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2 (Ha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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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여행기]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2 (Hanoi)

아랑다리 0 1604
너무 더워서 사진도 많이 못 찍었네요.

http://lkfar.tistory.com/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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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일어나지만 좋은 호텔에서 일어나는 기분이다. 에어컨은 적당한 온도로 방을 유지해주고 침대는 내가 잔 호텔 중 상급에 해당할 정도로 편안하다. 역시 돈을 쓰면 편해진다.


못 잔건 아닌데 그렇다고 잘 잔것도 아니다. 어차피 오늘 저녁 슬리핑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약간 피곤한게 나쁘지는 않을거 같다. 어제 생각보다 술도 좀 마셨는지 숙취가 있는건 아니지만 약간 피곤하다. 하지만 5시에 해돋이를 보러 일어난다. 바다에서의 해돋이를 포기할 수는 없지.


내가 일어나니 호헤이도 같이 일어난다. 이 친구는 어제 9시쯤부터 잔거 같다. 푹 자고 일어났으니 좋겠다. 그러고보니 한국분은 이제 포기한건가? 찝쩍거림이 없어졌다. 대신 어제보니 다른 분한테 접근하는거 같더라. 역시 정렬의 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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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 선상 루프탑(?)으로 올라가니 한 커플이 먼저 와있다. 어제 봤던 그 대만 커플이다. 라셸과 데이브 커플은 있을지 알았는데 안보인다. 한켠에 자리를 잡고 키보드를 핀다. 어제 글을 거의 못 썼다.


구름이 잔뜩 껴있다. 내가 상상했던 그런 멋진 일출을 기대하기는 힘들듯 하다. 뭐 어떠하리. 멋진 일출 충분히 많이 봤다. 그냥 이 시간에 바다 한가운데에 이렇게 있는것 자체가 좋은거 아니겠는가.


호헤이 이 친구는 잠 정신 사납다. 사진을 들고 쉴 새 없이 찍고, 또 찍어달라고 한다. 스타일이 혼자 여행 다닐 스타일이 아닌거 같은데 왜 혼자 다니는걸까. 한번 '행복하게' 이혼했다고 얘기를 했었다. '행복한' 이혼은 뭘까. 데이브도 자녀 넷을 두고 이혼했고, 확실히 서양에서 이혼은 생각보다 큰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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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좀 올라오니 더워진다. 남부로 가도 이리 더울까? 의외의 복병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더위가 하노이에 있었다. 그래도 북부 도시라 어느정도 시원할거라 예상했지만 불쾌지수는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앞선다. 여기서의 땀은 뭔가 끈적지근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방으로 다시 내려온다. 떠나기 전 마지막 에어컨을 즐겨야겠다. 호헤이도 조금 있다 내려온다. 하지만 그 에어컨은 7시가 되는 순간 꺼진다. 저녁에만 에어컨을 튼다더니 중앙에서 칼 같이 제어한다.


호헤이가 먼저 아침을 먹으러 떠나고 난 근심부터 해결한다. 여기 이상하게 화장실 문이 안닫히고 자동으로 항상 열린다. 아무리 여행자끼리 소탈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럴때 빨리 해결해야 한다. 오늘도 꽤나 긴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정리가 끝나고 나도 아침을 먹으러 간다. 식당으로 오니 호헤이와 데이브가 먼저 식사를 시작했다. 여자들은 역시 느리다. 나도 자리를 잡고 커피를 한잔 마신다. 어제 잠을 좀 못 자서 영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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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밥을 먹고 있으니 라셸도 합류한다. 한국 여성분만 아직 한밤중이다. 한참 먹고 있는데, 데이브가 그분을 깨워야 되는거 아니냐고 묻는다. 뭐 알아서 일어나시지 않을까? 뭐 깨워드려도 나쁘지는 않겠다. 헌데 모두들 자기가 깨우겠다고 난리다. 남미 열정남 호헤이가 먼저 나서더니 태국 가이드까지 굳이 자기가 가겠다. 여자 혼자 자는 방에 뭔 이리 관심들이 많다냐. 결국 라셸이 가겠다고 일어나면서 정리된다.


아침은 사실 별거 없다. 그냥 빵과 버터, 계란 후라이 하나와 커피다.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지 꽤 피곤하다. 거기다가 습도 높은 베트남의 기온이 기운이 빠지게 한다. 오늘 바로 떠나기로 한건 실수였던것 같다. 이 상태로 슬리핑 버스를 12시간 탈 자신이 없다. 연기할 수 있을까? 가능하면 하루 더 자고 내일 여유 있게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여성분까지 합류하면서 식사를 마친다. 오늘 아침에는 무슨 굴 채굴장을 간단다. 데이브와 나는 안가기로 합의본다. 패키지 투어를 하면 뭔가 자꾸 하라고 시킨다. 그래야 돈값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 피곤한거 같다. 결국 우리 그룹에서는 남미 열정남 호헤이만 간다.


덥다. 너무 덥다. 사실 더운건 익숙한데 이 습기는 정말 미치게 한다. 불쾌지수가 80%는 넘을거 같다. 땀에 쩔어서 있으니 기운이 쫙쫙 빠진다. 오늘 저녁에는 정말, 정말 에어컨 방에서 편히 쉬고 싶다.


데이브가 가서 얘기하면 늦을지도 모르니 한번 전화해라고 한다. 전화를 한번 해보니, 연결이 안된다. 아니, 호텔에 사람이 없을 수가 있나? 다시 해봐도 안된다. 명함에 뭘 뜻하는지 모를 핫라인이라는것도 있기에 시도해보지만 역시 안된다. 에잇, 그냥 가서 결정하자. 정 안되면 표 한장을 버리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그냥 강행해서 가는 방법도 있다. 남게 되면 빨래도 다 해치워버려야겠다.


더위에 지쳤지만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굴 캐러 간 사람들이 금방 돌아온다. 사실 그래봐야 40분 캘려고 간거다. 그리고 크루즈배는 이제 귀항을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크루즈배가 움직이는 속도는 내가 수영하는 것보다 느릴듯하다. 느리게 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찬찬히 앉아 기다려본다. 잠이 부족하고 더위에 지치니 일단 빨리 가서 좀 쉬고 싶다. 하지만 어차피 오늘 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득 생각이 나서 지갑을 열고 돈을 세본다. 5,600,000동 정도 남아있다. 8일 정도 남았으니 하루에 70만동, 약 33달라의 경비를 쓸 수가 있다. 이정도면 따로 수급은 안받아도 되겠다. 다이빙 같은 큰 규모의 액티비티만 하지 않는다면 돈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거다. 베트남은 은근히 물가가 싸서 하루에 20달라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신경 안쓰고 다녔지만 그 정도를 사용하였다.


11시가 되니 식사가 나온다. 또 잡다한 음식들이 나온다. 딱히 맛있는게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류가 다양하고 푸짐하니 꽤나 먹을만하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음식으로 보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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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떠나기 전에 저녁을 먹고 간단히 비아호이를 마지막으로 먹기로 우리 그룹 사람들과 얘기한다. 사실 먹고 쉬고 싶지만 뭐 최악의 순간에도 먹고 떠나도 무리는 없다. 어차피 화장실까지 딸린 버스라 생리적인 부분도 해결이 용이하다.


밥을 먹고 기다리니 12시쯤 처음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뭔가 기다리는게 많은 날이다. 이곳에서도 30분을 더 기다리란다. 빨리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고 싶은 마음뿐이다. 정말 더운 나라도 많이 다녔지만 더위에 이렇게 지친 거는 이곳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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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드디어 하선하고 선착장의 휴게실로 이동하지만 여기서 또 대기다. 아 피곤한 하루다. 다들 영혼이 빠져있는 느낌이다. 이곳에서도 20분을 기다리란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내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란다. 빨간색 티셔츠는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새까매진 얼굴에 새빨간 티셔츠를 입으니 두 색깔이 모두 너무 확 튄다. 2키로미터 밖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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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라셸이 바깥이 그나마 조금 더 선선한거 같다며 나와보란다. 더워죽겠기에 '조금 더'가 무척 땡겨서 바로 따라가본다. 진짜 '조금 더' 선선하긴 하지만 사실 큰 차이는 아니다. 그래도 가끔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더위에 지친 몸을 조금은 위로해준다.


지쳐서 쓰러질뻔할 즈음 깃발이 드디어 움직인다. 버스가 도착했단다. 서둘러 가방을 울러매고 버스에 올라탄다. 올때는 그래도 좀 좌석이 여유로웠던거 같은데 돌아갈때는 만석이다. 결국 한국여성분과 덴마크 여인 둘과 함께 넷이서 맨 뒤에 앉는다.


시동을 키고 에어컨을 트니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나 또한 드디어 전해지는 차가운 바람에 영혼까지 안식을 받는 느낌이다. 에어컨의 소중함을 이보다 더 강력하게 느낀 적이 없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허술한 첫번째 게스트하우스에서 선풍기를 틀고 잘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더위보다 습기가 몸을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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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디어 출발이다. 오늘은 정말 기다리고 이동하는 것의 연속이다. 출발하자마자 다들 뻗듯이 잠을 잔다. 나도 몸이 많이 피곤하다. 잠도 못 잔데다 땀을 하도 흘려서 그런지 기운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웃긴건 나는 이 상황에서도 잠은 잘 못 잔다. 불면증 맞나보다. 그래도 에어컨 바람을 쐬니 기분이 좋아진다.


키보드를 꺼내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생각해보니 옆에 분이 한국인이라 신경이 쓰인다. 이분은 뭐 그다지 신경 안쓰는 분위기이긴 하다. 글을 쓰다가 아무래도 좀 신경 쓰여서 접고 대화를 나눈다.


한국인이 있어도 외국인하고 있으면 한국말을 잘 안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하게 섞여 있는 곳에서 자국민들끼리 남들이 못 알아듣는 자국어로 얘기하는 것은 꽤나 안좋은 매너다. 미얀마 시포에서 프랑스 애들과 한 트레킹이 나한테 안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이 내 앞에서 영어가 아닌 불어로 얘기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한국말을 이렇게 하는 것은 또 오랜만이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이상과 현실의 어려움, 꿈을 쫓고 싶지만 그 꿈 조차 돈이 필요할때 느끼는 현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나누게 된다. 이분은 연기를 하는 분이다. 아무래도 예술은 돈이 쉽게 따라오는게 아니기에 이러한 고민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나도 고민이 많지만 나는 돈과 이상 사이에 선택이 예술하는 자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비즈니스를 추구한다면 이상과 돈이 분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예술로 갈 수도 있는거긴 하다. 진짜 한국 가면 뭘 해야 할까.


2시간을 달리니 올때 처럼 휴게소라 얘기하고 쇼핑센터로 불리는 곳에 잠시 세운다. 이곳에서 25분을 쉰단다. 우리의 용감한 호헤이가 다들 피곤한데 그냥 바로 가면 안되냐고 직설적으로 물어본다. 이런 한심한 친구 같으니라고. 패키지는 원래 이런거라네. 촌스럽긴. 쇼핑센터에 들러줘야 진정한 패키지 여행이지! 호헤이의 푸념은 당연하게도 묻혀버린다.


올때는 그래도 다들 둘러보는 시늉이라도 했던거 같은데 지금은 다들 지쳐서 그냥 카페에 가서 쓰러지듯이 앉아버린다. 주문은 누군가 하겠지? 나는 안마실련다. 혹시 모르니 이제부터 약간 절약모드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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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갔다오면서 보니 그래도 쇼핑센터가 개념이 있는게 중고책을 판매한다. 그쪽은 여행자들이 조금 몰려있다. 쓰잘데기 없는 것 보다 이런걸 파는게 아무래도 서로한테 도움이 되긴 할거다. 하지만 이마저도 난 전자책들이 있기에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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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 다시 움직인다. 그래 빨리 버스를 타자. 버스를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했을까. 버스에 올라타서 이번에는 나도 밀린 글을 좀 쓴다.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는 여행에서는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2시간 더 가고 저 멀리에 드디어 하노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렴풋이 보이는 저 도시의 윤곽이 이리 반가울지 몰랐다. 진짜 피곤하긴 한가보다. 헌데 오늘 버스표 연기가 가능할지 진짜 모르겠다. 전화가 계속 연결이 안되서 버스에서 내려서 가서 물어봐야 한다. 시간이 될런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하나둘 내린다. 호헤이와 한국분은 6시까지 우리 호텔에서 보기로 한다. 혹시 몰라서 이메일과 카톡을 저장해둔다. 여행 중에는 엇갈리는 상황이 워낙 많기에 이런 약속도 쉽지 않다. 하지만 엇갈리면 또 엇갈리는데로 각자 여행을 하면 된다.


라셸과 데이브,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내린다. 다른 사람들은 호텔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더니 우리는 길에 내려주고 걸어가란다. 툴툴거리고 걸어가는데 막상 2분 거리다. 더워서 좀 까칠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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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들어와서 일단 록부터 찾는다. 안보인다. 내가 록을 찾으니 다른 스탭이 무슨 일이냐고 한다. 이분도 굉장히 친절해보인다. 여기 호텔이 원래 친절한가보다. 일단 버스표 교환이 가장 급하기에 얘기를 한다. 힘들어서 도저히 못 가겠다, 버스표를 내일로 바꿀 수 없을까요?


이분 뭔가 일처리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얘기를 듣더니 바로 캐치를 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잠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더니 끊는다. 처리 되었단다. 원래는 취소 수수료가 있는데 내가 하롱베이 갔다와서 앓아누웠는데 어쩌냐고 막 따졌단다. 이런 센스쟁이. 이 호텔 스탭들은 다 좋은거 같다. 방도 전에 록이 약속한데로 12달라에 해준다. 이거 근데 좀 파격적인 가격인거 같다. 고마워 록.


데이브가 본인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없다. 충전기가 여기 규격과 안맞아서 충전을 못하고 있다며 로비에 혹시 충전기 사면 얼마인지 물어본다. 가만히 듣다가 가방을 뒤진다. 노트4님은 가셨지만 그 충전기는 남아있기에 나는 그걸 쓰고, 7만원짜리 핸드폰 구성품에 포함되어 있던 충전기를 찾는다. 이것도 킨들 충전할때 쓰긴 하지만 하나로 한다고 크게 어렵지도 않거니와 여행도 얼마 안남았다. 데이브에게 선물로 내미니 무슨 내가 다이아몬드를 줬다는 듯이 부담스러워한다. 이거 5천원도 안할텐데 이런 대접을 받으니 오히려 황송하다.


라셸과 데이브 보고 내 방으로 올라가서 샤워를 하라니까 괜찮다며 로비에 있겠다고 한다. 또 나를 배려해서 그런게 확실하다.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방으로 같이 올라온다. 이렇게 땀을 흘리고 어디를 가겠다는 거냐. 하지만 이분들의 배려는 너무 고맙다. 내가 혼자 있는걸 좋아하는걸 아셔서, 같이 있을때도 내가 글을 쓰거나 혼자 있으면 일부러 피해주시고는 한다.


나는 역시 한국인이라 아무래도 두분을 먼저 샤워실로 들여보낸다. 물론 따로따로다. 아무리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지만 알콩달콩은 여기 내 눈앞에서는 안볼거다. 이미 둘이 팔짱끼고 손 잡고 다니는거 보는 것만 해도 하도 봐서 외로워질 지경이다.


라셸이 샤워를 하는 동안 데이브가 가방에서 뭘 꺼낸다. 자기가 입던 티셔츠 하나를 나한테 선물로 준다. 지금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선물이다. 이 붉은 I Love Vietnam 티셔츠는 정말 입고 다니기 부담스럽다. 전혀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받는다. 이 셔츠는 한국에서도 집에서 입으면서 오늘의 추억을 기억하고 싶다. 오래된 티셔츠라 목 부분이 다 늘어지고 헤졌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든다. 소중한 선물이다.


이번에 데이브가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라셸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어쩌다 영어 악센트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된다. 어릴때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영어를 할때 한국인 특유의 악센트가 있는게 싫었다. 완벽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 다니면서 생각이 바꼈다. 완벽한 미국식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좀 부담스럽다. 본인의 개성을 잃고 미국이라는 문화에 흡수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만의 억양을 가지고 싶다. 영어는 정말 다양하다. 인도식 영어, 프랑스식 영어, 남미식 영어, 영국식 영어, 스코티쉬 영어, 호주 영어, 그리고 뉴질랜드 영어까지 좀 다니다보니 살짝 구분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자기나라의 느낌을 살린 영어가 좋다. 그런데 한국식 영어는 뭘까? 반기문 총장님이 구사하는 영어일려나. 여튼 반드시 한국식 영어는 아닐지라도 나만의 영어를 갖고 싶다. 어차피 제 2외국어임을 잊지 말자.


다 씻고 내려간다. 나는 빨래를 다 가지고 내려간다. 2달라라 조금 비싸긴 하지만 지금 안하면 안된다. 그나저나 50일을 티셔츠 2장으로 버텼는데 남은 날이 일주일 정도 남은 지금 티셔츠가 두배인 4장이 되었다. 이건 또 무슨 조화지.


내려가서 조금 기다리니 한국분이 오신다. 이분 첫 여행이라 혹시 미아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래도 잘 찾아오셨다. 헌데 호헤이가 안보인다. 또 술 마시나. 여자 만났나. 데이브는 이런거에 눈치보고 그런거 없다. 그냥 가자고 하는데 내가 그래도 30분까지만 기다려보자고 한다. 사실 이 두분은 오늘 저녁 기차를 타고 사파로 떠나야해서 9시까지 돌아와야 하기에 시간이 아깝긴 하다. 이놈 어디간거냐.


호헤이를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이 투어 예약하는걸 본다. 우리 배가 엄청 좋은 배였나보다. 가격이 엄청나다. 록이 정말 좋은 가격을 준거 같다. 라셸과 눈빛을 교환한다. 하지만 지금 예약하는 사람들한테 얘기는 안해준다. 저건 바가지가 아니라 우리가 조금 싸게 한거다. 얘들도 이익을 내야 한다.


30분이다. 이제 더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근데 어디 간걸까? 뭐 다 큰 남자니 알아서 하겠지. 혹시 몰라서 프론트에 얘기를 해두고 내 번호까지 남긴다. 호헤이한테 메일도 하나 보내고 우리는 분차를 먹으러 출발한다. 데이브가 내가 먹는걸 본 후 계속 먹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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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내가 먹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그 집을 가본다. 근데 분차가 없다. 이런, 보아하니 분차는 점심에만 하고 저녁에는 안한다는거 같다. 이게 점심 메뉴였나?


어쩌지. 호텔로 돌아와서 고민하다 좀 멀지만 그 유명한 'Dac Kim 분차'집을 가기로 한다. 한국여성분은 좀 억울하겠다. 호텔이 그 앞이라 거기서 걸어오셨는데 다시 거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뭐 별 수 있나.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뭔가 마음이 급하다. 그래도 비아호이까지는 같이 먹고 말거다. 여행 중에 거의 처음인듯 싶은 속보로 이들을 끌고 간다. 그래도 한번 왔던 길이라 그런지 길은 수월하게 찾는다. 그리고 이제 길 찾는거는 정말 도가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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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걸어서 닷킴에 도착하니 다시 땀범벅이 됐다. 샤워는 왜 한걸까. 이곳은 유명 업소답게 4층까지인가 있는것 같다. 위로 올라가라고 하기에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와, 뭐가 이리 비쌀까. 내가 먹은 분차가 3만동이고 넴이 6천동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이곳은 분차가 6만동, 넴이 1.5만동이다. 두배가 넘는 가격이다. 록이 그냥 옆에서 먹으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하지만 그래봤자 3천원이니 사실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뭐 볼거 있나. 분차를 3개 주문한다. 맥주도 하나씩 주문한다.


조금 있다 나온 분차를 보고 아까 가격 보고 뭐라고 했음을 미안해한다. 내가 전에 먹은 분차로 만족했었는데 여기 분차를 보니 또 차원이 다르다. 수북한 고기와 리필할 수 있는 국물, 그리고 무제한으로 제공되는듯한 면, 모든게 퀄리티가 좋다. 고기에는 삼겹살까지 있다. 국물도 얼큰한게 왜 한국인들이 이곳에 미치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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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브가 먹으면서 베트남 와서 먹은 음식 중 최고라고 칭송한다. 그래도 내가 데리고 온 곳인데 다들 맛있게 먹으니 기분이 좋다. 라셸도 맛있게 먹고 한국 여성분은 정말 맛있게 드신다. 나도 배가 좀 고팠는지 정신 없이 먹는다. 여기는 꼭 와야 하는 곳이 맞았다.


면이 무제한이다 보니 정말 배가 터지게 먹었다. 어차피 다시 또 그쪽으로 돌아가야 하니 가는 길에 소화는 될거다. 각자 더치 페이를 하고 나온다. 라셸과 데이브도 같이 다니지만 항상 더치페이를 한다. 저런 문화가 이상해보일지 모르지만 이것도 배려를 위한 문화라고 본다.


올때는 급하게 왔지만 돌아갈때는 느긋하게 산책하듯이 간다. 데이브와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라셸과도 나누고 한국분과도 나눈다. 라셸이 길 건너는걸 어려워하기에 내가 배운 노하우를 좀 가르쳐준다. 사파에서는 사실 이런 상황이 많지는 않지만 한달동안 베트남에 있어야 하니 꼭 필요한 기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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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때의 그 광란의 비아호이 거리로 왔다. 아직 시간이 좀 이른지 그때 그 할머니 집은 빈자리가 좀 있다. 그 자리에 또 앉는다. 우리는 좀 익숙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한국분은 처음 보는 이 신천지에 그날의 나처럼 너무 신나하는게 보인다. 하긴 첫 여행이라고 했으니 그럴만 하다. 나도 이곳은 정말 즐겁다.


비아호이 4잔을 두고 얘기를 나눈다. 어쩌다 노트4 얘기가 나와서 나도 모르게 3D의 원리와 가상현실, 오큘러스 리프트, 기어VR 이런 얘기를 해준다. 여행와서 이런 얘기는 또 신선하다. 하지만 두분이 엄청난 관심을 갖는다. 데이브는 그림도 그리기에 노트4의 펜을 무척 마음에 들어한다. 한국분이 노트4를 가지고 있어서 필압기능 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 한국분은 이 펜을 꺼낸적이 없을거라고 얘기를 해주니 빵 터진다.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팬을 꺼내니 튜터링 메뉴가 뜬다. 헐, 정말로 한번도 쓴적이 없다니...


다른건 몰라도 VR은 이분들이 꼭 한번 경험했으면 좋겠다. 70이 넘은 데이브이기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달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라는걸 체험하게 해주고 싶다. 기어VR은 구하기 힘들수도 있기에 혹시 필요하면 나한테 얘기하면 내가 선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진심이다.


시간은 이럴때만 야속하게도 빨리 간다. 비아호이를 4잔 정도 마시니 데이브가 슬슬 일어난다. 아 벌써 갈때인가. 갑자기 먹먹해진다. 둘이 들어가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여행 다니면서 미얀마에서 두번 이후 세번째다. 왜 이리 정이 많이 든걸까.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내 앞으로의 미래를 진정으로 같이 고민해주고 친구 같이 어른 같이 함께 해줬던 분들이다. 절대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모두 다 개성이 있으니 그게 중요하다고 하며 대신 본인들의 인생을 보여주었다. 내 나이의 두배지만 이번 여행에서 진정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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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더니 안아준다. 한번씩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내가 노여사와 같이 뉴질랜드로 꼭 가겠다고 한다. 진짜 가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있을까? 70세이신 분이니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 여행지는 짝 사랑이지만 우정은 짝사랑이 아니다. 이 분들이 내 마음에 새겨진 만큼 나도 이들에게 새겨졌음을 느낀다.

세월이 주는 지혜는 무시 못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분들과 깊은 대화를 해보면 그 나이가 아니면 얻기 힘든 지혜들을 마주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런 분들과 친구로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정말 얻기 어려운 경험이다. 나이가 많은 장점이 많다며, 그 중 하나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데로 살면 된다던 데이브, 나와 친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맙다. 그 지혜를 지금 깨닫고 싶다.


떠나면서 데이브가 여기는 자기가 계산했다고 살짝 얘기해주고 간다. 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고맙다. 우리는 어쩔까 싶다가 그래도 이곳까지 왔으니 조금 더 있기로 한다. 호헤이 이놈이 바람을 놓는 바람에 여행 중 처음으로 여성과 단둘이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아호이에는 수많은 합석이 기다린다.


오늘은 태국 남정네 둘과 합석을 하게 된다. 영어는 안통하지만 또 손짓발짓 해가며 대화를 나눈다. 한명은 꽤나 잘 생겼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비아호이는 또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니 떨어졌다며 병맥주로 유도한다. 하지만 병맥주도 다른 곳보다 저렴하니 이것도 먹어주는게 예의긴 하다.


여기서 화장실을 갈려면 앞집의 클럽 같은 바를 가야 한다. 문제는 여기는 진짜 부비부비가 있는 클럽이다. 화장실을 가려면 그 사람들을 해치고 들어가야 한다. 이걸 그냥 갈 수가 없다. 뭔가 춤을 추면서 가야 하는 분위기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자신 없는게 춤이다. 젠장.


공안이 역시나 와서 안으로 몇번 피하고, 비가 와도 또 피한다. 그리고 또 마시고 얘기를 나누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다 보니 갈 시간이다.


한국분은 이 시간에 홀로 보내기 좀 그래서 데려다드리고 혼자 다시 걸어온다. 이분은 내일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떠나신다. 봐서 내일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한다. 우리 만나기 전까지 호텔에서 햇반과 김치를 먹었단다. 그래도 퍼는 한번 맥이고 보내야겠다.


하노이, 기억에 남을 도시다. 비아호이가 기억날거고, 사람들이 기억날거다. 하롱베이는 사실 그리 의미있지는 않았다. 사람들과 같이 다니는 관광은 피곤했으며 신경쓰여서 사진도 몇장 못 찍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유적지와 자연경관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내가 변화됨이 의미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변화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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