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 태국여행 (2)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4박 6일 태국여행 (2)

카플렛 5 1674

(둘째 날)


 

새벽 6시가 좀 넘었을까요.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간밤의 추위가 괴로웠던 듯 다들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렇게들 추워하는데 왜 그리 냉방기를 세게 틀었을까요.
1층의 운전석이 더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료수를 마시며 창밖을 구경하다가 7시 즈음 치앙마이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호객행위를 하는 성태우 기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보통보다 비싸게 부른다고 들었기에
일단 터미널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성태우를 잡았습니다.

타패문을 거쳐 가는 길의 사원들과 정사각 모양의 해자를 보니
비로소 방콕을 떠나 치앙마이에 왔다는 실감이 납니다.
치앙마이는 도시가 크지 않고 교통도 원활한 편이어서
북서쪽에 있는 여행사에 금세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짐을 맡기고 당일 출발하는 트레킹에 참가할 생각입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가게 문이 이미 열려 있었는데
한국인 여행객 두 분이 탁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계시더군요.
그들은 치앙라이 일일투어를 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 중 레게머리의 여자분께서 이런저런 도움말을 주었습니다.

잠시 후 출근한 직원에게 문의하니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서 트레킹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시쯤 출발한다고 해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으며 기다렸습니다.

아침인데다가 낯선 곳에 막 도착한지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야 주변을 좀 둘러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가게 앞 도로에는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가득합니다.
태국에서는 대학생도 모두 교복을 입고 다니는데
흰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은 가냘픈 여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0시가 되어 트레킹을 주관하는 여행사에서 보낸 성태우가 도착했습니다.
일단 각 숙소에서 트레킹을 신청한 여행객들을 모은 다음,
같이 한 차에 태우고 고산족 마을 입구에 실어다 주면
마중 나온 가이드가 데리고 올라가게 됩니다.

 

앞자리에 앉아 운전사와 잡담을 나누는데
그가 "태국에 지금 문제가 있다. 알고 있나"하고 묻습니다.
"정치적인 문제 말인가"라고 되물으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짐작대로 며칠 전에 벌어진 쿠데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먼저 묻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현지인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국왕을 존경하고 탁신을 싫어한다"는 식의
안전하고 일반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
민주주의나 군부가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한 속마음까지는 드러내지 않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정치인가에 대한 답은 나라마다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 국가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까지 다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그 답은 아마 후대에 내려지겠지요.


 


 

 

성태우를 타고 한 시간 남짓 달리다 작은 시장에 들려서 간식거리를 사고.
원두막 비슷한 곳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트레킹이 시작됩니다.


이 날의 트레킹 인원은 모두 11명이었습니다.
미국인 둘, 오스트리아인 둘, 프랑스인, 멕시코인, 스위스인, 영국인 하나씩,
그리고 나를 포함 한국인이 셋입니다. 남자 여섯, 여자 다섯.
나이는 대체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보였습니다.

고산족 청년이 한 명이 가이드로 와서 우리를 인솔했습니다.
체구도 작고 어려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21살이라고 합니다.
영어를 못하는 청년이었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이름을 물어보니
계속 "forty five"라고만 답해서 그게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진짜 이름은 "크놈"이라고 하더군요.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 바나나나무 같은 열대식물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다니던 등산과 크게 다르지도 않습니다.

길도 평탄했고 날도 많이 덥지 않아서 다들 쉬지 않고 가니
3시간으로 예정되어있던 코스가 2시간도 안되어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도착하고 나서는 "엇 벌써 와 버린 건가"하는 허탈감도 조금 들었죠.

 

 


 

 

우리가 머물게 될 곳은 "라후"족 마을, 닭 울음소리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밭일과 목축으로 자족하며 살고 있었고
그 외에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한다고 합니다.


라후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한데
일반적으로는 티베트 쪽에서 넘어와서 정착한 부족이라 하고
한편으로 고구려 유민이 이들의 선조라는 설도 있습니다.

관습이나 언어에서 한국인과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트레킹 후에 나중에 책으로 접한 이야기여서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들이 마련해 준 대나무집에 짐을 풀고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때 묻지 않은 표정의 마을 어린아이들이 귀엽습니다.
돈이나 먹을 걸 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과자를 줘도 얌전히 받아 듭니다.
북부지방에는 예로부터 미인들이 많다던데,
고산족 아이들의 외모도 남부의 아이들보다 더 귀여운 듯 합니다.

 



 

저녁 식사로는 정체 모를 스튜가 나왔는데 제법 맛이 좋았습니다.
미국 남자 하나가 닭고기인 것 같다고 추측을 하기에
내가 닭고기가 아니고 돼지고기 맛이 난다고 했지요.
왼편의 멕시코 여자가 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해도 돼?"

"응, 뭔데?

무슨 질문이 나올까 당황스럽습니다.

"너는 개를 먹니?"

그거였습니다. 한국인과 개고기.
외국인들이 자주 궁금해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을 받는 건 나로서도 처음입니다.
각자 떠들던 다른 외국인들도 일제히 시선을 내게 집중하는군요.

연인인 듯한 프랑스남자가 뭘 그런걸 물어보냐고 핀잔을 주니
멕시코여자는, 남의 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알아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정색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맞는 말이죠.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가르쳐 주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나 또한 정색을 하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 먹어. 전에 몇 번 먹어보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국인의 30퍼센트 정도가 개고기를 먹지.
그리고 한국인들이 먹는 개는 특별한 농장에서 길러지는 식용 개로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개와는 분명히 달라."

하나씩 천천히 이야기하니 다들 이해하는 눈치입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 앞이라 사견을 제한 모범답안만 늘어놓았지만,
불법도축이나 위생 상태에 대한 설명까지 굳이 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저녁식사가 끝난 후 촛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트레킹 책임을 맡고 있는 중년의 가이드는 고산족 출신이라
그로부터 고산족의 삶에 대한 설명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여행지에서 이런 자리가 마련되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런 떠들썩한 분위기이기 마련이었던 것 같은데
이날은 마치 세미나 후에 차 한 잔 마시며 뒤풀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들 20대 후반 이상이고 파티피플과는 멀어 보이는 여행자들인데다가
영어에 무리가 없어서 그런지 학구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오갔습니다.
다른 데서는 경찰만 없으면 거리낌 없이 대마초 피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여기에선 담배 피는 사람조차 거의 없더군요.

 

 


 

자정이 되어갈 즈음, 대나무로 짜인 바닥에 누워 모기장을 치고 잘 준비를 합니다.
내일이면 다시 치앙마이 시내로 내려가야 한다니 참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1박 2일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산에서 하루를 보내고 사람들과 친해지니 더 있고 싶었습니다.

서양애들은 처음부터 2박 3일로 온 사람들이 많았고 1박 2일로 온 사람도
마음을 바꾸어 더 지내고 간다고 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계획된 일정이 있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른아른한 촛불과 함께 그렇게 여행의 둘째 날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사방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5 Comments
entendu 2006.10.01 13:50  
  ㅎㅎㅎ.. 개고기 문화.. 그 얘기는 하여간 어디가나 화두이군요.. 저는 꼭 거기 덧붙여요. 프랑스 애들은 비둘기를 먹고 일본애들은 말고기 회를 먹고 중국애들은 바다 제비의 침도 먹는다구요...
체게발 2006.10.02 01:39  
  한국하면 개고기식문화를 떠올릴정도로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어있는데 이상하리 만큼 위생관리나 개사육장의 환경이나 도축관리가 전혀 안되어있지요.
개사육장보시면 어느정도 감성을 가지신분들은 개고기안먹을겁니다.
개는 인간과 2만년가까이 생활하면서 인간의 감정을 조금 느낄수있습니다. 사육장의 식용개들은 자신들이 식용으로 죽어갈것을 알고있고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 대단합니다.눈을 보면 그 개들의 감정을 조금 느낄수있습니다.
 사육장에는 개들특유의 활기가 없고 살기만이 남아있으며 죽음만을 기다리는 개들의 표정에서 어두운 기운이 서려있는것을 느낄수있습니다.
개고기를 즐겨먹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들을 제대로 좀 향유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개고기는 생각도 하기싫은 혐오식이라 생각하지만 전통문화라니깐 그 전통을 제대로 된 시스템에서 대중들이 즐길수있도록 만들어졌으면 좋겠네요.
지금 같은 개고기식문화는 외국에 알려질수록 미개한 이미지만 고수될것같습니다.
gogo방콕 2006.10.02 12:56  
  한국하면 개고기가 떠오르나 보네여 재미있네여 ..
에스메랄다 2006.10.06 23:45  
  저는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니까 영국인 청년이 '남북분단'과 '북핵문제'를 질문하더군요. ㅠ.ㅠ. 남북이 같은 종족이냐, 같은 종족이면 왜 분단됐느냐, 김정일은 어떤 종류의 정치가냐...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냉전의 산물이라는 얘기를 열심히 해 줬는데 그 다음날 이것저것 탐문하다보니 87년생으로 '냉전'시대라는 게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더군요... 그 때의 허탈감을 잊을 수 없네요.^^
이상익 2006.10.07 03:06  
  저도 여행하며 느낀거지만 개고기하면 왜 한국이 된걸까요? 개고기는 중국이나 베트남이 더 많이 먹는데..우린 기껏해야 수육이나 탕 정도지만  요리법도 우리보단 무척 다양합니다. 암만해도 국력의 문제인듯 하네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