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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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2)

이준용 14 3431
- 카오산 로드 -

공항버스 정류장에 앉아 한숨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게 친숙하다. 작년엔 한밤중에(새벽1시) 도착한데다 모든 게 낯설었고 밤이라 겁까지 집어먹어서 우왕좌왕 했었으나, 한낮에 도착한 오늘은 한가롭기만 하다.
공항버스 A2번에 승차. 차창으로 보이는 시내의 풍경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땟국이 절절 흐르는 건물과 남루한 옷차림들을 보면, 인구만 천만명이 사는 대도시로서의 위용과 태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권위를 감안해도 우리보다 족히 20-30년은 뒤쳐져 있는 모습이다. 특히 오늘 눈에 띄는 것은 전기줄인데, 수백가닥의 전기줄이 얼마나 조잡하게 묶여져 있는지 배선을 저렇게 하고도 불이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유치하지만 난 이런 모습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내 조국이 자랑스럽고 그렇다. 헤헤!!)

드디어 카오산 도착. 1년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전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명성처럼 오늘도 인파로 북적이고, 거리 전체엔 활기가 넘친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그리고 내가 없을 앞으로도 여기는 늘 이런 모습이겠구나... 솔직히 참 부럽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각종 편의시설, 노점의 먹거리들, 각종 기념품들... 여행자들의 자유분방한 모습...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더불어 한 잔의 맥주를 기울이는 여유로움까지...
왜 우리 나라엔 이런 곳이 없을까? 없는 건지 내가 모르는 건지... 내가 이런 걸 한탄하고 있으니까 옆에서 아내는 "이태원 있잖아?" 그러는데, 뭐 솔직히 가봤어야 알지?

여기 오기 전부터 아내는 머리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했었다. 무슨 아프리카 애들처럼 머리를 땋고 싶은 모양. 나로선 도대체 그게 왜 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되지만, 하고 싶으면 해야지. 쯧!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펴본 후 흥정을 하는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 중 마음에 들어 하는게 있어서 협상 끝에 9천원에 합의. 머리를 서태지처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란다. 아내가 머리를 하는 동안 난 바나나 팬케잌을 하나 사먹어 본다. 밀가루 반죽을 능숙한 솜씨로 빙빙 돌려가며 원심력을 이용해 얇게 편 다음, 그 안에 바나나를 썰어 넣은 후, 접어 익혀서 그 위에 연유와 초콜릿을 뿌려먹는데 얼마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지... 이런 걸 450원에 먹어보기가 어디 쉬워?

다시 심심해진 나는 아내 옆에서 머리하는 걸 구경한다. 아까부터 두 명이 달라붙어서 정성스레 머리를 땋고 그 끝을 은박지로 말아 고정시킨 후, 손님이 고른 구슬을 세 개씩 끼워 한 가닥씩 완성한다. 아.. 저래가지고 어느 천년에 머리통 하나를 완성하나? 이렇게 수고하고 받는 9천원은 정말 '싸다'는 생각뿐이다. (일전에 철없는 우리 처제는 11만원짜리 파마를 하고 와선 자랑을 했는데... 난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저 황당... 내가 스물두번, 그러니까 나의 2년치 이발값이다. 근데 11만원짜리 파마를 할 때도 미용사들이 저렇게 많은 노력을 할까?) 주위엔 주스 파는 아저씨도 있고 무슨 가게 앞이라 주인 아줌마도 있는데, 재밌는 건 주변의 서양인들... 분명 여행자로 보이는데 아저씨 아줌마와 얼마나 친한지 모른다. 태국어로 뭐라 서로 얘기하는 것도 정겹고,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대신 장사도 해 준다. 그리고 담배를 피울 때는 꼭 아저씨 몫도 챙겨준다. (아저씨가 장사하느라 바쁘면 의자에 놓아 둠) 마치 제 입만 아는 눔처럼 혼자 피는 나도 사실은 나눠 피우고 싶은데, 숫기가 없어서...

결국 약속한 1시간을 넘겨서 머리 완성. 해도 기울었고 배도 고프니 식사를 해야 한다. 우리는 말로만 듣던 [렉아저씨 라면집]을 찾았다. 홍익여행사 옆집인데, 가게는 허름하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종업원에게 맛있는 걸로 추천하라고 했더니 [고무꾸라면]과 [광동라면]을 권한다. 마침내... 라면 입장!! 히야... 이것도 라면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온갖 해산물들, 고기, 야채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너무 맛있어 뵌다. 국물부터 한 술 입에 넣어보니 그윽한 맛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허허... 구태여 우리 음식과 비교하면 짬뽕 수준은 훨씬 넘고 삼선울면 수준? 암튼 내 것도 맛있고 아내 것도 맛있어서 우리는 둘 다 국물까지 말끔히 비웠다. 이 맛있는 라면이 한 그릇에 1800원이라니... 허허... 좋다. 좋아!!

- 밤기차 여행 -

다시 공항버스를 타고 돈무앙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 밤기차를 타고 농카이로 향하면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것이다. 아까 표 끊을 때는 그래도 한낮이라 좀 한산했는데, 밤이 되니 역사엔 사람들이 꽤 붐빈다. 기차 놓칠까봐 걱정돼서 다소 일찍 움직인다고 왔는데, 너무 일찍 왔나? 앞으로도 한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할 일없이 의자에 앉아 마냥 기다리는데... 역무원이 내게 다가온다. 지은 죄는 없어도 일순 긴장...
"표 좀 보여주시죠"
어라? 이 아저씨 좀 봐봐. 내가 무임승차라도 할까봐 그러나? 어우 기분나뻐... 일단 태국은 한국과 달리 개찰이 없다. 즉, 차에 오르기 전에 표 검사는 하지 않는다. 그냥 기다리다가 자기 차가 오면 타는 거다. 내가 이렇게 알고 있으니 의심받는다고 생각하는건 당연. 하지만 이런 감정을 표현할 언어능력이 없으니 그냥 순순히 말을 듣는 수밖에...
그러나 이 아저씨는 우릴 의심한 게 아니었다. 차표를 보며 열차시각, 행선지, 객차번호, 의자번호 등을 꼼꼼히 확인하며 우리에게 다시 알려준다. 그리고는
"17번 객차는 저기 돈무앙이라고 씌어진 것 보이지요? 저 건너에서 타는 겁니다" 라며 일러준다.

아저씨 말씀대로 우리 부부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기다리는데... 약속한 9시32분이 지났건만 기차는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안내방송만 나온다.
"@#$%^ 농카이 @#!%%&*"
"$%^&% 농카이 $$##%@&"
태국어 방송이니 완전히 못 알아듣고 있지만, 멘트 속에 '농카이'란 말은 분명히 들어 있다. 아하! 농카이행 기차가 뭔 일이 있어서 좀 늦는다고? 그냥 이렇게 이해해야지 뭐...

역사 바로 앞엔 렌트카 하는 집이 있는데, 가만 보면 이 집도 엄청 웃긴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온 가족이 가게 안에 모여 앉아있고, 가장인 듯한 한 남자는 마이크를 들고 계속 노래를 불러댄다. (당연히 반주는 없다) 무슨 무반주 아카펠라도 아니고 음악도 없이 거의 괴성을 질러대는데 가족들은 모두 엄청 즐거운 얼굴들이다. 이 상황은 우리가 아까 역에 왔을 때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으니 최소한 2시간은 된거다. (지금까지 가수도 바뀌지 않았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음) 게다가 옆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왜 이리 안 어울리는지... 한여름 땡볕에 트리가 무엇이며, 그리고 여긴 불교국가 아닌가? 하하!! 이 모든 것이 부조화인 상태는 30분이나 늦게 열차가 올 때까지 그리고 우리가 열차에 오를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드디어 승차! 차표를 보고 두리번거리며 객실을 찾는데, 어벙벙한 우릴 보더니 승무원이 안내해 준다. 드르륵 문을 열고 객실로 입장!!
"야호!!"
반짝이는 철제 2층 침대엔 눈이 시리도록 깨끗한 침대보가 깔려 있고,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가운데 타올과 이불은 비닐봉지 속에 담겨 있다. 객실 한켠엔 수도꼭지와 세면대가 있고, 생수 두병과 컵까지 정성스레 놓여 있다.
"야호!!"
일단 침대로 몸을 던져 누운 후, 몸을 쿵쿵쿵쿵 아래로 굴러 본다. 아... 푹신푹신함. 너무 신난다. 너무 신나!! 아내도 눈 깜짝할 사이에 2층으로 기어올라 벌렁 눕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 1등석 침대칸이 이런데구나... 밤새 떠들고 히히덕거려도 누구하나 방해하지 않는 곳. 바로 우리들만의 공간!! 단, 한가지 흠이 있다면 실내 금연. 걸리면 벌금 2천바트!! 하긴 뭐 아내도 있는데, 이 좁은 방안에서 어찌 담배를 피우나?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다시 신혼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러다가 아직까지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아내에게 괜히 한마디 던져 본다.
"어허... 이 사람아! 고만 좋아허게. 허허..."
한참 누워서 쉬다가 일어나서 세면대를 본다. 애개... 세면대라고 해도 겨우 손이나 씻을 수 있을 만큼 좁다. 하지만 우리 부부가 누군가? 둘 다 손은 물론이고, 얼굴에 발까지 닦았다. 이렇게 씻고 누우니 슬며시 잠이 쏟아진다. 아... 참 행복하다...

사족:
1) 질문인데요, 서울의 이태원이 방콕의 카오산 같은 곳 맞나요?
2) 친절...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그래서 여행자들로 하여금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한번 온 사람은 누구나 다시 오고 싶어지는 곳. 그런 곳이 바로 태국이다.
3) 어차피 어부인 대동하고 행차하면 유지비 많이 듭니다. 흑흑... 그리고... 애인이나 마누라 데리고 나온 거 아니고 그냥 친구끼리라면 1등석은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건 조언)
14 Comments
해피 2003.01.20 12:10  
  우어어.. 저 1등석 기차를 타셨군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크크 너무너무 좋죠~
2등석기차칸 보다 허벌 비싸고
기차내에서 식사하는게 좀 비싸긴 하지만..
넘넘 좋아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
이준용 2003.01.20 12:18  
  레아공주님의 머리아픈 설명, 잘 이해했습니다. 원인이 구슬이었군요. 그리고 해피님! 기차안에서 식사도 가능한가보죠? 전 그걸 몰라서 쫄쫄...
요술왕자 2003.01.20 12:53  
  이태원은 쑤쿰윗이랑 더 비슷하고... 카오산은 비슷한 곳이 없지요...
요술왕자 2003.01.20 12:55  
  저는.... 기차 화장실에서 샤워도 했었죠.... -_-;;
주니애비 2003.01.20 14:26  
  기차의 아침식사는 토스트와 햄 우유인데 맛은 별로이더군요. 값은 80밧정도 한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이준용 2003.01.20 14:49  
  화장실에서 샤워요? 하하!! 하긴 비데가 있으니까... 근데, 태국은 가는데마다 대개 화장실에 비데가 있더군요. 화장실 문화는 우리보다 발달했나봐요. (비데조아)
요술왕자 2003.01.20 15:01  
  흐.... 비데기 말고 보통은 세면대쪽 구석에 보면 샤워기 달려있습니다. 그걸로 했죠....
차 움직이는데 옷벗었다 입으려니 힘들데요... ^^;;
이준용 2003.01.20 15:06  
  아이구 창피해라... 하긴 똥닦는 물로 샤워를? 이런 생각을 하는걸보면 역시 전 천성이 지저분한가봐요... 근데 비데에서 나오는 물이라고 똥물은 아니잖아요? 하하!! 농담입니다.
요술왕자 2003.01.20 15:19  
  어떤분은 비데가 뭔지 모르고 물살이 좋아서 양치질 했다는데... ㅠ.ㅠ 사실인지.... 흑흑....
해피 2003.01.20 16:30  
  저희는 저녁도 거기서 먹었죠.주문하는 사람이 방마다 두드리면서 밥 안시킬래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아침은 싼데 저녁은 좀 비쌌어요. 물론 기차에서 밥 먹으니 당근 비싸겠지만.. 그것도 1등석 ^^
근데 비데물로 양치하면 안되나요?? 크크
리노 2003.01.21 01:38  
  제가 비데로 양치질했습니다......-_-
스위트피 2003.01.21 11:26  
  2주후면 저두 태국 들어갔다가.. 라오스 갑니다.. 님의 글 넘넘 재밌어요.. 빨랑 올려주세여~~
이름밝히기곤란 2003.01.24 21:14  
  나는 예전에 홍익인간 이전하기 전에 1층에 화장실이 두 개 있을 그때, 2001년 여름........1층 화장실에서 비데로 샤워했죠....그날이 아마 도착 첫날이었지...어리둥절....왜 말리는 사람이 없었는지.....
행자 2004.04.12 20:09  
  나두 곧 1등석타고 농카이 가면서 비데로 양치질 할거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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