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문묘(文廟)
이곳 하노이에도 공자님 모시는 문묘가 있다.
공자님이 더운 베트남 날씨에 어찌 지내시는지 만나봐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님~
날씨 좋은 우리나라에 계시지 왜 물도 나쁘고 공기도 탁하고 더운 이곳에 계슈?
같이 한국으로 가십시다.
佳人을 따라 가시겠단다.
다음에 이곳에 가시는 분들은 공자님이 佳人하고 한국으로 갔기 때문에 못 만난다.
여기가 정문 매표소이다.
佳人 : 10.000동 내밀며 손가락 두개를 편다.
매표원 : 힐끗 쳐다보며 두장 준다.
佳人 : "고마워요~~"
매표원 : 웃으며 "깜언~~~"
거래 끝
입장료 5.000동(450원)/1명
이제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여기가 들어가는 정문이다.
문묘문이라고 한자로 써 있으니 제대로 온 모양이다.
한국인에게는 아무렇게나 읽어도 된다고 특별히 공자님이 당부 하신다.
좌측에서 부터 읽으나 우측에서 부터 읽으나 한글로는 문묘문이라고 한다.
이제 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간다.
잘 꾸며진 잔디밭이 깔끔하다.
이곳은 국자감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옛날 베트남 최초의 국립대학과 함께 있다.
우리나라 성균관을 연상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성종때( 992년) 국자감이 세워졌으나 이곳은 조금 늦은 1075년에 세워졌다.
100.000동 지폐에 문묘와 국자감이 인쇄되어 있다.
위에 보이는 저 문을 통과하면 또 이런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가운데 문은 과거 합격자들만 출입했고 학생들은 좌우의 문으로 드나들었다고 할거지?
아니란다. 왕만 드나들었단다.
이곳은 다른곳 보다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베트남은 호치민 묘소나 동상 외에는 관리가 부실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문을 통과하면 바로 앞에 연못이 나타난다.
좌로 돌아도 되고 우로 돌아도 되니까 상관없다.
누가 시비걸지 않는다.
연못 좌 우로 이렇게 거북이 등위에 한문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는 반원 모양의 반지(半池)가 아니고 네모다.
공자님은 자신의 학식이 세상의 이치를 반도 모른다고 하여 반원의 연못을 만들었다는데...
그럼 佳人은 연못에서 튀는 물방울도 않된다는 말씀이유?
여기도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붓을 이 연못에서 씻었을까?
그러나 옛날 과거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거북이의 머리가 일정치 않고 높낮이가 다르다.
거북이의 코를 만지면 영험한 힘을 얻는지 모두 코가 까맣게 반질거린다.
"뭐가 보이시는가? 마눌님~"
3년마다 치뤄진 3년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북등 위의 비석에 적혀있다.
우리가 3.1독립 만세운동을 하던 1919년 까지 과거시험이 존속되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다.
이곳 연호인 <경흥 36년 을미과 진사 제명비>라고 된 비석이다.
오씨, 두씨, 반씨, 원씨, 황씨등 우리 성과도 같은 합격자 들이다.
가문의 영광이고 마을을 빛낸 꿈동이들의 이름....
마을 입구에 <경 축> "달수 아들, 덜수 진사과에 합격"이라고 하는 프랭카드도 붙였겠지?
그런데 가만히 이름을 보면 이곳 베트남을 지배한 왕조인 응우웬(院). 쩐(陳), 레(黎)씨등이 많이 보인다.
이거 혹시 짜고치는 고스톱 아녀?
이곳에서 베트남 학생들을 만났다.
콧잔등을 만지며 다니는게 아마도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이 아닐까?
그들은 이곳에 기록된 한자를 읽지 못한다.
외국인인 佳人도 읽는데....
사진을 찍어주었다.
합격을 기원하며......
그리고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지둘려라~
지금은 정리하느라 佳人도 엄청 바쁘다.
이곳에는 3년마다 치러진 과거에 급제한 사람 1302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연못 건너편에도 같은 규모로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이 돌 비석에 세겨져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공자님 사당이 있다.
佳人 : "공자님~ 佳人이 한국에서 왔수~~"
공자님 : 반갑다고 "신 짜오~~"한다. 같이 한국으로 갈 준비를 다 하셨단다.
佳人 : "비행기 표는?"
공자님 : "오~ 잉~~~? 그게 몬데?"
佳人 : "그럼 걸어 가실려구 했수? 그냥 계시우~~"
그렇다!!! 세상의 이치를 완벽히 마스트 하셨다는 공자님도 세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계셨다.
모름지기 공부란 마지막 숨을 들이 마시는 순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 마지막 들이마신 숨조차 다 내 뱉지 못하고 가는게 우리네 삶이 아니더냐?
봉황처럼 보이는 저 새는 베트남인들이 성물로 여기는 학이다.
밑에 거북이 콧잔등이 또 반질거린다,
학이 발로 누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 업고 있는 것이다,
서로 협조하는 의미다.
이 모양은 베트남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만세사표이신 공자님께서는 비행기 표를 모르셔서 그냥 그곳에 계시기로 하셨다.
그 뒤에 또 건물이 있다.
이곳은 학동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학식이 높은 분이 계시는 곳이다.
佳人 : "佳人은 그대가 뉘신지 모르오~~ 뉘시우~~"
그대 : "알아서 뭐 할라꼬~~"
佳人 : "그럼 관 두슈~~"
학문을 바르게 가르친다..... 뭐 그런 뜻이겠지 뭐....
베트남에는 석, 박사 위에 진사라고 있단다.
전국적으로 몇명 되지 않는 최고의 학식을 지닌 사람들이란다.
그외 사진 몇장 더 보자.
분재를 마당에 진열하여 놓았다.
분재로 장식된 사당 앞 뜰..
공자사당에서 뒷 건물로 들어가는 회랑에서 창틀 사이 좌우로 종루가 보인다..
이게 학교종인가?
과거에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나 방안 급제시 입었을듯...
1075년에 시험이 있기 전까지는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의 과거시험에 응시를 했단다.
그때까지가 이들은 중국의 지배를 1.000여년간이나 받았으니까....
기와의 모습이 마치 조개 문양이다.
지붕 끝에있는 잡상이 우리와는 다르다.
이곳에서 잠시 공자님과 대화를 했다.
佳人 : "공자님~ 오늘도 비 올까요?"
공자님 : "이곳 날씨는 나도 몰러~~
佳人 : "그럼 아시는게 뭐유?"
공자님 : "나 더위 먹고 오토바이 소리때문에 머리가 이상해 졌나봐~~"
그렇다.... 공자님도 오토바이 소리와 더위 먹으면 머리가 멍~~해 지신다.
제갈량은 언제쯤 동남풍이 부는지 알고 그 유명한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는데....
하긴 우리나라 기상대나 주가 예측하는 증권회사나.... 다 더위 먹었나 보다.
이곳의 화장실은 입구에서 들어가면 왼편 거북이 끝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있다.
1.000동 받는다.
문묘 내부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공자님도 세월의 흐름 앞에는 어쩔 수가 없다.
더운 곳에 오래 계셔도 더위 먹는다.
그런데 시원한 에어콘 밑에 근무하는 기상대 직원이나 증권회사 직원들은
왜 그러는게야? 그것도 엄청난 연봉을 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