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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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왓디 무앙타이(2)

이준용 1 954
- 갈아타기 -

해외여행에서 이미 내 몸이 우리 나라를 벗어났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은 현지에 도착하기 훨
씬 이전인 비행기 안에서부터이다.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내 몸을 맡긴 곳은 타이항공. 사실
우리 나라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은 왜 그리 비행기 삯이 비싼지 모르겠다. 나 참...
할아버지가 파는 떡이라도 싸야 사먹지... 아무튼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에 오르니 보이는 것
은 대부분 태국사람들.. 조종사는 당근 태국사람이고, 안내양도 태국사람들.. 까무잡잡한 피
부에 보라색 전통복장을 한 안내양의 모습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근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불편한 점도 꽤 있다. 일단 안내양하고 말이 안 통하는 것은 그렇
다 치더라도 기내방송도 안 들리는 것은 상당히 갑갑하다. 방송이래봐야 별 내용도 없지만,
이번 여행 자체가 무슨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관광이 아니라 우리 부부가 '지팔 지가 흔들어
야하는' 자유여행이라 안 그래도 불안한데... 다행이랄 것도 없지만, 1차 방송은 태국말로 하
고, 2차는 영어로 하니 그걸 어떻게든 들어보는 수 밖에... 그런데 내 영어듣기실력이란 것이
고등학생들이 하는 듣기평가에서조차도 반타작이 힘겨우니 무엇하나를 온전히 들을 수 있을
까? 역시 값이 괜히 싼 건 아니었다. 게다가 영양가 없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해서 온 신경
을 다 쓰며 방송에 귀를 기울이려니 머리가 다 띵했다. 하하!!

우리가 탄 비행기는 정각 6시에 출발했는데, 곧장 방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8시30분에는
타이페이에 잠깐 들러야 했다. 이런 걸 경유. 영어로는 Transit 또는 Transfer라고 한다. 내
려서 다시 갈아타야 하는데, 불편해서 그렇지 이 경우가 값은 당근 싸다. 문제는 버스 갈아
타는 것도 힘든 사람들이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비행기를 제대로 갈아탈 수 있겠느냐는
것. 이전의 두 번의 여행(베트남과 하와이)에서도 갈아타 본 경험은 없다. 괜히 타이페이가
최종 목적지인 사람들 따라서 [장날 똥지게 지고 장에 가듯] 따라 나서면 국제미아가 되는
데... 안 그래도 지금 귀머거리가 되어 답답한데 이런 바보같은 걱정까지 얹어서 하려니 삶
이 고단하다...

- 타이페이 -

이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흘러서 비행기는 타이페이의 [장개석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내려야 한다. 아이고 어이하나... 그러나 걱정은 잠깐. 비행기를 나오
자마자 문 앞에서 안내양들이 뱅콕!! 뱅콕!!을 외쳐대며 한자로 [승기증]이라고 쓴 표를 나눠
주며 한쪽으로 안내하는데, 정말 일부러 그러지 않고서야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기다리는
동안 위층으로 올라가니 흡연실, 급수대, 면세점이 있다. 물 한잔 마시고 담배를 쭉- 빨아들
이니 그간의 시름이 저 멀리 달아나는 것 같다.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니 창 밖으로 대북 시내를 바라보는데 고속도로처럼 넓고 곧은 길에
차들이 달리고 있다. 이정표가 한문으로 되어 있는 점이 우리와의 차이? 공항도 외관은 번
듯했으나 지은지 좀 오래되선지 여기저기 낡아있었다. 좀 전에 최신식으로 지어진 인천공항
을 보고 왔으니 이런 데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갈증도 나고 시간도 때울 겸 커피숍 같
은 곳에 들어갔다. 값이 1-4불 정도하는 과자들이 맛있게 생긴 모습으로 진열장 안에 앉아
있고, 그윽한 향의 차도 함께 파는 듯한데, 우리는 Sporite를 먹어봤다. 캔깡통인데 가격은 1
불. (비싸다! 1,310원..) 겉에 우리로 치면 [스포라이트]라 씌어졌을 자리에 한자로 [설벽]이라
씌어진 것 빼고, 맛은 당연히 똑같다.

- 다시 기내 -

지금까지 두시간 반동안 날아온 비행기는 앞으로 3시간 50분을 더 날아야 한다. 좁은 자리
에서 비비적거릴려니 이젠 확실히 좀 힘겹다. 좌석은 창가쪽이고 셋이 나란히 앉았는데, 창
가쪽은 아내, 통로쪽은 대만 아가씨다. 아까는 대만에서 사업한다는 한국아저씨였는데.. 비행
기를 갈아타니 좋은 점 한가지는 밥을 또 준다는 것. 아까도 한 그릇 깨끗하게 비웠는데..
원래 기내식이란게 맛대가리가 닷푼어치도 안되지만 갖다바친 돈이 아까와서 반드시 먹는
다. 허나 불과 3시간 간격으로 밥 두끼를 먹는다는 건 먹성 좋은 나에게도 약간의 고통이
수반된다. 하하!! 그래도 물론 먹었다.

왠만하면 이 대만아가씨랑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지금껏 계속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는지라 아무래도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곁눈으로 힐끔거리며 살펴볼 때, 눈이 큼지막해
서 좀 겁이 많게 생기긴 했으나, 매너는 참 좋다. 아까부터 내가 괜히 쓸데없이 좌석 위에
있는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고 넣고를 몇 번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비좁은 자리에서 상당
한 불편을 줬는데도, 그때마다 늘 웃는다. 하하..
한참을 기다렸더니 역시 기회는 온다. 먼저 중국인 맞냐고 하니까 역시 그렇다고 한다. 학생
이냐고 물어도 역시 그렇다는데, 그럼 고등학생이냐 대학생이냐를 물으니 좀 머뭇거린다. 내
가 초면에 너무 많은 걸 물었나? 음... 사실 나를 비롯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이런 거라고 한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당황스러울 질문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나이가 몇이냐? 결혼했냐? 애는 낳았냐? 월급은 얼마 받냐? 등등을
묻는 것이다. 이런 사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분명 금기이다. 하지만 궁금한걸 어떻게 하겠는
가? (정말 궁금한 것은 나이였지만 그건 차마...) 좀 머뭇거리더니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엥?.. 그럼 방콕엔 뭐하러 가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남자친구를 만난댄다. (어허!! 이 지지
배 좀 보게... 이 비행기가 방콕에 도착하면 정각 밤12시에서 10분이 빠지는데... 어허... 큰일
날 지지배로군.. 어허...)

- 드디어 방콕!! -

한참을 더 날던 비행기는 어느덧 방콕의 [돈무앙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허리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난다. 아이구 지겨워라... 비행시간도 지루했지만 나 같은 흡연
자는 몇 시간동안 담배를 못 피우고 참아야 하는 것도 상당한 고역이다. 빨랑 나가서 한 대
피워야지...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내 맘 같은가? 입국심사대엔 방금 비행기에서 쏟아져 나
온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태국 정부는 다른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 달간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지만,
유독 우리 나라 사람에 한해서는 90일 동안 가능하게 해 준다. 쉽게 말해 입국허가서 없이
도 한번 들어와선 석달 동안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국심사라고 해
봐야 형식적이고 사실 태국보다 잘 사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로서도 수상한
눈으로 볼 까닭이 없다. 자기네 나라에 와서 돈을 쓰고 가겠다는데... 뭐..

입국심사 시간은 1-2분 남짓. 하지만 기다린 시간이 58-9분은 족히 되었기 때문에 공항을
빠져 나오니 새벽1시였다. 외국여행을 할 때면 사실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오랜 비행의
피로에서 벗어난 해방감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까지.. 때 마
침 불어오는 열대의 바람은 가벼운 복장의 여행자로 하여금 마음까지도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준다. 자.. 이제 시작이다...

사족:
1) 아무리 외국 비행기라고 해도 한국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경우에는 내가 너무 조급해
해서 그렇지 좀 기다리니까 한국어 방송을 한다. 오해가 없기를...
2) 태국 정부가 허가하는 무비자 관광기간이 올해부터는 종전의 90일에서 30일로 줄어들었
다. 물론 29일간 지내다가 캄보디아 같은 옆 나라에 잠깐 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다시 처
음부터 30일이 계산된다.
3) 당연히 우리 나라에서 들어오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이중적인 잣대는 적용될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야 입국심사고 뭐고 대충해서 들여
보낼테지만,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이런데서 오는 사람들은 고생 좀 해야 할 것이다. 특
히 9.11 미국테러 직후엔 중동권 사람들이 우리 나라 공항에서 거의 불필요할 만큼의 철
저한 조사를 받아 신문에도 나고 문제가 되었는데... 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비
롯된 결과였다.
1 Comments
kks 1970.01.01 09:00  
아시아나 나 칼도 태국에서 티켓팅을 할경우 타이항공 보다 쌉니다. 원래 어느나라나 자국 기는 비싸게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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