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꾸찌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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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story - 꾸찌터널

Moon 1 3831
꾸찌터널 투어를 위해 시간에 맞춰 TM Brothers로 갔다. 손을 흔들어주던 예쁜 아가씨가 안 보인다. 웃는 여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예쁘다.

열댓명 정도 되는 사람들과 함께 차량에 올랐다. 다들 서양사람이고 운전사와 가이드를 빼고는 나만 동양인이다. 약간의 뻘쭘함. 이상하게도 그들의 세계에 끼여들기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되려 죽일 놈, 살릴 놈 욕은 해도 일본 사람들이 투어에 끼면 반가울 때가 많다. 자다 봉창 두드리 듯, 문득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생각이 난다.

약 2시간 거리를 달려 꾸찌터널에 도착했다. 이 곳이 베트남전 당시에 게릴라들이 활동하던 주무대이기도 하고, 영화 플래툰의 주무대도 이 곳이다. 베트남전을 위해 파놓은 굴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역사는 그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프랑스 식민지배 당시에 프랑스에 항전하기 위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그 당시에는 40여 km 였던 것이 베트남전 때에 이르러서는 250km에 달했다 한다. 그 구조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지하 3m, 6m, 8m 깊이로 되어 있다. 이 모든 터널을 호미 하나로 사람이 파냈다니 놀랍기 그지 없다.

터널을 만든 당시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에 터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관광객을 위해 널직히 파놓은 터널도 그 안에 들어가면 몸이 꽉 차 가까스로 빠져나올 정도인데, 실제 터널은 훨씬 더 좁다하니 어떻게 그 안에서 수천명이 생활했는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밀림이 우거진 상태에 곳곳에 부비트랩들이 설치되어 있고, 베트콩들은 이런 굴로 숨어들어 싸우니, 미군은 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가망성이 없어 보인다(베트남을 다녀온 후에 베트콩들은 '적'이라 표현하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표기상). 이 터널의 실체를 알았지만 그 실체를 찾지 못해 수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수천명이 활동하면서도 외세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비밀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가로 30cm, 세로 20cm로 된 입구를 들어가는 데는 요령이 있어 터널 관리자가 직접 시범을 보이고 관광객들은 원하면 따라 한다. 우리 일행들은 주로 스페니쉬였는데 이 사람들 얼마나 모험심이 강한지 남자 건 여자 건 모두 직접 체험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나는 허벅지만 집어넣으면 입구가 막힐 것 같아 참았다. 혹 내 몸을 밀어넣다 입구가 부서질까 싶어서...

마침내 실제 사용되던 꾸찌터널을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지하 3m, 길이 120m. 가이드는 이 터널을 지나면서 일행과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고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 한다. 얼마전 3명을 터널 안에서 잃어버린 사고가 있었음을 몇 차례나 상기시켜 주었다. 일행들이 우르르 터널을 향해 들어가는데 중간에 서 있다가 얼덜결에 딸려 들어가게 됐다. 군대에서 하던 오리걸음으로 몇 발자국 걷자마자 세상의 모든 빛들과 차단이 된다. 터널 옆에 비상등을 설치하기는 했으나 그 옆에 사람이 서 있으면 그 빛도 보이지 않고 앞에 사람이 있는 지 조차 파악이 되질 않는다. 축축한 흙의 느낌, 습함, 호흡곤란, 이런 것이 공포일까... 오리발도 얼마가지 못하고 무릎과 손으로 길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나가면 끝이 없는 미로로 들어가버릴 것만 같고, 몸을 뒤로 돌리지도 못할 상태이다. 거리관념도 시간관념도 모두 사라져버렸다. 오직 이 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그 바늘 하나 꽂을 곳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도 얼굴을 스치며 박쥐가 날아다닌다. 나는 지금 관광차 왔지만, 실제로 이 곳은 살기 위해 싸우던 전장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 공포스러움은 배가 된다. 터널 곳곳에 다른 터널과 이어지는 곳이 나타나 앞 사람을 놓치게 되면 엉뚱한 길로 빠질 수도 있게 생겼다. 그래서 맨 앞장은 이 곳에서 일하는 가이드가 서게 된다. 마침내 긴 터널을 빠져 나왔다. 옷은 흙빛으로 변했고, 손등과 무릎은 껍질이 벗겨져 있다. 온 몸이 지금 막 샤워를 한 것처럼 땀범벅이 되었다. 더운 바깥 공기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잘 모르는 일행중 한 명이 물을 권한다. 갖고 다니는 물통을 보여주며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잠깐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생활하면 공동체 의식이 생기지 아니할 수가 없으리라.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터널 체험을 하고 역시 지하에 있는 식당에 둘러 앉아 베트남 차와 베트남전 당시에 이 곳에서 경작하고 주식으로 삼았던 '타로'라는 모양은 가래떡 같고 맛은 고구마 비슷한 토란과에 속하는 음식을 나눠 먹었다. 평소 먹었더라면 밋밋할 것이 분명할텐데 고생을 하고 난 후에 먹은 탓에 꿀 맛이다.

끝으로 베트남전 당시에 게릴라들이 미군을 괴롭히기 위하여 설치한 부비트랩들을 실제로 보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느낌은 나중에 별도로 기술할 예정이다.

나갈 때는 나름대로 깔끔하게 하고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거지꼴이 되어 돌아오니 숙소 아줌마가 괜찮냐고 한다. 꾸찌터널 다녀왔다니,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1 Comments
하레 2005.12.09 14:10  
  실감나네요.. 기대되는데요. 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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