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s 라오스 여행기(9)[짬빠싹]-왓 푸는 자연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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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쌀쌀한 5:00 아침부터 강에는 고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침도 거르고 몇 시간 동안 그물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강을 바라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 들었던 이곳을 정리하고 빨래도 걷고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내 옆방에 자던 아처가 짐을 정리하는 나를 보더니 “오늘 가나봐.?” 나는 대답했다.
“네. 11시에 가요.”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아처는
“여행 잘 하고 아름다운 라오스를 더 돌아봐 난 사진 찍으러 나가려고”
생각해보니 영어를 아예 못 하는 날 위해 아처는 내가 알아듣지 못 하는데도 계속 말 도 걸어주고 챙겨주기도 했다.(챙겨주는 것 중 자신이 시킨 팬케이크 주는 게 최고였음..ㅋㅋ)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잘 가요. 아처” 자전거에 올라 탄 아처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가져온 트라이포드(삼각대) 잘 써 ‘림’!”
8시에 떠나는 레게커플을 모두 같이 배웅을 하고 난 아직 3시간 여유시간이 남아 어느새 적응 된 맨발로 게스트하우스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팁과 손에게는 독도티셔츠를 선물로 주고 나머지 같이 지냈던 사람들에게는 한복 입은 인형 달린 손톱깎이를 주었더니 다들 얼굴에 놀라움과 좋아하는 걸 보니 역시 가져오는데 좀 무거웠지만 가져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팁이 정비한 보트로 올라가고 아직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사람들이 배웅을 해주며 손은 그 보트를 밀어주며 “이모또 폰 깐 마이” 나도 양손을 모으며 “폰 깐 마이^^”
(내가 떠나는 날 까지 이모또라고 부르는 손 남들처럼 ‘림’이라 부르면 편한데)
떠나기 싫지만 떠나야 하는 돈 뎃 점점 멀어지는 돈 뎃을 바라보는데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아처가 보인다.
사진 찍으러 간다던 아처는 강에서 라오스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야..” 어찌나 잘 놀던지 우리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15분이 걸려 ‘반 나까상’에 도착하고 팁은 내가 타야 할 미니버스를 가르쳐주고 서로 기분 좋게 인사하고 떠났다.
버스 회사는 ‘빡세 컴퍼니’로 선착장에서 바로 100~200m정면에 위치해서 장거리부터 단거리까지 많은 지역을 이동을 하는 곳으로 여행객은 물론 현지인들까지 버스를 타기위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 나까상’에서 큰 도로로 나가는 길은 짧은 거리지만 길이 성한 곳이 없어 빠져 나오기 좀 힘들었다.“폭격 맞은 것도 아닌데 웅덩이가 많네.”
그런 길을 라오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면서도 요리 저리 피해 다니며 창문으로 보이는 여행객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힐끔힐끔 쳐다본다.
중간에 10분을 쉬고 2시간만에 도착한 ‘짬빠싹’은 들어가려면 강을 건너야 하지만 섬은 아니다 섬은 따로 ‘짬빠싹’ 가는 강 위에 시판돈의 4천개의 섬처럼 하나가 있다.
말로만 듣던 페리(일반 보트를 1~2개 모아 그 위에 나무판자를 얹고 대형엔진을 추가해 차량을 포함하여 사람을 수송해주는 배)를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탔던 미니버스의 사람들은 다들 ‘빡세’가 목적지이고 나와 한 일본인 남자는 ‘짬빠싹’에서 내렸다.
라오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가이드북은 영어로 된 라오스편 론리 플래닛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야되나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살짝 어리버리 하기까지 했는데 같이 내린 일본인도 비슷해 보였다.
우리는 바로 인사를 나누고 그 일본인 남자의 이름은 ‘요시키’ 건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인데 나이는 나보다 2살 어리지만 한국나이로 따지면 나와 동갑이었다.
동갑이라는 단어 하나에 우리 둘이는 금방 친해졌다. 서로 영어도 그리 잘 하는 것도 아니여서 내가 먼저 어쭙잖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니 놀라면서도 좋아했다.
그래서 졸지에 여행 와서 일본인에게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앞에 있던 선착장으로가 페리위로 올라탔다.
페리에는 버스부터 시작해서 자가용 트럭 오토바이 사람들도 꽉 차있고 요금은 배가 출발하면 걷는데 5,000K이었다.
페리는 출발하고 요시키와 나는 메콩강 풍경에 서로 얼이 빠져 조용했다.
그 조용함을 깬 건 어느 한 일본인 여성이었다.
이때부터 요시키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그 일본인 여성과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도중에 나와 고도 인사를 하고 자세히 보니 애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있고(일본인이 아니었음)라오스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하고도 같이 있었다.
요시키는 여전히 그 여성과 계속 이야기 하고 나는 아직 다 못 본 주위 풍경을 보고 있었다.
‘짬빠싹’ 선착장이 보이고 다들 내릴 준비를 한다.
‘짬빠싹’까지 온 건 좋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 일때
아까 그 일본인 여성이 나와 요시키한테 자기는 지금 ‘왓 푸’를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 여성의 차량은 액티언 스포츠 모델과 비슷한 걸로 아마 나와 요시키가 탈 자리는 짐칸으로 예상했다.
오늘은 좀 쉬고 내일 ‘왓 푸’를 가고 싶었는데 요시키의 설득에 바로 넘어가 어느새 난 짐칸에서 밖으로 안 떨어지려고 잡을 수 있는 무엇을 꽉 잡고 있었다.
요시키는 가면서 연신 ‘굿 럭 굿 럭’를 외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웃겼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걸어가려고 생각을 했는데 꽤나 멀었으며 ‘왓 푸’까지도 은근히 멀었다.(차로 20분)
‘왓 푸’는 너무나 인상적이고 신비로웠다.
산에 있는 사원으로 산은 안개로 뒤 덮혀 멀리서 보면 듬성듬성 구름사이로 초록색 나무 들이 보이고 실제 날씨는 덥지만 그곳에 있으면 시원했다.
‘왓 푸’는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과 똑같은 걸로 그곳에 비하면 크지도 않고 정교하지도 않고 많이 소실되어 ‘왓 푸’는 자칫하면 초라해 보일 수 있었다.
(왓 푸 가는길 앞에는 친절한 커플과 요시키)
(왓 푸)
(중간쯤 올라와 바라본 아래)
(사원의 중심 꼭대기에 내려다본 아래)
볼거리는 없지만 사원 자체가 자연인듯 너무나 자연과 어울려 있었다.
난 그런 ‘왓 푸’가 너무 좋았다.
산에 있다 보니 사원의 중심으로 가는 길에 많은 계단이 있었고 평지에서부터 시작되는 난간을 따라 한 발짝씩 걷다보니 왜 이곳에 사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왓 푸’는 신성했다.
사원의 중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 멀리 ‘메콩강’과 ‘짬빠싹’이 한 눈에 다 보인다.
(사원의 중심)
(왓 푸)
(왓 푸)
(저 끝에는 메콩강까지 보인다.. 꼭대기에서)
사원 중심 옆에는 동굴 비슷한 것도 있고 암벽을 따라 작은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었고 주변에 옛 사원의 일부였을 거라 생각되는 장소들이 많이 보였다.
“꼭 내일 자전거를 타고 여기를 다시 와야겠어.. 너무 매력적이야...”
(여행이 끝난 후에도 ‘왓 푸’는 잊을 수 없었다.)
(다들 어디서 사진 찍을까 생각중.)
(요시키가 찍어준 사진)
(꼭대기의 구름은 와우.)
(왓 푸)
우리를 여기까지 차로 데려다 준 일본인 여성은 우리는 집에 가는데 어디를 가냐고 한다.
요시키가 ‘응빠솟 게스트하우스’를 간다고 말하니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하는 곳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호의를 보였다.
길을 묻고 물어 결국 우리를 ‘응빠솟 게스트하우스’에 데려다주고 짧은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요시키는 하루만 묵을 생각이었는데 웬만하면 같이 있으려고 했지만 ‘응빠솟’은 내 기대에 못 미쳐 요시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으러 떠났다.
10분정도 걸으니 짬빠싹 자체가 조용하지만 더 조용해 보이고 게스트하우스 가운데 정원이 있는 ‘캄푸이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짐을 풀고 씻고나니 어느새 어두워져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여행자 시설이 별로 없었고 식당이랑 게스트하우스들도 띄엄띄엄 있으며 길에는 가로등이 없고 불빛도 없어 어두웠다.
“이렇게 조용하다 못 해 동네자체가 고요하구나.”
“근데 오늘은 뭐 먹을까나 아. 행복한 고민이여”
‘돈뎃’에 이어 ‘짬빠싹’에서도 강변이 보이는 한국의 최고급 식당 못지 않은 곳에 가서 1~3천원 가격에 아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는데 내가 들어간 곳은 ‘동참파 레스토랑’ 사람이 많을 저녁시간이지만 비수기이고 ‘짬빠싹’은 대부분 여행객들이 하루나 아니면 당일치기로 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여행객을 보기 힘들었다.
‘랍 치킨’과 라오 비어를 먹고 불빛이 없는 밤거리를 걸었다. 불빛이 없어 어둡지만 24시간 밝은 서울의 거리보다 안전해보였기 때문에 꽤 멀리까지 걸어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사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20개가 넘는 방을 가진 게스트하우스에는 나를 포함해 다른 여행객 2명밖에 없어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만난 자신을 저널리스트라는 프랑스인과 인사를 하였다.
술이 취했나. 이상하게 그 프랑스인이 하는 영어가 다 이해가 되었는데 제법 나에게 혼자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왜 이때는 프랑스인이 말이 많았는지 이해가 안 되다 ‘짬빠싹’을 떠나는 날 그 이유를 알았다. 너무 조용하고 사람도 없어 특히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외로웠던 것이다.)
프랑스인(이름이 생각나지 않음..;;)과 오랜 이야기 끝에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자기 전 정원에 마련된 벤치에서 주인의 친절함으로 켜준 전등의 빛을 이용하여 사진을 정리하고 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