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아침
초보 배낭여행 12일째/11월 11일
이 이야기는 베트남에 처음 가는 초보 여행자의 이야기다.
모든 정보는 틀릴 수 있슴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화창하다.
오늘은 어제 미리 신카페에서 예약한 1일 메콩델타 투어를 떠난다.
출발은 바로 신 카페 여행사 앞이고 도착도 이곳으로 우리처럼 이동하며 숙소도 정하고 다니는
초보 여행자에겐 오히려 편리하다.
佳人이 베트남 배낭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는...
1. 아직 다리 힘이 있을 때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이란 우리의 일상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묘약이니까....
2. 환갑전에 처음으로 배낭 여행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자.
배낭여행이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고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보자.
3. 나이가 들어가며 식어가는 夫婦之愛를 여행을 통하여 리필해 보자.
결혼후 30년간 마눌님은 가정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살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어느정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
4.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베트남과의 관계를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 파병으로만 생각하는데
훨씬 이전에 맺어진 역사의 현장을 살펴보자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24일간의 일정으로 아래와 같이 여행을 계획하고 무작정 떠났다.
이곳 베트남은 우리나라와는 이미 고려 시대인 1.226년에 처음 관계를 맺는다.
최초의 베트남 보트 피플인 리 따이 또(李太祖)의 후손인 이용상이 베트남 리왕조의 멸망과 함께 식솔들을
이끌고 우리나라 웅진반도에 상륙함으로 역사에 기록을 남긴다.
그들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니 그들은 최초로 제대로 된 베트남 건국의 왕조인 리 왕조의 왕손들이다.
그러니 베트남 보트 피플은 월남전 때 남월남이 패망하며 바다로 탈출한 수많은 피난민 때 생긴게 아니고
훨씬 이전에 이미 고려로 피신한이용상이 보트 피플의 원조인 셈이다.
몽골의 침입에 그는 용감하게 앞장서 싸웠으며 고려의 임금은 그에게 화산군의 봉직을 하사했다.
그래서 그들이 화산 이씨가 되었다.
아직 우리나라 웅진땅에는 이때 이용상이 몽고군에 대항하기 위해 쌓았다는 베트남의 옛 이름인 안남국을
따서 만든 안남토성이 남아있고 그가 나라를 빼앗기고 고려로 망명하며 고향을 그리며 통곡하였다고 하는
월성암이라고 부르는 곳이 남아있다.
메콩델타 투어의 출발이 오전 8시 30분경으로 아침 일찍 6시에 일어나 주위를 산책하며 다닌다.
반미라는 베트남 빵...
바케트 빵을 반으로 자르고 그 사이에 고기와 야채와 드레싱을 넣어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는 빵....
여행자에겐 식사 대용으로는 그만이다.
그런데 가격은 같은 집이라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도 다르다. 물론 사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
그러니 그때 그때 달라요다.
이미 고려시대부터 우리는 베트남과의 관련을 맺고 400여년이 흐른 후 조선 숙종시대인 1.687년 24명의
제주도 어부들이 추자도 인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던중 안남국 회안(安南國 會安)
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게 된다.
안남국은 지금의 베트남이고 회안이란 바로 지금의 호이안의 옛 지명이다.
공원을 가로 질러 산책하는 사람들도 바라보고...
우리도 느릿 느릿 걷는다.
1일 투어 출발 시간이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아침은 활기차고 우리보다 일찍 시작된다.
태국과 같은 표준시를 쓰니까 우리 시간으로는 30분 일찍 해가 뜨고 지는 듯 하다.
그리고 낮이 더우니 그나마 선선할 때 움직이는게 나을 듯 하다.
호이안에서 순라선에 체포된 우리 조선의 어부들은 호이안 끄어다이 해변 앞에 있는 꾸라오 짬이라는 섬에
억류가 되었으며 이들은 호이안을 거쳐 당시에 이 지역 지방 정권이 있는 순화(順化)라는 곳으로 이송이
되었다.
순화란 바로 지금의 훼의 옛 지명을 말한다.
역사에는 이곳에 있는 왕에게 조선으로 돌려 보내 줄것을 간청했다고 했는데 아마도 지방 정권이 아닐까?
우리 부부는 이 이야기를 읽고 그래서 그곳을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역사를 알고 방문한다면 더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그곳을 방문하여 보며 느껴볼까 생각한다.
우리는 벤탄 시장을 돌아 다시 데땀 거리로 향했다.
그들이 우리보다 부지런하다고요?
날씨 탓이다.
낮에는 움직임이 다르다.
모든게 기후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정해지기 마련이다.
만약 베트남 사람들이 아침부터 우리처럼 종일 열심히 움직인다면 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되어 있었을게다.
단체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공원에서 에어로빅에 흠뻑 빠져 있는 사람들....
건강은 소중한 것이여~~
돌아오는 길에 두유를 파는 행상을 만났다.
佳人 : "우리 하나 사 먹을까?"
마눌 : "지둘려 봅시다."
여러사람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사 먹는다.
마눌 : "얼마예요~~"
행상 " 5.000동 짜리 지폐를 흔든다.
佳人 : "하나만 사서 맛이나 볼까?"
마눌 : 그냥 지켜만 보다가 지금 사진에 보이는 아가씨에게 살며시 "얼마예요?"
아가씨 : 행상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검지 하나를 얼른 올렸다 내린다.
마눌 : "오잉~ 1.000동(우리 돈으로 80원 정도)을 우리에게 5.000동을!!!!"
이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
외국인은 이곳에서 실정을 모르면 그냥 그렇게 바보가 된다.
그러나 그런 바보 같은 짓도 재미있는 여행의 일부다.
내외국인의 2중 가격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중국은 많이 없어졌지만 베트남은 아직도 입장료에서도 2중 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임선생은 우리가 불안했는지 제대로 출발하는지 확인까지 나오셨다.
외국에서 만나는 같은 배낭 여행자.....
이래서 아름다운 한국인이다.
그 분은 오늘 무이네로 떠나신다고 했다.
신 카페 앞에는 아침에 떠나는 투어 버스로 혼잡하다.
마이크를 들고 버스 행선지와 시간을 알려 준다.
여러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좁은 길을 메우고 섰다가 출발하면 다음 출발 버스가 또 들어오고.....
"이 버스표는 언제 어디서 타유~~" 확인하고 타는게 좋겠다.
그 건너편에는 베트남 지도처럼 날씬하고 뒤로 기다란 이상한 집이 있다.
사회주의의 평등과 분배가 만든 기형적인 집 모양이다.
드디어 우리가 타고 갈 미토와 벤쩨를 다녀올 버스가 도착했다.
영어로는 벤트레인데 왜 벤쩨야?
그렇게 물어보면 배째라~ 라고 할건가?
버스를 타면 물 한 병과 물 휴지 그리고 오징어 땅콩 같은 간식을 무료로 준다.
버스, 점심, 영어 가이드, 배삯, 모두 포함하여 165.000동, 우리돈으로 14.000원 정도....
예전 환율이라면 10.000원 정도였다.
자 이제 우리는 출발한다.
우리가 가는 코스는 까이베 빈롱(195.000동)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곳에도 차량이 여러대 출발한다.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그곳의 물가를 모르면 바가지는 당연하다.
그러나 그런 일도 여행의 한 부분이다.
이곳은 합법적으로 바가지를 팔지 않아도 외국인에게는 모두 바가지를 씌운다.
여행자는 바가지를 씌운다고 화 낼 필요도 없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그런게 그들의 삶이고 관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