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깐 마이, 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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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깐 마이, 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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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을 먹었음이 분명해.

뭐에 홀렸는지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자마자 르 센 부티크에 예약을 해버렸으니까.

그것도 3박씩이나... 뜨악!!!

옆지기에게 환심을 사거나 누군가에게 작업 중이었다면 또 몰라.

혼자 배낭여행하는 독거노인 주제에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ㅠㅠ

그래도 개인전용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묵은 때 홀라당 벗겨낼 수 있어 좋았다는...

(그럴 줄 알았으면 이태리타월 준비해 갈걸. 아쉽당.)

테라스 소파에 누워 멍때리는 것도 나름 괜찮았고...

수영빤쭈가 없어 풀은 째려보는 것으로 패스~

 

 

오, 지름신이시여, 저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곧바로 저렴한 숙소 물색에 착수,

올드타운을 이 잡듯 뒤진 끝에 찾아낸 곳이 3만낍짜리 도미토리!

가격이 착한 것도 마음에 드는데...

감동이 쓰나미로 몰려드는 건 남녀 혼숙 도미토리라는 사실! (옴마, 멋지당).

나는 속으로 만쉐이 만쉐이 만만쉐이를 외쳤다는 거 아니야.

그런데 개뿔... 대재앙이 시작되고 있음을 누가 알았겠냐고.

푸씨에서 저녁노을을 감상하고 내려와 야시장에 들러 1만낍짜리 채소 뷔페로 저녁 해결.

망고 몇 개 사들고 쭐래쭐래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나름 뿌듯했어.

10만낍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해결했으니까.

숙소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떤 넘이 베드 하나를 떡 차지하고 누워 있는 거야.

여친하고 둘이서 두 달째 배낭여행 중이라는데 이름이 찰스라나 뭐라나.

그룹 아바의 털복숭이를 닮은 넘이

실실 쪼개면서 악수를 청하는데 괜히 기분이 나쁜 거 있지.

처음 보는 순간 쫌 쫄리더군.

밥 샙 알지, 딱 그 시키의 아우라가 풍기더라니까.

팔뚝이 내 허벅지보다 굵더라고.

그래도 대한남아의 기개가 있지.

너 몇 살이야?

32살.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너만한 자식이 있어, 따샤!

여유로운 척 껄껄 웃어주는 건 센스 아니겠어.

 

 

찰스가 맥주나 한 잔 하러 가자기에 여친하고 둘이 다녀오라고 내보냈어.

나는 다음날 루앙남타를 거쳐 므앙씽까지 가야 했거든.

대충 배낭을 정리하고 음악을 듣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오, 베이비... 어쩌구저쩌구 쏼라대는 소리에 눈을 떴어.

언제 돌아왔는지 찰스 넘이 구석 침대에서 여친과

원베드 투퍼슨을 연출하고 있는 거야.

허걱, 저건 뭔 시츄에이션?

그건 반칙이여... 배...배...배...신, 배...배...반이야!

도미토리의 기본은 1인 1베드잖오.

그러나 한편으론 찰스가 생긴 것 하고 다르게 감성적인 넘이라는 생각도 들더군.

여친 편히 잠자리에 들라고 팔베개 해주고

사랑의 밀어(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까지 속삭여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갸륵해?

나는 팔에 쥐가 나서 1분도 못 버틸걸.

암튼 거기까진 좋다 이거야.

조금 지나자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저것들이 깡술만 들이키고 왔나?

그러게 술 마실 땐 안주빨도 적당히 세워야 하는겨.

어지간히 배가 고팠나보네, 폭풍흡입 중인 걸 보니...

아그들아, 천천히 묵어. 물도 마셔가면서. 그러다 탈날라...

그런데 고양이 울음소리는 또 뭐지?

귀신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혹시 내가 귀곡산장에 와 있는 건가?

현실인지 꿈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침대 삐걱거리는 소리가 온 방안에 울려 퍼지는 거 있지.

순간 나는 바싹 시야시가 되고 말았어.

얼마 전 치앙라이에서 진도 7.0의 지진이 나서 화이트템플이 무너져 내렸잖아.

이런 게 지진인가...

내가 언제 지진을 경험해봤어야 말이지.

너무 후달려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더라고.

아, 박성팔이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렇게 가는구나.

혹시라도 땅속에 갇히게 되면 담배하고 물은 꼭 있어야 하는데...

오만 잡생각들로 쉣... 머릿속이 혼란스러운데 쉣...

찰스 여친은 쉣쉣쉣 감탄사를 연발하는 거 있지.

그때 나는 확실히 느꼈어.

코쟁이들은 우리와 종자가 다르다는 것을...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자연의 위대함을 표현할 줄 아는 저 종자들이야말로

인생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야.

 

 

다음날 아침, 뻑뻑한 눈을 비벼 뜨고 커피 한 잔 마시려고 로비로 나갔더니

찰스가 “좋은 아침!” 하면서 손을 흔드는 거야.

너가 나라면 잘 잤겠냐, 쌈시키야!

마음 같아선 달려가 원투 스트레이트 어퍼컷을 날리고 싶었지만...

어쩌겠어, 한 살이라도 더 처잡수신 내가 참아야지.

내 좌우명이 뭐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도망간다, 아니겠어.

주먹 대신 어색한 미소를 면상에 날려줬지. ㅠㅠ

7 Comments
해피줌마 2014.06.05 13:53  
박성팔씨!
넘 웃겨욧 ㅎ ㅎ ㅎ ㅎ
타이거지 2014.06.05 16:08  
저도 넘~웃겨욧! ㅋㅋㅋ.
윈디걸 2014.06.06 21:26  
ㅋㅋㅋㅋㅋㅋㅋㅋ유쾌한 여행기네요 ㅋㅋㅋ
탄허 2014.06.07 15:31  
ㅎㅎㅎ. 재밌습니다. 장기 여행 이신거 같은데..즐거이 보내세요. 무탈을 빕니다. 오타..폽(만나다는 동사). 폽깐마이! 짜이지엔. 아우피더젠. C U...
짤짤 2014.06.07 16:38  
탄허님,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여행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시나요?
탄허 2014.06.08 14:11  
그럴려고 합니다. 손님이 없어서 그렇지. ㅎㅎㅎ. 생업이 그렇고 직업은 라오스에서 NGO활동가가 되고자 해요.
에말이오 2014.06.11 13:46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ㅎㅎ
밥샙의 야간 파이팅의 묘사가 부족해 좀 아쉽지만 말입니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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