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여자 다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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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캄보디아 여자 다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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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린은 스물다섯 살 캄보디아 여자다.
캄보디아의 동쪽 도시 크라티에서 태어나 크라티에서 자랐다.
크라티는 캄보디아에서 제법 이름 있는 도시지만 돈 많은 나라에서 말하는 도시와는 차이가 있다.
크라티 시내에 있는 것은 우체국 하나, 학교 하나, 호텔 하나, 새로 들어선 게스트 하우스 몇 개, 시장, 그리고 건물 십여 채가 전부이다.
크라티는 분명 작고 초라한 도시이다. 그러나 크라티에는 다른 나라의 도시에는 없는 특별한 게 있다.
다른 도시는 갖고 싶어도 도저히 갖을 수 없는 것, 수억 달러로도 살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메콩강이다.
서쪽 아득히 먼 산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메콩강은 차가운 설산의 눈을 녹여 캄보디아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흘러 나른다.
메콩강은 캄보디아인에게 있어 단순한 하나의 자연물이 아니다. 메콩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수많은 마을과 도시가 강변에 모여 있다. 메콩강의 물로 그들은 농사를 짓고, 메콩강에서 그들은 고기를 낚으며, 메콩강에서 그들은 목욕을 한다.
그리고 메콩강을 통해 마을과 도시의 모든 쓰레기가 깨끗이 씻겨져 내려간다.
메콩강은 또한 그들의 삶의 충실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
강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고 강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며, 강과 함께 자라나서 강과 함께 늙어간다.




크라티의 메콩강은 더욱 특별하다
.
크라티 인근의 강 속에는 수없이 많은 물고기 중에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돌고래가 산다.
이른 아침과 석양 무렵, 강물 위에 빨갛게 깃든 노을 속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돌고래의 모습은 하나의 장관을 이룬다.
해마다 적지 않은 수의 관광객이 돌고래를 보기 위해 크라티를 방문한다.
관광객들이 뿌리고 간 달러는 크라티의 원동력이 되어 건물을 세우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관광객 덕에 은행까지 들어섰다.



다린은 오토바이 운전사이다
. 관광객을 뒤에 태우고 돌고래 보트 선착장도 가고, 사원의 산도 가고, 멋진 경관이 펼쳐져 있는 깊은 시골도 간다.
이년 전까지 그녀는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하루 열 두 시간, 저녁 손님이 많은 날은 열 세 시간을 일하고 한달에 고작 10달러를 받았다.
시장의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으려면 적어도 30센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작 10달러, 지나친 박봉이다.
그러나 그녀는 열심히 일했다. 1 6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한 댓가로 그녀는 소중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어이다.



캄보디아에서 영어는 곧 달러를 의미한다
. 영어만 할 수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아진다.
다린은 그동안 모아왔던 돈을 다 털어 오토바이를 샀다.
흔히 다른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한국에서 건너온 대림 중고 오토바이가 아니라 혼다의 새 오토바이를 천삼백 불에 샀다.
그리고 어쩌면 캄보디아 최초가 될 지도 모르는 여자 오토바이 운전기사가 되었다.



캄보디아의 성 관념은 매우 보수적이다
.
한국사회의 성 관념도 불과 2-30년 전까지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던 걸 생각하면 특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남자 손님을 태우고 때때로 등과 허리에 손님의 손길이 닿는 드라이버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분명 커다란 파격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감한 파격 끝에 다린은 월 250달러 가량을 버는 능력 있는 여자가 되었다.
보통 게스트하우스 레스토랑의 경력 많은 남자 주방장이 월 100달러 정도를 받는데 다린은 그들 보다 2.5배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다린의 집은 시내에서
2킬로쯤 떨어진 조용한 마을에 있다.
메콩강을 옆에 끼고 도열한 수많은 목조 다락집 중 하나가 다린의 집이다.
그녀의 집에는 지금 시집가서 이웃 도시에 살고 있는 언니가 생후 아홉 달 된 조카와 함께 잠시 머물고 있고,
이웃 마을 고등학교 교사로 있는 남동생이 휴가를 맞아 머물고 있으며,
직장 없이 언제나 골치를 아프게 하는 오빠가 언제나 그렇듯이 하는 일 없이 머물고 있다.
부모님은 함께 살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래 전에 이혼해서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일찌감치 떠났고 어머니는 멀리 남쪽 도시로 돈을 벌러 갔다.



캄보디아의 집은 모두 다락집이다
.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2-3m 쯤 되는 높이에 마루를 깔고 방을 꾸민다.
가난한 집에서는 대나무로 엉성하게 마루를 깔아 발밑으로 늪이 훤히 보인다(가난한 집일수록 늪 위에 집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꽤 괜찮게 지어진 집일 지라도 벽 틈새에 공간이 많아서 비가 오면 집 안으로 빗물이 들이닥치곤 한다.
다린의 집도 한쪽 벽면에 자꾸 빗물이 들이닥친다. 빗물이 들지 않는 천연소재로 집을 감싸고 싶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녀는 가족들 몰래 돈을 저축하고 있다.
때가 되면 그녀는 집을 대대적으로 손 볼 생각이다. 방수포재로 벽을 감싸고 여유 공간에 방을 두 개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집 뒤에 수세식 샤워실과 화장실도 만들 생각이다. 두 개의 방은 홈스테이를 경험하고 싶은 관광객들을 공간이다.
말하자면 다린은 홈스테이 형태의 게스트하우스를 만들 생각인 것이다.



다린은 욕심이 많은 여자다
. 계획하는 게 참 많다.
집의 증축 외에도 오토바이를 한 대 더 구입할 생각이며 경치 좋은 시골에 땅도 사놓을 계획이다.
욕심이 많으니 다린은 참 바쁘다. 자신의 계획을 이룰 돈을 빨리 모으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오토바이 운전기사라는 주업 외에 부업으로 돌고래 가이드도 하고 호텔 삐끼도 하고 시외버스표 발권대행도 한다.
다린의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다.


아침 6시 기상, 6 30분 집 안 밖 청소, 7시 요리 및 아침 식사, 8-9시 시외버스표 발권 및 인계, 9-13시 오전 관광객 오토바이 기사 및 돌고래 가이드, 1-2시 호텔 삐끼(다른 도시에 오는 시외버스가 이 때 도착하기 때문이다), 2-6시 오후 관광객 오토바이 기사 및 돌고래 가이드, 6시 귀가 후 집 안 밖 청소 및 샤워, 7시 요리 및 저녁 식사, 8-9시 영어 공부. 9시 취침


꽉 짜여진 하루의 스케줄이다. 숨을 돌릴 시간이 거의 없다.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요리,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도 해야 한다.
집에는 젊은 두 남자가 있지만 남자들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고
, 잡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TV를 보고, 정 할 게 없으면 낮잠을 잔다.
직장이라도 건실하면 그래도 낳으련만 오빠는 다린이 준 돈으로 기술학교에 들어갔다가 몇 달 만에 때려 치고
돌아와서 내내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놀기만 한다
.
씻는 것도 귀찮은지 샤워를 자주 하지 않아 몸에서는 냄새를 푹푹 풍기고 가끔씩 다린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간다.
남동생은 똘똘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제작년부터 인근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집안일에 대해서는 보편적인 캄보디아의 남자답게 철저히 무관심하다.
이런 가족이 다린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 가족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다.



, 이제 다린의 일기장을 훔쳐 볼 시간이다. 가상으로 나마 캄보디아 여자 다린의 속세계를 슬쩍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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