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루앙프라방의 비열한 거리
서울에서의 관성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알람이 없이도 어김없이 5시 무렵에 눈이 떠졌다. 서울 같으면 벌써부터 부산을 떨어야 겠지만 새삼 지금 내가 휴가중이라는 사실이 즐겁다. 5시 40분에 있을 딱밧(탁발행렬)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유군은 잘도 잔다. 매일 아침 발로 차가며 내가 깨워줬는데, 오늘은 5시 30분에 자신이 깨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5시 30분, 유군이 눈을 떴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어스녘한 밤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아랫층에 주인 아주머니가 옷을 곱게 차려 입고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세수도 않고 카메라를 챙겨 밖을 나가보니 몇 몇 마을분들이 옷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커다란 밥을 담은 소쿠리들을 하나씩 이고 자리를 잡으신다. 이윽고 각 사원에서 오렌지색 적삼을 입은 승려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내가 묵고 있는 골목은 약 200여명의 승려들이 탁발행렬을 나서고 여행자 거리쪽에는 500여명의 승려들의 행렬이 이어진단다. 머리가 하얀 노승부터 이제 갓 걸음마를 뗀 동자승들까지 길게 줄을 지어 발걸음을 옮기고 마을 사람들은 그 승려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밥을 시주하는 모습은 어떤 좋은 경치나 맛있는 음식을 대했을 때보다도 경건함으로 충만하였다. 이 행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라오스를 찾을 이유로 충분하리라.
짧은 20여분만에 거리를 가득 채웠던 승려들의 행렬이 사라지고, 유군은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나는 어제 돌지 못했던 숙소 근처의 나머지 사원들을 돌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노점 식당에서 보쳉이 아침을 먹다가 나를 보더니 같이 먹고 가라고 반갑게 손짓을 한다. 빈말이라도 고맙다.
왓 위쑨나랏(Wat Wisunnarat) 사원의 본당 건물은 1513년 건축한 것으로 현존하는 사원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본당과 맞은 편에 있는 반구형 건축물 '탓 빠툼'에는 부처님의 유골 중 일부가 들어가 있다고 하고 둥그런 모양 때문에 수박탑이라는 뜻인 '탓 막모 That Makmo'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한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보는 사람과 알지 못 하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느낌은 분명 서로 다를 것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사원은 문을 열었고, 몇 몇 군인인지 경찰인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라오스도 징병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갓 20대 초반의 군인이 비슷한 또래의 아가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수줍은 듯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 친해졌다기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모습, 그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져 있다. '사원의 연인', 그림이 그리 나쁘지 않다.
왓 위쑨나랏 한 켠의 문으로 들어갔더니 왓 아함(Wat Aham)이 나온다, 이 곳은 라오스 최고의 승려가 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사원이라고 하는데, 별다른 특징은 모르겠다. 예전 캄보디아 앙코르를 찾았을 때도 처음에는 그 멋스러움에 입을 다물지를 못 하다가, 나중에는 사원들 이름도 헷갈리고 그저 돌을 쌓아둔 성 정도로만 다가왔던 경험이 생각난다. 그래서 사원 순례는 여기서 끝.
오늘 일정은 오후에 있을 쾅씨폭포부터가 시작이니까, 시간도 많이 남고 해서 아침시장을 가보기로 한다. 이미 온 도시는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행렬로 꽉 들어차 있다.
야시장 뒷켠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보니 또 다른 시장이 펼쳐져 있다. 외국인은 하나도 없고 현지인들만이 가득 채워져 있다. 각종 야채며 고기들 그리고 시장 특유의 냄새들... 그래, 진정 내가 보고 싶었던 곳은 이런 곳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장과 그 냄새들... 그리 특이할 것은 없다지만, 어렸을 때 살았던 달동네 시장 한 켠이 이 곳과 똑같았다. 한 쪽에서는 생닭을 잡고, 또 한 쪽에서는 고기를 굽던... 행여 놓칠새라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어린 날. 시장을 따라 가는 날이면 우리 어머니는 꼭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쥐어 주며 밀가루 떡볶이가 아닌 쌀떡볶이를 사주셨더랬다. 100원짜리 동전을 꽉 쥐고 쌀떡볶이를 먹으며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날...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면서 쥐어주는 100원짜리 하나면 동네에서 대장이 되고 하루가 행복했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니 왜 우리 어머니는 그 날 떡볶이를 같이 드신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갑자기 눈물날라 카네...
재래시장 한 켠에는 제법 모양새를 갖춘 시장도 있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서울 강남에 갖다 놓아도 튈 법한 개성 강한 라오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이고, 왁자지껄하게 한껏 입담을 펼치는 상인들의 모습도 정겹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망고스틴, 란, 람부탄, 커스터드 애플을 샀는데, 가격들이 눈이 튀어나올 만큼 꽤나 비싸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부분의 과일들이 태국에서 수입해 오는 것들이라 비싸다고 한다. 어찌됐건 맛있게 벌레를 발라가며(?) 먹었다.
과일들로 아침을 대신하고 점심도 먹고 쾅씨폭포를 가기 위해 다시 여행자 거리로 나왔다. 점심으로는 스테이크를 시켰다. 점심을 스테이크로 해결하다니 이 아니 라오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커다란 등심 한 쪽이 나왔다. 된장에 상추만 있다면 정말 금상첨화일 거라고 침을 튀기며 유군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웬 꼬마 여자애가 와서 팔찌를 사라고 한다. 처음에는 가라고 했는데, 워낙 애들을 좋아하는 유군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꼬마와 하다가 하나쯤 사줘도 되겠다 싶어 얼마냐고 물으니 팔찌 하나에 3USD이란다. 말도 안돼... 깍고 깍고 또 깍아서 2개 사고 2USD에 합의를 봤는데, 5000kip 더 주면 안되겠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유군은 그 꼬마에게 콜라도 하나 주문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온 동네에 있는 악세사리 파는 아이들은 다 모여서 자기 팔찌를 사달라고 난리가 났다. 대략 난감한 사태. 안 사겠다고 해도 자꾸 흥정을 걸어오는데, 우리의 그 꼬마 입을 가리고 조용히 우리에게 이르기를 두 개에 1USD에 사면 된단다. 이렇게 맹랑할 수가... 자기는 1개에 1USD에 방금 우리에게 팔았으면서... 게다가, 자기에게 사주기로 한 콜라를 안 갖다 준다며 다시 한 번 주문해달라는 말도 잊지를 않는다. 게다가 병 콜라보다 조금 더 비싼 캔 콜라로(이유는?)... 비슷한 또래의 악세사리 파는 여자애를 자기 친구라고 소개하기에 콜라 나오면 나눠 먹으라고 했더니 또 입을 가리고 윙크까지 하며 싫다고 말하더니 콜라가 나오니 슬그머니 갖고 사라졌다가 어디에선가 다 마신 후에 나타났다. 친구라는 애는 졸지에 갖고 있던 박스를 놓치고 팔찌는 사주지도 않으니 입이 대발은 나와 있고.... 역시 이 거리는 어제에 이어 '여행자 거리'가 아니라 '비열한 거리(?)'가 맞았다.
한참을 팔찌 파는 아이들과 실랑이 하는 와중에 이탈리안 커플들이 보였다. 유군은 한 걸음에 뛰어가 가방 찾았다고 그들에게 알려주고 그 커플들도 제 일인 양 좋아한다. 자기네는 지금 택시를 잡아 쾅씨폭포를 3USD에 가는데 아직 사람이 다 차지 않아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는 중이란다. 우리는 이미 4USD에 여행사에서 예약해서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행사에서 예약 안 하고 이 커플들하고 함께 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고도 한 시간 뒤에도 사람을 다 모집 못 해서 여행자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쾅씨폭포에서도 이 커플을 못 본 걸로 미루어 봐서는 1USD 아끼려다 쾅씨를 놓친 게 아닌가 싶다.
루앙프라방에서 비포장도로를 달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쾅씨폭포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오리며 닭들, 소들이 길을 막아서는데 이런 모습이 이방인의 모습에는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윽고 트랙킹 코스를 시작하는데 곰농장이 나온다. 사람들은 마치 생전 처음 곰을 보는 것처럼 사진도 찍고 난리법썩을 떤 후에야, 지금 내가 왜 곰에 이렇게 열광하지? 다들 스스로 자문할 지경이었다. 나도 그 옆에 호랑이 사진은 열 장도 넘게 찍었다. 여기서 어제 만났던 한국인 커플(?)들을 또 만났다. 통성명도 안 했는데 같은 동포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갑다.
쾅씨폭포는 예전에는 상황버섯 같은 바위들이 폭포위에 걸쳐져 있어서 꽤나 장관이었다고 하는데, 몇 해전에 아쉽게도 폭우로 없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통 물보라를 일으키며 꽤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곳은 쾅씨폭포 자체보다는 공원처럼 잘 꾸며 놓아 바람을 쐬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 한 바탕 난리를 치더니만 기어이 유군은 도마뱀 한 마리를 생포했다.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건 다 좋아하는 유군. 단, 바퀴벌레는 무섭단다. 난 꼬리 잘린 도마뱀을 닭에게 던져주던 유군이 더 무섭다.
내려와서 음료수 한 잔에 젖은 땀을 말리다 함께 온 이스라엘 커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항상 그렇듯 대화의 시작은 "Are you Japanes?" 다. 한국에서 왔다니, 부산이 어떻냐고 물어본다. 부산은 한국 제2의 도시고 큰 항구가 있고, 유명한 해변이 2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다 위로 커다란 다리가 지나가서 야경이 멋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그랬더니 생뚱맞게도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 거 였단다.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더니만, 자기가 뉴욕에서 공부할 때 부산에서 온 한국남자가 있었단다. 부산에는 무엇이 유명하냐고 했더니만, "Nothing special" 이라는 답변이 돌아와 굉장히 실망했다는 말을 전한다. 외국에 나가면 나갈수록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만큼 각종 인프라가 잘 되어 있고, 또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곳이 흔치 않는데, 너무 흔한 익숙함과 우리네 특유의 겸손함 때문에 이런 오해를 불러오는 것 같다고 설명해주었다. 실제로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귀한 것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일본여행을 계획 중이라기에 다음에는 한국을 꼭 오라고 했다. 일본과 매우 비슷하고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더 나을 거라고 했더니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찌됐건 돈을 열심히 모아야 겨우 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저력있는 나라도 치켜세워주는데 몸둘 바를 모르겠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탓에 어쩌다가 플라스틱 의자를 부수고 말았는데, 이 이스라엘 처녀가 의자을 가르키며 하는 말,
"That's not made in Korea!!!"
여행자 거리로 돌아오니, 오전에 우리에게 팔찌를 팔았던 꼬마가 친구들이랑 장난치기 바쁘다, 서운하게 아는 체도 안 해주구... 대신 다른 아이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팔찌 사라고... 결국 2USD에 4개나 사고 말았다. 물론 입이 댓발이나 나온 꼬마에게도 2개를 사주고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역시나 사진 속에도 입이 예사롭지 않다...
저녁은 쾅씨에서 만난 한인 커플(?)과 야시장 한 켠에 있는 5,000kip 부페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인 커플들은 그 관계가 서로 모호해서 어떤 사이냐고 묻기 힘든 '묻지마 커플'들이 많아 조심스러운데, 이 분들은 여행 코스가 비슷해서 의기투합하게 되셨단다. 물론 더 묻지는 않았다.
5,000kip 부페는 대략 10여 가지 되는 음식들과 과일들을 딱 한 접시 만큼 담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절대 리필이 안 되므로 잘 쌓아서(?) 먹어야 한다. 음식맛은 의외로 괜찮다. 500원이 주는 기쁨!!! 루앙프라방 강력 추천 명소!!!
재래시장을 둘러 보고 과일과 갓 만든 두유 몇 가지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라오스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