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베트남 남부 일주 - 03 Mui Ne 가는 길
월요일 일정은 사이공(호치민)을 떠나 모래언덕으로 유명한 어촌이자 휴양지, 무이네(Mui Ne)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벤탄시장을 다녀와서 사노바호텔 방으로 올라가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있자니, 리셥션에서 우리 여행사 직원과 드라이버가 와 있다고 인터폰으로 전달해 줍니다.
우리와 4박5일을 함께 할 드라이버를 주선해 준 여행사 직원은 SATS (Southern Airport Transportation Joint Stock Company) 라는 회사의 Mr. LE THE HUNG (http://sats.com.vn / thehung@sats.com.vn)
아마 카피앤패이스트를 하시는 건지, "With guideline “Your satisfaction, SATS constant care”, we have confidence in our service that it will bring the safety to customers." 라는 문장을 필요에 따라 중간에 단어만 살짝살짝 바꿔가며 수차례 이메일 교환을 하는 중에 넣어 주면서 신뢰를 주시고, 가격도 몇번의 협상 끝에 많이 인하해 주었고, 회사홈피를 둘러봐도 뭔가 플페셔널해 보이고, Mr. Le 의 영어실력도 완벽하신 것 같고... 등등, 여러 회사를 컨택한 끝에 이 회사를 우리의 여행 파트너로 결정.
무엇보다 이 곳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 가격에, 영어를 "fluently" 하시는 드라이버를 제공해 주시기로 한 점입니다. 현지 친구 K는 영어도 잘하는 운전기사분 구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라며 의아해 했지만, 제가 몇번이나 더블체크를 했기에 걱정하진 않았습니다.
로비에 내려가니 Mr.Le 가 깔끔해 보이는 맥도날드점원 스타일 회사 유니폼을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거 봐, 유니폼도 말끔하고, 남편이 깔쌈한 회사와 거래를 튼 거지-? 으쓱으쓱.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Mr.Le 라는 분, 젊고 잘생기고 싹싹하고 영어도 넘 잘하십니다. 이 사람이 직접 운전도 해서 우리와 함께 여행하는 줄 알고 순간적으로 정말 좋아했는데, 자기는 수금만 하러 온 것이고 기사분은 저 밖에 대기하고 있답니다.
호텔로비 대형 유리창 밖을 내다보니 순박하고 착해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아저씨가 선하면서도 수줍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재차, 저 분 영어도 잘하시는 거 맞죠? 했더니 Mr.Le, 완벽하게 영어 하시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약속했던 여행비용, 350불 중 절반인 175불을 선수금으로 받아서, 자기 삼실 빨 드가봐야 한다며 부리나케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기사분을 만나러 나가 봤더니...
이번 일정에서 가장 많이 연출된 장면입니다.
이 분, 영어가... 아예 안되십니다. 평소에 여행책자를 안 가지고 다니는데 (짐 되니까 필요한 정보만 메모해서 다님) 이상하게 이번엔 여행책을 가지고 오고 싶더라니... 필요한 게 있거나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책자를 찾아서 사진을 보여 드리거나, 맨 뒤에 "배워봅시다 베트남어" 를 뒤져서 해당 단어를 짚어 드렸었습니다.
차에 딱 타서 How are you doing? (영어 잘하신다고 그래서 괜히 뒤에 doing 붙여 봤음) 인사를 건네는데 대꾸 없이 그냥 앞만 보고 가십니다.
어, 이상하다, 인상 좋아보이는데 왜 대꾸를 안하시지? 까도남인가? 두세번 반복했다가, 아, 이거 뭔가 감이 와서, Good morning 하니까, 살짝 저를 돌아보면서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두 눈에 힘을 불끈 주시고는 힘겹게 한음절, 한음절, 굳. 모오. 닝. 해 주십니다.
허허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얘길하지 뭘 그렇게 끝까지 이 분 영어 기똥차게 잘한다고 거짓말을 했을까, 기분 나쁜 건 별로 없고 그냥 자신있게 허풍을 친 Mr.Le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웃음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사님, Mr. Khuong (쿠오 라고 읽음) 가 넘 성실하고 좋아보여서, 그리고 여행 내내 실제로 그렇게 해 주어서 오히려 점심값과 팁을 많이 챙겨 드렸습니다.
미스터 쿠오 이 양반 우리 부부보다 3살 어린 싱글입니다. 베트남 아가씨들 넘 이쁘고 날씬하시던데 어데 괜찮은 벹남 아가씨 없소. 일주일 다녀보니 넘 진국입디다. 우리보다 나이 어리니 우리를 형이랑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지만, 우리 영어도 콩글리쉬지만, 이건 여튼 이분께 넘 advanced 한 영어라서, 결국 포기.
자동차여행을 떠나기 전, 호치민의 친구 K가, 자동차로 베트남을 한바퀴 돈다는 것 쉽지 않을텐데, 걱정을 해 주어서, 우리가 스리랑카에서 안전벨트도 에어컨도 없는 사파리차 같은 걸 타고 전국을 돌아댕긴 몸이다, 그랬더니, 스리랑카 계셨다가 오신 분을 마침 아는데 그 분 말씀이 베트남이 더 고급(?)과정이라고 그러셨다나...?
일단 번화한 사이공 시내를 벗어나자 도로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사실이고, 아슬아슬하게 (적어도 우리 가족 관점에선 매우 위험해 보이는 행위...) 중앙선을 넘어서 추월을 한다든가, 길 한복판에 개나 소나 한가로이 앉아 있다든지, 아무 신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짐을 실은 달구지가 차량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가로질러 건넌다든가 하는 일이 그냥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도로사정은 세계테마기행 여행포기직전 버젼 찍을 뻔 했던 냐짱-달랏 코스에서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양심냉장고 발견! 트럭도 몰아제끼는 숨쉬는 인간내비, 아내가 한국에서 항상 지적하는, 트럭과 컨테이너 연결고리를 빼놓는 행태가 베트남에서도 동일한데, 걔 중 양심적으로 연결하고 달리시는 분 발견. 양심냉장고를... 아마 언젠간 사실 수 있게 돈 많이 버실 거에요~!
주전부리 식신 가족이 자동차여행을 하면서 입이 쉬고 있다는 건, 죄악.
미스터쿠오에게 한참을 설명한 끝에 슈퍼마켓에 잠깐 서자라는 걸 이해시켜 드렸습니다. 베트남 최대 유통 체인인, 꼬옵(COOP) 마트에 내려, 치토스 같은 스낵이 엄청 싸길래 신나게 줏어 담습니다. (한국 제품도 많은데 국내와 가격이 비슷. 상대적으로 이곳에선 꽤 비싼 편) 입점해 있는 롯데리아에서 토네이도 하나 사서 먹으며 갔음 콜인데, 깜박 잊고 지나쳤군요.
세계 어디를 가든 보이는 현대기아차 대리점이나 삼성, 엘지 제품은 이제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보편화되었지만, 베트남에선 변두리 가게 간판에서도 이런 한글 문구를 자주 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많은 아픔을 준 나라일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친구 K의 설명대로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이제 많이 남지 않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두터운 젊은 층 때문일 수도 있겠고, 제가 캐나다에서 만났던 베트남 사람들처럼 여기 국민들이 실익을 우선시하는 명민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점심 때가 되어가서, "미스터 쿠오, 런치, 런치, 짭짭, 짭짭, 스톱, 스톱, 오케이?" 해서 들어간 도로변 휴게소. 미스터 쿠오에게 점심값으로 2달러 쥐어 드리고 함께 차에서 내립니다.
아시아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기사님과 함께 다니면 보통 손님은 관광객들이 다니는 깔끔한 (하지만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싼) 식당에 내려주고 기사님 본인은 알아서 식사를 해결하는 시스템에 익숙한 우리 가족들은 그냥 로컬들을 대상으로 한 허름한 휴게소에 내려 주니 약간 당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월남에 왔으면 월남법을 따라야죠. 뭘 주문해 먹어얄지 난감하고 미스터 쿠오가 영어가 안되시니 도움도 구할 수 없지만, 어디 부딪혀 봅시다.
다행히 메뉴에 영어로 간단한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고기 쌀국수입니다. 아무리 먹어도 당최 정이 붙질 않는 이 고수풀(베트남어로 "너어-" 라고 한답니다)만 아니면 감칠맛 착착 감기는 국물이 정말 맛있습니다. 타이거맥주도 한국돈 천원 미만의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선 일본 조미료 아지노모토 제품이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고 하고 이마트 같은 데 가면 우리나라 미원도 한 섹션을 차지하고 쌓아놓고 있을만큼 조미료를 많이 쓴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지노모토가 우리 혀에 익숙하지 않으니, 아 국물맛 좋다! 라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화학조미료를 베트남 전역에서 엄청 쓰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니 참조하시길!
베트남식 바게트빵 샌드위치, 반미(Banh Mi)도 하나 시키고, 설탕시럽을 아끼지 않고 넣은 파인애플 쥬스도 하나 시켜 먹습니다. 파인애플 쥬스를 주문할 땐 어쩔 수 없이 영어로 주문을 하자 이쁘장하고 귀여운 카운터의 월남 아가씨 흠칫 놀라더니 곧 옆의 동료랑 깔깔대며 막 웃습니다. 그러면서, "유, 아이 싱크, 유, 비에트나미, 호호홍. (아저씨 베트남 사람인 줄 알았어요.)"
흐흐흐, 나도 지금은 베트남 사람이었으면 좋겠수, 우리 미스터 쿠오랑 수다나 좀 실컷 떨게-!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나 한참을 달리자 갑자기 바다가 확 펼쳐지며 그 바다에 자그마한 고깃배들이 마치 거인이 한웅쿰 쥐어다가 확 뿌려 놓은 듯 불규칙적인 대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장관이 눈에 가득이 들어옵니다.
싫지 않은 비릿한 바다, 생선 내음으로 넘치는 이 곳, 바로 Mui Ne의 어촌마을(Fishing Village)이군요. 오늘의 목적지, 무이네에, 호치민에서 4-5시간을 달려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