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달의 도시 위앙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농카이에 도착하니 새벽 6시가 조금 안 됐지만 벌써 버스 정류장 앞에는 아침시장이 펼쳐져 있다. 간단히 요기라도 할 요량으로 시장 전체를 둘러봤는데, 밥을 먹기에 적당한 곳이 없어 결국 노상에서 돼지 등뼈로 고운 육수에 칼국수를 말아 먹었는데, 꽤나 먹을만 하다. 유군에게 돈 떨어지면 국수 먹일 거라고 했는데, 어제 저녁에도 터미널에서 국수 사 먹이고, 오늘 아침도 국수를 먹이니 본의 아니게 미안스러운데, 녀석 기특하게도 불평 한 번 없다.
뚝뚝 기사에게 국경까지 얼마냐니, 80밧을 달란다. 사전에 알기로는 40~50밧 선으로 알고 있는데, 유군과 나 30밧씩에 흥정하였다. 간혹 뚝뚝 기사들이 도착한 후에 흥정한 가격을 뒤집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총 얼마하는 식의 계산보다는 일행이 있을 경우에는 두당 얼마씩 가자고 하는 것이 나중의 피곤함을 덜 수 있는 노하우라면 노하우겠다.
이 뚝뚝 기사가 한참을 가더니만 어느 여행사 앞에 우리를 세워주더니 여기서 비자를 만들어야 한단다. 국경에서 만들어 주는 걸 뻔히 아는데 미쳤다고 수수료 떼고, 커미션 떼는 여기서 만들 필요가 없지, 당연히 '싫다, 국경에서 만들 거다' 하는 데도 여행사 직원과 함께 일장 연설이다. 영어 반, 태국어 반으로... 이미 비자 만들었다 라고 말하는 게 이런 피곤함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여행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뚝뚝 기사에게 당해서 얼마간의 돈을 떼인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원래 얼마인데 특별히 너에게만 할인해서 얼마에 주겠다는 식으로 꼬시니, 이 게 모르고 넘어가면 괜찮지만, 나중에 알고 나면 속 쓰린 일이 아니던가.
태국 국경에 도착해서 간단히 출국신고를 마치고 나니 우정의 다리 건너 라오스 국경까지 데려다 주는 미니버스가 대기 중이다(20밧), 명색이 국경을 오가는 차량인데 상당히 노후되었다. 때로는 삶의 경계를 넘어 생계를 찾아서 꿈도 함께 실어다주는 버스일텐데 조금 좋은 차량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났다. 숨 돌릴 틈도 없는 사이에 라오스 국경에 도착해서 비자를 발급받으려 하는데, 미국인 한 명이 이민국 직원과 잠깐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민국 창에 비자 요금 30US라고 붙여 놨는데 31USD를 내라고 한 것이 발단인 모양이다. 오전 8시 이전은 1USD를 더 받는다. 어느 나라나 이민국 직원들은 웃음이 없고 딱딱한 제복 만큼이나 권위주의 모습인데, 여기도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이다, 이미그레이션 폼이 떨어져서 달라고 하니, 뭐라 뭐라 하더니 창문을 닫고 아예 걸어 잠궈버린다. 세계 이민국 직원들 연합회에서 이러자고 규칙을 정해 놓은 것인 지... 나중에 오해가 풀려 그 이민국 직원이 멋적게 웃어 보이기며 이미그래이션 폼을 건내주기는 했지만, 여행자에게는 그 나라를 들어오고 나갈 때 처음 접하게 되는 현지인일텐데 잘 못한 것도 업이 주눅부터 들게 하니 아쉬운 점이 많다.
비자처리는 먼저 여행사를 통해 접수한 단체관광객들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고, 비자서류줄 때 건내준 비자피의 잔돈을 제대로 주지 않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의외로 잔돈을 잘 못 거슬러 주는 예를 여행 중에 자주 보았는데, 물론 상대방의 실수이겠지만 여행자들도 그 자리에서 꼭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겠다. 공식적으로 태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가는 데 1시간 남짓이 걸렸는데, 화장실은 라오스 땅쪽에 있어 이민국을 통과하고 말 것도 없이 라오스 출국쪽으로 들락달락 거렸는데 정복입은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입국신고를 마치고 라오스 입국세 10밧을 내고 한 걸음을 건너니 드디어 라오스 땅이다. 국경치고는 동네 공터같은 모습의 라오스와의 첫 대면이다. 교황이 외국에 가면 꼭 땅에 키스하던데... 황토길에 키스하기는... 이 건 아니잖아~ 이 건 아니잖아~
첫번 째 갈 곳은 우선 국경에서 가까운 씨앙쿠안(부다파크)이다, 버스 정류장 표지가 없지만 왠지 버스 정류장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14번 버스가 씨앙쿠안을 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14번 버스는 위앙짠을 들어가는 버스이고 씨앙쿠안은 위앙짠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버스들이 설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 둘을 내색은 않지만 무심하고 멀뚱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씨앙쿠안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면 버스 안의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제히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데 그 모습이 한 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정도 간다. 왠지 벌써부터 이 곳 사람들이 좋아지려고 한다. 씨앙쿠안은 생각보다는 국경에서 거리가 좀 되었다.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20밧을 내니 기사분이 몇 낍을 내어 준다.
도착하니 씨앙쿠안도 아침을 열고 있었다. 1인당 5,000kip 입장료에 카메라 2,000kip 캠코더는 3,000kip을 더 내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밧과 달러 밖에 없는 탓에 100밧을 내고 카메라는 한 대만 들고 들어갈 거라고 말하고 보니, 나도 유군도 모두 카메라 전원까지 켠 채 들고 있다. '눈치 채면 안 되는데...', 표 파는 청년이 한참을 계산하고 몇 kip을 건내준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1달러가 40밧이고, 10,000kip 정도 되니까 명색이 공대를 나왔는데 내가 다시 한 번 계산한다고 머리를 굴리는데, 단위가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아 아무리 해도 계산이 안 된다. 서로 멀뚱한 표정...
'아, 맞다! 공대생은 계산기가 없으면 계산이 안 되잖아!!!'
나중에 계산해 보니 카메라값은 빼고 입장료만 받았다.
씨앙쿠안은 1950년대에 루앙 분르아 쑤리랏이라는 조각가가 힌두와 불교의 원리를 형상화한 곳이라는 데 불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힌두교의 신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혹자는 씨앙쿠안을 가르켜 B급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를 불러 일으킬만한 곳이라고도 하던데, 그래 내 눈이 높지 않은 건 인정하긴 하지만 좋다, 그 것도 너무 좋다. 기묘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시멘트로 만든 석상들이 볼거리는 충분히 제공한다. 게다가 공원처럼 잘 조성해주어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너무 좋다. 공원 내 휴게실에 앉으있니 메콩강 건너 편으로 태국땅이 보인다. 유군은 어디서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가만 있자, 무슨 탑에 오르면 씨앙쿠안 전경이 보인다던데. 알고보니 맨 처음 입구에 있는 입을 벌리고 있는 석상이 탑에 오르는 문이었다. 안 올라갔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씨앙쿠안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다 좋았는데 탑에서 나오다 바짓가랭이가 터져 버렸다. 대략 난감인 상황.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잠시 벗고 꼬매야겠다.
씨앙쿠안 정문 반대편에서 14번 버스를 타고 한 참을 달려 드디어 라오스의 수도인 위앙짠 딸랏사오(아침시장)에 도착했다. 북적북적 거리는 모양세가 제법 분주하다. 이제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거리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난감하기 그지 없다. 조그마한 신작로에 키작은 건물들 사이로 여행자들이 분주히 돌아다닐 것을 예상했는데, 역시 한 나라의 수도답게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부서져 버렸다. 한참을 안내 책자를 들여다 보다 메콩강가의 오키드 GH로 정했다. 아직 물가에 익숙하지 않아 뚝뚝 비용도 많이 낸 것 같다.
오키드 GH에 다소 비싼 15USD(트윈, AC, 개인욕실)에 일박하기로 하고 내일 왕위안 가는 버스편(10:00, 5USD)도 함께 예약하고 점심을 하러 나갔다. 환전을 위해 숙소 옆의 BCEL을 찾았다. 보통 라오스에서는 1달러를 10,000kip으로 계산해 주는데 은행 환율은 그에 조금은 못 미치는 것 같다. 잔돈 300kip은 지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달라고 떼쓰지 않고 그냥 웃는다. 라오스에서는 달러, 밧, 낍을 적절히 운영하면 어느 정도 저렴한 여행도 가능하겠다 싶다. 역시 듣던 대로 100USD를 환전하니 엄청난 돈 뭉치가 되어 되돌아 온다. 인천공항에서 밧을 50만원 어치 환전한 것도 있다 보니 반지갑이 접어지지가 않아 장지갑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20,000kip 지폐를 주로 받았는데 10,000kip으로 환전한 사람들은 아마도 돈자루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할 듯 하다. 여하튼 지갑이 두둑하니 기분은 좋다, 10,000kip이 10,000원이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베트남식 쌈밥집이라는 '위앙싸완'이라는 곳을 가려는데, 안내책자에는 뚝뚝기사들도 다 알 만큼 유명하다고만 돼있지 어디에 있는 지 정확한 위치 설명이 없다. 뚝뚝기사들마다 물어보면 어디인지는 모르면서 일단 자기 뚝뚝을 타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어쩌란 말인지. 묻고 묻고 간 곳이 결국 숙소로 되돌아와 숙소 바로 맞은 편의 또 다른 베트남 음식점 P.V.O. 비록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여기도 맛있는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튀긴 스프링 롤을 갖은 야채와 더불어 쌈싸먹는 요리 강추!!!
달의 도시 위앙짠(Vientiane 영어로는 비엔티안으로 읽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네들의 품안으로 들어가 보자.
왓 파깨우, 다행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탓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사원의 지붕이 수려하고 화려해서 얼른 들어가서 봤으면 싶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이는 것 외에 특별히 더 좋은 것은 없어 보인다. 물론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원은 흥미로운 역사를 안고 있는데, 태국이나 캄보디아처럼 Wat(왓)은 사원을 뜻하고, 이 사원의 정식 명칭은 Phra Kaew인데, Ph를 '프라' 혹은 '파'로 발음이 된다. 프라로 발음했을 경우 우리에게도 에머랄드 사원으로 유명한 방콕의 왓 프라깨우와 동일한 이름이다. 예전에 에머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태국과의 전쟁에 지는 바람에 이 곳의 불상이 약탈되어 방콕으로 건너간 것이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다시 바라본 왓 파깨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파 깨우 Pha Kaew(=에메랄드 불상)
에메랄드 불상 Emerald Buddha은 실제로는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60cm에 불과하다.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 Chiang Rai, 치앙마이 Chiang Mai(=란나 왕조), 위앙짠(비엔티안) Vientiane을 거쳐 방콕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프라깨우가 발견된 것은 15세기 초반. 치앙라이에 있던 쩨디(탑)가 번개를 맞아 부서지면서 그 속에 보관되어 있던 불상이 발견된 것. 그 후 치앙라이에 치앙마이로 불상이 옮겨졌는데, 불상이 옮겨질 때마다 기적 같은 일들이 발생해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지게 된다. 이후 불상은 라오스로 옮겨져 위앙짠(비엔티안)에 보관된다. 당시에는 치앙라이와 치앙마이는 란나 왕국 Lanna Kingdom의 중심지였고, 위앙짠은 란쌍 왕조 Lane Xang Kingdom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모든 나라에서 불상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세력이 약해진 란쌍 왕조를 짜끄리 왕조(현재의 방콕을 수도로 정한 태국의 4번째 왕조)를 창시한 라마 1세가 1779년 침략해 프깨우를 방콕으로 가지고 오게 된다. 불상은 왕궁이 완성되기 전에 잠시 동안 왓 아룬 Wat Arun에 모셔져 있었다. 참고로 프라깨우를 보관하고 있던 모든 사원의 이름은 왓 프라깨우로 동일하며 지금도 치앙라이, 치앙마이, 위앙짠에 사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트래블 게릴라 참조.
다음은 왓 파깨우 바로 건너편의 왓 씨싸켓, 이 사원은 위앙짠에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태국에서 유학한 국왕의 영향으로 태국식으로 지어진 사원이다. 이 사원의 진수는 커다란 좌불상 외에 사원 내부 벽면에 조그마한 홈을 파놓고 그 안마다 불상들을 모셔 놓았는데 그 수가 6000개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사원 한 켠에는 전쟁으로 인해 목이 잘렸거나 파손된 불상들을 창고에 방치한 채로 쌓아 두었는데 예전의 영화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움과 씁쓸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왓 씨싸켓을 나와 빠뚜사이(독립기념탑)로 가는 길에 딸랏싸오에 잠시 들렸는데, 유군이 Ray bang 선글라스에 삘이 꼳혀 가격을 물어 보니 50USD부터 100USD를 넘는 것까지 있다. 이미테이션도 20USD가 넘어 진품의 진위여부를 떠나 흥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짜뚜짝 가면 더 좋은 게 있을 거야 하며 발길을 다시 빠뚜싸이로 옮겼다.
빠뚜=문, 싸이=승리 라는 뜻으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하는데, 그 외관이 프랑스의 개선문과 흡사하여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빠뚜싸이는 겉으로 보면 시멘트로 지은 건축물이지만 외벽에는 종교적인 장식물들을 꾸며놓아 나름대로 신경쓴 흔적들이 보인다. 입장료는 현지인 2,000kip 외국인은 3,000kip이기에 나는 외국인이고 유군을 가르키며 피부색이 같은 라오인이니 5,000kip만 받으라니, 웃으면서 라오말을 한 번 해보란다(유군은 농활을 다녀와 이미 피부색이 이 곳 사람들과 유사했다). You win!!! 빠뚜싸이 정상에 오르면 위앙짠 시내가 시원스레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빠뚜싸이를 나와 라오스를 상징하는 각종 책자를 장식하고 있는 탓 루앙으로 향한다. 빠뚜싸이 앞의 뚝뚝 기사들이 요금표를 보여주며, 기본이 두 당 40,000kip인데 숙소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둘이 50,000kip에 합의를 보았다. 탓 루앙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곳에 금빛을 띄며 이 탑을 세운 쎗타티랏 동상 뒤로 웅장하게 서 있었다. 이 탑의 양식은 크메르, 인도, 라오스 등의 양식이 혼합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그 모양 전체가 보이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더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탓 루앙 앞 광장에서 꼬마 둘이 다가와 '원달러'를 외치자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군이 지갑을 열려 한다. 유군에게 이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면 이 아이들은 영영 학교로 돌아가지 못 하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니 주지 말라고 일러준다. 유군이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가라고 외치는데 그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 하다. 녀석의 애들 사랑은 이번 여행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니 어느 덧 일몰 시간이 되었다. 숙소 건너편 메콩강가에는 벌써 노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히고 바베큐를 굽고 있다. 한 켠에 자리잡고, 라오스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그리워한다는 비어라오를 사이에 두고 유군과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90%는 여자 이야기였지만... 19도, 36도 모두 남자이긴 똑같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 일몰을 보는 대신 모기떼에게 피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누군가가 위앙짠은 왕위안을 가는 경유지 정도로 빨리 지나쳐야 할 곳이라고 했는데, 그냥 건너 뛰기에는 아쉬운, 볼 건 보고 넘어가야 하는 위앙짠이 아닌가 싶다.
유군은 숙소에서 키키얌(태국에서 찡쪽)을 잡는다고 수건 하나 들고 나가서는 쿵쾅쿵쾅 대다 숙소 내 사람들 다 깨우고 꼬리 잘린 성냥개비만한 놈을 한 마리 잡아 왔다. 있다가 사람들 자러 들어가면 또 잡으러 나갈 거란다.
"누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까올리'라고 하지 말고, '제패니스'라고 해!"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덧 손을 모으며 '싸바이디(안녕하세요)', '콥짜이(감사합니다)'하는 것이 낯설 지 않다. 내일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왕위안으로 떠난다.
뚝뚝 기사에게 국경까지 얼마냐니, 80밧을 달란다. 사전에 알기로는 40~50밧 선으로 알고 있는데, 유군과 나 30밧씩에 흥정하였다. 간혹 뚝뚝 기사들이 도착한 후에 흥정한 가격을 뒤집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총 얼마하는 식의 계산보다는 일행이 있을 경우에는 두당 얼마씩 가자고 하는 것이 나중의 피곤함을 덜 수 있는 노하우라면 노하우겠다.
이 뚝뚝 기사가 한참을 가더니만 어느 여행사 앞에 우리를 세워주더니 여기서 비자를 만들어야 한단다. 국경에서 만들어 주는 걸 뻔히 아는데 미쳤다고 수수료 떼고, 커미션 떼는 여기서 만들 필요가 없지, 당연히 '싫다, 국경에서 만들 거다' 하는 데도 여행사 직원과 함께 일장 연설이다. 영어 반, 태국어 반으로... 이미 비자 만들었다 라고 말하는 게 이런 피곤함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여행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뚝뚝 기사에게 당해서 얼마간의 돈을 떼인 여행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원래 얼마인데 특별히 너에게만 할인해서 얼마에 주겠다는 식으로 꼬시니, 이 게 모르고 넘어가면 괜찮지만, 나중에 알고 나면 속 쓰린 일이 아니던가.
태국 국경에 도착해서 간단히 출국신고를 마치고 나니 우정의 다리 건너 라오스 국경까지 데려다 주는 미니버스가 대기 중이다(20밧), 명색이 국경을 오가는 차량인데 상당히 노후되었다. 때로는 삶의 경계를 넘어 생계를 찾아서 꿈도 함께 실어다주는 버스일텐데 조금 좋은 차량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났다. 숨 돌릴 틈도 없는 사이에 라오스 국경에 도착해서 비자를 발급받으려 하는데, 미국인 한 명이 이민국 직원과 잠깐의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민국 창에 비자 요금 30US라고 붙여 놨는데 31USD를 내라고 한 것이 발단인 모양이다. 오전 8시 이전은 1USD를 더 받는다. 어느 나라나 이민국 직원들은 웃음이 없고 딱딱한 제복 만큼이나 권위주의 모습인데, 여기도 상당히 고압적인 자세이다, 이미그레이션 폼이 떨어져서 달라고 하니, 뭐라 뭐라 하더니 창문을 닫고 아예 걸어 잠궈버린다. 세계 이민국 직원들 연합회에서 이러자고 규칙을 정해 놓은 것인 지... 나중에 오해가 풀려 그 이민국 직원이 멋적게 웃어 보이기며 이미그래이션 폼을 건내주기는 했지만, 여행자에게는 그 나라를 들어오고 나갈 때 처음 접하게 되는 현지인일텐데 잘 못한 것도 업이 주눅부터 들게 하니 아쉬운 점이 많다.
비자처리는 먼저 여행사를 통해 접수한 단체관광객들 탓에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고, 비자서류줄 때 건내준 비자피의 잔돈을 제대로 주지 않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의외로 잔돈을 잘 못 거슬러 주는 예를 여행 중에 자주 보았는데, 물론 상대방의 실수이겠지만 여행자들도 그 자리에서 꼭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겠다. 공식적으로 태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가는 데 1시간 남짓이 걸렸는데, 화장실은 라오스 땅쪽에 있어 이민국을 통과하고 말 것도 없이 라오스 출국쪽으로 들락달락 거렸는데 정복입은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입국신고를 마치고 라오스 입국세 10밧을 내고 한 걸음을 건너니 드디어 라오스 땅이다. 국경치고는 동네 공터같은 모습의 라오스와의 첫 대면이다. 교황이 외국에 가면 꼭 땅에 키스하던데... 황토길에 키스하기는... 이 건 아니잖아~ 이 건 아니잖아~
첫번 째 갈 곳은 우선 국경에서 가까운 씨앙쿠안(부다파크)이다, 버스 정류장 표지가 없지만 왠지 버스 정류장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 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14번 버스가 씨앙쿠안을 가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14번 버스는 위앙짠을 들어가는 버스이고 씨앙쿠안은 위앙짠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버스들이 설 때마다 사람들이 우리 둘을 내색은 않지만 무심하고 멀뚱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씨앙쿠안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면 버스 안의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일제히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가로 젓는데 그 모습이 한 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정도 간다. 왠지 벌써부터 이 곳 사람들이 좋아지려고 한다. 씨앙쿠안은 생각보다는 국경에서 거리가 좀 되었다.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 20밧을 내니 기사분이 몇 낍을 내어 준다.
도착하니 씨앙쿠안도 아침을 열고 있었다. 1인당 5,000kip 입장료에 카메라 2,000kip 캠코더는 3,000kip을 더 내야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이 밧과 달러 밖에 없는 탓에 100밧을 내고 카메라는 한 대만 들고 들어갈 거라고 말하고 보니, 나도 유군도 모두 카메라 전원까지 켠 채 들고 있다. '눈치 채면 안 되는데...', 표 파는 청년이 한참을 계산하고 몇 kip을 건내준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1달러가 40밧이고, 10,000kip 정도 되니까 명색이 공대를 나왔는데 내가 다시 한 번 계산한다고 머리를 굴리는데, 단위가 생소하고 익숙하지 않아 아무리 해도 계산이 안 된다. 서로 멀뚱한 표정...
'아, 맞다! 공대생은 계산기가 없으면 계산이 안 되잖아!!!'
나중에 계산해 보니 카메라값은 빼고 입장료만 받았다.
씨앙쿠안은 1950년대에 루앙 분르아 쑤리랏이라는 조각가가 힌두와 불교의 원리를 형상화한 곳이라는 데 불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힌두교의 신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혹자는 씨앙쿠안을 가르켜 B급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흥미를 불러 일으킬만한 곳이라고도 하던데, 그래 내 눈이 높지 않은 건 인정하긴 하지만 좋다, 그 것도 너무 좋다. 기묘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시멘트로 만든 석상들이 볼거리는 충분히 제공한다. 게다가 공원처럼 잘 조성해주어서 가볍게 산책을 하기에도 너무 좋다. 공원 내 휴게실에 앉으있니 메콩강 건너 편으로 태국땅이 보인다. 유군은 어디서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 왔다.
가만 있자, 무슨 탑에 오르면 씨앙쿠안 전경이 보인다던데. 알고보니 맨 처음 입구에 있는 입을 벌리고 있는 석상이 탑에 오르는 문이었다. 안 올라갔더라면 후회할 뻔 했다. 씨앙쿠안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다 좋았는데 탑에서 나오다 바짓가랭이가 터져 버렸다. 대략 난감인 상황.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잠시 벗고 꼬매야겠다.
씨앙쿠안 정문 반대편에서 14번 버스를 타고 한 참을 달려 드디어 라오스의 수도인 위앙짠 딸랏사오(아침시장)에 도착했다. 북적북적 거리는 모양세가 제법 분주하다. 이제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거리감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난감하기 그지 없다. 조그마한 신작로에 키작은 건물들 사이로 여행자들이 분주히 돌아다닐 것을 예상했는데, 역시 한 나라의 수도답게 나의 상상은 여지없이 부서져 버렸다. 한참을 안내 책자를 들여다 보다 메콩강가의 오키드 GH로 정했다. 아직 물가에 익숙하지 않아 뚝뚝 비용도 많이 낸 것 같다.
오키드 GH에 다소 비싼 15USD(트윈, AC, 개인욕실)에 일박하기로 하고 내일 왕위안 가는 버스편(10:00, 5USD)도 함께 예약하고 점심을 하러 나갔다. 환전을 위해 숙소 옆의 BCEL을 찾았다. 보통 라오스에서는 1달러를 10,000kip으로 계산해 주는데 은행 환율은 그에 조금은 못 미치는 것 같다. 잔돈 300kip은 지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달라고 떼쓰지 않고 그냥 웃는다. 라오스에서는 달러, 밧, 낍을 적절히 운영하면 어느 정도 저렴한 여행도 가능하겠다 싶다. 역시 듣던 대로 100USD를 환전하니 엄청난 돈 뭉치가 되어 되돌아 온다. 인천공항에서 밧을 50만원 어치 환전한 것도 있다 보니 반지갑이 접어지지가 않아 장지갑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20,000kip 지폐를 주로 받았는데 10,000kip으로 환전한 사람들은 아마도 돈자루를 이고 지고 다녀야 할 듯 하다. 여하튼 지갑이 두둑하니 기분은 좋다, 10,000kip이 10,000원이었으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베트남식 쌈밥집이라는 '위앙싸완'이라는 곳을 가려는데, 안내책자에는 뚝뚝기사들도 다 알 만큼 유명하다고만 돼있지 어디에 있는 지 정확한 위치 설명이 없다. 뚝뚝기사들마다 물어보면 어디인지는 모르면서 일단 자기 뚝뚝을 타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어쩌란 말인지. 묻고 묻고 간 곳이 결국 숙소로 되돌아와 숙소 바로 맞은 편의 또 다른 베트남 음식점 P.V.O. 비록 원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여기도 맛있는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튀긴 스프링 롤을 갖은 야채와 더불어 쌈싸먹는 요리 강추!!!
달의 도시 위앙짠(Vientiane 영어로는 비엔티안으로 읽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네들의 품안으로 들어가 보자.
왓 파깨우, 다행히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탓에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멀리서도 사원의 지붕이 수려하고 화려해서 얼른 들어가서 봤으면 싶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이는 것 외에 특별히 더 좋은 것은 없어 보인다. 물론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원은 흥미로운 역사를 안고 있는데, 태국이나 캄보디아처럼 Wat(왓)은 사원을 뜻하고, 이 사원의 정식 명칭은 Phra Kaew인데, Ph를 '프라' 혹은 '파'로 발음이 된다. 프라로 발음했을 경우 우리에게도 에머랄드 사원으로 유명한 방콕의 왓 프라깨우와 동일한 이름이다. 예전에 에머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었는데, 태국과의 전쟁에 지는 바람에 이 곳의 불상이 약탈되어 방콕으로 건너간 것이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다시 바라본 왓 파깨우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파 깨우 Pha Kaew(=에메랄드 불상)
에메랄드 불상 Emerald Buddha은 실제로는 옥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60cm에 불과하다. 스리랑카에서 만들어져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 Chiang Rai, 치앙마이 Chiang Mai(=란나 왕조), 위앙짠(비엔티안) Vientiane을 거쳐 방콕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프라깨우가 발견된 것은 15세기 초반. 치앙라이에 있던 쩨디(탑)가 번개를 맞아 부서지면서 그 속에 보관되어 있던 불상이 발견된 것. 그 후 치앙라이에 치앙마이로 불상이 옮겨졌는데, 불상이 옮겨질 때마다 기적 같은 일들이 발생해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지게 된다. 이후 불상은 라오스로 옮겨져 위앙짠(비엔티안)에 보관된다. 당시에는 치앙라이와 치앙마이는 란나 왕국 Lanna Kingdom의 중심지였고, 위앙짠은 란쌍 왕조 Lane Xang Kingdom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으로 모든 나라에서 불상을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세력이 약해진 란쌍 왕조를 짜끄리 왕조(현재의 방콕을 수도로 정한 태국의 4번째 왕조)를 창시한 라마 1세가 1779년 침략해 프깨우를 방콕으로 가지고 오게 된다. 불상은 왕궁이 완성되기 전에 잠시 동안 왓 아룬 Wat Arun에 모셔져 있었다. 참고로 프라깨우를 보관하고 있던 모든 사원의 이름은 왓 프라깨우로 동일하며 지금도 치앙라이, 치앙마이, 위앙짠에 사원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트래블 게릴라 참조.
다음은 왓 파깨우 바로 건너편의 왓 씨싸켓, 이 사원은 위앙짠에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사원 중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태국에서 유학한 국왕의 영향으로 태국식으로 지어진 사원이다. 이 사원의 진수는 커다란 좌불상 외에 사원 내부 벽면에 조그마한 홈을 파놓고 그 안마다 불상들을 모셔 놓았는데 그 수가 6000개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사원 한 켠에는 전쟁으로 인해 목이 잘렸거나 파손된 불상들을 창고에 방치한 채로 쌓아 두었는데 예전의 영화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움과 씁쓸함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왓 씨싸켓을 나와 빠뚜사이(독립기념탑)로 가는 길에 딸랏싸오에 잠시 들렸는데, 유군이 Ray bang 선글라스에 삘이 꼳혀 가격을 물어 보니 50USD부터 100USD를 넘는 것까지 있다. 이미테이션도 20USD가 넘어 진품의 진위여부를 떠나 흥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짜뚜짝 가면 더 좋은 게 있을 거야 하며 발길을 다시 빠뚜싸이로 옮겼다.
빠뚜=문, 싸이=승리 라는 뜻으로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 하는데, 그 외관이 프랑스의 개선문과 흡사하여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빠뚜싸이는 겉으로 보면 시멘트로 지은 건축물이지만 외벽에는 종교적인 장식물들을 꾸며놓아 나름대로 신경쓴 흔적들이 보인다. 입장료는 현지인 2,000kip 외국인은 3,000kip이기에 나는 외국인이고 유군을 가르키며 피부색이 같은 라오인이니 5,000kip만 받으라니, 웃으면서 라오말을 한 번 해보란다(유군은 농활을 다녀와 이미 피부색이 이 곳 사람들과 유사했다). You win!!! 빠뚜싸이 정상에 오르면 위앙짠 시내가 시원스레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빠뚜싸이를 나와 라오스를 상징하는 각종 책자를 장식하고 있는 탓 루앙으로 향한다. 빠뚜싸이 앞의 뚝뚝 기사들이 요금표를 보여주며, 기본이 두 당 40,000kip인데 숙소까지 데려다 주는 조건으로 둘이 50,000kip에 합의를 보았다. 탓 루앙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곳에 금빛을 띄며 이 탑을 세운 쎗타티랏 동상 뒤로 웅장하게 서 있었다. 이 탑의 양식은 크메르, 인도, 라오스 등의 양식이 혼합이 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그 모양 전체가 보이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더 더욱 신비감을 자아낸다.
탓 루앙 앞 광장에서 꼬마 둘이 다가와 '원달러'를 외치자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군이 지갑을 열려 한다. 유군에게 이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면 이 아이들은 영영 학교로 돌아가지 못 하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니 주지 말라고 일러준다. 유군이 아이들에게 큰 소리로 가라고 외치는데 그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 하다. 녀석의 애들 사랑은 이번 여행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니 어느 덧 일몰 시간이 되었다. 숙소 건너편 메콩강가에는 벌써 노점들이 하나 둘씩 불을 밝히고 바베큐를 굽고 있다. 한 켠에 자리잡고, 라오스를 다녀온 사람이면 누구나 그리워한다는 비어라오를 사이에 두고 유군과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90%는 여자 이야기였지만... 19도, 36도 모두 남자이긴 똑같다.
아쉽게도 날이 흐려 일몰을 보는 대신 모기떼에게 피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누군가가 위앙짠은 왕위안을 가는 경유지 정도로 빨리 지나쳐야 할 곳이라고 했는데, 그냥 건너 뛰기에는 아쉬운, 볼 건 보고 넘어가야 하는 위앙짠이 아닌가 싶다.
유군은 숙소에서 키키얌(태국에서 찡쪽)을 잡는다고 수건 하나 들고 나가서는 쿵쾅쿵쾅 대다 숙소 내 사람들 다 깨우고 꼬리 잘린 성냥개비만한 놈을 한 마리 잡아 왔다. 있다가 사람들 자러 들어가면 또 잡으러 나갈 거란다.
"누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까올리'라고 하지 말고, '제패니스'라고 해!"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덧 손을 모으며 '싸바이디(안녕하세요)', '콥짜이(감사합니다)'하는 것이 낯설 지 않다. 내일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왕위안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