 석회암 기둥들을 수직으로 빼곡히 세워둔 것 같다. 한국에서 주상절리라 부르는 지대와 비슷한 모습이다. 기둥들 사이로 나무들이 뿌리를 박고서 자라고 있다. 세 머리3 head란 표현처럼 과연 석회암 덩어리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앙부분이 좌우를 구분하기 위해서 부러 한걸음 걸어나온 듯이 돌출되어있다.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히우는 무심하게 걷고 있다. 후각만 마비가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도 둔해지겠지... 나는 구경이고 그는 삶이다. 


부처 바위를 지나니 마을로 이어지는 논둑길이 나온다. 들 가운데에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집구조처럼 나무로 틀을 만들어 상공에서 파를 키우고 있다. 땅에 키우면 우기의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뿌리가 썩을 것이다. 파 한단를 사기 위해 동굴을 통과해서 1시간 반동안 픽업트럭을 타고 나힌까지 가서 장을 볼 수는 없을 테니까 양념으로 사용할 채소들을 소중하게 가꾸고 있는 것이다. 뿌리가 썩지 않게 배수가 상공에 텃밭을 만들어.   


폰캄에서 나딴으로 이어진 큰 길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비포장 황토길이다. 씨양쿠왕의 거친 돌길이 아니라 부드러운 황토길. 길 주변으로는 비가 만들어 놓은 도랑이 흐르고 먼데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 비로소 보인다. 석회와 황토가 잘 섞인 물에서 홀딱 벗고서. 놀라가 먼데서 우리가 나타나니 숲으로 달아난다. 녀석들이 수치심을 벌써 배웠다. 우리가 지나가니 다시 뛰어나와 물장구를 치고 있다. 

나딴 가까이에 대나무가 작은 숲을 이룬 곳에 외딴 집이 서있다. 대나무 숲 사이에 너른 들이 지평선처럼 펼쳐져 있는데 그 사이로 부처바위가 튜울립처럼 봉곳하게 올라와있다. 그런 곳에 마을에서 벗어나와 이곳에 터를 잡고 홀로 사는 가구가 있다. 현자일까, 왕따일까.... 


나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중국제 플라스틱 수륙양용전차로 삼아 끌고다니는 샌들을 벗어 한 손에 들고서 아예 맨발로 걷고있다. 히우는 논둑에선 맨발이더니 큰 길에선 슬리퍼를 신고. 

나딴 마을에 들어가는 길 옆의 논은 개간의 흔적도 남아있다. 작은 논에 아름드리 마이쁘아이 두 그루가 불에 그을린 흔적을 간직한 채 여전히 살아있음을 푸르싱싱한 잎사귀로 증거하고 있다.  


숲에는 벌목한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나무의 진을 빼고 있는 지 모른다. 씨양쿠왕에는 간이 대장간이 많다. 포탄을 주어다가 일용품을 만드느라고...

여기 남자들은 최소한 아마츄어 목수들이다. 습기를 피해 나무를 이용하여 허공에 방을 만들고, 들에 목책도 두르고. 가구도 장만해야 하니 준목수가 되는 것이 자연스런 삶의 길이다. 캄무완 주에는 값이 나가는 나무가 많다. 씨양쿠왕에선 소나무가 값이 싼 목재고 여기서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참나무 같은 목재들이 그렇다. 그들은 마이캔이라는 참나무 종류로 집을 짓는다. 모습은 비슷해도 사용되어지는 목재는 다르다. 자연에서 가져와야 하니까. 장미목으로 탁자와 의자를 만든 집도 맣다. 그 귀한 나무마저 그렇다 하여 대접을 하는 것도 없다. 반듯하게 상판을 만들어서 덮어 놓으면 탁자고 통나무를 적당한 간격으로 토막내서 탁자 주변으로 놓아두면 의자고. 기교 없이 소박하다. 

마을이라고 해도 점방하나 없는 곳이다. 앉아서 쉴 명분이 없다. 히우는 마을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 수작을 몇마디 건네면서 지나간다. 

마을을 나오니 멀리서 오토바이가 보였다. 농사용 경운기 한대 빼고 여태 본 바퀴가 달린 유일한 탈 것. 거리의 말썽꾼으로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오토바이지만 이마저도 반갑다. 부자가 새를 잡으러 엽총을 들고 사냥을 나와있었다.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다. 헛탕만 쳤나보다. 그들은 마을로 되돌아간다. 히우가 곧장 2킬로를 걸으면 씨양레라고 알려준다. 

남힌분이 보이고 강 주변으로 석림들이 보인다. 나루에는 소들이 모여있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바삐 흩어진다. 지루하게 기다렸을 히우의 동료 사공이 우리를 맞는다. 이제 피안의 트렉킹을 마치고 동굴을 통과하여 차안으로 돌아가야 한다. 

작은 물 한병을 히우와 나누어 마시고 산전수전 겪어 피곤하고 비스켓으로 히우와 나누면서 허기를 면한 길이지만 막상 돌아가려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예약없이 온 길이라 머물 곳도 없고 먹을 곳도 없는데...

배가 고픈 세사람은 꽁로 동굴을 한번의 해찰도 없이 꽁로 나루로 돌아왔다. 이렇게 꽁로 동굴 안마을 1차 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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