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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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하십시오

네버스탑맘 1 1810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날이나, 달러를 현지통화로 환전한 날은 가게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쵸코칩 쿠키는 그렇게 해서 우리 수중에 들어온 과자다. 영수증을 보니 3만낍(4200원)이라 평소 같았으면 깜짝 놀라 다른 과자, 하다못해 과일로라도 바꾸었을 텐데, 아이에게 모처럼 맛있는 과자를 주려고 그냥 나왔다. 근데 웬걸? 아몬드 빼빼로, 칸쵸, 고래밥에 길들여진 아이는 외국의 낯선 과자를 반기지 않는다. 아까운 마음에 크로스백에 넣어놓고 혼자서 하나 둘 먹었다.
신새벽 추위에 떨며, 조마 베이커리에 내려 분짤른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갈 때, 기나긴 스님들의 탁발행렬을 보았다. 스님보다 낮은 자세로 무릎 꿇고 경건하게 시주하는 모습도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 나이 어린 스님이 촐랑촐랑 종종 걸음을 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중장년의 스님은 앞서 있고 동승은 뒤처져 있는 걸 그 때는 몰랐다.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전 시주가 꼭 하고 싶었다. 찰밥을 파는 곳도 있다지만 손으로 어느 정도를 떼어내 드려야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아이라면 맨날 먹는 밥보다는 과자가 별미로 다가올 것만 같아 동자스님들에게 과자를 주잔 마음이 들었다.
무슨 소원을 빌까? 큰애 대학, 남편 직장, 부모님 건강, 작은 아이 공부, 언니와 친구들의 행복,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의 합격소식 나중엔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으면 하는 망상에 가까운 소원까지 휙휙 머리를 스쳐간다.
‘동자승에게 참 큰 것도 바란다!’ 내 하는 행동이 우스우면서도 한번 든 소원 생각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다. 결국 소원을 정하지 못한 나는 숙제를 못한 아이처럼 끙끙대다가 투어를 나갔다.
코끼리 타기, 팍우 동굴, 광시 폭포 방문 등 세 개를 묶어 파는 상품이라 팍우 동굴은 비추라고 해도 우리 둘만 빠질 수가 없었다. 나룻배를 타고 동굴에 당도했을 때, 거미줄이 쳐져 있는 수많은 불상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태국 가이드에 따르면 새해에 사람들이 불상을 가져다 놓고 소원을 비는데, 물이 붇고 난 뒤에는 와보지 못해 이렇게 된다고 했다.
그때였다. 나의 소원을 무엇으로 정해야할지를 분명히 깨달은 것은. 자기만의 소원을 빌고 있는 불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경내를 정갈하게 청소하고 불상을 반질반질 닦는 손길은 절에 살고 있는 스님들이지 일 년에 한번 찾아와 자신의 소원만 빌고 가는 신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지난번 사놓은 쵸코칩 쿠키를 가방에서 꺼내고, 가게에 가서 쵸코바를 넉넉히 사다놓고 다음날 스님의 탁발 행렬을 기다렸다.
주변은 아직 어둑어둑하고 푸시힐의 탑만 오색찬연하다. 라오스 사람들은 시주가 일상인 듯 평온하게 앉아 스님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옆에 쭈뼛쭈뼛 대며 앉았다. 멀리서 주황빛 가사 행렬이 들어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린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앞서 계신 분들은 제법 나이가 든 스님들이다. 그분들에게 과자라니, 게다가 손끝에 느껴지는 포장지 속의 부스러짐. 부끄러움으로 정신이 다 아득해서 소원이고 뭐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람을 가까이서 대할 때 훅 끼쳐오는 온기가 생경해 더욱 떨렸다. ‘제발 절에 돌아가셔서 봉지를 뜯고 난 뒤, 어떻게 이런 것을 주었냐고 하시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솟는다. 후반엔 그나마 진정이 되어 애초 준비했던 말을 되뇌일 수 있었다. 하마트면 잊을 뻔 했던 말. 날 위해 준비했다면 십중팔구 생각이 안 나 수선피우다 놓쳤을 텐데. 다행이도 번개처럼 소원이 스친다.
‘성불하십시오’
스님들께서 깨달은 바와 같이 어리석은 중생들도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깨우쳐 부디 모두다 성불할 수 있도록 이 밥, 이 과자를 드시고 기도해주십시오. 자신들 안에 들어있는 부처를 오래지 않아 발견할 수 있게.
1 Comments
snsqncj 2015.07.03 01:3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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