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뚜르로 가는 길... 개미들에게 뜯어먹히는 애벌레의 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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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뚜르로 가는 길... 개미들에게 뜯어먹히는 애벌레의 심정

고구마 3 3688
우붓에 머무르는 동안 우붓 근교의 몇몇 볼거리들과 사원을 둘러봤고, half day 투어로 화이트 워터 래프팅을 하기도 했다.
로컬 교통수단인 베모를 이용해 근교로 돌아다니고, 투어 가격을 알아보는 동안 드는 의문은 ‘과연...적정한 가격이란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조차도 사실은 여행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특별요금이 아닐까... 여행자가 현지인 가격에 접근하기에는 그 분명한 한계가 있는 듯하다. 단돈 몇 푼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지만, 이 아름다운 섬의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이런 식으로 ‘특별’하게 취급 한다는 건 정말이지 나의 맘을 조금 상하게 한다. 같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올 때와 갈 때의 가격이 다르다. 예상하고 있는 사실과 기대가 자꾸만 틀려지는 것은(여기서 금액의 차이는 전혀 중요치 않다.) 무척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여행사에서 하는 투어조차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큰 회사가 주관하는 투어든, 작은 회사가 작은 자본으로 주관하는 투어든 어쨌든 아융 강 래프팅은 브로셔에 65달러로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흥정에 들어가면 ‘소벡’ 이나 ‘발리 어드벤쳐 투어’ 같은 탄탄한 회사의 투어도 일단 45달러까지 내려오고 작은 회사의 상품은 30달러를 부른다. 실제로 구입을 하기 위해 적극적인 요금 조정을 하다보면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 되는 건 당연지사... 왜 처음부터 적절한 가격으로 명시하지 않는 걸까...
우붓 근교의 작은 볼거리 하나를 보기 위해 시장 앞에서 베모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수 많은 호객꾼들의 접근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지역까지 왕복하는데, 그가 처음 부른 가격은 8만 루피지만 결국엔 3만 루피에 낙찰되는 식이다. 하여튼 이것도 여행의 재미라면 재미고, 나름데로 낙이라면 낙이다.

우붓을 떠나 바뚜르 산으로 가기 위해 우붓 왕궁 앞에서 잡아탄 베모는 얼마간을 달리더니 다른 승객들은 다 내리고 우리만 남았다. 베모 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내려 우리 곁으로 온다. 이건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닌데...
“자...들어봐. 낀따마니(바뚜르 산의 주변 마을)까지 가는 여행사 버스가 1인당 5만 루피야. 근데 지금 당신 둘을 위해서 7만 루피로 해줄게. 아주 좋은 가격이지?”
낀따마니행 여행사 버스는 35,000 루피이다. 거짓말 하는 당신!! 일단 아웃이야~
그 근처 마을 터미널로 가서 정규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으니 계속 말을 걸며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어디서 왔냐?”
"어디서 왔냐고? 인도네시아에서 왔다. 얘 얼굴을 봐라.(요왕이 날 가르키며..) 우린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아하하~ 당신들은 인도네시아 인이 아냐. 우리가 인도네네시아 인이지... 일본에서 왔지?”
터미널 사람에게 낀따마니 행 버스가 언제쯤 올 거냐고 물어봤더니, close 란다. 그리곤 베모 기사랑 농담중이다. 지금 시간이 12시도 안됐는데 벌써 close 라고..? 둘이 친구인건가?
한낮의 태양 아래 지루한 흥정이 이어졌고 결국 우리는 바뚜르 산의 최종 목적지인 토야붕까까지 35,000에 합의 하고 길을 떠났다. 하지만 우리가 맘 편하게 그곳까지 도착했을까?
아침 먹은 지 두 시간 밖에 안 된 우리를 어느 뷔페식당 앞에 떨어뜨려 놓고, 차가 열이 받아서 더 이상 못 간다며 ‘한 시간 후에’라고 한마디 하고는 그는 어디론가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 후 우리는 식당 주인, 기념품 장사치, 호텔 삐끼 등등... 온갖 종류의 호객꾼으로부터 시달렸다. 바로 앞에 바뚜르 산과 바뚜르 호수 그리고 그 사이의 작은 마을인 토야붕까가 보였지만, 이건 뭐 기사가 있어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덥고 난감하다. 화가 치밀 대로 치민 요왕은 ‘내가 이놈의 차, 타고 가나봐라...’면서 걸어서 가겠다며 배낭을 울러 메고 터벅터벅 걷는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하냐는 내 다급한 물음에 요왕은 ‘걱정 마. 아쉬운 사람이 우릴 찾게 되어 있어’ 라고 장담했고 그 말은 맞긴 맞았다.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안보이던 베모 기사는 우리가 길 떠난 지 일분도 채 안 되어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다가온다.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면서 'ok ok' 그러면서 타란다. 우리를 그 식당에 데려다 주면 그 식당에서 밥을 공짜로 먹는 것이었나 보다.
그 후 그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역시 목적지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호텔 주차장........휴우~~ 아저씨! 내가 졌수다. 당신의 완전한 승리야...
결국 그 호텔에서 내려 배낭을 메고 도로를 걷기 시작... 어깨가 젖혀지고, 머릿 속이 붕붕 대네... 다행히 그 즈음 지나가는 다른 차를 타고 5분 정도 달려 토야붕까까지 올 수 있었다.

토양붕까(바뚜르 산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곳이다. 좌로는 바뚜르 산 우로는 바뚜르 호수를 끼고 있는 작고 한적한 마을)에 내려 숙소에 짐을 풀고 있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슬금슬금 등장하더니 바로 내 방 현관 앞에 4명이 진을 치고 앉아 있다. 마사지사, 그리고 그의 동생, 엽서팔이, 트레킹 가이드....
긴 이동 후 맘대로 씻을 자유조차 없는 걸까? 문을 닫아걸자니 너무 무례한 것 같고, 그렇다고 일일이 대꾸해 주자니 너무 피곤하다. 원래 이곳으로 올 때도 산을 오르려는 마음은 없이, 그냥 호숫가 온천 마을의 고요함이나 느껴보자고 온 터였다. 하지만 가이드의 적극적인 설명을 듣다보니 약간 마음이 동하기도 하고,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우리에게 정가(?) 45불짜리 ‘Long Time Sunrise Tour’를 1인당 200,000 루피라는 '해피 프라이스'에 해주겠다는 말에 결국 산을 오르기로 계약했다.
“다른 사람들한텐 절대로 이 가격에 했다고 말하면 안 돼. 누가 물어보면 45달러에 했다고 꼭 이야기해야 해.”
라는 가이드의 거듭된 다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다른 여행자들도 다들 이정도 가격에 하는 건 자명한 일... 어쨌거나 너무 힘겨운 여정이 되지 않아야 될 텐데...

자 그럼...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일단은 슬슬 마을이나 둘러볼까...
숙소를 나서자마자 작은 꼬마소녀가 팔랑 거리며 뛰어온다.
“내 이름은 리사. 당신 이름은 뭐에요?”
오호~ 귀여운 시골 아이구먼... 하며 지은 미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 아이는 길 건너편으로 뛰어가 과자가 가득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지고 돌아와 내 손에 감자칩 하나를 건넨다. 얼떨결 받아든 나...
어디선가 2명의 소녀가 더 나타나고 서로 자기의 것을 내게 넘겨주기 위해, 정신없이 내게 뭔가를 내민다. 대략 정신이 멍~ 해진다.
‘아아~ 하나 사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 할 거야...’
얼마냐고 물어보니 10,000루피란다. 그 감자칩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구멍가게에선 1,500 근처 호수 찻집에선 2,000에 파는 거다.
5,000이면 살꺼야.... 라고 했더니 노! 라며 외치네... ‘그럼 도로 가져가’ 하며 과자를 광주리에 담으려 했더니 광주리를 옆으로 획~ 빼돌리면 몇 발자국 도망쳐 버리는 아이... 헐~
아이답지 않게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단지 영리하다고 말해야 하나...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요왕이 옆에서 말한다.
“하나에 5,000씩 공정하게 한 사람한테 한 개씩 3개 사자. 그리고 감자칩 말고 딴 거 없나? 딴 거 ?...”
“아~ 딴거? you want 딴거? 딴거 딴거” 와글와글와글...
또렷해지는 아이들의 말이 귀에 꽂힌다. 아니... 이 시골까지 한국인 여행자들이 들어오기라도 한건 가.... 어쩜 이렇게 대번에 따라하지? 갑자기 아이들이 분주히 딴거를 찾더니 우리앞에 내민 건...두둥~
진정한 ‘딴거(땅고 tango)’였다.
아이들이 건네주는 땅고와 감자칩을 양손에 들고 나는 머저리처럼 푸하하~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과자로 볼록해진 가방을 메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니 리사가 내 가방을 가리키며 말을 붙인다.
“과자 하나 나한테 줘”
그래... 우리가 이거 다 가져 뭐하겠냐... 하나를 주니 좋다고 팔랑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사진찍으려고 뛰어오는 아이가 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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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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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너 시간 후...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간 우리를 향해 아까의 그 소녀 떼들 다시 출현!
근데 그 사이 업종 변경 했는지 이번엔 팔찌를 주렁주렁 들고 ‘very cheap price!’를 외친다.
그들을 샤샤삭~ 피해 호숫가에 앉아 있으려니, 그 사이 본업인 과자로 업종 변경한 리사가 등장~
“하나 사”
헉~ 얘가 왜 이러나...
“아까 너한테 샀잖아...”
“넌 안 샀어...”
“너 나 기억 못해? 과자도 도로 하나 주고 사진도 찍었잖아..”
“넌 안 샀어!! 그리고 그 모자 나한테 줘.”
얘야... 이건 니 그 조그만 머리통에는 맞지도 않단다.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다른 여행자 쪽으로 후다닥~ 달려가 버리는 아이... 아~~ 상처 받았다.
이곳은 일단 여행자가 떴다~ 하면 기본으로 5명 정도의 장사치가 그 뒤를 따라 붙는다.
과자 팔이 소녀 두 어 명, 마사지 아줌마, 팔찌와 그 외 작은 기념품을 든 소녀들...
가끔씩 길 한 구석에 필사 적으로 발버둥 치는 허연 애벌레와 그 벌레 주위로 모여드는 개미 떼를 본 적이 있나... 나는 마치 이 마을에서 그 애벌레가 된 듯 한 느낌이다.
아... 한가롭고 평화롭게 보이던 이 마을은 단지 겉모습만 그런 것일까...
내가 바라는 건 단지 편안하게 마을을 걷고 호수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는데...
자신의 한 살 박이 아이의 두 손에 연필과 팔찌를 가득 쥐어주고 가만히 우리 앞으로 등을 떠밀어 보내는 젊은 엄마의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기에게서 물건을 사는 것도, 또는 사지 않는 것도 어느 쪽 하나 맘 편할 게 없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극성스럽던 호객꾼들의 ‘헬로~ 칩 프라이스~ 맛싸~’ 소리도 잦아 들고 평범한 여느 마을 분위기로 조금씩 되돌아 오는듯하다. 우리 숙소에서 멀지 않은 노천 온천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손에 목욕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등장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뜨뜻미지근한 온천물에 단체로 들어가 그 물로 이도 닦고 머리도 감는다. 요왕이 잠깐 손가락을 담궜다 뺐는데도 불구하고 손에선 샴푸 냄새와 치약 냄새가 진하게 배었다.

<호숫가의 노천 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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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여길 떠날까 말까?”
예정대로라면 우린 여기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트레킹 마치고 돌아오면 짐 싸서 나르자... 더 있어봤자 맘 편히 있기도 힘들어...”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깜깜한 마을 덕분에(전기 사정도 별로인데다 집도 몇 채 없다) 내 생전 가장 많은 별과 또렷한 은하수를 바로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별들이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몸이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치, 별은 가까웠다. 아... 내일의 등반을 위해 빨리 잠이나 자러 가야겠다.
3 Comments
abc 2004.07.17 21:27  
  안쓰럽다 해야할까  어린아이들이 벌써부터 저런 어려운 삶을 살아야한다는게 어찌 좀 그렇네요
권민경 2004.07.21 14:31  
  제가 전에 따나롯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냥 돈 주겠다고 하면 안받더라고요.뭐 연필하나라도 사야한다고 우기던기억이 나네요^^
아로미 2004.08.03 02:43  
  발리는 아름답지만... 저두 적응을 못하겠데요.. 넘 기분이 나뻐서리... 두번간 발리 성공적으로 놀지 못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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