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네시아 여행기 32 아유타야 왓 프라시산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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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의 인도네시아 여행기 32 아유타야 왓 프라시산펫

Ducky 0 3698

나는 50대 중반으로 중학교 1학년인 막내와 둘이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2005년 1월 5일 출발하여 자카르타 - 족자카르타 - 발리 - 방콕 - 인천으로 1월 25일 귀국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5. 01. 22(토)
아유타야 -왓 프라시산펫, 왓 로카야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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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왕국의 대표적인 유적 왓프라시산펫. 왕실소속 사원으로 야유타야의 중심유적이며 세개의 째디(탑)는 스리랑카 형식의 탑으로 왕의 유골을 모셨다고 한다. 쩨디의 여러 곳에 희색칠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아유타야인들은 흰색회칠을 하여 더위를 막았던 것 같다


오늘은 아유타야 관광이다. 7시에 홍익여행사 앞에서 픽업을 기다렸다. 역시 한국인들은 홍익여행사에 많이 들르는 것 같다. 코 사무이로 가려는 사람,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아란’행 미니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하는데 종민이는 벌써 ‘주로 정보를 제공하는 쪽’으로 변해 있었다. 홍익여행사 앞에서 픽업 미니버스를 탔다. 아유타야 가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카오산 거리에 가서 다시 미니버스를 갈아탔다. 먼저 차보다 훨씬 낡았고, 의자도 흔들흔들했다. 차 안에는 한국인 학생 3명, 아들과 같이 온 중년남자, 외국인 2명이 타고 있었다. 우리까지 9명. 12인승인 미니버스에 2명의 자리가 비었다. 가이드 1명을 빼면 1명이 비었다. 그런데 60쯤 되어 보이는 운전수는 그 자리를 마저 채우려고 카오산을 빙빙 돈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부리나케 달려가면 벌써 다른 데로 가고, 이러기를 몇 번인지 벌써 8시가 되었다. 이 시간 까지 카오산에서 어정거리는 사람은 없다. 그제야 포기하고 아유타야를 향해 출발한다.



9시 20분 아유타야의 한 주차장에 차가 멈추고, 가이드가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한 5분 걸어가니 거대한 ‘쩨디’가 줄지어 있는 폐허에 도착했다. 쩨디들은 ‘실론 - 스리랑카’ 스타일이며 커다란 쩨디 3기가 중앙에 일렬로 서 있고, 그 앞에 작은 쩨디들이 호위하듯 서 있다. 여기가 ‘왓프라시산펫’이다. 가이드의 설명으론 아유타아왕국의 왕궁 부속사찰이며, 3명의 왕의 유골이 쩨디속에 봉안되어 있다고 했다.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쩨디에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니, 주변은 수많은 건물의 기초, 또는 허물어진 벽의 폐허로 덮혀 있다. 저 많은 폐허가 웅장한 건물로 살아있었을 때 얼마나 멋있었을까? 남아있는 흔적이 이만큼이 될 때, 왕궁터 북쪽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무언가 건물이 있었을 때 얼마나 거대한 왕국 ‘아유타야’가 존재했을까 생각했다. 1767년 버마군이 침략하여 불태움으로서 화려한 그 모습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한다. 또한 버마군은 여기에서 171kg의 황금불상을 약탈해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만큼의 금Gold을 모을 수 있는 ‘아유타야 왕국’의 재력(財力)역시 대단했을 것이다.



가이드는 ‘여기서 주변을 돌아보라.’고 했는데 가이드가 말한 ‘주변’의 범위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걷고 걸어간 곳이 아유타야를 감돌아 흐르는 ‘롭부리강’가 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가 아닌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은걸 어떻게 하나. 주변에 있던 ‘까이양’파는 아줌마한테 꼬치와 밥을 사서 배를 채우고 뚝뚝을 불러 타고 ‘왓 로카야수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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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프라시산펫 주변의 왕궁유적, 크고 높은 기둥과 벽이 궁전의 화려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왓 로카야수타’에는 바닥만 남은 사원의 흔적과 몇몇 부서진 불상, 그리고 놀라운 크기의 ‘열반불(涅槃佛)이 있었다. 몸을 길게 뻗어 오른팔을 베고 누운 부처는, 눈을 반만 뜨고 있다. 입은 가로로 길게 찢어져 모든 것을 이룬 은근한 미소가 있다. 썩 잘 만든 불상이라고 말하기는 싫었다. 또 그 재료는 석재(石材)일 텐데, 회(灰)칠과 천으로 둘러놓아서 다른 부분의 묘사를 볼 수 없었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인데.’하는 생각이 드는데 방콕의 ‘왓포’에 있는 불상과 같은 모습이다. 아마 ‘왓 로카야수타’에 있는 이 불상을 그대로 카피Copy하여 ‘왓포’에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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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야수타의 대표유물 와불(涅槃佛), 방콕의 ‘왓포’의 불상은 이것을 COPY했다.


‘왓 로카야수타’ 근처에는 사원의 잔해가 넓게 퍼져 있는데, 다른 곳보다 더 많이 파괴되어 건물의 기초나 바닥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수많은 각(角)을 가지고 쌓아진 탑인데 중간 까지만 남아있고 윗부분이 없어진 상태였다. 이 탑은 기초 부분이 튼튼하게 남아있어 윗부분을 목재(木材)로 마무리 하지 않았다면 없어질리 없는데 중간부분이 싹둑 짤리워져 아쉬웠다. 아마 윗부분이 남아있다면 훌륭한 탑이 되었을 것이다. 이 탑은 ‘버마양식’의 탑이라고 한다. 버마군이 아유타야를 침략한 뒤 쌓은 것이라고 한다. 버마가 태국의 아유타야를 파괴했다면, 아유타야에 있는 버마를 파괴한 것은 태국이 되는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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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로카야수타 부근에 있는 왓 워라체타람의 버마양식의 탑, 아유타야에서도 특이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윗 부분이 없어져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없어 매우 아쉽다.



이 버마양식의 탑 맞은편에는 균형적으로 잘 생긴 ‘실론 - 스리랑카’양식의 탑이 한기 있고, 양쪽으로 부처님이 계시다. 왼쪽의 부처님은 집을 완전히 잃어버려 공터에 나 앉아 계신데, 또 한분의 부처님은 사방의 벽만 겨우 남은 앙상한 거처에 계신다. 두 분 다 크기나 모양은 비슷한데 어느 분이 더 편안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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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양식의 탑. 균형잡히고 다른 탑들에 비하여 곡선미가 출중하다.



사원 옆 민가 근처에도 노천에 나앉은 부처님이 한분 계신다. 좌우로 공양입상(供養立像)의 보시를 받고 있는데 수인으로 보아 석가모니불이 틀림없는 것 같다. 앞에는 작은 한 쌍의 불상이 있는데 역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불이다. 오른쪽 불상은 본존과 같이 연좌대위에서 오른손을 아래로 드리운 모습인데, 왼쪽의 불상은 가부좌의 모습은 같은데 수인(手印)만 왼손을 아래로 드리운 항마촉지인이다. 부처님의 세계에도 ‘왼손잡이’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 왼쪽 불상은 연좌대 대신 머리가 일곱개인 코브라의 또아리튼 몸통위에 앉아있다. 불상의 광배와 같이 펼쳐진 코브라의 머리는 힌두교 전설속의 ‘나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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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공양불을 거느리고 있는 부처님, 이 불상 앞에 연화대 대신 힌두교의 뱀신 '나가'를 깔고 앉아있는 불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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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신전에 있는 불상. 밖같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하실까?



다음은 '수리요타이 쩨디'와 '왓 프라마하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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