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나... 바람맞은 연인의 심정으로 떠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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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나... 바람맞은 연인의 심정으로 떠나오다.

고구마 0 2802
7시간의 바뚜르 산행을 끝낸 후, 우리는 베모, 버스, 다시 베모, 또 베모(지겹고 힘들다)를 갈아타고 드디어 목적지인 로비나에 도착했다. 내릴 곳을 잘못 짚어 숙소가 있는 곳까지 한참을 걸어가는 동안, 나는 혹여 누가 옆에서 툭 치기만 해도 엉엉~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오늘의 고행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건가...
“죽을거 같애....”
앞서서 걷는 요왕을 향해 잠깐만이라도 쉬어가자고 불러 세웠다.
내 얼굴 상태를 본 요왕이 내 배낭까지 자기가 앞에 걸머지겠다며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아서라... 힘든 건 어차피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남편인데 끝까지 함께 살아야 되지 않겠어... 머나먼 이국땅의 먼지 나는 길바닥에, 배낭 사이에 끼인 채로 꼬꾸라지는 그를 보고 싶지는 않아...

로비나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새벽에 떼 지어 헤엄치는 돌고래들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돌고래라는 매력 포인트가 없었다면, 우린 이 북부의 제법 큰 해변 마을을 간단히 루트에서 제외 시켜 버렸을 거다.
로비나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노천 온천도 있고(현지인과 여행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다), 힌두의 섬 발리에서 단 하나밖에 없다는 불교 사원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그냥 옵션일 뿐이다. 이곳의 물은 수영하기엔 그다지 적당하지 않으며(적당하지 않다기 보단 수영하고 싶은 맘이 절로 찌그러들 만큼), 스노클링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내가 해본 것과 요왕이 해본 것을 통산하여)를 자랑한다. 오전부터 버글대는 해파리와 그나마 몇 마리 보이지도 않는 생선.(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로비나에서 제일 괜찮은 스노클링 포인트라니...) 게다가 해변에서 선탠하며 놀기에는 모래도 별로다.

<로비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노천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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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나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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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선 여행자가 머무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각종 삐끼님들이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숫자를 자랑하면 득실댄다. 이곳도 마찬가지... 솔직히 말해, 좀 많이 성가시다.
안 산다고 이야기했음 제발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줘....
하지만 여행자를 상대로 하지 않는 그냥 보통 발리니스 들은 참... 뭐랄까... 꽤(다소 놀랄 만큼) 다정다감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여느 동남아시아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사와 다정한 미소를 선사 받았다. 물론 호객꾼들이 보내오는 인사는 제외하고........
불교사원을 둘러보고, 온천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는 동안 ...어른들은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환히 웃어주고, 아이들은 그보다 더한 액션으로 ‘할로~~’ 라며 손을 흔든다. ‘궁핍’ 또는 ‘바가지를 씌우려는 한탕주의’가 그들을 여행자 앞으로 내몰지 않는 이상은, 이곳 발리인 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인 듯하다.

자... 어쨌든 이곳에 온 이유.., 돌고래 투어를 할 시간이다.
새벽 6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로비나 앞바다를 돌아보는 이 여정을 위해, 아직 깜깜한 새벽 많은 여행자와 사공들로 해변은 나름대로 분주했다.
이날 우리가 운이 없었을까... 아니면 이게 원래의 모습인걸까... 기대되는 마음을 잔뜩 안고 올라탄 배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평온을 잃고 점점 스토커처럼 변해갔다. 눈에서 광선만 안 나왔다 뿐이지, 잔뜩 힘을 주고 부릅뜬 눈으로 샅샅이 바다를 스캔해 나간다. 마치 사라 코너를 찾는 터미네이터가 된 심정으로 말이다.
‘우린 니들을 해치진 않을 거야... 단지 그 미끈하고 날씬한 등짝만 좀 많이 보여 달란 말이야...’
고래에 대한 우리의 어마어마한 짝사랑과는 달리, 그들은 우리를 대면하는 게 적잖히 달갑지 않나보다.
“저기 보인다. 저기 저기!!”
다른 사람들의 손짓에 고개를 돌려보면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기 일보 직전인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날이 밝아지자 차츰 다른 배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어림짐작 세어 본 것만 35척이 넘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축구하는 걸 본적이 있다면, 그날 우리의 꼴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될 거다. 모두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뜨기만 할 뿐,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는 뱃사공도 모르는 일. 우릴 위해 단 몇 십 초도 기다려 주지 않는 돌고래의 지느러미가 보이는 곳이면 그 모든 배들이 이리로 우~~ 저리로 우~~ 몰린다. 마치 수비수고 포지션이고 아무것도 없이 공만 쫓아 달리는 아이들의 떼거리처럼...
다른 시즌, 다른 날이라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그날 우리는 실망한 마음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돌고래가 나타나는 곳을 향해 모든 배들이 맹렬한 속도로 모터를 돌리며 전진할 때, 나는 혹여 그 수많은 모터들에 고래의 등짝이 완전히 박살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왠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프랑스인 아줌마가 말해준 아멧으로 일찌 감치 뜨기로 했다. 그저 이른 새벽 멋진 일출을 본 것만으로 만족을 해야 할 듯싶다.

<돌고래 보러 나가는 도중 맞이한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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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등 지느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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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멧은(원래대로 라면 우리는 로비나에서 남부 내륙 마을 브두굴로 가기로 했었다.) 우리의 일정에 없던 곳이었지만, ‘파라다이스였다’는 다녀온 사람의 평가를 믿고 한번 가보기로 한다. 그녀에게 아멧이 파라다이스였듯이, 내게도 그곳이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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