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 태국여행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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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6일 태국여행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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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늦잠을 푹 자려고 했는데 7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집에선 일찍 일어나기가 그렇게 어렵더니...
전날 사 두었던 과일과 요구르트로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치앙마이대학교에 산책을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침에 공원이나 학교를 산책하는 것만큼 상쾌한 일이 없지요.
지도에서 대충 위치를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30분쯤 걷자 초원이 넓게 펼쳐진 교정의 모습이 나옵니다.
북쪽에 있는 커다란 저수지를 구경하고 학교를 한 바퀴 돌다 보니
English Department라고 쓰인 건물 옆에 작은 노천카페가 있네요.
출출한데 잘됐다 싶어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탁자에 앉았습니다.

 

카페의 주변은 인쇄물을 꺼내놓고 과제를 하는 학생들과
커피 한잔을 마시며 수업 시작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분주합니다.
그들의 풋풋한 모습 속에서 대학 초년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5월의 언젠가 학생회관 라운지에서 친구들과 한없이 담소를 나누던 시절,
수업 도중 빠져 나와 잔디밭에서 놀던 그 시절 말입니다.
재잘대던 동기들의 웃음소리, 강의실에 모여 같이 숙제 하던 모습 등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학교가 무척 그리워졌고,
옛 시절의 낭만을 다시 손에 넣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해졌습니다.

 

낭만주의자란 본질적으로 과거지향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들수록 그리워지는 낭만이란,
과거에 존재했으면서도 미래에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경험이 아니던가요.

여행기를 쓰는 지금, 나는 또한 지난 9월의 치앙마이라는 낭만이 그립습니다.
추억이 영원하도록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만
그것은 결코 반복될 수 없기에 영원하지 않은 과거의 낭만이 되겠지요.

 


 

학교를 둘러본 후에는 성태우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없는 성태우라 기사 옆자리에 앉았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축구를 잘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내가 치앙마이는 참 예쁜 곳이라면서 사람들도 어쩜 그렇게 예쁘고 날씬하냐고 묻자
아마도 음식 때문인 것 같다고 하네요.
정말 여기는 거리에서 뚱뚱한 사람을 보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숙소에 들어가려고 열쇠를 찾는데 주머니가 허전합니다.
아까 성태우 안에서 동전을 꺼낼 때 열쇠도 함께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보증금을 물어줄 생각에 암담하기도 했고 평소 물건 잃어버린 적 없는 내가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여행지에서 사고를 냈다는 게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혹시 길에 떨어뜨리지 않았을까 싶어 막막한 기분으로 주변을 찾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차가 자꾸 빵빵거립니다. 앗! 아까 탔던 그 성태우입니다.
성태우 기사가 열쇠를 발견해서 수위실에 맡겨놓았다고 하는군요.
너무 갑작스럽고 고마워서 인사만 하고 수위실로 뛰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작은 사례조차 안 했던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열쇠를 찾자 갑자기 모든 태국 사람들이 친절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태우 기사들이 흥정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돈만 밝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한 사람의 작은 성의가 이렇게 전체의 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오후에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한국분들과 함께 도이수텝사원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400바트 정도면 30분 거리에 있는 도이수텝을 왕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시간도 아낄 겸 점심식사는 초밥집에서 도시락을 주문했는데
달리는 성태우 안에서 초밥을 집어먹는 기분이 생각보다 즐겁더군요.
말 그대로 김밥 싸서 봄소풍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불교신자가 아니라 그런지 도이수텝 자체는 그냥 그랬습니다.
한때는 종교 건축물을 열심히 감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교회나 사원보다는 산이나 바다 같은 자연이 더 좋습니다.

한 시간 정도 사원을 구경하고 나서 다시 성태우를 타고 돌아왔고
치앙마이 시내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일정상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방콕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습니다.

 


 

 

비행기로는 방콕까지 딱 한 시간이 걸립니다.
돈무앙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가는데.
퇴근시간에 걸려 교통체증이 무척 심합니다.
거기에 우기 아니랄까봐 장대 같은 빗줄기까지 쏟아지기 시작하네요.

버스에 탄 대부분은 이제 막 태국에 도착한 여행객들로 보였고,
계속 내리는 폭우 때문이지 다들 불안한 얼굴빛입니다.
나도 아직 숙소를 정해놓지 않은지라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미리 챙겨놓은 비옷 덕분에 몸이 젖을 걱정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람부뜨리에 있는 람푸하우스를 찾았습니다. 역시나 빈 방이 없다네요.
바로 옆에 있는 람부뜨리빌리지로 가니 싱글룸은 없고 트윈룸만 있다고 합니다.
비싼 감이 있지만 구질구질한 날씨에 더 숙소 찾아다닐 여력도 없어 그냥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습니다.

며칠간의 피로가 쌓인 데다,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니다 보니 몸이 녹초가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칼로리가 부족하다 싶어 저녁은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기로 결정,
결국 버거킹의 더블치즈버거세트로 해결했습니다.

햄버거의 엄청난 열량과 콜라에 든 카페인의 힘을 빌려,
나는 다시 한 번 여행의 의지를 다지고 침대에 눕습니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입니다.


2 Comments
에스메랄다 2006.10.06 23:25  
  1편에서 5편까지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2년 전에 다녀온 치앙마이 트레킹이 많이 생각키우네요. 같은 곳에서 제가 찍었던 사진과 비교해 너무 멋지게 찍으신 사진에 홀렸습니다. 도이 수텝에 세 번 씩이나 올랐으나 갈 때마다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던 도시 전경, 치앙마이 대학 저수지, 절의 일주문... 동일한 풍경을 다르게 찍은 모습을 보는 것이 예상치 못한 흥미를 자아냈습니다. 과거에 있었지만 미래에 올 수 없는 경험에 대한 그리움을 낭만이라 명명하셨으나 과거에 있었던 것을 다른 이의 프리즘을 통해 미래에 다시 조우하게 되는 기쁨도 거기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인용구를 보니 혹시 영문학을 공부한 분이 아닌가하여 답글 써 볼 생각을 했습니다. 워즈워드와 개츠비의 조합... 詩精과 사고의 힘이 단정하게 표현된 여행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군요. 감사드리고, 건승하십시오.
카플렛 2006.10.07 18:42  
  영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문학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 편입니다. 오히려 에스메랄다님의 덧글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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