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월 발리-플로레스9 우븟 그 소박한 화려함이여
새 소리에 눈을 떠보니 이른 아침인데 침대가 좌우로 흔들린다. 아직도 나는 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이번 여행 중 가장 화려함을 자랑하는 호텔로 우븟 중심가에서 차로 30분이나 떨어진 깡촌이다. 무료조식 역시 충실하게 먹을 수 있었고 산책이 가능할 정도로 넓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숙소편에서)
손가락 때문에 차만 렌탈할 순 없어 기사 딸린 차를 주문 했더니 내내야 어제 마중나온 호텔차량이 온다. 일명 하루종일 투어(On-Day Full Time Tour)다. 자바에서 온 25세의 건실한 청년인 리사는 무슬림이다. 어제 주행중인 차 앞유리에 찌짝이 붙어 있기에 카메라를 꺼내드니 차를 세워줄 정도로 서비스가 좋은 친구다.
첫 방문지는 낀따마니 화산군이었다. 자세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한 장의 멋진 그림이었다. 이곳은 최초 화산폭발 이후 계속해서 화산폭발이 일어나 이중구조를 보인다고 한다. 아직도 분화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활화산이다. 화산 아래로 바뚜르 호수가 있는데 수위가 일정해서 그곳 주민들은 신께서 조절해준다고 믿고 있단다.
길가에서 주차료 비슷한 것을 끊고 이동하다 전망좋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촬영을 하고 호수가를 향해 차는 밑으로 내려갔다. 발리의 관광지가 대부분 그렇듯 유명한 호수라고 해도 엄연히 주민들의 생활터전으로 오히려 일상생활을 호수와 더불어 영위하는 주민들이 있는 풍경이 더 아름다웠다. 조금 더 가면 온천도 있다는데 시간관계상 패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다. 사실 이곳은 해발고도 1600미터 정도이기 때문에 낮에도 그리 덥지 않고 밤에는 춥다고 한다. 그렇다면 온천에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뻔 했다.
내리막길을 내리고 내려와 찾아간 곳은 물의 사원(Holy Water Temple)이다. 내 캠코더(Sony NEX-VG10) 프로모션 동영상에 나오는 물의 사원을 가보고 싶어 물어 봤더니 데려다 준 곳이 탐팍시링(Tampak Siring)에 위치한 띠르따 엠플(Tirta Empul)사원으로 '신성한 물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생각보다 유명한 곳으로 서기 926년에 창건된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사원 위쪽 언덕 위로는 네덜란드 식민지시절 관저가 있었는데 1954년 보완해서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별장으로 쓰인 곳이란다. 이 사원의 매력은 물의 사원답게 사원 곳곳에 연못이 있고 그곳에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놀고 있어 천년이 넘는 사원의 조각들과 어우러져 멋진 물의 정원을 연상시킨다.
덴파사나 우븟에서 그리 멀지 않아 신성한 물을 맞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기도는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신앙생활의 일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리사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하니 오늘이 라마단 기간이라 해가 져야 먹을 수 있단다. 발리에 웬 무슬림이냐고? 음...이전에 수마트라에서 만난 부부 중 남편 집이 또바호수의 빠라빳인데 일자리를 구하러 발리까지 와서 일하다가 결혼했듯이 발리는 관광산업 때문에 그나마 일자리가 많은 편이라 다른 섬에서 많이들 온단다. 리사를 비롯한 호텔 여종업원들 모두 자바에서 왔단다. 더군다나 리사는 족자 시내가 집이란다. 고향 얘기를 했더니 반가워 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까위산(Gunung Kawi)에 있는 무덤유적지인데 주차를 하고 계단을 내려 가는데 어찌 심상치 않다. 까마득히 보이는 계곡가에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 주변은 민속품을 파는 상점과 반대편으로 계단식 논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11세기 우다야나 왕조의 아낙웅수왕과 그의 왕비들^^이 묻혀 있는 무덤사원으로 추정하고 있단다. 대충 둘러보고 올라가는데 허덕거린다. 그간 보트투어로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삼각대를 짊어진 리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잘도 올라간다. 난 힘들면 촬영하는 척하며 쉬엄쉬엄 올라가다 마지막에 젊은 리사를 따라잡겠다고 뛰다가 숨 넘어갈 뻔 했다. 크헉~~(두 곳 모두 입장료는 싸다. 각 15,000루피, 요금은 외국인만? 아님 가이드는 무료?)
착실한 무슬림인 리사와 점심을 같이 굶은 나는 지쳐 가는데 한 군데 더 가잔다. 여기 같이 내려 가냐고 묻자 그렇단다. 트래킹 온것도 아니고 걍 패스했다. 오늘의 목표는 뭐니해도 레공댄스를 무사히 촬영하는 것이다. 더불어 돈이 떨어져 가기 때문에 돈을 찾아야 한다. 우븟시내 은행으로 가자고 했더니 오늘이 일요일이다. 은행 내에 있는 ATM이 가장 안전하다고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ATM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번드름하고^^ cctv도 설치된 곳에 가서 인출했는데 잘 나왔다. 가끔 동남아 가서 ATM 이용했다가 당한 괴담들 때문에 쫄았는데...
우븟시내에 돌아와서 원숭이숲(Monkey Forest)에서 잠깐 촬영을 했는데 단체관광객들이 바글바글했다. 원숭이만 볼거면 굳이 들어올 필요 없이 주변에만 있어도 원숭이들이 왔다갔다 한다. 오히려 조각상이나 부조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들과 어우러져 볼만했다. 역사를 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리사를 잠시 대기 시키고 귀국편 항공권 체크인과 보딩티켓을 인쇄했다. 우븟은 여행자들이 필요한 편의시설이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잘 뒤져보면 싸고 좋은 곳들도 있을 법했다. 그래서인지 장기 체류자들이 꽤 있는 편이다. 수마트라 또바가 하늘과 산 그리고 호수만 보면서 뒹굴거린다지만 곧 심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발리 그 중에서도 우븟은 정말 오래 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곳일 것 같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왕궁에서 공연하는 레공댄스 촬영을 위해 교섭을 해야하는데 아직 관계자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티켓상들만 보였다. 리사를 시켜 티켓상들에게 물어봐도 신통치 않은 반응들이었다. 다들 힘들거라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족자에서 한 번 해 본터라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 우선 삼각대와 카메라를 세팅하고 외장마이크를 테스트 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한 시간 정도 남았다. 우선 배가 고파 리사에게 요기거리를 사오라고 해서 간단히 때우고 있으니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와서 뭐라한다. 리사를 통해 들은 말로는 정중앙에 촬영은 불가하다. 코너로 빠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말을 듣는 순간 허망해졌다. 코모도왕도마뱀이 있는 플로레스해의 대 자연과 발리의 전통댄스를 촬영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는데 그 중 하나가 비끗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중앙쪽으로 위치를 잡아보려고 리사 대신에 내가 직접 나서서 손발 다 써가며 설득하자 한다는 말이 자기는 보스가 아니랜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책임자 아닌 넘하고 실갱이를 했단 말인가? 내 인상이 변해서인지 미안해서인지 조금 기다리면 책임자가 온다며 입구 티켓판매의자에 앉아 버린다. 여행중 이런 경우를 꽤 겪어봐서 그리고 내가 아쉬우니 참는다.
책임자가 오자 최대한 공손하게 내 소개를 하고 리사도 소개시켜주면서 사정을 얘기하니 대뜸 그러게 하랜다. 다만 삼각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있으니 두 명분(1명 8만루피아)을 내란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역시 보스는 달라!
허락이 떨어지고 외장마이크를 무대에 설치하고 카메라를 세팅했다. 한 300명쯤 되는 관객에게 원숭이가 됐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말을 건다. 자신은 스위스에서 왔는데 프로인지 물으며 비디오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했는데 자기에게 녹화본을 팔 수 있는지 물었다. 난 배에서 만난 스위스 부인 얘기를 하며 아마추어고 원본은 공개하지 않는 대신 나중에 편집본을 비메오(Vimeo)에서 공유하니 메일주소를 알려주면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거리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들러진 커튼이 내려지고 조명이 올라 오면서 공연 시작을 알린다. 의자에 올라 파인더에 눈을 고정한다. 이제부터 내 눈은 렌즈를 통해 전해지는 빛에 의존할 것이다. 가뮬란 연주가 시작되자 장중은 갑자기 조용해진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 그 말 밖엔 할 말이 없는 하루였다.
# 고지
이 글은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지극히 주관적이고 부실한 글입니다. 이글에 있는 여행정보는 언제든 변동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따라한 그 책임은 행위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사진은 무단 전제하지 말아주세요. 신변잡기적인 글이라 경어체를 쓰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