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김씨 부부의 라오스 莊周之夢 여행기 10(방콕,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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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기가 됩니다. 라오스가 아니라 방콕이지만 그냥 올려드립니다. 방콕은 사진이 별로 없습니다. 죄송.
6시쯤 차장 아저씨가 돌아다니면서 일어나라고 합니다. 좀더 잤으면 좋겠는데 일어나야 한다고 하네요. 마눌님이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역시 흔들리는 기차에서 잠을 푹 자기는 힘든가 봅니다. 특히 위쪽 침대칸은 창문도 없어 답답하기도 합니다. 자는 도중에 에어컨도 쌩쌩 돌아가는 바람에 조금 추웠나 봅니다. 다음부터는 3등칸 팬 침대석을 이용해야겠습니다.
침대칸은 또다시 일반 기차로 바뀝니다. 어제 사온 6밧짜리 빵으로 아침을 대신합니다. 태국의 기차길 주변은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주민들 민원으로 적어도 방음벽은 설치되어 있는데 방콕은 아직 그럴만한 재정은 없나 봅니다. 한국에도 그차길 옆에 바로 집들이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곳도 한번 가고 싶네요.
기차가 천천히 훨람퐁 역에 도착합니다. 조금씩 날이 밝아오니 기차길에 있는 수많은 쓰레기와 오물들이 눈에 띠는군요. 이 기차 화장실에서 물내리면 바로 기차길로 떨어지나 봅니다. 옛날 한국의 통일호, 비둘기호처럼.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 기차를 타고 창밖을 바로 보고 있는데 기차가 역에 서있음에도 어떤 여자분이 반대편 기차 화장실로 들어가시더니 기차 밑으로 수많은 물과 건더기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시던 그 여자분.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는 건지^^.
훨람퐁역에 도착하고 잠시 대합실 의자에 걸터 앉습니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다녀 온다음 선교사님께를 전화를 겁니다. 시간은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7시를 조금 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주무시고 계실테지만 겁도 없이 전화를 걸어 봅니다. 선교사님 정말 주무시다가 전화를 받으셨나 봅니다. 괜히 저희가 죄송해집니다. 그러나 이미 라오스 여행 때 얼굴에 철판을 깐지라 무작정 선교사님 집으로 직행합니다.
란캄행 43/1. 저희가 받아든 주소는 이게 다입니다. 전화를 받다가 이 주소만을 듣고 전화가 끊어집니다. 동전이 없는지라 용감한 울 마눌님 그냥 무작정 가보자고 합니다. 그것도 시내 버스가 있으면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합니다. 어차피 시간이 너무 일러서 선교사님 댁에 바로 가기가 미안하니까 천천히 버스를 타자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태사랑에서 가져온 버스 노선표에 란캄행과 훨람퐁이 동시에 적혀있는 노선버스는 없습니다.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훨람퐁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빨간색 택시를 잡아탑니다. 인상좋게 생긴 할아버지 운전사님 주소를 보여주니 OK하십니다. 곧바로 택시는 고속도로에 들어서고 고속도로비 40밧(기억이 잘 안나네요)을 내드립니다.
택시가 란캄행 거리에 도착합니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거리가 조용합니다. 내리자마자 선교사님께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이놈의 태국 공중전화 도대체 요금이 얼마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습니다. 10밧을 넣어도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네요. 아마도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서 그런 것 같지만 삐삐 소리가 나고 동전을 넣을 여유도 없이 끊어집니다. 그렇게 끊어지고 끊어지고 한 30밧을 넘게 공중전화에 넣어버린 듯 합니다.
선교사님 집은 란캄행 거리에서 운하를 건너면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라는 것을 울 부부 강철 같은 체력으로 또 걷습니다. 운하를 건너서 대학교 같은 고등학교를 지나 드디어 선교사님 임시 아파트에 도착합니다. 이른 아침 주소 하나 들고 찾아오니 선교사님이 많이 놀라십니다. 뭘 그런걸 배낭 여행족이 다 그런거죠 뭐. 아침을 선교사님 가족과 함께 간단히 먹고 예배를 드리고 주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태국이라는 곳은 정말 생활 수준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더러운 운하 주변에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국의 어느 소핑센터보다 크고 화려한 곳에서 쇼핑을 하고 좋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명암이 극명하지만요. 어디를 가나 빈부의 차이는 인류가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저희처럼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드신 분들도 많이 있고.
선교사님 생활을 조금 전해 듣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선교사가 되셨고 외국 생활의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열심히 선교활동 하고 계시는 것을 보니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이들도 학교 문제 때문에 걱정도 많으시고 하시지만 잘 해결되겠죠 뭐^^. 하여튼 세상에는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십니다.
짐을 선교사님 집에 맡기고 월텟까지 운하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지금까지 3번 방콕에 왔는데 수상버스는 많이 타 보았지만 운하버스는 처음 타봅니다. 마눌님이랑 아침에 운하를 건너면서 참 여기 하수도 아냐 했었는데 그 위를 배로 달린다고 하니 신기합니다. 이 운하버스가 방콕시민의 발이 된다니 그것도 신기할 뿐입니다. 정말 지구에는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우리나 서양인들이나 동남아시아 문화를 보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종종있습니다. 예전에 저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해보면서 차차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각각 다양한 환경 속에서 특정한 문화들이 생겨남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더러운 물은 환경에는 좋지 않지만 이들에게는 이게 환경을 이용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겠죠? 언젠가 경제수준이 나아지고 의식이 바뀐다면 다른 더 좋은 방법을 찾으면 되고요. 그냥 몇마디 주절거려 보았습니다.
월텟과 그 주변 쇼핑센터를 들락날락 해봅니다. 저희 수준에 가격이 그리 싸지 않더군요. 작년 싸판풋 야시장(맞나요?)에서 싼 옷들을 많이 본지라 마눌님 가격표를 보더니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물론 질이 다르기도 하겠지만 그 놈의 돈이 문제인것이지.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사진만 몇 장 찍고 타창으로 가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운하투어를 해봐야 할텐데.
(사진 : 월텟 앞에서 1)
(사진 : 월텟 앞에서 2. 뒤쪽 인형과 같은 포즈를)
(사진 : 월텟 앞에서 3)
BTS를 타고 싸판딱신까지 가서 수상버스를 탑니다. 이 길 작년에도 몇차레 왕복을 했더니 마눌님 이제는 길이 눈에 익다며 좋아합니다. 저희들 라오스 현지인화에 이어 태국 현지인화가 되어 가는 듯 합니다. 두 번의 여행에 왠지 동화되고 있다고 느끼다니 저희 부부는 역시 동남아 스타일인 듯 합니다.
타창에 도착합니다. 4시가 조금 넘은 관계로 재빨리 방야이행 선착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아뿔사 오늘은 주말인지라 첫 배가 5시 30분에 있다고 합니다. 4시 30분도 간당간당 하다고 하던데 5시 30분 출발이라니 태사랑 자료를 확실하게 보고 오지 않은 제 잘못으로 이번에 또다시 운하투어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달 전부터 준비했건만 여행때마다 태클을 거는 상황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지 못하고 옵니다.
그냥 왕궁으로 향합니다. 방콕에 오면서 왕궁엔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국왕님에 대한 예가 아닌가 싶어 오늘 가기로 했는데 가보니 4시 30분에 문닫는다고 못들어가게 합니다. 시간이 4시 35분이건만 죽어도 안된다고 합니다. 결국 왕궁도 보지 못합니다. 에라 그냥 왕궁앞 공원(여기가 싸남루앙 맞나요?) 그냥 자리펴고 앉아서 노점 파인애플을 뜯으면서 연이랑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구경합니다. 어떤때는 그냥 내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슴 뛸 때가 있습니다. 특히 마눌님과 같이 먼 이국땅에 앉아있는 이 기분 참 묘합니다. 연애할 때 저는 서울, 마눌님은 대전에 있어서 주말에만 데이트를 즐겼고 교제한지 1년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2년이 되는데도 애가 없어서 더욱 그런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연애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자랑입니다^^.
태사랑에서 뽑아온 자료 중에 나라야라는 쇼핑 코스가 있습니다. 어차피 유적 같은 거 관람을 못하니 그냥 나라야에 가서 가방이나 하나 사기로 합니다. 인천행 비행기가 11시이니 야시장도 들르지 못하기에 나라야에서 대충 떼우려는 저의 의도….는 없었지만 일단 한번 가봅니다.
버스를 타길 합니다. 그곳 경찰아저씨들께 물어보았는데 잘 모르시면서도 길 가던 사람들과 쉬는 운전기사 아저씨께 직접 물어보시고 월텟행 버스 번호와 타는 곳을 알려줍니다. 참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왕궁앞에서 월텟행 버스는 공원에서 왕궁을 보고 왼쪽 편에서 1번을 타면 됩니다. 버스를 타니 안내 아저씨 또 니뽄이냐고 물어봅니다. 니뽄 사람들이 버스 잘 안탈텐데 왜 우리만 보면 니뽄이냐구 물어보시는지. 코리아라고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다음 번에는 터기로 가야겠습니다. 터키는 동양인만 보면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본다는 데.
월텟 맞은 편에서 차가 섭니다. 나라야를 찾기 위해 한 30분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가 나라야인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나라야가 쇼핑센타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월텟, 게이손 같은 센터이름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센터 이름으로 찾으려고 돌아다니 도대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출력해온 자료를 자세히 보니 게이손 백화점 바로 옆에 있다고 해서 옆 건물 지하로 무작정 들어가 봅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나라야는 쇼핑센터 이름이 아니라 그냥 브랜드 이름이라는 것을요. 많은 분들이 많은 물건을 사셨다고 하기에 센터이름인줄 알고 그 뒤 내용은 하나도 읽지 않은 것입니다. 역시 편견이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마눌님 그곳에서 예쁘장한 가방 하나를 삽니다. 단돈 100밧이라고 하네요. 100밧이면 3,000원도 안되는 돈인데 아직 밧이 남아 있으니 더 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눌님 역시 그 가방 하나만 사고 밧은 다음 번 여행오면 또 쓰자고 합니다. 이 물건이 한국에 가면 만원정도 한다고 하니 마눌님 다음 번에 오면 여기서 300만원어치 물건사서 서울가서 인터넷으로 판다고 합니다. 그냥 웃지만 오~~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이만큼 사면 신고하고 와야 하나요?
다시 선교사님 댁으로 가기 위해서 운하버스에 오릅니다. 그런데 운하버스를 탈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태사랑의 운하버스 노선도를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냥 란캄행이라고만 들어서 도대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감이 안잡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부부가 누굽니까. 그냥 타고 란캄행을 외칩니다. 손짓발짓으로 란캄행에 내려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안내언니가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왜 고개를 갸우뚱 하는지 한국와서 알았습니다. 란캄행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정거장이 두개가 있더군요. 저희는 급한 마음에 란캄행29라는 곳에서 내렸습니다. 안내언니가 어쩐지 내리라고 얘기 안해준 이유가 두 정거장 더 가서 내려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 댁 soi 43/1입니다. 즉 훨씬 더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잘못 내렸어도 저희는 싱글벙글했습니다. 그냥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그러나 그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란캄행거리 란캄행 대학교의 대학로라고 보시면 되는데 한국의 신촌처럼 거리에 엄청난 노점과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만원 전철처럼 도대체 비집고 먼저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조금씩 시간은 지나가고 혹시 비행기 놓치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카오산과는 또 다른 풍경으로 여러가지 물건들 볼 것이 너무 많고 가격도 싸고 좋은데 제대로 구경을 못했습니다. 방콕에 가신다면 한번쯤 가셔도 좋을 곳입니다. 적어도 외국인보다는 현지인이 훨씬 많습니다.
어쩔수 없이 보도를 나와 도로 옆으로 걷습니다. 위험하긴 하지만 어쩔수 없이 곡예 걸음을 걷습니다. 가까스로 43/1 거리에 도착합니다. 너무 급히 걸어오다보니 수이 넘어갑니다. 마눌님은 힘든 것보다도 볼거리를 놓쳐 아쉬워 합니다. 차라리 시내에 안나가고 여기서 놀걸 그랬나 봅니다. 오면서 보니까 여러가지 벌레 튀김도 팔던데 눈 딱감고 한번 먹어봤어도 좋을 듯 했습니다. 저 벌레 엄청나게 싫어하지만 그냥 한번 도전이나 해볼걸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 택시에서 내린 자리에서 도저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오토바이 택시를 탑니다. 인당 20밧에 선교사님 댁에 도착합니다.
선교사님들과 또 한차례 수다를 떨고 샤워를 합니다. 그런데 죽음의 길 이후 조금씩 이상 징후를 보이던 제 몸이 드디어 고장이 납니다. 갑자기 위경련 증상이 납니다. 션교사님의 쌀죽에 조금 풀어지지만 위경련 다음날까지 저를 괴롭혔답니다. 가지고 온 배탈약을 먹고 창백해진 모습으로 선교사님께 작별을 고합니다. 떠나기전 간단하게 선교사님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합니다.
(사진 : 행복했던 선교사님과의 만남)
택시를 타고 쑤언나품으로 향합니다. 수속을 하고 일찍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여행일정에서 가장 짜고 싶지 않던 귀국 스케줄, 그 스케줄이 이제 2시간 앞으로 다가옵니다. 몸은 위경련으로 힘들지만 마눌님과 함께 했던 여행 영상이 머리속에 스며듭니다. 아쉽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면 꼭 로또를 일주일에 한번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눌님 핸드백 아이쇼핑을 합니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면세점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못산다면 그 사람은 평생 그 물건을 못산다고. 마눌님 제가 카드까지 사라고 주었는데 결국 사지 못합니다. 마눌님도 어쩔수 없는 소시민 아줌마인가 봅니다. 그냥 마음이 아퍼지네요.
탑승구가 2번이나 바뀝니다. 위는 아파 죽겠는데 두 번을 왔다갔다 합니다. 힘도 다 빠지고 내일부터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니 힘이 빠집니다. 제발 장자가 꾸었던 꿈의 나비가 나이기를 바랍니다. 여행다닌 제가 진짜 나이기를 바랍니다. 아쉬운 마음에 128M 메모리의 마지막 남은 사진 한장을 셀카로 찍어 봅니다.
(사진 :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셀카한장)
비행기에 오르고 타지 못한 승객을 기다리느라 20분을 지체하고 비행기가 쑤언나품을 이륙합니다. 비행기 내내 위경련으로 고생을 합니다. 정말 아픕니다. 배를 움켜잡고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듭니다. 아침 기내식도 못먹고 대신 마눌님을 줍니다. 마눌님 거뜬히 2개의 기내식을 헤치웁니다.
비행기가 인천에 착륙합니다. 드디어 여행이 끝나 버립니다. 마눌님이 묻습니다. 다음 남편투어 목적지는 어디냐고. 아직 결정을 안했다고 대답해줍니다. 1년을 힘들게 대출금과 싸운 마눌님께 살짝 고맙다고 얘기하고 김포공항행 버스에 몸을 싣습니다. 회사에 늦지않게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아픈 위와 졸리운 머리를 움켜잡고 일을 처리합니다. 결국 현실의 나는 나비가 아닌 나비 꿈을 꾼 제가 되버립니다.
라오스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저에게나 그들에게나 그냥 스쳐가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내가 많은 것들을 얻고 라오스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퐁살리 사람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저희 부부에게 선사해주었습니다.
지금 그냥 행복합니다. 같이 모든 것을 공유해줄 마눌님이 있고 아직도 어딘가 우리가 가보지 못한 나라와 지역이 동남아시아에 수없이 많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그들이 아직은 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일들도 수없이 많다는 사실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여행기를 모두 마칩니다. 글재주 없는 글과 심각하게 못찍은 사진을 보느라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중간중간 수많은 오타와 구어체적인 글에도 악플없이 참아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 번외로 저희가 모아온 표와 선물 사진들을 찍어서 조만간 올려보겠습니다. 기대는 안하시는 것 아실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