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4. 퐁살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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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다녀왔습니다] 4. 퐁살리 2

vixay 2 2999

(BGM) Tom Waits - Jockey Full of Bourbon 음악끄려면 ESC

간밤에 술을 열나게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좋은 탓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일찍 일어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새벽에 눈이 번쩍 떠졌다.
호텔에 빨래를 부탁하고-오돌라 하는 방값에 비해 티셔츠 하나에 2,000K 하는 빨래값은 좀 비싸게 느껴졌지만, 귀찮으니까 패쓰- 샤워를 한 다음, 커피 두 잔과 어제 사 둔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러다 또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열 시쯤 어제의 S군이 데리러 온 통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이 친구, 멀쩡한 얼굴을 해갖고선 은근히 지저분한 성격인가보다. 오토바이에 달려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등짝에서 냄새가 폴폴 난다. 어제 그렇게 연기가 자욱한 삥앤집에서 오래 놀고선 씻지도 않았는가배. -_-; 깨끗한 푸노이, 일단 보류.

도착한 곳은 공사가 한창인 S군의 집. 루앙파방에서 꼬셔왔다는 라오족 아내가 거하게 한 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무신 귀한 손님이라도 되는 듯, 이 북쪽에서 구하기 힘든 육고기도 삶아 놨다.(인구가 얼마 안되고, 현금이 별로 안 도는 오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좀체 큰 짐승을 잡는 일이 없다. 평소에 구할 수 있는 고기는 기껏해야 닭 정도이다.) 아... 황송해라. 이게 다 T군을 잘 사귀어 놓은 탓이렸다. 내 돌아가면 네놈을 더욱 사랑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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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파방서 온, S군의 아내. 라오스도 남남북녀다. 감동의 진수성찬
어제의 숙취로 좀체 잘 안 받던 술도 억지로 한두잔 들어가고 나니, 뭐 나중에는 술이 술을 먹는다고 잘도 넘어간다. 어익후, 이런 속도로 나가면 왕위앙 꼴 나는데... ㅜ..ㅜ 내일 배타고 내려갈거라 토할 장소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제대로 기대 잘 수도 없는 상태로 몇 시간을 시달릴 걸 생각하면 이제 술권하는 이 친구들이 고맙기보다는 살살 미워질라 한다.
내가 이런 배은망덕한 생각을 하건 말건, 주인의 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손은 돌아오는 잔을 받아 입으로 넙죽넙죽 잘도 갖다부었고, 오래지 않아 맥주 한 박스와 60도짜리 라오퐁살리 한 병이 동나 버렸다.

잔돌아오는 속도가 거의 광속에 가까와질 무렵,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철수를 선언했다. 호텔로 돌아가 좀 자겠다니까, 자기들도 바람을 쐬고 싶다고 같이 차밭 구경을 가자고 한다. 멋지게 골이 파인 하동의 녹차밭을 상상하고서는 대뜸 따라나섰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슨 똥배짱이었나 싶다. 다들 한국의 음주단속에 걸렸다면 면허취소뿐만 아니라 살인미수로 구속당할 수준으로 취해 있었는데, 그 오토바이 뒤에 나까지 해롱대며 달려갔으니... 죽지 않고 살아온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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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통에, 차밭 구경은 그저 그랬다. 그나마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니 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는데,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걸 싶었다. 차도 한 잔 안 줄거면서 차밭은 왜 데리고 갔을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총각인 외국손님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싶었던 것. 차밭은 퐁살리에서 핫사 방향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돌아오는 중간에 두 S군이 웬 남의 집에서 잠시 놀다 가자는 것이다. 가정집인줄로만 알았던 그 곳은 엄연한 술집이었고, 영업하는 아가씨들도 몇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결혼한 S군은 혼자 앉고, 아가씨는 두 명만 불러서 총각 둘 곁에 앉힌다. 아... 또 애매한 분위기. 아가씨들도 뭔 영업을 해 본 경험이나 있는지, 술도 한 잔 권할 줄 모르고 그냥 눈만 꿈뻑이며 앉아 있다. 역시 이런 거, 체질에 안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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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아들내미 술집 근처
졸려 죽겠다고 엄살을 부려서, 다섯 명이 앉은 상에서 맥주를 겨우 한 병만 먹고 일어섰다. 그럼 어디 딴 데 가서 한 잔 더 하자는 걸, 제발 조금만 재워 달라고 통사정을 해서 호텔로 돌아왔다. 어제 나 혼자 돌아 다닐때는 술집 그림자도 안 보이더니, 어디에 그렇게들 꼭꼭 숨어있었던 건지...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정신을 잠깐 놨는지, 깨보니 어느새 날은 저물어 있었고, 가게에 앉아 f퍼를 먹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다시 기억이 난다. 아 진짜, f퍼집까진 어떻게 간 거야. 두 S군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T군의 옛날 제자가 가세하고, 좀 있으니 경찰관이라는 또다른 S씨까지 합세해서 f퍼집은 또다시 술판으로 변해간다. 정신이 좀 들까 해서 땀막훙을 한 접시 엄청 맵게 해 달라 그랬는데, 이걸 먹고 나니 너무 매워서 이젠 그냥 미쳐버리고 싶다.
아아아, 퐁살리는 결코 만만한 동네가 아니다.
다섯 명이 어제의 삥앤꼬치 가게로 갔다가, 다시 경찰관 S씨의 집까지... 그렇게 뽕을 뽑으며 돌아다니다 도망치다시피 해서 겨우 호텔로 피신할 수 있었다. 대충 씻고 누웠더니 더 울렁거리는 것이 오히려 잠이 달아나는 것 같다. 결국 저 천안삼거리까지 내려간 퐁살리 특미들을 다 불러올려 확인하고서야 눈을 좀 붙일 수 있었다. 하이고 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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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S씨 가족. S씨는 푸노이족, 아내는 호족이다. 그럼 아들은? 결국 맛 갔다...
2 Comments
세박자 2006.11.13 12:15  
  지금 제가 꿈꾸고 있는 여행 코스 입니다... 넘 부럽습니다...
vixay 2006.11.14 15:25  
  지나고 나서야 웃고 얘기할 수 있지만, 저 날 진짜 후달렸습니다. 어디서건 라오라오는 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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