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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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Story - 에필로그

Moon 15 2654

작년의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남부 지방에 이어 올 여름 휴가로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지방을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베트남에 숨겨 놓은 여자가 있거나, 아니면 노총각이 최후의 발악으로 선 보러 가는 거 아니냐고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작년 여행에서 특별나게 좋았던 기억이 남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묵직한 것으로 뒷통수를 맞았을 때의 충격 만큼이나 크게 기억에 남는 부분도 없는 것 같다. 올해는 어쩌면 불과 몇 년 안되는 짧은 내 여행기록들중 가장 최악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어땠어?"라고 묻는 질문 앞에서는 "좋았어"라고 주저없이 대답하게 된다. 어쩌면 떠나기 전보다, 여행일 때보다, 훨씬 더 베트남에 대한 그리움이 쌓이는 걸 보면 그 대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모르겠다. 고작 일주일 남짓 있으면서 현지인보다 더 까맣게 탄 피부가 이제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이 허물과 더불어 추억마저 같이 날아갈까 싶어 두서없이 서둘러 밀린 숙제를 마치듯 여행기를 마쳐야겠다는 생각도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 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전혀 관심도 없었고 굳이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그네들의 고단했던 역사에 대해 돌아본다. 오랜동안 중국의 간섭에 시달려 왔고 근대사에서는 프랑스의 통치를 받은 데 이은 일본의 침략, 미국과 연합국의 이해할 수 없는 침략전쟁 그리고 최근까지도 불거졌던 중국과의 국경 전쟁 등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꿋꿋이 견뎌온 그들의 삶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와 존경을 넘어선 경외의 마음이 생긴다.

고단한 그네들의 삶이었기에 그들은 좀 더 강하게 그들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었고, 마음의 문을 열기에는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의 깊이 만큼 희석시킬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본다.

깊이 동감하게 한, 먼저 베트남을 경험한 친구의 표현을 빌면,
"마치 일본소설 `로코코 거리`의
이상한 거리에 빠져들어 잠시 들어갔다 온 느낌이 든다
알수없는 후덥지근함
알 수없는 친밀스러움과 교태스러움
각종 순수와 타락이 교차되는 곳
그 희안한 매력에 빠져 다시 가고프게 만드는 나라
굳이 오라고 손짓하지도
굳이 다시 오라고 청소해 놓지도 않는
그 알 수 없는 프라이드

조금 슬펐던 것은 외국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자본주의 시장을 개방한 사회주의의 이제 막 발돋움하는 단계의
돈에 대한 그들의 욕구....같은 것... 눈에 보인것...
조금은 막무가내이고
조금은 이해할 수없지만

그것또한
여러가지 모든것과의 이상한 형태의 믹스로
이나라를 묘하게 매력있게 만들고 있다..."

이번 여행 내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일은 누군가를 이유없이 계속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나를 내 안에 가둬두었으니 호의를 호의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그네들을 이해함은 방치한 채, 내 잣대로만 그들을 재단하려 하였기에 힘들었지 않았나 싶다. 내게 익숙한 시스템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차이를 인정 못 하고 강요하였기에 오히려 내 선입견으로 인해 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마치 오래된 사진첩에서 뽑아든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투박하고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마치 지금의 내 나이또래의 아버지 시대로 회귀한 것 같은 푸근함을 전해준 베트남은 나와 같이 고향이 없이 도시에서 자라난 세대들에게는 마치 고향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른 새벽임에도 길을 가득 매운 사람들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난 날의 고단스러움을 보상받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보았다. 이제는 낡은 고집스러움은 벗고 좀 더 솔직한 마음으로 가슴의 빗장을 푼다면, 왜곡된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지금보다 멀리 할 수 있다면 그 시간은 더 빨리 다가오리라.

불현듯, 어린 날 짝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어찌 보면 짝사랑이라는 것이 상대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느 날 속절없이 상대방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그 사람에게 종속되어 속앓이 하며 무작정 해바라기 하면서도, 내 마음을 들킬까봐 두려워 하면서도, 혹 바람결에라도 내 마음이 상대방에 전해지기를 바라며 혼자 조바심 내던 나날들에 대한 추억. 지나고 보면 왜 그 때 그 사람을 좋아했는 지는 깜깜한데 그 사람을 좋아했던 진실만은 남아 있는 것처럼, 이 번 베트남 여행은 그렇게 내게 남을 것 같다. 밀린 숙제의 해답을 생뚱맞은 짝사랑의 간지러움을 빌어 대신 대답한다.

갑자기 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사파의 가이드를 맡아주었던 Sou와 Mocs, 옷 사라며 끈질기게 따라 붙던 몽족 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옷 하나 팔아줄 걸 하는 후회도 함께 든다. 그리고 억울한 마음을 가라 앉히며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얼굴 붉혔던 호텔 직원의 얼굴도, 유쾌하고 발랄했던 Emperor 식당의 여종업원도,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화사해 내 안에 들어왔던 함종산의 무희도, 갓빠의 쌀국수집 아줌마도, 하롱베이에서의 수다스러웠던 베트남 아줌마도 모두 모두 떠오르며 갑자기 마음 속이 환해지는 것 같다.

끝으로, 이 번 여행에서도 배려없이 생각없이 말하고 생각없이 행동하여 짜증이 났을 법도 하였지만 묵묵히 곁을 지켜준 나의 오랜 친구이자 여행동지인, 김군에게 존경을 표하며 감사의 말로 두서없는 여행기를 접을까 한다.

"이번 여행도 함께 해줘서 고맙고,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 둘의 밀월여행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끝내자, 내년에는 모두 장가 가서 다시는 함께 붙어다니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

15 Comments
Moon 2005.07.28 20:23  
  <a href=http://www.cyworld.com/joysunrise target=_blank>http://www.cyworld.com/joysunrise </a>
여행동안의 베트남 사진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 2005.07.29 17:44  
  오랜만의 베트남 여행기라 반가웠어요.님의 싸이에 있는 괜찬은 여행사진 몇장 좀 올려주시지요*^^*
악소리나는핸썸보이 2005.07.29 20:09  
  잘보았습니다...
서기 2005.07.29 23:12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글솜씨도 좋으세요.^^
조만간 베트남에 갈 예정인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항공권 제외하고 비용이 얼마나 들었나요?
ratladep 2005.07.29 23:15  
  10년 전 모습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요. 동남아시아인 중 가장 우리랑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같은 한자와 유교문화권이라 그런지  재작년에 호치민에서 나짱까지는 다시 가 봤는데 하노이쪽은 아직 못 가 봤네요. 언제 다시 가서 만날 수 있으련지...덕분에 북쪽 변한 모습 잘 보았습니다.
Moon 2005.07.30 06:44  
  항공권 제외하고, 경비는 250USD 정도 지출하였습니다. 물론 일행이 있기 때문에 조금 절약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잘 먹고 돌아다녀서 '앵겔지수'가 높은 여행이었습니다  ^^;

허접한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모두들 즐거운 여행들 되세요~
2005.07.31 20:05  
  지금 하노이..항베 거리..A*Z cafe.입니다...오늘 호아루, 땀꼭투어 갔는데..호아루까진 대충 봤는데.폭풍우 땜시 배가 뜰수 없다고 해서..그냥 되돌아왔습니다... 대신..민속박물관 안내해주더군요.
내일모레 하롱베이 1박2일 투어 , 그리고 바로 사파투어갈예정입니다...님처럼..같은 코스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사파 다녀와서..땀꼭 다시 가볼려구요
Moon 2005.08.01 08:49  
  에궁... 그런 일이... 땀꼭 다시 한 번 들르시길 바라고요, 하롱베이, 사파에서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고 오세요.

저는 요즘 휴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너무 일찍 간 휴가탓에 남들 짐싸는 거 보니까 부럽기가 그지 없네요.
사바이디 2005.08.02 17:26  
  재밌는글 잘봤읍니다..싸이 사진도..감사
낭구 2005.08.08 13:31  
  사파 가이드가 Sou였었는데....동글동글하게 귀엽게 생긴....
Moon 2005.08.09 00:14  
  낭구님, 혹시 위의 Sou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다면 정말 반가운데요... 정말 유쾌한 가이드였어요.
나니 2005.08.17 15:35  
  잘 봤습니다...재밌었어요....
tangilove 2006.02.07 22:14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ham땡크 2006.07.06 15:01  
  좌충우돌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여행담을 잘 정리 하셨군요.나 역시 남부를 두번 자전거 배낭 여행을 보름씩했는데 공감이 많이 갑니다. 마음속에 여행 보따리를 아직 풀지못하고 있네요. 북부여행을 올해 하고 많은 이들에게 아미추어 여행기를 나누려 합니다.  잘 읽었네요
sylvia 2006.10.01 15:15  
  남부 여행기 북부 여행기 모두 잘 읽었어요. 글을 잘 쓰셔서 빨려들듯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두 읽었습니다. 이번 겨울에 베트남 여행 가는데 더 큰 설레임을 안겨주시네요~ 베트남에 대한 좋은 정보 그리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시간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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