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여행6- 후에왕릉매표소에서 10만동지폐가 1만동(?)으로 바뀌다
베트남여행6- 고도 후에의 왕릉에서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다!
1월 16일(화) 하노이공항- 후에- 왕릉- 다이노이왕궁- 시내
새벽 4시30분에 예약한 택시가 와서 하노이 탕롱 거리의 프린스호텔에서 공항으로 향하는데 벌써 새벽시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붐빈다. 또 다른 새벽시장에서도...
이 사람들이 이리도 부지런하니 곧 우리를 따라 잡을런지도 모른다
노이바이 공항 Noi Bai Airport 에 도착해 수속을 한후 06시 30분 베트남항공기가 이륙하는데 손님의 95%는 외국인이다. 특히 서양관광객이 절대 다수이다!!
공항에서 택시( 미터기 요금이 22만동으로 미터기를 조작한 것 같다!! 한국돈 1만3천원으로 바가지 요금이다,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로...
투언호아 THUAN HOA HOTEL ( 공항버스도착지 35 $, 70실 ) 에 이르니 방이 많이 비어 있는지 아침인데도 객실을 내 주어 더블이 30$에 1박을 하기로 한다.
이 도시는 시골냄새가 풍기는데 호치민이나 하노이에 비하면 한산하기가 그지 없다. 그런만큼 푸근한 느낌이 들면서 잠시 마음의 긴장을 풀게도 된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 내리면서 안으로 계속 들어가는데, 꽃이며 나무로 조경한 모습이며 특히 연못에 걸린 다리는 일품이다.
연못 주위에 쌓은
전체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안정된 모습인데, 우리나라의 왕릉과는 그 규모나 화려함에서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직 프랑스에 망하기 전, 황제의 실권이 있을 때라 왕릉의 규모가 큰 모양이다.
죽은자에 대한 문화의 차이
일까? 우리 임금님은 죽어서 거대한 왕릉을 짓지 않아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으셨으니 자애롭다(?)고 해야 하는 걸까?
다시 강을 건너와 카이딘황제릉에 이르니 여기도 5만5천동이라 비싸다. “황제”라고 불리는 것은 우리네 ”고종황제“와 같은 식이다.
두나라 모두 망해가는 와중에서,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원구단을 세우고 황제를 칭”했는데 실속은 없이 겉만 번지르 했다는 점도 닮았다. 새로운 상전인 일본(프랑스)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4명이니까 모두 22만동이라 우선 10만동 지폐 2장을 건네고 나머지 2만동을 잔돈으로 줄까? 아니면 10만동을 주고 거스럼 돈을 받을까? 잠시 주저한다.
그 사이 여직원이 뭐라고 하는데 불필요한 말이다. 2만동을 주니 아가씨가 다시 뭐라고 하는데 보니 손에 10만동 지폐 한 장만 들고 있는게 아닌가?
귀신이 곡할 일이다!!! 아니면 내가 원래 10만동 지폐 한 장 밖에 안준 걸까? 나중에 호텔에서 결산을 해보니 10만동지폐 한 장(6천원)이 모자란다!
조금후에 왕궁의 미술관에서도 10만동 지폐를 건네고 잔돈을 기다리는데 여직원이 뭐라기에 보니 1만동 지폐를 쥐고 있는게 아닌가?
원래 10만동은 초록색이고 1만동은 붉은색이라 다른데, 이 1만동은 특이하게도 푸른색으로 크기가 조금 작을 뿐이다.
이곳에서 바꿔치기 한걸까? 아니면 그전에 박물관에서 10만동을 냈더니 잔돈이 없다고 돌려 받았는 데, 그때 바꿔치기 당한걸까? 아무튼 5천여원을 손해봤는데...
상거래에서는 긴장하여 잘 살피는 데, 설마 박물관에서야.. 싶어 마음을 놓았던게 실수이다.
우선 손에 든 “지폐를 확인한 다음, 표(물건)를 받고 돈은 마지막으로 주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월급이 너무 적으므로 돈에 눈이 먼 직원들이 간혹 있는 모양이다.
카이딘은 프랑스풍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밖에 없는데, 높은 언덕에 계단을 내는 식으로 지어졌다. 실제로도 이 때는 베트남은 프랑스 보호령이었으니...
돌에다 시멘트를 입힌 것이 선배님에게는 무게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져 탐탁치 않으신 모양이다.
본전에는 도자기를 구워 치장한 것이나 자개며 돌을 박아 세공한 것이 무척이나 섬세하고 아름다우나, 전체적으로는 베트남 고유의 양식이 아니라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마치 덕수궁에 석조전을 보는 듯 하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궁벽한 시골길 인데도 초등학생 조차도 걷는 애가 없다. 오토바이 아니면 자전거인데 비가오니 우비를 덮어쓰고도 잘도 달린다.
그러니까 비가 온다고 우산 들고도 모자라 뛰면서 대충대충 보는 우리 한국인과는 자세부터 다르네!!!!
우선 구비구비 큰 연못에 견고한 석축을 쌓은 것이 해자를 방불케 하는데, 황제가 진시황처럼 생전에 자신의 무덤을 축조하면서 별궁을 겸하여 지어므로써 생전과 사후 두가지 성격을 띄는데 연못의 뱃놀이는 경주 안압지를 연상하게 한다.
거목으로 둘러 쌓인 거대한 규모라 산책하기에는 그저그만인 곳이다.
점심은 “분보후에”를 먹겠다고 했더니 길가의 흐름한 국수집에 차를 세웠는데 퍼보다는 확실히 면발이 가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하고 값도 500원 정도로 싸다.
아무래도 어슬퍼서 아니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 역시나 그 이름난
그냥 분보후에를 파는 식당이니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어렵구나....나의홈페이지 : cafe.daum.net/baik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