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6일 태국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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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6일 태국여행 (1)

카플렛 2 2197

(첫 날)

 


 

22일 오후 늦게 오리엔트타이항공을 타고 태국에 도착했습니다.
방콕의 현재온도가 34도라는 기내방송이 덥고 습한 공기와 함께
"여기는 태국이야"라고 인사를 건네네요.

택시를 타고 방람푸로 가서 카오산을 잠시 걷다가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북부의 치앙마이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서였죠.
그곳에서 이틀 동안 트레킹을 하고 방콕으로 돌아온 후
마지막 날에는 파타야 코란 섬을 둘러보는 게 이번 태국 여행의 계획입니다.

훨람퐁 역 주변은 무척 복잡했습니다.
옆 앞에는 노란 띠를 단 군인들이 총을 들고 서 있었는데
관광객들이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졸라댔습니다.

쿠데타가 있었던 게 불과 사흘 전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게 정리된 듯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기차로 보통 12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밤 8시에 타면 다음날 아침 8시 이후에나 도착하는 것이죠.
꽤 긴 시간이겠지만 침대칸을 타면 몸을 눕힐 수 있어 쾌적할 것입니다.
KFC 치킨버거로 저녁을 먹은 후 기차에서 먹을 빵과 우유를 사고 기다렸습니다.

 


 

 

이게 얼마 만에 타는 야간열차인가요.
혼자 타는 터라 맞은편 자리에 누가 앉게 될 지도 궁금합니다.

부푼 마음으로 대합실에 가니 바닥에는 외국인 배낭여행객과 현지인들이 뒤섞여 있더군요.
출발까지는 30분 이상 남아 잠시 쉬려는 참에, 전광판을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치앙마이 행 기차는 색깔이 다르고 플랫폼 표시가 되어있지 않네요.


직원을 찾아 표를 보여주며 어디서 타냐고 물으니 안됐다는 표정입니다.
그의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말 속에 "cancel"이라는 영어 단어가 귀에 잡혔습니다.
그는 "canceled?"라고 재차 확인하는 내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구로 데려갑니다.
refund, 환불해주는 곳입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태국말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어리둥절한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옆에 있던 서양인 중 하나가 영어로 설명해주기를,
북부 지방에 비가 많이 와서 철로가 물에 잠긴 것 같다고 합니다.

이를 어쩐다. 참 난감합니다. 방콕에 잡아놓은 숙소도 없을 뿐더러 내일 아침까지는
치앙마이에 도착해야 예정대로 트레킹을 하고 방콕으로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긴 여행이라면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도 즐거운 해프닝이 될 수 있겠지만
단 5일짜리 여행에서 하루가 늦춰지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캐런이라는 이름의 그 미국인은 자기도 오늘밤 치앙마이에 가고 싶다면서
기차역 직원이 소개해주는 여행사에 함께 가 보겠냐고 묻습니다.
별 방법이 없기에 일단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그녀 일행 셋과 나까지 네 사람이 역 근처의 한 여행사로 향합니다.
여행사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보더니 현재 다른 차편은 없고
한 시간 후에 떠나는 버스가 딱 한 대 있는데 890바트라고 합니다.

가격도 의심스럽게 비싼데 결정적으로 의자가 straight-back이라는군요.

아.. 뒤로 젖혀지지 않는 의자에 앉아 10시간을 타고 갈 자신이 없습니다.
치앙마이까지야 대충 간다 해도 피곤한 몸으로 트레킹을 즐겁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캐런 또한 그런 버스는 안 타겠다며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터미널에 직접 가서 표를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여행사에서는 아무래도 자기네와 연계된 버스 편만 소개해주는 것 같았으니까요.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북부 터미널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고 기사가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네요.
"버스", "터미널", "치앙마이" 이렇게 늘어놓아도 고개만 갸우뚱합니다.
결국 배낭 속에서 지도를 꺼내놓고 한참을 설명해 준 후에야 알겠다고 합니다.

급한 상황에서는 많은 것들이 사람을 초조하게 하죠.
고가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먼 하늘에서 계속 마른벼락이 치는 게 보입니다.
북쪽에는 지금 비가 많이 오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됩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치앙마이 표시가 있는 창구를 찾았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표를 팔고 있었는데 그 중 나콘차이의 창구로 갔더니 오늘은 매진이라는군요.
하는 수 없이 그 옆의 다른 vip버스 창구에 물었습니다.
8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고 가격은 580바트라고 합니다.

혹시 이것도 의자가 뉘어지지 않는 허름한 버스인가 싶어
의자를 뒤로 당기고 눕는 동작을 했더니 ok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젠 자연스럽게 영어보다 바디랭귀지가 먼저 나옵니다.

 


 

 

출발까지는 15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어 천천히 게이트를 찾았습니다.
터미널이 크고 복잡해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물어물어 8시 직전에 탑승구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야 할 버스가 보이지 않네요. 땀을 닦아내며 내가 탈 버스를 찾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태국여자가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습니다.

티켓을 보여주니까 late라고 합니다. 버스가 늦게 온다는 소리 같습니다.

버스만 기다리고 있기 심심해서 말을 걸어봤습니다.
치앙마이에 사는 학생이라는데 영어는 잘 못하는 듯합니다.

원래 열차표를 끊었는데 문제가 생겨 급히 버스를 탄다는 등의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으니까 근처의 백인 할아버지도 심심하셨는지 대화에 동참했습니다.
자기도 기차를 종종 타 보았는데 굉장히 편하고 좋았다면서
북부지방은 몇 달 전부터 홍수로 문제가 많다고 그러는군요.

민소매 옷을 입고도 땀 흘리는 날 보더니 나중에 버스에서는 추울 거라고 합니다.
그럴 줄 알고 긴 팔 옷과 담요를 가져왔지요.
오히려 더운 나라에서 냉방기 때문에 추웠던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버스는 20분이 지나고서야 왔습니다.
30석이 있는 2층 버스였는데 시설은 깔끔하고 좋았습니다.
침대칸 기차보다는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보입니다.
자리에 앉은 후 버스는 곧 출발했습니다.

 


 

 

이윽고 안내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차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나눠줍니다.
처음엔 고기덮밥과 물수건을, 곧이어 음료와 스낵까지 서너 가지를 계속 줍니다.
이미 저녁을 든든히 먹어놓은 후라 받은 음식들은 밑에 쌓아놓고 잠을 청했습니다.


버스 안의 모니터에서는 미국영화가 흘러나옵니다.
밤 버스 안에서 누가 잠 안자고 저런 걸 볼까 싶었는데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볼륨도 굉장히 크게 틀어 놓았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 보지만 이래서야 잠을 자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 봅니다. 깨어보니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버스는 여전히 달리고 있고 시끄럽던 모니터도 꺼져 있어 차내가 조용합니다.
밖에는 아까부터 비가 계속 내렸는지 도로가 젖어있고,
열심히 돌아다니던 안내원도 지금은 빈 좌석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습니다.

 

이런 깊은 밤, 낯선 곳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일상에 묻혀 있을 때 듣지 못했던 내 안의 작은 소리들이
낯선 풍경이 환기해 주는 지각의 힘을 빌려 말을 걸어옵니다.


나는 오랜만에, 나 자신과 그리고 나의 삶과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내일엔 내가 바라던 그 곳에, 서 있을 수 있을까요.


20대의 끝, 어느 가을의 새벽에, 나는 치앙마이로 가고 있었습니다.

 


 

2 Comments
애플망고 2006.10.01 13:41  
  여행기 잘 읽었어요 ^^;; 자주자주 올려주세요
gogo방콕 2006.10.02 12:50  
  택시에서 찍은사진 인가보네여 태국이 느껴집니다
혼자하는 여행은 무지 외롭지여 하지만 자유를 만끽할수 잇고 생각할시간도 많아져 좋은점도 잇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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