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발리 - 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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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발리 - 로비나

엘러리 0 3996
2006.01.12. 둘째날 : 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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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밤을 샜던 탓인지 무지하게 잘 잤다. 일찍 일어나 꾸따를 좀 더 둘러볼까 했던 계획은 예상대로 생각 뿐. 아침 먹고 짐싸서 나가면 쁘라마 버스 시간 맞추기도 빠듯할 거 같다. 대강 세수만 하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마사인은 큰 숙소답게 레스토랑도 널찍하고,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져서인지 한국인들이 꽤 눈에 띈다. 여기서 본 이후로 우린 일주일 여행 동안 한국인들을 전혀 만나질 못했다. 신기한 일이지, 같이 비행기 타고 왔던 그 많은 한국인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허겁지겁 아침 먹고 쁘라마 버스를 타러 갔다. 작은 버스에다 에어컨은 기대도 안했지만, 어쨌거나 달려 왔더니 덥다. 버스는 우리 말고도 두서너 명의 백인들과 그들 키만한 배낭들을 싣고 달리기 시작했다. 최고 속도는 시속 60km (진짜 빨리 달릴 때만 이렇지, 대개는 40km될까나.). 낯설지만 왠지 정겨운 정경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어느새 땀도 식어 버리니 여행은 참 좋고나 하는 감탄이 절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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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라마 버스는 사누르 바닷가에 몇몇을 내리고, 우붓에 들러 또 몇몇을 내리고, 또 그 길에 몇몇을 태우고 로비나까지 달린다. 4시간 쯤 걸린다는 로비나 가는 길. 천천히 달리는 버스는 운전사 아저씨 친구들마다 서로 인사하고, 중간에 마을 사람들 태워주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달린다. 우붓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고개고개 꺾어가며 천천히 산으로 오르는데,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멀리 보이는 계단식 논과 학교 가는 아이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토바이들, 길가에 원숭이들까지. 버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여행이다.

한 참을 산을 오르더니 잠시 쉬어 가잔다. 여기는 브두굴. 산에 올라서인지 공기도 무척 상쾌하고, 논을 따라 계단에 띄엄띄엄 자리한 집들이 그냥 가방 들고 내리고 싶은 곳. 아니나 다를까. 한 여행객은 배낭 들고 그냥 내려 버린다. 옆으로는 브라탄 호수가 자리하고, 마을 중간에 작은 시장이 있다. 찬 음료수를 하나 뜯으니 아~ 여기서 살고 싶어라~
산을 내려가는 길엔 비가 내렸다. 그리 큰 비는 아니었다. 산을 살짝 적시고, 내려가는 우리를 배웅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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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나에 가까워지는지 아저씨가 호텔을 정했냐고 물어 본다. 아직 못 정했다고 하니까 생각해 둔 곳이 있냐고 또 묻는다. 여행 오기 전에 찾아 둔 걸 기억해서 니르와나 씨사이드 코티지로 가고 싶다고 했더니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그 이후로도 대화는 계속 되었다. 로비나에 며칠 묵을 거냐, 내일 어디로 갈거냐. 거기까지 가는 쁘라마 버스가 몇시에 있는데 예약하겠느냐 등등. 아, 물론 영어로 ㅋㅋ (이런 모든 대화는 내가 이해한 대로 쓰기로 한다. 실제로 아저씨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우린 상관 없길래 아저씨랑 인사를 하고 숙소 앞에 내렸다.
숙소 니르와나 씨사이드 코티지 Nirwana Seaside Cottages는 로비나의 가장 중심거리인 비나리아 로드에 있다. 바로 앞이 로비나의 상징인 돌고래 동상이다. 잘 가꿔진 정원이 마음에 들었다. 방을 좀 보자고 했더니 긴 정원을 따라 코티지들을 지나 젤 안쪽의 건물로 데려간다. 새로 지은 깔끔한 2층 건물에 디럭스 룸이 있었는데, 방이 깔끔한 게 마음에 들었다. 가격만 적당하다면 여기로 하고 싶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 찾아 다시 나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디럭스 룸이라 비쌀까 걱정했는데, 사람이 없어서인지 30만루피짜리 방을 25만루피에 준댄다. 좋아. 여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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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도 풀었으니 점심을 먹어야겠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드디어 나시고렝과 박소를 시켰다. 나시고렝이야 우리네 볶음밥이랑 비슷한 거라니까 어떤 모양일지 대강 예상이 되는데, 박소는... 아, 음식이 나왔다. 나시고렝. 오호~ 약간 짠 맛이 나는 볶음밥에 계란 프라이, 옆에는 땅콩소스 곁들인 꼬치가 두 개(사테 라고 하던가), 거기에 아, 왠 뻥튀기 비스므레한 것이 살짝 올려져 있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박소는. 고기 완자가 들어간 국수 비슷한 거였는데, 이 레스토랑만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 상당히 짰다. 고기 완자도 약간 비리고.. 해서 그다지 많이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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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주스까지 마시고 났으니, 배도 부르고, 이젠 뭘 해볼까나. 오토바이나 빌려서 다녀 봐야겠다. 식당 주인아저씨에게 어디서 오토바이 렌트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빌려주겠다고 한다. 얼마 후 가져온 오토바이는 상당히 낡았다. 렌트비를 5만 루피 부르길래 몇 시간 안 탈거니 좀 깎자고 해서 4만 루피로 낙찰을 봤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려고 한국에서 국제면허증까지 끊어 왔는데, 면허 있냐고 묻지도 않는다. 헬멧가지 빌려 주면서 하는 말이. 보험 안 든 거니까 사고 나면 알아서 해라. 경찰 오면 벌금 내면 된다. 이런~ 뭐, 살살 탈 거니까 그냥 함 가보자~
사실 인트 오빠는 재작년에 베트남에 갔을 때도 오토바이를 몰았었다. 무난하게, 아니 생각보다 훨씬 잘 몰길래 뒤에 탄 나까지 덩달아 신이 났었는데, 턴을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데었드랬다. 뭐 지금이야 흉터도 거의 안남았지만, 그래도 오토바이에 대한 작은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으니 다시 오토바이를 몬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며 여기저기 다니는 맛을 어떻게 잊을쏘냐. 턴할 때만 조심하자. 보험도 안들었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간도 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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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우리는 달린다. 헬멧 안쓰면 경찰한테 걸린다니까 쓰긴 했는데, 하, 머리 참 무겁네. 대화도 잘 안되고. 원래는 렌트할 때 기름 채워 준다던데, 이 아저씨는 기름없다고 우리 보고 사란다. 1리터만 사면 된다고 친절하게 어디서 사는 지까지 가르쳐 주는데, 더 얘기하면 괜히 우리 기분만 나빠질 것 같길래, 좀 우겨 보다가 그냥 그런다고 했다. 달려 보니 길가에 널린 게 기름이다. 주유소는 가뭄에 콩 나듯 있는데, 그냥 길가에서 병에 담아 파는 기름 사면 된다.
이왕 오토바이를 빌렸으니 근처에 있다는 반자르 온천이나 불교 사원에나 가볼까. 일자로 쭉 뻗은 길을 따라 달리니,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이 참 좋다. 근데, 대강의 방향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째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 뽑아간 지도라도 볼까 해서 잠시 멈췄다가 탔는데 글쎄, 시동이 안 걸린다. 오랜만에 오토바이를 타는 거기도 했고, 워낙 오토바이가 낡아서 좀 복잡하다. 열심히 부릉부릉 밟아 보는데, 그새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이 많아지고 있다. 드디어 시원하니 시동이 걸리자, 아줌마들 환호성에 박수에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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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한번 웃어주고 다시 달렸다. 계속 달려도 역시나 이 길이 아닌갑다. 결국 내려서 물어봤는데, 눈똥그란 아저씨가 1.5km정도 지나쳐 왔단다. 이런~ 돌아가야겠군. 자, 다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온천을 할 것도 아니고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나, 여기도 좋은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디민다. 때마침 나타난 꽤 넓은 잔디운동장.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네. 온천은 무슨 온천이야, 그냥 여기 세워 !
한 떼의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 한 켠에 작은 매점이 있다. 물이라도 살까 해서 갔더니 나와 있던 동네 아저씨들 다들 우리를 신기해한다. 마침 담배도 떨어져 담배도 사려고 했는데 담배는 안 파나보다. 주인 아저씨 피우시던 담배 몇 가치를 내미신다. 이거라도 받지 뭐.
운동장으로 나가니 축구하던 아이들 웃고 난리가 났다. 한 녀석이 ‘Where are you from?'하니까 웃고 난리다. 내 대답은 듣지도 않는다. 낯선 사람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밌나 보다. 이번엔 또다른 녀석이 'What's your name?' 한다. 또 웃고 난리다. ^^ 사진 찍겠다는 시늉을 하니 아이들이 좌르륵 두 줄로 선다. 멋진 동네 축구팀 탄생.
찍은 사진 보여주니 또 한바탕 난리. 사진 찍고 보여 주고, 공차는 거 찍고 덩달아 앞에 온 공도 차고. 아이들은 모두 맨발이다. 까만 비밀 공지 막대기에 꽂아 골대를 만들고, 양말과 신발이 한 쪽밖에 없는 위풍당당한 골키퍼. 파란 하늘 뭉게뭉게 구름은 높아 간다.
한참을 아이들이랑 노는데, 저쪽 매점 아저씨, 사진사 양반! 하고 부른다. 아저씨네 세 딸을 찍어 달라는 주문. 그늘에서 찍어 어둡고 흔들린 사진인데도, 아저씨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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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토바이를 달려 숙소가 있는 도로를 지나쳤다. 길가에는 바다를 따라 주욱 숙소들이 늘어서 있다. 우리 숙소도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어느 숙소나 다 좋을 거 같다.
이번에 골목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살짝 살짝 꺾여 있는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서니, 큼직한 개 어슬렁거리고, 한쪽에서 닭이 꼬꼬거리고, 길가엔 아저씨들이 모여 체스에 열중이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개의치 않으련다. 우리 숙소길 옆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푸리 발리니, 리니 호텔이니 또 숙소들이 이어진다. 작은 헌책방도 있고, 예쁜 식당들에, 잘 웃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지나가면 모두 할로 하고 어디서 왔냐, 기분이 어떠냐 묻는다. 대개는 프랜스퍼를 권하거나 투어를 권하는 사람들이지만, 웃으며 노~하면 그만이다.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Japanese?하고 묻다가 No! 하니, Taiwanese?하고 묻다가 결국 Balinese? 하길래 모두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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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시간이 되어 바다로 나갔는데, 아, 산으로 해가 져버리네. 덕분에 거리는 석양에 물들어 환상적이다. 자, 이젠 저녁 먹을 시간. 아까 본 골목이 너무 맘에 들어 다시 한번 걷다가 바다 쪽으로 난 멋진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Tropis Club이라는 이름의 식당에 앉아 나시고렝을 먹는데, 테이블 위로 하얀 꽃 하나가 툭 떨어진다. 정말 툭 소리를 내며 단호하게 떨어진다. 발리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향기로운 꽃. 이름을 물어보니 발리 사람들은 젯분 플라워라고 한단다. 젯분 플라워. 젯분 플라워. 입으로 계속 외워가며, 밤이 깊어갔다.

맥주 한 병씩만 마시고 일찍 들어왔다. 내일 돌고래 투어를 가려면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하니까.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갔더니 창문 너머로 손님이 한 분 오셨다. 도마뱀. ㅋㅋ 내가 들어가니 놀랐는지 꼼짝도 않는다. 귀여운 것.
자, 이제는 자야 할 시간. 아침에 숙소 아저씨가 모닝콜 해준다고 했으니, 믿고 자야지. 근데 가만, 전화도 없는데 어떻게 모닝콜을 해준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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