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거 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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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거 사기꾼

네버스탑맘 9 1007

 

  몸에 각인 된 격언이 하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 그리고 그 말은 곧 태산이라도 허물면 티끌이란 뜻이니 한 푼 두 푼 아껴 써야만 한다는 격언으로 이번 여행에서 항상 맘속에 지니고 다녔다.

  한 달 동안 라오스와 태국을 돌고 마지막으로 들른 중국의 첫인상은 탁했다. 하늘은 미세먼지로 가득했다. 게다가 영어도 잘 안통하고 통화(현금)도 불편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달러로 지불하기가 쉽지만 중국은 좀 다르단 것을 지난번 터키에서 돌아올 때 경험한 사실이다.

 ​어쩔 도리가 없어 공항에서 100달러를 환전했는데, 말도 못하게 비싼 수수료를 뗀다. 언어장벽에 막혀 지하철을 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우선 호텔에 무사히 도착해야겠다는 일념으로 택시기사에게 호텔주소를 보여주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차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뒤로하고 미터기만 뚫어지게 보면서, 과연 얼마의 요금이 나올지를 조마조마해하며 바라보았다. 미터기가 올라갈 때, 처음에는 담담했다. 이 정도면 미리 알아온 요금에 비해 미미한 변화이기에. 그러다 톨게이트를 지나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지날 때는 요금이 빛의 속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아들아이가 지켜본다. 그때부터다. 투어비를 흥정하고, 싼 숙소를 찾아다니고, 태국과 라오스처럼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서조차 음식 값을 아끼며 지갑 단속을 했던 노고가 일시에 중국에서 날아갈듯한 위태로움으로 두려워했던 것이.

 

 중국은 현지어가 불가능하다면 자유여행을 하면 안 되는 곳이다, 소매치기가 빈번하고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심지어 신혼부부가 탄 택시가 고장이 나, 신랑이 뒤에서 미는 사이 기사가 그대로 신부를 데리고 달아나서 나중에 장기를 다 빼간 시체만 발견했다, 등등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 정보가 난무해서 아연실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택시기사는 호텔을 쉽게 찾지 못해서 몇 번 호텔로 통화를 한 뒤 주차문제로 조금 떨어진 곳에 우리를 내려준다. 비로소 미터기가 멈추고 나의 출렁이던 마음도 가라앉는다. 택시비도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금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숨을 크게 쉬고 짐을 푼 뒤, 마침 호텔조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푸짐한 아침 식사를 했다.

 

 청사과, 삶은 옥수수, 샐러드, , 볶음밥, 절임 야채, 크루아상, 식빵, 치즈, 소시지 등등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전문으로 가는 길에 시커먼 기름으로 튀겨내던 밀가루빵, 찜기에 담겨있는 지나치게 하얀 찐빵을 보며 중국은 계란도 쌀도 가짜로 만들어 판다는데, 앞으로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삼일을 버텨야 하는지 풀이 죽었던 우리로서는 오아시스와 같은 메뉴다.

 

 첨가제 없는 음식 그 자체가 최고의 맛을 낸다. 부드럽고 찰진 옥수수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알알이 으깨지면서 쫀득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크루아상도 오븐에 잘 구워져 켜켜이 버터 맛이 배어 있어 달콤 짭조롬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는 나와 달리 아이는 입이 짧아 한 접시 먹고는 그만둔다.

 ​사람 입만큼 간사한 것이 또 있을까? 여행 중에는 특히 더하다. 물 한 잔이 간절하다가도 막상 마시고 나면 물통이 번거롭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앞에서는 일전에 남겨놓고 온 음식이 간절하다. 지금 아들아이가 마다 한 이 음식들은 당장 하루 종일 발품을 팔 자금성 안에서도 생각이 날 것이 분명하다. 아들 몫으로 종업원 눈치를 보며 사과 한 알을 챙겨 천안문 쪽으로 갔다.

 

 북경 사람들은 공기가 탁하듯 어딘지 어둡다. 한결 같이 검은 외투를 입고 다니는 모습도 그렇고 눈자위가 누렇고 손톱에 검은 때가 끼어있는 모양도, 인력거꾼이 한사코 따라 오는 행태도 그렇다. 하도 끈질기게 따라 붙길래 눈도 안 마주치며 거절을 해도 끝끝내 식당 밖에서 기다리며 창문 안을 넘겨다보자 아이는 질색을 한다.

 

 서둘러 자금성으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기 전 들어가야 할 문이 많기도 하다. 천안문이 시작인 줄 알았으나 그 앞에 전문이 있다. 1월인데도 외국관광객뿐 아니라 자국의 관광객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입장료를 끊으려 줄을 서고 있는데도 호객꾼이 끊이지 않는다. 그가 어떤 편의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중국에 대한 선입견까지 있어서 무조건 냉담하게 대하려니, 도대체 이곳을 왜 여행하는가? 근본부터 다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우울해졌다.

 

 모택동 사진이 광장에 걸려있다. 프랑스가 왕조를 없애고 시민이 통치하는 나라를 만든 것에 뚜렷한 자긍심을 보이듯 중국도 마찬가지다. 자기들 손으로 왕조를 없애고 농민이 당주석이 된 나라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들은 철저히 인민 우선이다. 지하철, 버스비는 기껏해야 1위안, 2위안밖에 안 된다. 하지만 택시비, 전기세는 한국만큼 비싸다.

 

 고궁을 문화재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인민의 출입이 철저히 봉쇄되었던 이곳을 마음껏 드나들게 한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이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 편 9999칸의 방대한 고궁의 적막과 쓸쓸함도 함께 맛볼 수 있다. 태화전에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겹겹의 문들을 지나고 지나야 마침내 고궁에 들어서는데, 다른 곳은 해자와 성벽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오직 오문으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누군가의 침입이 두려워 나무 한 그루 심지 않은 황량함.

 

 ​서태후가 진비의 팔다리를 잘라 우물에 넣었다는 낙수당 뒤 진비정. 암투와 살인, 치정이 얽힌 곳곳의 이야기들은 휘발되지 않고 담벼락에도 지붕 위에도 남아서 이국의 아낙조차 몸서리치게 만든다.

 

 입장료를 10원 더 내고 보석관에도 들어가보았더니 뜻밖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곁에 있다. 아이는 고래밥을 발견하고는 신나서 하나 고른다. 주인 아주머니는 어떻게 아이를 동반하는 여행에 패키지로 오지 않았냐고 걱정 반 놀라움 반이 섞인 반응을 보이신다.

..계속 긴장하고 있어요.”

이렇게 답하고 아주머니의 염려와 응원을 뒤로 하고 경산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자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던진 동전들이 가득했다. 검은 점퍼를 입은 얼굴 크고 작달막한 중국인이 주먹만한 자석을 던져 동전들을 훑듯이 건져 올리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사람들은 동전 낚시꾼을 바라본다. 그는 돈보다도 사람들의 선망을 즐기고 있었다. 돈도 외모도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한 남자의 기행은, 그 순간만은 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오는데 인력거꾼이 또 따라붙는다. 계속 싫다고 하는데 그는 아이를 가리키며 아이를 위해 태워주라고 부추긴다. 그와 짧은 대화지만 영어가 통하니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요금은 3원이라고 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비가 둘이 2원이니 3원이면 나쁠 것 같지 않아서 지갑의 3원을 꺼내 보이며 다른 소리 못하게 단도리를 했다. 그는 건성으로 맞다고 하더니 어떤 사람에게 우리를 인계한다. 그에게 호텔주소를 보여주자 본척만척하면서 그대로 우리를 인력거에 태운다.

  그는 대로로 가지 않고 골목으로 우리를 이끈다. 울퉁불퉁한 도로 노면으로 엉덩이가 아플 지경이다.

엄마, 저 아저씨 힘들어 보이니까 5원 줘야겠다.”

아이가 그 말을 하자, 내심 그래 10원은 줘야겠구나..생각하는데 막다른 골목에 내려놓고 요금을 달라고 한다. 골목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좋은 남자가 구두를 닦고 있다.

여긴 우리 호텔이 아닌데요? 호텔로 데려다주세요!”

하면서 내리지 않자 바로 저기라고 하면서 자꾸 돈만 달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천안문이 담 너머로 보이고 호텔도 거기에서 멀지 않아, 더 이상 실랑이를 하기 싫어 10원을 주니 그는 돈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건 푼돈이다. 300원을 달라

우린 깜짝 놀라 3원이라서 탔다고 하자, 구두 신은 남자도 위협적으로 우리에게 300원을 주라고 한다. 나는 지지 않고 대항하다가 광장에 경찰이 보여서

경찰에게 가자.”고 소리쳤다. 구두 신은 남자가 그냥 20원만 주라고 해서 이십 원을 줘버렸다.

 

 그러고선 아이의 손을 잡고 홱 돌아 나오는데 식은 땀이 난다. 결국 아이는 울음보를 터트린다.

나도 다리가 후둘거린다. 호텔은 생각보다 멀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 근처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오는 내내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방콕을 떠나면서 여행은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북경에 당도하자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 천안문과 자금성 여행은 마쳤으나 내일 만리장성 여행은 남아 있다. 처음과 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행을 밀어댄다. 인력거 사기꾼 앞의 패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소심하고 째째한 내가 막다른 상황에서는 도리어 웬만한 장정보다 담대하다.

 

 중세의 패권국가였던 중국이 한때 동이족이라고 폄훼했던 오랑캐를 속여서 100배의 사기를 치는 태도에 기가 찰 노릇이다.

태산은 중국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한 번 오를 때마다 십년씩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끝없이 남을 속이고 불쾌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모습으로는 조상이 쌓아놓은 태산을 티끌로 만드는 건 순간이다. 동이족 아낙인 나는 티끌 모아 태산을 일구는 중이다.

인력거 사기꾼은 자기가 우리에게 어떤 용기를 주었는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횡액이 와도 뚜벅뚜벅 걸어나갈 준비가 되어있다. 고단하지만 도전이 용기를 준 하루였다.

9 Comments
향고을 2017.01.30 13:49  
중국은 선입견 때문인지는몰라도 다른 동남아국가를 여행할때보다더
긴장하고 조심하는 부분이 많은것도 사실이겠죠.
하지만 중국여행에 익숙해지다보면 여타 주변국 여행은
어째 좀싱거운 느낌이드는것도 사실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다보니 중국과 여행코드가
잘맞는듯도 하구요.
체질상 대도시는 잘맞질않아서 지방 변두리를 다니다보니
중국 소수민족 풍속문화,풍경들이 따뜻하게 느껴지는것이 좋았습니다.
대도시야 모르겠지만 지방 변두리는 그래도 사람냄새 물씬묻어나는것이 좋습니다.
중국여행기를 올리는분이 적어서 네버스탑맘님 여행기가 훨반갑게 느껴집니다.ㅎ
네버스탑맘 2017.01.30 14:38  
저도 대도시 말고 지방 변두리를 다녀보도록 하겠습니다.^^만리장성은 현지인 투어에 참여해서 갔었는데, 나름 좋았답니다.
그래그래 2017.02.01 00:50  
"‘동이족’이라고 폄훼했던 오랑캐를 속여서 100배의 사기를 치는 태도"???는 좀 아닌 거 같네요.
아무리 그래도 오랑캐라니요? ㅠㅠ;;;

중국인들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지요.
특히 돈 맛을 아는 가난한 사람들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들은 참으로 비참한 수준의 도시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 셈입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미를 이해하기 조차 어려워요.
평범한 중국인들도 그들을 피하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은 친절하고 정도 많아요.
네버스탑맘 2017.02.01 09:38  
여기서 오랑캐란 중국인들이 우리를 그렇게 불렀단 뜻이랍니다~~저도 그들이 베푼 친절에 향고을님이 왜 다른 동남아는 중국에  비해  밋밋하다고 하는지 알것 같았어요
돌이킬수없어요 2017.02.01 09:36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태국에서 조차 택시를 탈때마다 긴장 햇엇어요..
대부분의 기사님들이 미터를 켜주고 정당한 가격을 받앗답니다~
여자분?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하는 여행은.. 더 힘든것 같네요.
저는 아마 중국여행을 한다면.. 패키지를 할것 같아요..
요새 뭉쳐야 뜬다? 티비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키지보면... 힘들것 같기도 하지만요 ㅎㅎ
네버스탑맘 2017.02.01 09:39  
남경태인가? 북경에서 본전뽑기 가이드북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타이거지 2017.02.01 17:31  
북경에서 만난 인력거 사기꾼^^.
전 나평 유채밭에서 만난 빵차 사기꾼^^.
지금도 신랑과 딸래미..놀립니다..
중국인보다 더 목소리도 크고,한국말로 중국인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꺼랍니다 ㅡ.ㅡ;;
딸래미가 베이찡 가이드한다길래..
만리장성을 쌓을것도 아니고..대도시 울렁쯩..알제?
저만 빠졌지요..
칸츄리..변두리 중국..끈끈한 사람냄새..훈훈한 정..갈수록 매료됩니다.
nickdooe 2017.08.14 18:37  
우와.. 처음얘기하신 티클모아태산의 반댓말 태산도 허물면 티클이라.. 충격적인 말입니다.. ㅠㅠ
동람 2017.09.28 13:09  
태산도 허물면 티끌은 맞지만, 그 태산을 무너트리기가 쉽지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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