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왓디 무앙타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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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싸왓디 무앙타이(1)

이준용 2 984
- 시작하며 -

지난 12월29일의 아침.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그간 두어번에 걸쳐 눈발이 스치듯 흩날렸다만, 그건 입맛만 버린 꼴
이니 사실상의 첫 눈이 온 셈이다. 출근길을 나서보니 도로는 이미 눈썰매장이 되어 있다.
오늘은 지난 1년간 꿈속에서 그려왔던 여행을 떠나는 날인데...
호사다마라고.. 괜한 불청객 때문에 지난 1년간 그려왔던 꿈들이 늦여름에 늙은 호박이 갈라
지듯 박살날까 두려워지면서 운전대를 잡은 손마디가 가볍게 떨려온다. 나중에는 다리까지
덜덜덜... (이렇게 소심해서야...)
조심.. 조심에.. 또 조심...
시속 30킬로나 될까말까 하는 거북이 운전으로 내게 배정된 마지막 보충수업의 날을 시작했
다.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 수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원래 1-3-4교시
였던 수업을 다른 선생님께 특별히 아쉬운 소리 안 하면서 1-2-3으로 바꾸는 작은 행운마
저 따라주니 기분은 날아갈 듯 하다.
1교시 수업이야 그럭저럭 열심히 했지만, 2교시 중간부터는 슬슬 내 맘이 교실을 떠나더니,
3교시가 됐을 때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가슴은 달 없는 밤에 물레방아간으로 남정네 만나러 나가는 처녀마냥 콩닥콩닥 뛰는데, 그
렇다고 곧 고3이 된다는 중압감에 토평리 칼바람을 맞으며 출석해 준 학생들한테 선생이란
자가 해외여행 땜에 맴이 들떠서 수업을 못하겠으니 니들끼리 자율학습을 하라고 명할 수도
없고... 허허...

- 여행 예찬 -

결국 여행 얘기를 하고 말았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애들에게 비춰지는 내 모습이 흡사
돈 많은 척 뽐내는 추악한 모습으로 또는 교육과는 하등 무관한 사적인 수다 나부랭이나 지
껄여대는 하찮은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런 점
이 조금은 염려스럽다....)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던 석가모니가 권력과 부를 모두 내던지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하여 결국 해탈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을 계기로 한 것이다. 궁전 안
에서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지냈던 그에게 궁전 밖의 사람들이 병들고 허기진 채로 죽어가
는 모습은 진정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필이면 전세계에서 10억이 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완벽한 하나의 모델로 추앙받는 분을
예로 들다보니 너무 거창해졌는데, 그냥 사소하게 얘기하더라도 [여행]이 주는 감동과 교훈
들은 너무나 많다. 오죽하면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되고 싶을까?
나는 이 글을 읽는 나의 제자들만이라도 앞으로의 대학생활에서 한 두번쯤은 괴나리봇짐 울
러메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기를 바란다. 내 스스로가 그래보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아쉽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과연 그럴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대학 1-2학년 때는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를 마련했
었다. 그렇다고 3-4학년 때는 형편이 좋았느냐? 그때는 학교에서 융자받았다. 내가 졸업한
한국교원대는 등록금이 다른 대학의 1/3도 안되었지만 그나마도 내가 벌지 않으면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므로 [가난]이 무엇
인지를 절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원래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닌데... 또 옆길로 샜
군...)
수능 끝나면서부터 많은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찾아나서고 그들 중에 운이 좋은 몇몇은 일
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월급을 받은 후의 모습들은 어떤가? 거의 모든 경우에 그 돈
을 쓰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간다. 특히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고 싶어서들 안달을 한다. 물
론 돈을 버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이다. 사실 돈 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몇몇 유명
한 할아버지들의 모습이 그려진 종이 쪼가리일 뿐... 따라서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쓰던 그
것은 완전히 각자의 자유이며, 내가 비난할 일은 전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좀 더 침착하게 자제할 수 있는 인내력의 부족함이다. 당장 돌다리로 뛰
쳐나가서 그 날로 다 뽕빨내기보다 저축했다가 나중에 배낭여행이라도 나서봄은 어떨까싶
다. 그런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저축하는 습관도 길러지니 좀 좋은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
라면 돈이 없어서 못 한다고 얘기하기 보단 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 길 떠나기 -

오후 6시 방콕행 비행기를 타려면 적어도 4시까진 인천공항에 가야하고, 공항까지의 이동시
간을 최소 2시간만 잡아도 2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왜 이리 쓸데없이 분주한지 모르겠다. 집
으로 오는 길엔 아예 폭설이 쏟아져서 버스를 타는 바람에 시간이 더 걸렸는데 잠깐 거울을
보니 몇 올 남지도 않은 머리털은 까치가 아쉬운 대로 집을 지어도 괜찮을 지경.. 결국 미장
원에 가서 아까운 시간을 또 낭비하고 있는데 마음은 너무나 조급해진다. 헤어아티스트 박
준이나 되는 듯이 온갖 정성을 들인 그러나 원치 않는 서비스를 받고 집에 오니 아내는 모
든 준비를 마치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청량리역 광장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는데, 눈발은 더욱 굵어진다. [Airport
Limousine]을 처음 타보는 아내에게 차비 만원짜리 버스가 얼마나 좋은지를 설명해 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냥 일반버스고 차비는 5,500원이다. 조금 실망.. 아쉽지만 그냥 탈 수
밖에...
영종대교에 올라서자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데 버스가 날아갈 것만 같다. 와.. 진짜 그
런 바람은 처음.. 우스운 것은 겨울에 더운 나라로 여행을 가려면 겨울옷은 가방에 넣어 끌
고 다니거나 아니면 보관료를 내고 공항 사물함에 둬야 하는데, 하나는 귀찮고 다른 하나는
하루에 3천원하는 보관료가 아까워 결국 우리 부부는 여름옷차림으로 여행을 가고 있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눈보라 치는 허허벌판에서 반팔 티셔츠 입고 개떨듯 떨면서도 연신 좋다
고 헤헤거리는 모습들을...
인천국제공항은 그 자체로도 볼거리였다. 건설 당시에는 부실공사니 뭐니 해서 가끔 매스컴
에도 오르내리고, 일본의 칸사이국제공항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비웃음거리가 되기
도 했는데, 막상 내 눈에 비친 모습은 무지 넓고 깨끗하다는 거. 다른 나라에 이렇게 좋은
공항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사족:
1) 석가모니 시대의 인도는 지금처럼 통일국가가 아니었으며, 수백개의 왕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중 한 왕국의 왕자였음.
2) 불교가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불교
신자는 부처님을 믿지 않으며, 수행과 공양을 통해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시
때마다 불상 앞에서 두 손 모아 자식을 위해 비는 행동은 비록 그 마음은 갸륵하나 스스로
무식함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이다. 차라리 그럴바엔 예배당의 새벽기도 쪽을 알아보는게...
3) 석가모니는 불교의 여러 부처님들 가운데 한 분임.
4) 우리 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것은 1989년. 즉, 이때부터 돈만 있으면 개나 소나
국제선을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생님이 대학1학년 때인 87년에는 어땠느냐? 정부의 허가
를 받아야 했다. 즉, 정부에서 여행자 한명 한명과 일일이 상담도 해주고 여행국가/기간/목
적 등을 세심히 살펴봐 주고,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만 허락(?)해줬다. 옛날에는 정
부관리들이 꽤 한가했던 모양...
2 Comments
kks 1970.01.01 09:00  
85년에 처음으로 미국 갈때 단수 여권 갖고 인터뷰 한 생각이 나네요. 다음 이야기 기대 되네요.
하나 1970.01.01 09:00  
기대가 되네염~~^^ 선생님!! 화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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