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East. 09. 브로모 Bromo -> 발리 Bali 우붓 Ubud. 끝나지 않은 악몽, 그리고 정의의 사자들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Go East. 09. 브로모 Bromo -> 발리 Bali 우붓 Ubud. 끝나지 않은 악몽, 그리고 정의의 사자들

명랑쾌활 2 3391
다시 프로볼링고까지 태워다 줄 승합차.
낮에 보니 용케 한밤중에 저걸 타고 산길을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쩨모로라왕 마을길.
상당히 가파른 경사에 집들이 늘어서 있다.

프로볼링고 악덕 여행사 Sinar Jaya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
일반적으로 인니 변기는 수세식이긴 하지만 따로 물 내리는 장치가 없다.
그냥 옆에 있는 물통 물로 밑도 닦고 바가지로 부어 내리고 하는 시스템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사 사무실에서 이런 멋진 변소를 보게 될 줄이야...

프로볼링고 여행사 사무실 도착 시간은 대략 10시 반.
이곳에서 12시까지 기다렷다가 미니버스를 타고 발리의 덴파사르까지 가기로 계약했다.
선풍기 한 대도 없는 사무실 여기저기에 앉아 하릴없이 기다린다.
사장 색히는 온데간데 없고, 20대 초반이나 될까한 직원 셋이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기다기리 심심해서 그들과 이런저런 쓸 데 없는 얘기들 주고 받는데, 일행 중 족자로 다시 가는 패키지를 계약한 서양인이 직원에게 차량이 늦는다고 항의한다.
11시 쯤... 10시까지 오기로 한 미니버스가 않온다는 거다.
직원의 반응은 " 나도 모른다.".
나와 농담 따먹기 할 때의 실실 웃던 표정이었는데 무표정으로 바뀌는게 극적이다.
왜 늦냐, 그럼 언제 온다는 거냐, 오기는 하는 거냐... 모든 물음에 다 모른다는 대답 뿐이다.
서양인 여행자가 그럼 기사에게 전화라도 한 번 해보라고 하니, 내가 왜 전화를 하냔다.
전형적인 인니식 대응이다.
서양인 여행자가 아무 말 없이 노려보다 다른 곳으로 가자, 직원이 내게 말했다.
" 내가 뭐라 얘기했다가 그게 틀리면, 이번엔 나한테 뭐라고 할 거 아냐. 저건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말야."
책임. 인니어로 땅궁 자왑 Tanggung Jawab.
오랜 식민지 생활을 한 동남아 사람들, 특히 인니인들의 속성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이들은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민감하다.
그래서 애초에 책임진다는 말은 거의 금기에 가까울 정도로 피한다.

몇 차례 더 항의를 하고, 직원들은 그를 피해 이리저리 가고, 쫓아가서 또 항의하고...
결국, 족자행 여행자 두 명은 11시 20분 쯤에 온 미니버스를 타고 떠났다.
항의 따위로 미니버스가 1분이라도 일찍 온 것도 아니다.
인니는 이유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야 하는 곳이다.
그 흔한 사과 따위도 없다. (사과한다는 것은 책임을 인정하는 행동이니까.)

이젠 화산 Kawa Ijen으로 가는 승합차

11시에 오기로 한 이젠 화산행 미니버스는 12시가 되어서야 왔다.
그냥 추가요금 내고 여기 얹혀갈까 고민하다 그냥 관뒀다.
여행사 직원놈들이 아무 소리 안했으면 오히려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브로모에서의 사기에 가까운 협잡질을 생각하니, 외려 더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라리 이 승합차를 타고 갔었어야 했다...
만약 다시 이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두 번 생각도 안하고 이 승합차를 탈거다.

12시에 오기로 한 발리행 미니버스는 12시 반이 됐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직원에게 슬쩍 물어봤지만, 역시나 대답은 " 난 모른다.".
그나마 실실 쪼개면서 그리 말하는 건, 친분이 좀 있다는 걸까.
어디선가 사장이 나타나 직원들에게 뭐라뭐라 한다.
이들끼리는 속어에 지방어 섞어서 대화하기 때문에 알아 들을 수 없다.
(나중에 모든 상황이 지난 후 생각해 보건데, 우리를 태울 미니버스에 문제가 생겼다는 그런 얘기인듯 하다.)
그러더니 우리들(발리행 여행자 일행들)을 승합차에 태우고 프로볼링고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 데려다 내려 놓는다.
사장놈에게 이건 뭐냐 물어보니, 자기네 사무실 대기소라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가 올 거랜다.
이때 눈치 챘어야 한다.
이미 여행사 사무실 앞에서 두 시간 반을 기다렸던 사람들을 새삼 대기소라는 곳에 데려다 놓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서 사장놈은 승합차를 끌고 어디론가 휑하니 사라졌다.

1시 쯤 되어서 길 건너편에 관광버스가 한 대 섰다.

생각지 못하게 딱 찍은, 우리가 타고 가게 되는 버스.

그리고 사장이 다시 나타나, 다급한 기색으로 우리에게 저 버스를 타라며 일행들에게 1인당 3만5천 루피아씩 나눠줬다.
무슨 소리냐, 에어컨 미니버스로 가기로 계약하지 않았냐 항의하니, 미니버스에 문제가 생겨서 올 수가 없고, 저 버스를 타지 않으면 발리에 갈 수 없댄다.
이 돈은 미니버스 대신 일반버스로 가게 됐기 때문에 돌려주는 돈이랜다.
그러면서 사뭇 급하다는 듯, 우리들을 외면하고 버스 쪽에 뭐라뭐라 소리쳤다.
그러자 버스에서 제복을 입은 차장(운전사 조수)이 내려 달려와 다짜고짜 우리 배낭들을 들쳐 매고 버스로 갔다.
사장놈도 과장된 몸짓으로 급한척 배낭 하나를 집어 들고 버스로 갔다.
우리 일행은 어어어... 하면서 덩달아 버스로 급히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 급한 행동과 어조는 이렇게 혼을 빼놓으려고 하는 짓이었다...)
버스에 타면서 사장놈에게 물었다.
" 이거 타고 가면 어쩌라는 거냐? 이게 발리까지 가는 거냐?"
" 이건 항구까지 간다. 가서 내리면 거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괜찮다."
" 그럼 거기서 미니버스 타고 덴파사르까지 가는 거냐?"
" 그렇다. 버스(!) 타고 덴파사르까지 간다."
버스 조수의 재촉에 버스문이 닫히고, 그렇게 우리는 일반관광버스를 타고 자와섬 서쪽, 발리행 패리를 타는 항구인 끄따빵 Ketapang 으로 가게 되었다.
저 대화 중 ! 부분이 다 함정이었다.
떠나는 버스를 보며, 사장놈은 오늘도 한 껀 했다며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나 싶다.

버스 내부.

그 난리법석에 버스 안 승객들이 모두 우리를 본다.
차장이 뭐라뭐라 하며 여기저기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더러 앉으랜다.
일으키는 사람들이 다들 왜소하고 힘도 없어 보인다. 나이 든 아줌마나 노인도 있다.
뒷말 안나오게 사장놈이랑 짠 모양이다.
도저히 앉을 분위기가 아닌 것이, 인니는 좌석번호제가 아니다.
그냥 표 끊고 선착순으로 앉는 것을 차장이 그냥 만만한 사람들 일으켜 세운 거다.
가뜩이나 의자 앞뒤 간격도 매우 좁아 불편해 보여 그냥 서서 가겠다니, 별 이상한 놈 다 본다는 표정으로 그러랜다.
실수였다.
한 세 시간 쯤 가면 되겠지 했는데, 알고보니 7시간을 가야 한댄다. -_-;;
그럴줄 알았으면 안면에 철판 깔고 그냥 앉았어야 했다.
4시간 정도를 서서 가서야 자리가 났다.
옆자리에 앉은 5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 암내 장난 아니다.
자꾸 뭐라 말 거는데, 입냄새까지... ㅜ_ㅜ
턱하니 맞닿은 어깨게 뜨뜻하다. 최대한 움츠려 피해보려 해도 소용 없다.
내가 피한 만큼 좋다고 더 편하게 어깨를 넓히니.
(인니는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사람 붐벼서 신체가 접촉되는 것에 대체적으로 둔감한 편이다.)

저녁 7시 쯤, 종점에 가까와 질 수록 자리는 널널해졌다.
좌석 앞뒤 간격을 보라... ㄷㄷㄷ

앞의 앞자리 꼬마애가 장난을 걸기 시작한다.
등받이 뒤에 숨었다 쑥 고개를 내미는 장난... 이거 세계 공통이었어?

장장 7시간 여의 개고생 끝에 종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기다린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여기는 버스터미널의 종점일 뿐, 항구까지는 다시 20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물어물어 베모를 타고 항구로 향한다.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베모는 공간이 좁기 때문에 우리의 배낭은 모두 지붕에 실어야 했다.
그래서 항구에 도착해 배낭을 내려 보니, 옆구리에 꽂아 두었던 운동화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흑, 한국에서 사온 아끼는 비싼 운동환데... ㅜ_ㅜ

고난의 시간을 함께 했던 일행들.
이름들은 다 까먹었고, 좌측부터 프랑스, 호주, 호주, 독일, 영국... 글로벌한 일행들이다.
웃고 잊자며 스마일을 외치니 다들 활짝 웃는다.
참 뭐랄까... 강한 친구들이다.
하긴, 이정도 심지 없으면 열통 터져서 인니 여행 못한다.

하지만... 고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발리행 페리 여객선

페리 여객선 내부

아직까지도 프로볼링고의 여행사 색히들을 믿는건 바보짓이다.
발리 항구에 내린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그래서, 발리행 페리를 타자 마자 정보수집에 나섰다.
어차피 일행 중에서 인니어 할 줄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어쩌다 보니, 반가이드가 되버렸다.
이쯤되니 그냥 아무나 붙잡고 인니말로 대화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덕분에 정확하지 않으면 말하기 꺼려하던 것이 많이 개선되었다. 대신 문법이 망가지게 됐지만...)

발리 항구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는데, 9시 이후로는 공공교통수단은 없댄다.
방법은 세 가지, 발리 항구에서 하루 묵고 출발하거나, 페리에 실린 관광버스 중 덴파사르 행의 운전사와 교섭해서 얹혀 가거나,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그 와중에, 프로볼링고 여행사 사장놈이 준 3만5천 루피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발리 항구에서 덴파사르까지의 공공버스 차비가 3만5천 루피아랜다.
버스 종점에서 항구까지 차비, 여객선 차비 따위는 다 퉁쳐 버리고, 그나마도 미니버스 비용도 아니고 그 중 공공버스 요금 만큼만 환불해 준다는 건 어느나라 계산법인건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그 때 출발해서는 발리 항구에서 덴파사르 행 버스가 끊겨서 탈 수 없다는 건 그 색히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개^%^*&^%^$$%^*&^*&^* 같은 사기꾼 색히.

택시는 덴파사르까지는 백만 루피아는 족히 나온다길래 일단 기각, 일행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다들 항구에서 하루 묵고 가겠단다.
특히, 영국 청년인 던은 월드컵 잉글랜드 전을 봐야 한다며, TV가 있는 숙소 좀 알아봐 달랜다. ㅎㅎ

나는 따로 덴파사르 행 관광버스 기사와 교섭하여 가기로 했다.
이 악몽같은 상황을 내일까지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버스기사를 찾아보려 수소문하는데, 왠 아저씨 한 분이 자세하게 상황을 묻는다.
그래서 어젯밤부터 있었던 일을 주욱 얘기해주니, 자기는 발리 느가라 Negara (발리의 주도) 의 경찰이라며 신고를 권한다.
거기가 어디인지 기억도 못하겠고, 그냥 잊고 싶다고 하니, 그럼 자기가 일단 느가라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느가라까지만 가면 아직 직행버스가 있을거랜다.

일행들과 작별을 나누고 아저씨를 따라 여객선 하부의 차량 선적부로 향하는데, 일행들이 졸졸 쫓아온다.
어느덧 나를 엄마오리로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ㅋㅋ
차량 출입구는 일반 승객 출입구와 다르니까 이리로 오면 안된다고 알려주고서 멋쩍게 웃는 그들과 다시 작별을 나눴다.

발리 느가라 시의 경찰인 인다바구스 Indabagus 씨 가족.

자와 동부 지역에서 휴가를 보내고 오는 길이라는 인다바구스 씨 가족은 단란하고 유쾌했다.
느가라 시까지 가는 내내 이것저것 얘기도 나누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도 같이 부르며 왔다.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딸은 같이 사진 찍어도 되냐고 수줍은듯 쭈뼛쭈뼛 묻기도 했다.
뭐 잘생겨서 그런건 아니고, 그저 외국인이라서 그런거다. ^^;
인니 청소년이나 아이들에겐 아직 그런 순박한 면이 남아 있다.
겉모습이 완전히 다른 서양인들은 그런 제의를 많이 받는 편이지만, 동양인은 좀 덜한 편이다. ㅋ
나중에 말문이 좀 트이자, 꾸따와 우붓 지역을 여행할 예정이라는 내 말에, 자기가 안내하면 좋겠다는 소리를 했다가, 고등학교 입시 공부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엄마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런 취급은 드문지라 기분 삼삼하긴 했다.

가족들을 먼저 집에 데려다 놓고, 인다바구스 씨는 오늘 밤 근무부터 복귀해야 한다며 나를 태우고 근무지로 향했다.
한밤중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큰 사거리의 초소같은 곳이었다.
근무복으로 갈아입는다고 어디로 간 사이, 다른 경찰들과 축구를 보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참 별의 별 경험을 다한다. ㅋㅋ)
그러다 저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오자 경찰 한 명이 가서 다짜고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이게 뭔 사단이냐 찔끔한 표정의 차장과 뭐라 얘길 나누더니 내게 버스에 타라고 손짓한다.
인다바구스 씨는 그때까지도 오지 않아서 감사인사는 못드리고, 그렇게 버스에 올랐다.

덴파사르까지 타고 온 버스.

뭔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좌석 안내하는 차장 행동이 사뭇 공손하다.ㅋㅋ
한밤중이라 승객들 대부분이 자고 있어서 망정이지 시선 또 한 번 제대로 모을뻔 했다.
피곤해서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차장이 깨워 일어나니 버스는 벌써 덴파사르에 도착하여 승객들도 거의 다 내리고 있었다.

12시 조금 넘은 시간, 사방이 다 깜깜한 주변을 보고, 나는 또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이나 자카르타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인니의 거의 업소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발리가 새계적인 관광지니까 밤새 문 연 호텔 정도는 있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
잠시 고민하다 터미널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달랑 한 대 있었다! 이것도 없었다면... ㄷㄷㄷ)를 타고, 우붓 Ubud으로 향했다.
우붓은 관광지니까 묵을 곳이야 많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우붓에 도착하니, 시간은 새벽 2시다.
1시간 반 정도 걸렸다는 얘긴데, 나중에 알고보니 낮에 차량 좀 많을 때도 1시간 좀 넘게 걸릴 거리 였다.
심야에 쌩쌩 달렸는데 더 걸렸다니... 그렇다. 택시기사의 장난질에 당한 것이다.
그래도 잘 도착했으니 다행이다.
어디 요상한데 내려놓고 칼 들이대면 방법도 없다.
(자카르타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한밤중의 몽키포레스트 거리 Jalan Monkey Forest.

비록 장난질은 쳤지만 그래도 무사히 우붓까지 실어다 준 택시와 운전기사.

아, 바보짓의 연속이다.
우붓이라고 인도네시아가 아닌가.
여기도 마찬가지로 다들 문 닫고 깜깜하다.
이미 택시는 휑하니 가버렸고, 24시간 영업한다는 술집이나 편의점만 듬성듬성 불을 밝히고 있다.
문 연 숙소 있나 물어봐도 다들 모르겠다는 대답 뿐이다.

로까 하우스 골목

혹시나 가본 로까하우스 역시 깜깜하다.
체면불구하고 문도 두드려보고 했지만 반응이 없다.
어째야 되나... 몸은 천근만근 쓰러지기 직전이다.

로까하우스 근처 베벡 븡길 Bebek Benggil

로까하우스 근처 베벡 븡길이라는 라이브 바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거리는데, 마침 한 청년이 그곳에서 나와 주차된 오토바이로 향한다.
구세주 등장!!!
이것저것 생각하고 잴 정신도 없이, 그 청년을 붙잡고 사정을 설명하며 어디 묵을 숙소 없냐고 물었다.
내 얘기를 들은 청년은 좀 생각하더니, 일단 가게로 들어가잔다.

베벡 븡길 바 들어가는 길. 오른편의 건물이다.

가게에 들어가니 몇 명의 현지 청년들이 있었다.
몇몇은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고, 몇몇은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로 하고 있다.
영업은 끝난 듯 했다.
나를 안내한 청년이 그들에게 뭐라뭐라 하자, 자기들 끼리 얘기를 주고 받더니 한 명이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통화를 마친 그 청년은, 자기가 아는 친구 옆집이 홈스테이(게스트하우스의 일종. 주로 장기숙박하는 사람들 대상이다.)인데, 지금 이쪽으로 온다고 했으니 기다리랜다.
그야말로 구세주들이다.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청년들은 동네 친구들로, 그 중 한 명이 여기서 일하고 있었고, 또 한 명은 여기에서 공연하는 밴드 맴버 중 하나라고 한다.
영업 끝난 가게에서 종종 아지트처럼 이렇게 모여 축구 중계도 보기도 하는데, 마침 오늘이 그 날이랜다.
좀 지나서 라면 끓일건데 밥은 먹었냐 묻는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그 개떡같은 볶음밥 먹은 이후로 먹은게 없다.
염치불구하고 한 자리 껴 라면을 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훗날 다시 먹어 봤는데, 역시나 맛 없었다.ㅋㅋ)

잠시 후, 데리러 온 사람의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날 데리러 온 청년(? 아저씨?)은 홈스테이 옆 뮤직 스튜디오의 주인이었는데, 밴드 멤버였던 청년의 타악기 선생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홈스테이 주인 할아버지가 안뜰 벤치에 나와 자고 있었다.
날이 더워서 밖에서 자는 건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날 데리러 온 청년이 전화 받고 옆집 주인 할아버지를 깨우고는 나를 데리러 온 거였다.
주인 할아버지는 기다리면서 벤치에서 다시 자고 있었던 것이고.

덕분에, 새벽 네시가 가까와지는 시간에 겨우 짐을 풀고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게 되었다.
끔찍한 고생의 끝의 극적인 도움. 베트남 달랏과 함께, 살고 싶다고 떠올리는 도시로 마음에 남게 된, 우붓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베벡 븡길의 친구들.
그런 인연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겉모습만 보고 경계했을 것이다.
족자의 이르완처럼, 인니에서 만난 몇 안되는 빛나는 사람들이다.
며칠 뒤 공연에 맞춰 다시 찾아 갔다.
도움 줬던 친구 중의 하나인 뿌뚜ㅎ (오타 아님 ^^;) Putuh 는 스피커 같은 것에 앉아 그것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럴듯한 타악기 소리가 흘러 나왔다.
포루투칼 악기라고 한다.


* 프로볼링고 여행사의 행각은 악명 높습니다.
프로볼링고 자체가 교통의 요지로 형성된 도시라 뜨내기들 스쳐 지나는 곳인데다, 여행사는 세 곳 밖에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위치 상 다시 가기 꺼려지는 곳이라 다시 찾는 관광객도 거의 없다 보니, 그런 사기에 가까운 행각을 버젓이 벌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브로모 다녀 온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경치 환상적이었다는 소리는 해도 다시 가고 싶다는 소리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서양인 배낭 여행자들도 대충은 알고 있는 눈치구요.
특히, 버스터미널 못가서 큰 길가에 있는 시나르 자야 Sinar Jaya 여행사는 요주의 여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사들이 그곳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 사기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도착하면 족자의 여행사에서 끊어준 영수증을 다 걷습니다.
(영수증에는 무슨 항목으로 얼마 추가라는 계약 사항들이 다 적혀 있습니다.)
그 영수증으로 각 여행사에 비용을 청구한다는 핑계를 댑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끊어주는 영수증에는 지불했다는 뜻의 Paid만 적혀 있을 뿐, 가격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 후, 원래 계약했던 숙소는 방이 꽉 찼다면서 그보다 '약간' 떨어지는 숙소에 묵을 수 밖에 없다며, 만 루피아 정도를 돌려 줍니다.
쥐톨만 한 금액이죠. 그냥 얼마간 환불해 줬다는 빠져나갈 구멍일 뿐입니다.
어차피 족자에서 오면 숙소 도착 시간은 밤 10시를 넘기게 되기 때문에, 숙소가 아무리 후져도 거의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데 태워다 달래도 요지부동입니다.
다음 날 발리 가는 것은 위에 쓰여져 있는 내용대로입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빠져나갈 구멍으로 약간의 돈을 환불해 줍니다.
거기서부터 7시간, 어지간한 독심 아니면 다시 돌아가서 항의할 생각은 못하죠.
문제는 이같은 사실을 알아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다시 그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원영수증 들고 경찰서 가서 뒤집어 봤자 기껏해야 전액 환불 뿐, 도저히 그 사기꾼놈 엿먹일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전액 환불이 말이 전액환불이지, 여행 다 잡친건 계산할 수도 없는 피해죠.
그래서 전 차라리 족자 출발의 브로모 패키지를 아예 피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족자에서 아무리 돌다리 두드려봤자, 프로볼링고 도착 시부터 그 사기꾼 여행사가 관리합니다.
족자에서 컨택할 때, 프로볼링고 쪽 관장 여행사가 어디냐고 묻고서 피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다른 여행사는 어떨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른데는 멀쩡하다면, 사기꾼 여행사가 버젓이 영업을 계속 하고 있을 수가 없었겠죠.

*** 브로모 여행은 수라바야 Surabaya에서 가는 코스를 권합니다.
거리 상, 오전에 출발하면 프로볼링고에 낮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자 측이 불리한 점 하나를 상쇄할 수 있습니다.
밤 12시에 출발하여 브로모 일출을 보는 패키지도 있는데 이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차에서 자는게 그 끈적끈적 더러운 숙소 보다는 백 배 낫습니다.
수라바야에 한국 여행사도 있습니다.
가격은 다소 비쌀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신뢰할 수 있겠죠.
가격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아니면 프로볼링고나 쩨모로라왕에 어떻게든 낮 시간에 도착하는 것도 한 방편이겠습니다.
저 악질적인 사기방법의 기반은, 여행객들이 밤 늦은 시간에 도착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는 것이니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제가 간 코스로 가고 싶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지요.
1. 족자에서 쩨모로라왕 소재의 호텔은 따로 부킹하고, 족자-쩨모로라왕 편도 패키지만 계약한다.
문제는 저 개떡같은 승합차로 쩨모로라왕에 도착한 후, 사기꾼 꼬봉 브라더스가 예약한 호텔 안데려다 준다고 배째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럴 경우 약간의 수고비 (대략 만 루피 정도)와 교섭력이 필요하다는 것.
어차피 예약이 가능할 정도 레벨의 호텔이라면 로비에서 지프 계약 등은 다 진행할 수 있다.
2. 다음날 관광 후에도 역시 호텔이나 근처 수배하면 프로볼링고 간다고 승객 모집하는 승합차는 널리고 널렸다.
3-1. 프로볼링고에서 이젠을 간다면, 저 사기꾼 여행사에서도 좋은 외제 승합차로 잘 모셔다 주니 계약해도 된다.
아마도 이젠 패키지가 사기꾼 여행사의 가장 마진 높은 주력 상품인듯 하다.
3-2. 만약 발리 직행이라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터미널에서 그냥 일반 고속버스로 자력으로 가는 방법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프로볼링고에서 7시간 + 항구까지 20분 + 배 타고 2시간인데, 발리 항구에서 덴파사르까지의 공공 교통수단은 9시에 끊긴다.
요컨데 오전 10시 이전에는 출발해야 된다는 얘기.
여행사에서 패키지로 갈 생각이라면 사기꾼 여행사는 무조건 피한다.
단, 다른 여행사라도 여유 자리가 없거나 인원이 모자라면 운행 안할 수도 있다.

***** 족자-브로모-발리 코스의 또 다른 단점은 발리 덴파사르 도착시간이 매우 늦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숙박업소 정보를 사전에 확실히 알아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방콕과는 저언혀 달라요.)
덴파사르에서 꾸따로 직행하던, 우붓으로 직행하던, 숙소를 사전에 예약하고, 도착 당일에도 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컨펌해두셔야 합니다.
인니는 예약 시스템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어서, 주의를 요합니다.
전화 예약 해뒀는데 손님 오면 그냥 받고 난 모른다 하는 경우도 있고, 직접 찾아가서 예약하려고 해도 거절하는 경우도 꽤 흔합니다.
미리 디파짓 걸어 놓는다고 해도 안된다고, 그날 아침에 다시 와보라고 하는 데요, 예약 받았다가 그날 방 비는 곳이 없으면 자기가 욕 먹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어차피 그렇게 친절하게 해봤자 자기 돈 버는거 아니니까요.
(인니 서비스 개념을 이해하는 두 가지 포인트 - 책임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자기한테 이득이 아닌 것은 질릴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 물론 어느 정도 레벨 이상의 호텔은 당연히 그런 일 없구요, 저렴한 숙박업소 중에도 몇몇 곳은 서비스 개념이 있는데, 문제는 그런 곳은 방이 늘상 꽉 차 있기 때문에 넉넉히 여유를 두고 미리 예약해야 합니다. ^^;

****** 다시 한 번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전 절대로 다시는 브로모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만... (네버네버네버네버!!!!)
친한 친구 때문에 족자-브로모-발리 코스를 다시 가야 한다면 일단 친구 한 대 때려주고서,
족자-수라바야 비행기로 가서, 수라바야 잠깜 관광 후, 수라바야-브로모-발리는 수라바야 한국 여행사에서 상담 계약하는 방법으로 할 겁니다.
대략 인당 100불 정도 더 들겠지만, 그 100불로 인한 여정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절대 비싸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싸면 싼 이유가 있는 것이고, 국제 수준의 서비스를 누리고 싶다면 국제 수준의 가격을 지불하라. >
< 덮어 놓고 싼 것만 찾다가는, 거지 같은 꼴을 못 면한다. >
< 손님, 그 가격에 그런 걸 원하신다니 일단 좀 맞으셔야 겠네요. >
2 Comments
이재열(Tommy) 2010.10.20 14:14  
아따...예나 지금이나 인도네시아 택시는 여전하구만...

차장 행동이 공손할 수 밖에 없죠..

경찰이 버스를 세운 후...
기사에게 돈을 받죠..(예전에는 그런게 흔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목격한 장면인데... (슬라웨시 Una Aha)

경찰서 앞 횡단보도에 버스가 서더니...(밤도 아니고 대낯)
경찰관이 경찰서 정문 앞에서 다가오더군요..
경찰관이 버스 기사에게 손을 내밀자...
버스 기사가 잽싸게 돈을 주더군요...
돈을 받은 경찰관은 다시 경찰서로 돌아갔고...
그후에 버스는 출발...

아마 지금은 많이 없어졌을 거예요...
날아라 뱃살 2011.06.09 01:03  
요즘도 그래요,경찰은 이나라에서 최고의 직업....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