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사파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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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Story - 사파 돌아보기

Moon 0 2884
"드르륵~ 드르륵~" 요란한 모터 돌아가는 소리에 눈을 떳다. 내 시계는 베트남 온 지 이틀만에 습기가 차더니 끝내 자신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며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김군은 로밍도 안한 채 휴대폰을 시계 대신 쓸 거라고 가져왔으니 숫자 없는 LCD창이 삭막하기 그지 없다. 둘 다 여행하면서 시계 없이 돌아다녔다. 대신 우리는 시계가 필요하면 김군의 커다란 디카를 켜서 2시간을 더하거나 빼면서 현지시간과 우리나라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새벽 6시. 밤새 비가 내리는 것 같더니만, 바깥은 벌써 환하다. 창문을 여니 호텔 옆에서 인부들이 건축자재로 쓰기 위해 큰 돌들을 부수어 작은 돌을 만들고 있다. 식전 댓바람부터 이 어인 일인가. 여행을 하며 느끼는 거지만 베트남 사람들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싶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랫마을을 보니 구름이 한 가득 산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해발 1600m인 고산마을이 아니면 어디 방에 앉아서 발 아래 펼쳐진 산과 구름을 볼 수 있을까. 알럽 사파.

김군이나 나나 잠자리에서 한 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5분만, 10분만 하며 뒹굴기 선수들이니 얼마나 좋은가. 무려 1시간을 뒹굴 수 있다니... 복잡하고 늘 바쁜 서울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 아니던가. 오른쪽으로 뒹굴 왼쪽으로 뒹굴, 일부러 뒹굴거리다 되려 잠이 달아나버렸다.

오늘 아침밥은 무엇일까, 서울에 있을 때는 으레 아침밥은 생략이었는데, 베트남에 온 뒤로는 아침은 무얼 먹을까 기대가 앞선다. 아침부터 쌀국수 + 커피를 먹기는 좀 그랬지만 그래도 빵보다는 훨씬 나았다.

오늘 투어는 Lao Chai 마을과 Ta Phin마을 종일 코스로 9시부터 시작이다. 9시가 가까워지는데 기다리는 Sou는 오질 않고, 바깥에 가이드로 보이는 몽족 아가씨가 벌써부터 와서 관광객을 기다린다. '어떤 관광객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약속 좀 잘 지키지, 시골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9시가 넘어섰는데도 Sou가 안 나타나 프론트로 가자 호텔 직원이 오늘은 Sou가 아퍼서 대신 다른 사람이 왔단다. Sou는 작년에 애가 죽어서 그 뒤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설명을 보태준다. 어제 보니 상당히 밝았는데, 그 웃음 뒤에 그런 아픔이 있었구나. 한참 전부터 밖에서 기다리던 그 처자가 바로 오늘 우리의 가이드였다. 자신을 Mocs 라고 밝히며 먼저 손을 힘차게 내민다. 어제 Sou랑 정도 들었는데 아쉬운 생각도 드는 반면에 씩씩한 모습의 Mocs도 신뢰감을 안겨 준다.

Lao Chai까지 거리는 13km 란다. "지프차 타고 가?" "아니" "그럼 모토 타고 가?" "아니" "그럼 뭐 타고 가?" "걸어가". 군대 제대하고 회사 산악회에서 등산간 거 빼고는 걸어본 기억이 없다. 어제 3km 떨어진 깟깟마을 갔을 때도 다리가 후들 후들 거렸는데, 잠시 스치는 걱정 앞에, Mocs가 자기 집은 여기서 15km나 떨어져 있단다. "그럼 몇 시부터 일어나서 걸어온 거야?". "모토타고 왔어"  "-.-;;

Mocs는 올해 21살인데 벌써 아들이 하나 있단다. 자신도 Sou와 같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관광객들한테 영어를 배웠단다. 그래서 말은 할 수 있어도 읽고 쓸 수는 없다 한다. 그래도 유창한 그녀의 발음과 의사전달력 앞에서, 순간 매일 말썽만 부리는데도 등록금 대주시느라 허리가 휜 울 오마니, 아부지 얼굴이 떠오르며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간밤에 내린 비는 멈췄지만, 몰고 온 구름들은 산자락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사파는 물론 온 천지를 덮고 있었다.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은 마치 산신령이라도 된 것 같다. 만약 가지고 있다면 금도끼, 은도끼를 몇 자루씩 보는 사람에게 건내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뱀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을 내려와 Lao Chai 마을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옷이며 악기 등을 가지고 나와 사라고 매달린다. 조금 큰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갈만한 아이들은 계속 붙어서 조르니 조금은 귀찮은 감도 없지 않다. 동네를 돌아보는데 모두 농사 지으러 나가서인지 마을에는 주로 애들만이 있었다. 소들은 풀뜯고 새끼들을 데리고 마실가는 오리들, 발가벗은 코흘리개들, 이 모든 것이 북적거리지 않고 조용한 농촌풍경 그대로다. 어디서 일룡어민가 "일룡아~" 하고 튀어나돠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다.

한참을 둘러보고 점심식사차 한 집을 찾았다. Mocs는 호텔에서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차려주었는데, 메뉴는 바케트빵에 야채며 베이컨 등을 넣어 먹을 수 있는 '반미'다. 식사를 하자니 어디서 몰려왔는지 애들부터 애업은 어린 아주머니, 할머니가 몰려와 토산품을 사라고 흥정을 한다. 한꺼번에 몰려드니 사실 사고 싶어도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도 끝까지 남은 아기엄마와 꼬마에게서 김군이 팔찌를 하나씩 사주었다. 김군이 팔찌를 샀다는 소문이 돌았던지 조금 전에 몰려왔던 사람들이 모두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내가 사야된다며 소란이 났다. 귀찮은 상황이라면 귀찮은 상황이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상황이다. 대나무집에 금속판의 떨림을 이용한 악기도 1UDS, 팔찌도 1USD. 왜 모든 게 다 1USD냐고 좀 깍아달라고 말했더니, 내 옷을 보고는 이렇게 좋은 옷을 입었으니 깍지말고 사라한다. 이 옷도 1USD에 샀고, 목걸이도 1USD에 샀다고 했더니, 그럼 자기한테 팔라며 옷을 벗기고 목걸이를 벗기려 한다. 애고~ 잘못했어요~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부터 열명쯤 되는 아이들이 옷을 사라고 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붙여가며 따라 붙었다. 그 또래 애들이 그렇 듯  몇 살인지도 물어보고, 애는 몇인 지, 여자친구는 있는 지 참으로 궁금한 것도 많다.  네 아버지는 몇 살이냐니 나보다 서너살 아래다. 그런데 결혼도 안 하고 여자친구도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단다. 결정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아무리 봐도 자기 눈에는 25살로 밖에 안 보인단다. 이 걸 잘 몰라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건지, 장삿속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기분은 좋다. 아이들은 한참을 재잘거리며 따라와 이웃한 Ta Phin 마을 초입에서야 알게 모르게 뒤를 따르지 않았다. Lao Chai마을이 몽족 마을인 반면에 Ta Phin 마을은 몽족과 자오족이 함께 사는 것 같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숙소에서 보낸 모토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혼자 타고, 김군과 Mocs가 함께 탔는데, 내 몸무게가 장난이 아닌 터라 모토기사가 꽤나 힘에 부쳐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기사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sorry...

원래 종일 투어인데 너무 일찍 끝나 버렸다. Mocs에게 팁으로 20,000VND을 주고 안녕을 고하려 했더니, 너무 일찍 끝난 게 자신도 좀 그랬는지 기념품을 살 생각이 있으면 사파시장을 안내해주겠단다.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것보다는 자신이 사는 게 더 싸니까 편한 대로 하란다. Mocs를 따라 시장을 둘러보고 기념품 몇 개를 집어서 가격흥정도 거의 끝나가는데 Mocs가 그런다, 자기가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으니까 필요한 품목을 말해주면 준비해서 숙소로 가져오겠다고. Mocs 덕분에 물건값을 싸게 살 수 있었고 Mocs 역시도 얼마간의 커미션을 챙겼으리라 생각된다. Excellent business lady! 하자 살짝 웃어보여준다. 모두 Win-Win.

시간도 여유가 좀 있어서 다른 투어에 참가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피로한 감도 없지 않아 쉬었다가 밤에 사파시장을 둘러보기로 한다. 심각한 운동 부족과 나이는 참 감추기 어렵다.

밤의 사파는 사실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섣부른 착각이었다. 공터에 마련된 난전들은 불을 밝혀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형식만 다를 뿐 하는 역할은 우리네 포장마차와 똑같다. 돼지곱창이며 쏘세지, 닭요리, 찹쌀 등을 구워먹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술잔도 기울이는 모습이 우리네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앉아 있자니 현지 청년들이랑 어떻게 인사도 하게 되고 그들이 건내주는 술도 받아마시게 되었다. 맛은 고량주와 비슷하고 도수는 우리 소주와 비슷한 거 같은데, 이 곳 사람들도 원샷을 좋아하는 듯 싶다. 원샷을 하라는 시늉을 한다. 참으로 희안한 것이 서로 말도 안 통하는데 베트남과 한국이 지금도 관계가 좋아지는데 앞으로는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공유가 이루어진다.

마침 오늘이 내 생일이어서 김군이 몽족이 대나무를 여러 개 잘라붙여 소리를 내는 키엠이라는 악기를 선물로 사주었다. 몇 몇 가게를 돌아봤을 때 공통된 가격이 100,000VND 였는데, 한 곳은 80,000VND을 부르더니 결국 2개에 100,000VND를 주고 샀다.  키엠을 본 기념품을 파는 자오족 아주머니가 몽족 물건을 팔아줬으니 자오족 물건도 팔아줘야 한다고 꽤나 설득력 있게 흥정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남자들 눈에는 손으로 직접 자수를 박고 바느질한 제품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내 눈에 좋아서 사오면 정작 사용할 어머니나 동생은 별로 좋아하질 않으니 시행착오는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열에 아홉집은 모두들 TV앞에 모여 "허준"을 시청하고 있다. 성우 한 명이 모든 대사를 더빙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과연 의사전달이 제대로 될까 싶은데도 모두들 금방이라도 모니터 안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다. 타국에서 보는 우리 드라마, 이 거 정말 괜찮은 기분이다.

이제 사파의 마지막 밤이다. 예의 옆 호텔의 가라오케 소리도 내일이면 못 듣는다니 조금 슬퍼지려 한다. 정말 멋있는  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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