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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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오스

재스민 4 4903
 

지난 8월, 캄보디아로 가족 휴가를 갔다.

아이는 수강신청 때문에, 남편은 회사휴가 일정상 1주일을 같이 보내고 나만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나만의 휴가를 떠났다. 최근 죽기 전에 가보아야 할 여행지 1위로 뽑히기도 했으며,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문화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기도 하다.


  국립 박물관과 시앙통 사원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 도시를 감싸는 메콩강 줄기를 느끼며 늘 그렇듯이 완전히 긴장해제된 상태로 느릿느릿 걸어다니리라, 재래시장에서 사먹는 망고나 용과,  매일 열리는 야시장, 저렴한 마사지 등으로 소일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운명이 나를 이끄는 것일까. 늘 그렇듯이 재래시장의 좌판에서 한 접시에 만낍(우리 돈으로 1,500원 정도)하는 채식 부페를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낯익은 한글로 된 종이가 펄럭이고 있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한국사람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오스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보고 싶습니까?

   우리는 한국어를 정말 좋아합니다.

   똑 재미있는 한국어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빠사이라는 학교에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번호 : ○○○ ○○○○

‘똑’이라는 말을 누군가가 ‘꼭’으로 바꿔준 흔적 또한 재미있었다.


 순간 ‘이거다~’ 나는 쾌재를 불렀지만 전화를 걸러 숙소로 돌아가면서 언뜻 두려운 생각도 좀 들기도 했다. ‘가족들도 없고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라오스 땅에서 선뜻 누군가를 만나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위험한 일이면 어떡하지......’

하지만 두려움에 움츠리면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갈 일이 없다는 평소 지론에 따라전화를 했다. ‘위툰’이라는 젊은 라오스 청년이 전화를 받았고 바로 숙소 프런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학교 4학년인 위툰은 졸업을 앞두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스스로 공부하고 있었고, 어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가르칠 학생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사원에 사는 어린 스님들이라고 했다. 단,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라 몇 명의 학생이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내일 약속한 일이 있어서 루앙프라방에 없으니 숙소 옆의 사원 나무 밑으로 가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갔다가 학생들을 만나지 못하고 눈에 뜨이는 스님에게 오후 약속을 새로 정하여 전해주라고 했다. 다시 찾아간 나무 밑 벤치에는 한글 공책이 눈에 띄었고, 곧이어 수줍은 미소의 어린 스님이 다가왔다.

 ‘씨원’ 이라는 16세의 학생은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2학년 정도의 학생으로 2006년부터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스님으로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졸업하고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이 아이는 한국어를 배워서 자신의 삶의 기회를 다양하게 가지고 싶다는 소망과 열정으로 배운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데도 그 수준이 나를 놀라게 했다. 비록 회화는 서툴지만 공책에 쓰여진 받아쓰기와 문장 연습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교재를 가지고 오라 했더니 ‘라오스인들 위한 한국어 초급과정’ 이라는 책 권을 가져다 주었다. 이 책을 배우는 사람의 대부분은 라오스 스님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짓고 가르친 사람들은 라오스에 전도하러 온 개신교 목사님이었다. 시앙통 사원 옆에서 살게 된 어느날 스님들이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찾아온 인연으로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사연이 적혀있었다.

 위툰 선생의 말에 따르면 라오스 남자들은 평생 한 번 이상을 스님으로 살아야 하며, (아마 우리나라 청년들이 군대에 가는 것에 비하면 이해가 될 듯하다) 자기도 할아버지 돌아가신 때,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번 대학을 졸업하면서 자신을 위해 세 번째 머리를 깎고 단기 출가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불교와 출가는 그 자체가 인생의 중요한 의미인 것이다. 또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아예 절에서 키우고 교육시키는 아이들이 많은데 ‘씨원’도 그런 빈곤층의 아이인 것 같았다.


 교재는 한글 자모와 간단한 단어로 시작하여 상황별로 이야기를 만들어 문장 연습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고, 한국어 외에 영어와 라오스어로 되어 있어서 처음 접하는 한국 사람들도 쉽게 가르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단어 연습, 철자 교정, 문장 구성, 묻고 답하기, 발음 교정해 주기 등의 순서로 진행 하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고 그 동안 씨원이나 위툰 선생이 어떤 부분에서 고전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에’와 ‘에서’의 혼용 등)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서 영어가 유창한 편이어서 (아마 관광객들이 많아서 더 많은 기회에 노출되어서이기도 하고, 그들에게 외국어란 직업 선택을 폭을 넓힐 수 있는 절실한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짧은 나의 영어로도 의사 소통이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씨원은 내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내일도 와 줄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물었다. "Of course!" 
사실 다음날 꽝시 폭포를 가기 위해 여행사에 예약해 놓은 상황이었지만, 좋다고 말했다. 학교의 교실이 부족하여 초등학교는 오전반이고 중, 고등학교는 오후반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오전에만 시간이 된다고 했다. 또한 스님이다 보니 새벽 3시반에 일어나 5시면 거리에 딱밧(새벽 시주, 우리 나라의 탁발 수행)하러 나오기 때문에 어린 학생의 몸으로 얼마나 피곤하랴마는 원어민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잘 없기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 적극성에 감동했다.

 수업 중 한국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물어보았다.

“한국 음식 아는 것 있니?” 김치와 라면을 알고 있다고 했다.

“라면?” 그런데 내게 하나 남은 라면이 ‘사리곰탕’이었다. 스님인데.....

“스님이 담배도 피우는 것을 보았는데, 고기 먹어도 되니?”

 “네” 라오스 스님들은 술은 금기이지만, 단기 출가하는 경우도 많아서 비교적 자유분방하여 고기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 그렇다면 라면 가져다 줄게.”


 다음날, 숙제 검사와 단어 받아쓰기, 읽기 연습, 발음 교정, 상황에서의 패턴 응용.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올 텐데 다음날이 방콕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라 많은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헤어질 때 씨원은 내게 선물이라며 실로 매듭을 지워 만든 팔찌를 하나 주었다. 스님이라 안아줄 수도, 손은 내밀기도 그렇고 (스님에게 신체적 접촉은 금기이니까)

 “ Thank you, 네가 손목에 감아줄 수는 있니?”

조심조심 매듭을 매주는 손길에 울컥해지는 감정을 추스리며 안녕을 고했다.


 불가에서는 이 모든 것이 인연이라 했던가.

지나칠 수 있는 여행자가 귀한 인연을 만나 내가 애써 배운 것을 가르쳐도 보고,

앞으로 멀지 않은 은퇴 이후의 행보에 실마리를 찾게 해준 이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씨원을 비롯한 라오스의 젊은 청년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익혀 그들의 앞날에 큰 도약이 있기를 빌어본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한국어 교재

첫 제자 ‘씨원’스님과

4 Comments
라오스그린 2011.11.12 14:48  
안녕하세요? 정말 어려운 결정을 하셧네요,,,화이팅 입니다,,^^
혹시 루앙푸라방 연락처가 잇으신지요?
저는 방비엥에서 패밀리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는 권주영 입니다,
이번 일요일 루앙푸라방에 가지 싶네요,,시간이 되시면 한번 뵙고 싶습니다,
저는 푸시호텔옆 학교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분짜른게스트하우스라고 있습니다
한국분이 운영을 하는 게스트하우스이고 그쪽으로 갈겁니다,
저 전번은 020-2388-1844 입니다,,
2011.11.23 12:39  
저도 루앙푸라방에 가면 한국어 배우는 분들 만나고 싶네요...........
상운 2012.01.04 22:43  
이런말씀드리면 기분 안좋으실지도 모르겠는데요. 한국어 교사과정 몇급취득 하셨어요? 요즘 그거 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구요..
서울시민 2012.01.22 12:50  
루앙프라방 뿐 아니라 비엔티엔 대학 간호학과에서도 한글을 가르치는 모양입니다.
비엔티엔에서 맛사지 받았었는데 맛사지사가 간호학과를 다닌데요.
한국어 교재를 보여주면서 한글을 익히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한국어 교재 뒷쪽에 의료용어가 한글로 되있었어요. 정말 놀랍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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