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네시아 여행기 23 보로모산의 일출
나는 50대 중반으로 중학교 1학년인 막내와 둘이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2005년 1월 5일 출발하여 자카르타 - 족자카르타 - 발리 - 방콕 - 인천으로 1월 25일 귀국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2005. 01. 13(목)
보로모 - 프난자칸 전망대의 일출과 보로모분화구
4시 15분 시계 알람소리에 바로 일어났다. 사실 아까부터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반쯤은 깬 상태였다. 대강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가니 웬 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아침 지프를 타기위한 ‘모닝콜’이다. 어제 호텔에서 ‘아침 공기가 차가우니 잠바가 필요하면 호텔에서 10,000Rp에 빌려준다.’라고 했지만 용감하게 거절했다. 우리는 잠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속에 반팔티셔츠를 입었다. 그 위에 긴팔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 이제 남은 티셔츠는 없다. - 그리고 그 위에 ‘윈드쟈켓’을 입었다.
이렇게 중무장을 하고 나오니, 지프에는 벌써 사람들이 타 있었다. 어제 종민이 옆에 앉은 젊은 서양애와 동양애는 운전수 옆에 앉았다. 어제는 지프를 타지 않을 것 같이 굴더니만 티켓을 샀구나. 뒤에는 어제 앞에 앉았던 인도네시아 아줌마 두 명이 탔다. 우리도 뒤에 탔다. 내 옆에 앉았던 독일인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더 묵을 것이라며 지프티켓을 사지 않았다. 4시 30분, 우리가 타자 지프는 바로 떠났다. 처음에는 골목길 같은 마을길을 - 마을 자체가 보로모 외륜산에 겨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도로를 만들기도 힘들다. - 조금 가니 매표소 비슷한 곳이 나타난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 우리가 너무 빨리 온것 아냐, 좀 천천히 가도 되는데, - 여기서부터 어둠 속에 나타나는 길은 차라리 안보는 것이 편안한 것 같다. 비탈면에 의지해서 겨우 뚫어 놓은 길은 180도 회전을 해야 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운전사는 말 한마디 없이 때로는 4WD로 전환해서, 또 그곳을 지나면 바로 2WD로 전환하며 한 30여분 갔나 생각하는데 차를 세운다. ‘여기서 더 못가겠다. 저리로 가면 전망대가 있다. 일출을 보고 오면 여기서 기다리겠다.’ 운전사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지프차가 주차되어 있다. 우리가 제일 마지막 인 것이다.
지프차 사이를 걸어가니 그 높은 곳에도 상점들이 있고, 불을 밝혀 놓고 손님을 부르고 있다. 긴 코트 같은 방한복을 빌려주는 사람, 장갑 파는 사람, 모자 파는 사람, 군 옥수수장수, 살기위한 투쟁은 끝이 없었다. 상점이 끝나는 곳부터는 전등이 없어 어두웠다. 아주 못갈 정도는 아니지만 작은 랜턴을 켜고 수월하게 올라갔다. 한 100미터 정도 되려나? 더 되려나.
정상에 도착하니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일본인 관광객, 수학여행온 인도네시아 학생, 그리고 우리까지, 어둠 속에서 멀리 화산 연기를 내뿜고 있는 우아한 자태의 스메루 Semeru 3676m산과, 그 앞에 흰 연기를 뭉게구름처럼 올리고 있는 보로모 화구가 어렴풋이 보인다. 사방은 어둠과 안개에 쌓여있는데 한기는프난자칸 전망대에서 보는 일출, 완벽하진 못해도 둥근해가 떠오른다. 겹겹이 입은 옷 속으로 파고든다.
수많은 눈이 동쪽하늘을 주시하며 초조하게 발을 구르는데 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엊저녁엔 초롱초롱한 별들이 밤하늘에 가득 차 있더니만, 지금은 커다란 구름이 서쪽에서부터 몰려온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 왔는데..’ 모든 이의 생각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소망도 무참하게 짖은 구름이 '프난자칸 전망대‘를 덥는데, 순식간에 옆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이 안 보일 정도다.
추위는 점점 더 심해지고, 해 뜰 시각은 다가오는데 주위는 아까보다 더한 어둠 속에 쌓이게 되었다. 별안간 모여 있는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아마 누군가 여기에서 해돋이를 많이 본 사람인 듯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다. ‘아- 오늘 해돋이 보기는 글렀어, 이렇게 구름이 끼면 해가 안 떠, 사람들 모이기 전에 빨리 보로모 분화구로 가는 것이 좋을 꺼야!’ 뭐 이런 내용인 것 같았다.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일본인 단체관광객, 중국인 단체 관광객 이런 순서로 사람들이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뒤 전망대에 남아있는 사람은 한 20여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프난자칸 전망대에서 일출을 기다렸다.
프난자칸 전망대에서
‘어떻게 하지!’ 인솔자가 없이 올라온 우리는 무어라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일행인 인도네시안 아줌마에게 물으니 그녀도 특별한 대안이 없다. ‘일단 기다려 봅시다. 갈 곳도 없으니’ 서양애도 자기 의견을 내세울 형편이 못되는지 그러자고 동의했다. 그리고 한 10분이 채 못 되어 '프난자칸 전망대‘를 덥고 있던 구름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더니, 멀리 동쪽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솟구친다. 태양이다! 그 아래 아련한 것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인지 - 전망대의 해발높이는 약 2700m, 여기서 인도양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60-70km 정도 되는 듯 - 아니면 또 다른 산을 덮고 있는 구름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정확한 수평선 위치에서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끝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일까? 기념사진도 찍고, 감탄사를 내지르며 구경도 하고, 태양이 다시 다른보로모산의 일출구경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있었다.
‘내려갑시다!’ ‘그럽시다!’ 일출을 봐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쁜 하다. 해가 뜨는 순간에만은 추위도 잊었었다. 군옥수수를 한개 사서 내려오니 도로에 남아있는 차는 불과 서너 대! 우리의 운전사도 상점 앞까지 올라와 손짓하여 불러준다. ‘잘 구경했냐! 오늘 정도의 일출을 보는 것도 드문 일이다.’ 올 때는 말 한마디 없던 운전사가 내려가는 길에는 ‘여기서 보는 경치가 쥑인다. 사진 찍고 갈래?’하며 좋은 자리에 세워주기도 한다. 해가 완전히 뜨니 아까까지 낮게 깔렸던 구름들은 모두 사라지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조금 걸려있다. 햇살이 눈부셨다.
차는 전망대를 내려오다 어느 지점에서 길을 바꾼다. 그러더니 까만 모래가 깔린 들판으로 내려선다. 말이 들판이지 풀 한포기 없는 검은 모래의 사막이다. 모래 언덕도 없고, 모래를 날리는 바람도 없고,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모래들판에, 물 흘러간 자국과 바퀴자국 뿐이다. 여기가 보로모산의 화구(火口) 안이다. 그 옛날 크게 폭발했던 보로모 산이 잠잠해 지면서 뿜어져 나오던 화산재가 가라앉아 평평한 평야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금 연기를 내뿜고 있는 보로모 분화구가 있는 것이다. 방금 내려선 외륜산(外輪山)의 언저리에서 분화구 까지는 약 2.5km 정도 된다.
보로모 분화구에서 주차장의 이슬람 사원을 본 광경
보로모 분화구 아래에는 큰 집이 한 채 있는데 그 용도를 모르겠다. - 나중에 알아보니 이슬람교 사원이었다. - 그리고 근처에 벌써 많은 차들이 와 있었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다. 지프가 도착하니 20여명의 남자들이 - 이 사람들은 보로모 산에 사는 현지 사람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몽골인 스타일에 수염을 기르고 있어 처음 볼 때 매우 낯설다. 그러나 친절하고 순박하다. - 모여들어 소리를 치는데 ‘말을 타라.’는 것이다. 주차장에서 보로모 화구 계단아래 까지는 약 1.5 - 2 km 가량 되는 화산재의 언덕길이다.보로모 화구아래까지 말을 타고 올라간다. 올라가는데 20,000Rp, 내려오는데 10,000Rp, 왕복은 30,000Rp, 더하고 덜하고 없이 딱 그렇게 받는다. 말을 탄다고 빨리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마부가 말 고비를 잡고 앞서 가기 때문에 걸어가는 속도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다만 올라가는 길이라서 힘이 들지 않을 뿐이다.
그러게 큰 말을 타라고 그렇게 말했잖아
만약 말을 탈 생각이 있다면, 크고 좋은 말을 선택해서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특히 몸무게가 나가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경을 쓸 것. - 모든 말이 올라가기는 하지만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 할 테니까. 왕복을 선택하면 이름이 쓰인 작은 쪽지를 준다. 말 이름인지 사람이름인지 모르겠는데, 보로모 분화구에서 내려오면 마부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때 이 쪽지를 보여주면 자기를 태워줄 마부가 나타난다.
보로모 분화구 앞에 내리면, 분화구 꼭대기 까지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길’ 같이 직선으로 곧게 뻗은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한가하게 가위바위보 하면서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오늘 안에화산재가 위험한 보로모화구
관광을 끝내고 싶다면.
자기의 체력에 맞춰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둥그런 화구 안이 보이는 정상에 서게 된다. 보로모 화구 안은 죽음의 세계 같은 느낌이 든다. 회색의 화산재가 흘러내린 가운데, 아무 특징도 없이 ‘지옥의 문’ 처럼 갈라진 구덩이에서 유황냄새를 풍기는 흰 화산연기가 솟아오른다. 연기인지 수증기 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가 구름까지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본의 ‘아소화산’같이 붉다 못해 투명한 듯이 보이는 ‘용암’은 볼 수 없었다.
흰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보로모 분화구
화구(火口)의 주변은 화산의 분출시 쌓인 화산재로 되어있다. 그래서 가운데 겨우 한 두 사람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만 있고, 잘못 한발을 디디면 아무 힘없는 화산재가 무너져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화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은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왼쪽으로 화구를 돌아 한 1/4 -1/3정도 갔다가 되돌아 왔다.
어린이들이나 여자들이 작은 부케같이 만든 꽃송이를 들고 사라고 한다. 처음에는 꽤 비싸게 값을 부르다가, 내려가려고 하면 5000Rp 3000Rp로 값이 내려간다. - 인도네시아 여인네들은 아래에서부터 꽤 여러 개를 사 가지고 올라왔다. 왜 사는지 이유를 몰라서 같이 못 샀다. - 이 꽃을 보로모 분화구 속으로 던지며 소원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보로모 화구에서 사막과 같은 검은 모래 평원을 거쳐 보로모 외륜산 아래 까지는 약 2.5km 가량 된다. 밤중에 이 화산재 사막을 걸어 건너려면 작은 랜턴이라도 한개 필요할 것 같다. 특별하게 표지로 삼을 것이 없어서 흰 페인트칠을 한 돌을 마치 차선 표시하듯 세워 놓았다. 이렇게 해서 올라서는 외륜산마을이 쩨모로 라왕 Cemoro Lawang에서 가장 중심부인 것 같았다. 경사면에 의지해서 세워진 마을도 꽤 크고, 우체국도 있다. 또 라바 호스텔 Lava Hostel 을 비롯한 게스트하우스등 숙박할 수 있는 곳에 꽤 여러 개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얼마만큼 떨어진 곳에 라바 뷰 Lava View라는 곳이 있고, 오른쪽으로 얼마만큼 가서 우리가 묵은 ‘요시히 호텔Yoschi Hotel’이 있다. - 이것은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여행사 개념도 에서 본 것이다. -
사막과도 같이 검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보로모 분화구 평원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로모 화산 일출 관광은 새벽에 지프를 타고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멋진 일출과, 보로모 화구 관광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걸어서 '프난자칸 전망대 Penanjakan View Point'를 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고, 외륜산에 있는 마을에서 보로모 분화구를 걸어서 화구(火口)로 가야 하는데, 약 2km가 넘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어떤 정보에는 ‘말을 타고 갈 수 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마을에서부터 말을 타고 갈 수 있다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마을에서부터 말을 타고 갈 수는 없을 것 같고 - 다른 사람이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면 좋겠다. - 또 말을 타고 간다고 해도 그 값도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침 일찍 지프를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쩨모로 라왕 Cemoro Lawang’이 높은 곳이라서 기온은 떨어진다고 해도, 햇빛이 강하여 낮에 이 분화구를 건넌다는 것은 상당한 고역(苦役)일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도전과 모험의 정신으로 감내하겠다는 사람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 다음은 발리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