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11. 위앙텅 Vieng Thong
(BGM) N.E.R.D. - Wonderful Place 음악끄려면 ESC
서울 살 때, 우리 동네에 외국인학교가 있었다. 저 학교 스쿨버스를 여기 쌈느아에서 만나다니...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감개가 무량하다. |
위앙텅이란 정식 행정명칭이 생긴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옛날이름인 므앙히암으로 부른다. 므앙히암이란 이름을 몰랐으면 차도 제대로 못 탈 뻔했다.
7시에 출발하리라던 성태우는 손님이 넷밖에 되지 않는데도 웬일인지 7시도 안 되어 출발을 서두른다. 그런데 방향이 위앙텅 쪽이 아니다. 어데로 가시오?
그럼 그렇지. 손님이 적어 수지가 안 맞을 것 같으니까, 화물로 부칠 오토바이를 실으러 가는 것이다. 운송료는 대당 5만 낍. 10대를 실으면 하루 경비를 제하고도 35$ 정도가 남는 장사다. 그러니 승객들 시간이 지체되는 것 쯤이야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거다.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지붕 위에 다섯 대, 짐칸에 다섯 대, 이렇게 총 열 대의 오토바이가 실렸다. 이렇게 시간을 끌고도 승객들한테 요금을 받을거냐는 나의 지청구에, 차장 역할의 운전수 마누라는 손님 모자라서 아예 안 가는 것보다는 늦게라도 가는 게 낫지 않냐고 간단히 응수한다. 그렇긴 하다. 깨갱.
열심히 오토바이를 싣고 있다. |
보통의 성태우보다 커서 오토바이를 10대나 싣고도 너끈히 산길을 오른다. |
병아리를 사서 가는 몽족 할머니, 소고기를 끊어 가는 군인 아저씨, 연신 코를 파고 가래를 뱉어내는 총각,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오늘의 승객이다. 가다 또 서서 기름을 넣고, 짧은 구간을 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떨구고 하면서, 므앙히암행 성태우는 천천히, 삐걱삐걱 산길을 오른다.
몽족 할머니는 아까 터미널에서 할머니 사는 동네 근처에 전하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편지를 전할 동네에 도착하자, 차는 서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길가의 애들한테 편지를 던져버린다. 겉봉에 적힌 주인에게 전하라고 한 마디 외치는 걸로 편지배달 끝. 간단하다.
우강을 따라 배를 타고 내려올 때도 이런 식이었다. 물건이며 편지를 아무나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면, 그 사람은 또 다른 모르는 사람한테 전달하고... 심지어는 나루터에 던져두고, 위에다 소리쳐서 가져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기, 전화도 없는 오지마을은 어떻게 살까 싶었는데, 의외로 구석구석 연결이 잘 되고 있다. 사람끼리 연결되어 있는 거다.
5시간 걸린다더니, 차는 7시간 반이나 지나서야 위앙텅에 도착한다. 내일 아침에도 이 차를 타고 쌈느아로 돌아가야 하는데, 또 이 짓을 하면 어쩌나 싶다.
'아저씨, 내일은 물소를 한 대여섯마리 실을 낍니꺼?'
물었더니,
'하이고마, 내일은 찌찌얌 한 마리도 안 실을 것이여!'
손사래를 친다. 내가 하루종일 구시렁구시렁 잔소리한 것도 지겨웠을 테지만, 아까 후아므앙 근처에서 경찰한테 딱 걸렸던 것이다. 원래 승객용으로 허가받은 성태우에 화물을 싣는 것은 불법이란다. 경찰도 단속이 주목적이 아니라, 그걸 빌미로 용돈을 좀 벌고 싶었던 것. 벌금(또는 뇌물)을 가지고 거의 30분 넘게 흥정을 했었다. 결국 10$에 합의를 보고 통과하긴 했는데, 내일 또 걸리면 얄짤없다는 것이다. 제발 내일은 편하게, 제시간에 좀 갑시다요.
3$에 비교적 깨끗한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손님은 달랑 나 혼자. 하루종일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었더니 허기가 진다. 시장통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간단하게 볶음밥을 시켜먹었는데, 오늘은 이게 제대로다. 기름 말고 다른 것도 많이 들었다. 이런 촌구석에서도 잘만 하는구만, 루앙파방의 그 황당한 식당은 뭐람.
내가 묵은 덕짬빠GH. 바로 옆에 군부대가 있어서 왠지 안전할 것 같았다. 2층의 톡 튀어나온 방에 묵었는데, 화장실은 공동으로 쓰는 구조였다. 다른 손님들이 있어도 재밌었을텐데. |
시장 바로 옆에 있는 숙사컨GH. 덕짬빠보다는 더 컸지만, 왠지 좀 어수선할 것 같았다. |
해지기 전에 동네구경하려고 어슬렁어슬렁 길을 나섰다. 조금 가다 빵빵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쌈느아에서 타고 온 성태우다. 온천 가는데 같이 가자길래 냉큼 올라탔다. 기사아저씨는 원래 여기가 고향인데, 쌈느아에 나가 사는 거라고 한다. 그래봤자, 한달이면 열흘 정도는 위앙텅에서 자니까 고향을 영 떠난 건 아니다.
1km 정도 가니 진짜 온천이 있다. 걸어서 가도 충분한 거리다. 근처에서부터 유황 냄새가 풍기는 게, 땅도 좀 후끈한 것 같다. 이렇게 노천온천을 보기는 처음이다. 바위 밑에서 꿀럭꿀럭 나오는 끓는 물은 손도 못 댈 정도로 뜨겁다. 계란을 넣으면 10분도 안 돼서 익는단다. 우어, 제대론데? 그렇잖아도 한쪽 옆에는 동네 처녀총각들이 계란을 먹으며 천렵을 하고 있다. 부럽구리.
Dr. Chris Flint라는 사람의 기부로 만들었다는 샤워시설은 좀 거슥하다. 보를 만들어 내려오는 온천물을 막고, 거기에다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은 파이프를 연결해서 그 구멍으로 물이 나오도록 만들었는데, 이끼낀 바닥이 미끄러워서 신경쓰느라 제대로 씻기가 어렵다. 물도 너무 뜨겁고. Bs. Vixay Kaoli가 탕을 하나 지어줄까보다. 뜨끈한 탕에 들어앉아서 청산이~ 하는 게 제격인데.
어두워질 때까지 정처없이 걸었다. 위앙텅은 조그만 동네. 온천 말고는 별로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꽤 널찍한 들과 그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내, 그리고 동네를 둘러싼 나즈막한 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나른한 분위기가 있었다.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절경보다도, 이런 평범하면서도 안온한 풍경이 사람 살기에는 더 좋은 거다.
나즈막한 동산에 올라앉은 집들. 평온해 보인다. |
조사 결과, 낮에 볶음밥을 먹었던 곳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임이 드러났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저녁도 여기다. 오늘 시장을 새로 만드는 문제를 놓고 무슨 회의가 있었다는데, 그 뒷풀이 장소가 또 이 식당이라, 혼자 먹는 여행자는 알아서 구석에 찌그러진다.
간만에 고기를 좀 먹어볼까 했는데, 저 회식팀이 시킨 음식에 쓰느라 재료가 다 떨어지고 없단다. 대신, 저 팀이 가져 온 사슴고기가 남았는데 그거라도 먹겠느냔다. 네, 뭐 그거라도.
튀긴 사슴고기에 맥주를 홀짝이며 소설책을 뒤적거리는 중에, 코쟁이 여행자가 하나 들어온다. 자리가 없어서 합석. 캐나다에서 온 J라는 녀석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북부를 일주하고 있다는데, 조금은 부럽다. 넝키아우에서의 끔찍했던 그 밤을 생각하면.
이 친구, 사슴고기는 질겁을 하고 못 먹겠단다. 맛만 좋구만. 한참을 고민해서 결정한 그의 저녁 메뉴는 삶은 계란 네 개에 두유 한 병. 야야, 입에 똥내 나겠다.
J의 저녁 주문을 도와주다 회식팀에게 내 라오말이 들렸나보다. 이미 불콰하게 취한 그들의 잔이 이쪽 테이블로 건네진다. 몇 잔 받아먹고 나니, 이내 자기들 사이에 앉으라는데... 아직 퐁살리에서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서 정중히 사양한다.
오늘은 술이 그다지 안 땡긴다. 끝나가는 여행이 아쉬운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