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land Bali 02 - Bedugul
Pura Bukit Sari를 나와 점심식사를 하러 갑니다.
점심식사 장소는 Ngiring Ngewedang Restaurant. Lake Buyan에서 Singaraja 방면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Warung Kopi)입니다.
Lake Tamblingan 지대를 바라보는 산지에 위치한 이 멋진 카페에서는 주인인 발리인 부부가 Villa라고 부르는 숙소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http://www.ngiringngewedang.com/)
엄청 멋진 뷰가 예상되는 곳이지만 늦은 점심을 먹으러 와 보니 이미 안개가 자욱하여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 일대는 오후엔 안개가 자주 끼니 싸게싸게 다니라는 론리플래닛의 충고가 기억나는 군요. 일정상 이렇게 올 수 밖에 없긴 했지만요.
이 곳에서는 커피를 직접 볶고 그라인딩, 분말 필터링까지 다 합니다. 코코 말에 따르자면 시범을 보여주고 손님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행인지 우리 가족이 갔을 땐 그런 거 안하고 유럽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든 바람에 점심밥 만들어주기 바빴습니다.
왜 다행이냐면... 비굴, 쫌생, 소심, 뭐 이런 거 한자리에 다 모아놓은 소인배 종합선물세트 우리 부부는 커피 제조 시범 아마 구경하면서도 이거 다 보고 나면 한봉지 사줘야 되는 거아냐? 직접 커피를 만드는 것이니 친환경 올가닉 커피라고 까르푸보다 비쌀 거 아녀? 우린 커피 좋아하지도 않는데... 심각한 고민삼매경에 빠졌을 겁니다. -_-;;
이미 꼬삐발리에 은근히 중독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긴 했지만 말입니다.
아마 내려가 보진 않았지만 저 뒤로 보이는 어디론가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의 숙소인 빌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꽤 길고 깊게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식사는, 단체 손님들이 몰려와서 그랬는지 30여분 이상 기다려야 했던 걸로 기억되는군요. 하지만 이미 안개는 내려 앉았고 오후에 브두굴 근처를 쏘아 다닐 때 이 안개를 헤치며 그저 흐린 기억 속의 브두굴로만 머릿 속에 담아 둬야할 것이 자명한 계제인지라, 급할 것 없이 이 선선한 공기와 희미하게라도 보이는 저 아래 절경을 감상하다 보니 그리 지루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주문한 첫번째 요리 생선구이(Ikan Bakar). 듬성듬성 굵은 후추를 뿌려 구워낸 생선 도막이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프렌치프라이와 함께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됩니다.
Grilled 요리에 빈땅이 빠질 수 없죠! 사실 이 날 날씨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기엔 좀 쌀쌀한 느낌도 드는 것이었지만... 언제 원없이 이 빈땅을 마시겠삼!? 빈땅 욕심에 을씨년스러움도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배채우는 데에 빠지면 섭섭한, 빈땅과 함께 원없이 배채우고 가리라 맘 먹고 온, 미고랭. 푸짐하고 간 맞고 깔끔합니다. 미고랭이 그러면 다 된 거 아니겠슴?
안개 속에 둘러싸여 기대했던 뷰를 만끽하지 못하며 식사를 했다고 아쉬워만 하고 있을 게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날의 구름 속에서 식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은 흡사 대학시절 지리산 등정 중 천왕봉을 밟았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사방이 구름으로 둘러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천왕봉에서의 스무살적 기억은, 세상에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지독한 외로움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더 신(神)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독대(獨對)해야 하는 사람의 운명을 몸서리치게 나의 모든 것 위에 각인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와룽 안에서이지만 사방이 허여멀건 구름벽에 갇혀 있다 보니 그 때가 회상됩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군요. 사랑하는 아내, 아기들과 함께이니, 지리산 천왕봉에서 가진 인생 turning point의 감흥과 교훈을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에서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어서,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정말 잘 오고 잘 온 곳, Ngiring Ngewedang Restaurant 이었습니다.
느긋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안개길을 헤쳐 Pura Ulun Danu Beratan으로 이동합니다. 친절한 우리의 드라이버이자 가이드, 코코가 맘 편하게, 친가족은 아니더라도, 먼 친척 정도는 되게 대해주다보니 코코의 보물 1호이자 코코의 아내가 매일 쓸고 닦는다는 밴은 그냥 우리집 안방이 되어 버립니다. ㅋ
오후의 일정은 브라딴호수를 면하고 있는 울룬다누사원에서 설렁설렁 하릴없이 산보 다니기.
브라딴 호수는 아주 오래전 화산폭발로 생긴 호수라는 코코의 설명.
평온한 브라딴 호수를 끼고 있는 이 아름다운 사원은 이 호수의 여신을 기리기 위한 사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갔을 땐 호수의 물이 약간 빠져 있어서 (코코 말로는 이런 일이 전에 없었는데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이렇게 물이 줄어들고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저 유명한 울룬다누 사원의 탑들이 많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날씨 탓인지 시간대 탓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다른 관광객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발리스러움에 푸욱 빠져서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더 없이 좋을 것 같은 Pura Ulun Danu Beratan 이었습니다.
오전 오후 사원 1군데씩 그 호젓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또 걷고 하다보니 좀 피곤합니다. 울룬다누사원을 다녀와서 일단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1-2시간쯤 쉬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합니다.
브두굴에서 잡은 숙소는 Saranam Eco Resort.
Munduk에 숙소를 정하려고 하다가 묵고 싶었던 호텔이 풀부킹된 바람에 브두굴 지역에 숙소를 잡야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목적지별 거리만 고려해서 예약한 곳.
하지만 묵고 보니 넘 멋진 곳. 아내와 나는 이 곳의 매력에 하룻밤이지만 푹 빠져버렸지요. 이 멋진 놈에 대한 소개는 다음번에.
저녁식사는 사라남에코에서 차로 20-30분 거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울가든에서 합니다. 물 건너까지 나와서 한식을 먹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는 우리 부부이지만 발리 돼지로 만든 삼겹살이 맛보고 싶어서 서울가든에게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발리돼지고기로 끓은 김치찌게도 맛보고 싶어서 삼겹살은 1인분만 시켰지만 정성스럽게 인도네시아 아가씨 점원이 고기를 구워주고 잘라주며 서빙을 해 줍니다. 반찬도 동남아 저가 패키지 한식당들 주듯 댕댕하는 게 없이 하나같이 빠지는 게 없고 맛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갔을 땐 아마 밤늦게 근처 클럽에서 라운딩을 하고 오셨을 노부부만 서울가든 쥔 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계셨습니다. 브두굴 관광하러 온 우리들에게,
"아니 여기에 골프 말고 뭐 관광할 거리가 있어요?"
하고 물으십니다... 쩝. -_-;;
서로 목적이 다르니, 제 눈에 골프클럽이 안 보이듯, 그분들도 그렇겠지요. ^^;;
노년에 사이 좋게 골프여행 다니시는 보기 좋은 그 노부부도 숙소로 떠나시고 쥔장아저씨와 우리 가족만 남아, 아저씨께서 "발리코피 아니고 네스카페야-" 라며 자랑스럽게 내어 놓으신 커피를 마시며 쥔 아저씨의 이민생활기를 재미나게 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사실, 우리 부부가 밖에 나가면 한국 음식 안 먹는다는 것이 한국 음식 안 먹고도 버틸 수 있다는 말이지 먹기 싫다는 말은 절대 아니죠. 이렇게 서울 변두리 어느 고기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입에 착착 감기는 고소하고 쫄깃한 발리 삼겹살, 발리 목살 김치찌게를 먹고 한국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까지 곁들이고 보니 정말 푸근한 맘 편안해 지고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